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진한 아메리카노에서 풍기는 향은 머그잔에 쓰인 카피 문구처럼 부드럽고 고소했다. "쓰지 않을 거야. 인생도, 커피도." 카페 '내일의커피' 문준석 대표(37) 부인이 쓴 문구다. 커피 한잔이 누군가에게 밝은 내일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다.

2014년 개업한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내일의커피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난민을 채용해 바리스타 직업훈련과 한국어 교육을 진행한다.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케냐·이집트·카메룬·콩고·부룬디·에리트레아 등에서 온 난민 9명이 이곳을 거쳤다. 지금도 난민 3명이 바리스타로 일하며 한국 사회에서 보낼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내일의커피는 난민을 지원하고자 만들었지만, 이런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바리스타가 난민이라고 하면 손님들이 처음부터 선입견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아프리카 바리스타가 내리는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라는 점을 홍보 콘셉트로 내세우고 있다.

일부 고객은 피부색이 다르거나 이국적인 외모를 보고 