"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국은 노동자들이 오래 일하는 나라다. 노동자 한 사람이 1년간 약 2000시간 일한다(2018년 기준). 야근 문화가 심각하다고 알려진 일본(약 1680시간)보다 높은 수치다. 정부는 노동자들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7년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업계에서 반발해 전면 시행을 유예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많은 문제는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자의 사기와 건강을 해치고, 나중에는 생산성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며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강제할 것을 요구한다. 경영계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이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해 점진적 감축을 주장한다.

온·오프라인 마케팅 캠페인과 영상 콘텐츠 제작을 진행하는 광고 회사 '크리에이티브마스' 이구익 대표(38)는 일찍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에 눈을 떴다. 그는 회사가 근로자에게 '워라벨'을 보장할 때, 개개인의 업무 질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생산성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5년 전, 크리에이티브마스를 창업할 때 '주 4일 출근제'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신념에서다.

이구익 대표는 10여 년 간 전문 광고인으로 지냈다. 회의와 야근이 잦고 평일과 주말 경계가 없기로 소문난 광고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마스가 도입한 제도는 파격이었다. 직원들은 금요일이 되면 집이나 카페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일한다. 업무만 끝내면 오후 6시 전이라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매 여름과 겨울에는 '방학'이 있다. 연차와 별개로 직원들이 원하는 기간에 한 주를 쉴 수 있다.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이를 애도할 수 있도록 특별 휴가를 준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사가 최대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이 대표 경영 철학이 반영돼 있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그의 신앙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광고업계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여기며 소위 '갈아 넣는' 근무 환경이 만연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문화를 개선하고 싶었다. 그는 부하 직원이라 해도 하나님이 허락해 준 삶의 동반자로 여겼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회사가 직원들 성장에 필요하면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를 12월 24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그란 빵모자와 검은 뿔테 안경, 두꺼운 콧수염이 그의 직업 특색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소명'이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 '광고'라는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한 것 자체가 큰 축복이었다"며 "의미 있는 일에 달란트를 사용하고 싶다. 특히 복음을 담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고 싶다"는 비전도 내보였다. 꿈이 계속 확장하는 중이었다.

이 대표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시절, 하고 있은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광고업계, 야근·주말 출근 심각
파격적 주 4일 출근제 시행
여름·겨울마다 일주일 방학
"직원들은 인생의 동반자"

- 크리에이티브마스는 '주 4일 출근제'를 시행한다. 직원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다.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 광고업계가 야근이 많기로 악명이 높다. 아무 답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몇 개 아이디어만 놓고 밤새 씨름하니까 과도하게 일한다. 광고 회사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거의 을이기 때문에 고객사가 일하면 우리도 쉴 수 없다.

직원들에게 숨 쉴 만한 여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떻게 휴식을 줄지 고민하다가 공간적 자유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창업 초기부터 직원들에게 금요일에 사무실로 출근하지 말고 집이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일하라고 했다. 일이 없으면 아예 쉬라고 했다.

- 현실적으로 일이 많아서 업무 강도가 센 이유도 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제도가 가능하다고 봤나.

내가 회사 생활 시작했을 때는 사생활이 없었다. 새벽같이 일하고 주말에도 부르면 나와야 했다. 첫애가 크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광고 회사는 '우리 모델이 정답이 될 수 있다'고 고객사를 설득해야 하는 위치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기획을 내놓는 동시에 튼튼한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회의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이 일이 힘든 이유다. 오전에 화장품 광고 시안을 놓고 고민하면, 오후에는 보험 상품 콘셉트를 놓고 토론한다. 저녁에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매번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발생하고 진행되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늘어난다.

그렇게 일하면서 점점 의문이 들었다. 너무 많은 보고서, 불필요한 절차, 답 없이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회의를 걷어 내면 시간을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원래 이 일이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타성에 젖어 일하는 게 너무 싫었다. 가장 창의적으로 일한다는 사람들이 업무 환경은 가장 보수적이었다.

- 광고업계에서는 수입이 꽤 안정적인 회사에 다녔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 회사를 나와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실력만 있으면 나머지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니 한계가 있더라.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직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런 시도를 해 보고 싶어 회사를 만들게 됐다.

올해로 창업한 지 5년이 됐다. 직원은 20여 명으로 늘었고 연매출은 50억 가까이 된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 회사가 직원들에게 방학을 준다고 들었다. 반려동물 이별 휴가도 있다고. 다른 회사에서 보지 못한 제도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노마드 위크'를 운영한다. 방학과 비슷하다. 회사가 정한 기간에 연차와 별개로 일주일을 직원들이 원하는 기간에 쉬게 하는 제도다. 방학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지 않나. 성인이 된 직원들에게 휴식도 주고 학창 시절 추억도 되찾게 해 주고 싶었다.

반려동물 휴가도 직원들 필요가 있어서 만들었다. 가족 같은 존재가 세상을 떠나면 슬프고 일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휴가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체육 대회 대신 야외 바비큐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제육 대회', 회의나 강연 일절 없이 여행하고 노는 '워크숍'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은 가족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다들 인생의 동반자다. 이들과 먹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 제도들을 만들었다. 젊은 시절,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다.

업무 시간에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거나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문화 회식'을 한다.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마스
직원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체육대회 대신 제육 대회를 연다.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마스

- 이렇게 쉬고 놀게 해도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회사에 경력직이 많다.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 이해하고 있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경험치를 갖고 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신입 사원을 육성하며 일을 효율화하고 있다.

직원들이 맨땅에 헤딩하지 않도록 최대한 케어하고 지름길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효율성이다. 무조건 긴 시간 붙들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지 방법을 설명하고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능률과 재미도 함께 따라온다.

사실 주 4일제 출근이나 다른 복지 제도는 부수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 회사든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건 성실과 책임인데, 이러한 태도는 개개인이 업무와 관련한 명확한 소명을 갖고 있을 때 나오는 것 같다. 직원들이 자신의 비전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회사 역할이다.

어릴 때부터 다짐한 '광고인'
예수님의 희생정신과 비슷
국내외 NGO 위해 공익광고 제작
기독교 콘텐츠 제작 목표

-왜 광고 전문 크리에이터가 됐나?

어렸을 때 집이 가난했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조금 있었다. 처음에는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작가가 돼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전문성 있는 직업을 찾았다. 교회에서 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단막극 대본을 쓰고는 했다. 주로 광고를 패러디했다. 자연스레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광고인이 되기로 다짐했다.

하나님께 매일같이 기도했다. 광고를 통해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겠다고. 그때부터 대학 전공, 동아리 활동, 공모전 등 모든 활동을 '광고'에 맞추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광고라는 사명을 발견해 인생의 나침판 삼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다.

- '크리에이티브마스'라는 회사 이름은 크리스마스를 연상하게 한다. 창립일도 12월 24일이라고 들었다.

크리스마스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크리에이티브마스라고 지었다. 미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광고와 예수님의 구원이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신나고 화려한 면만 부각되지만, 본질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데 있다. 나는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희생이 크리스마스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광고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광고가 보여 주는 화려한 모습만 기억한다. 광고인들은 겉보기에 멋있고 돈도 많이 벌고 연예인도 많이 만날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치열하게 일하는 광고인들의 희생이 쌓여 있다.

광고주는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연구와 실험, 고민을 거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이를 진정성 있게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광고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광고가 매력이 없거나 흥미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제품을 외면한다. 광고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절실하게 광고를 만든다.

크리에이티브마스는 재능 기부 형태도 NGO를 위한 공익광고를 만든다.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마스

- 재능 기부 형태로 공익광고도 여러 편 제작했다.

창업 초기에는 밀알복지재단 독거노인 캠페인 광고를 재능 기부로 만들었다. 지금은 굿네이버스·옥스팜 등 여러 NGO에서 일부 비용을 받고 광고를 제작하고 있다.

올해는 굿네이버스 '아이들 편에서 놀이를 외치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인프라가 열악한 산간·도서 지역 어린이들에게 놀이 콘텐츠를 보급하는 프로젝트다. 의뢰한 비용을 넘어 TV·라디오·신문·잡지·인터넷용 광고를 모두 제작해 드렸다. 우리 직원들도 올해 하반기에 장난감 세트를 들고 초등학생 7~8명만 있는 섬을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크리에이티브마스는 기독교 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매일 묵상 모임을 진행하고, 매주 예배도 연다고 들었다. 기독교 회사를 내세우는 이유는?

처음에는 그저 광고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점차 경험을 쌓으면서 이웃을 살리는 좋은 광고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게 됐다. 사내 신우회에서 활동하며 회사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신앙 양심상 동의가 안 되는 제품 광고를 맡는 것도 힘들었다. 이런 고민들도 창업을 한 이유 중 하나다.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며 가치 있는 활동과 품질 좋은 광고로 모든 면에서 인정받는 회사가 되고 싶다. 이쪽 업계는 광고 한 편을 수주하기 위해 여러 회사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역량을 갖추는 동시에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일하는지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기독교 기업이라는 점은 밝히는 건, 내부 구성원들에게 우리의 경영 철학을 강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회사 공식 대표도 예수님으로 정했다. '지저스 대표'가 조직도 맨 위에 있고, 문서에 결재란도 따로 만들었다. 범사에 예수님을 우리 주로 고백하자는 취지다. 개인적으로는 수직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직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직원들은 나를 '대표'라는 직함 대신 'CD(Creative Director)'라고 부른다.

물론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 기독교를 표방하는 기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기독교 자체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치가 회사 이념으로만 남고, 현실 경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업에서 일하는 직원들 모습이나 환경은 기독교 정신과 관련이 없는데 예배와 기도 모임만 강조할 때, 신앙과 삶의 괴리가 발생하고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마스의 예배나 묵상 모임은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직원들이 서로 무너지지 않도록 믿음의 삼겹줄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 마치 교회 공동체처럼 서로 돌보고 기도해 주는 관계가 우리 회사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인 건 아니다. 이러한 기업 문화에 강한 거부감이 없다면 함께 일할 수 있다. 신앙이나 예배, 모임을 강요하지 않는다. 회사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다행히 아직까지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직원은 만나지 못했다. 이들이 혹시나 역차별을 경험하는 건 아닌지 계속 살피고 있다.

- 앞으로 어떤 광고를 만들고 싶나?

앞으로는 기독교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싶다. 최근에는 성경을 아이들 눈높이로 알려 주는 '만나키즈'라는 영상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는 식의 교육은 한계가 있다. 차라리 성경을 참신하고 재미있게 전해,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만든 콘텐츠는 지역 교회가 아이들 교육에 쓸 수 있도록 무료로 보급할 예정이다.

우리는 웹 드라마를 만드는 '크로스마스'라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을 반영한 드라마와 단편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미디어 선교사'라는 사명을 갖고 하나님을 전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그게 광고를 잘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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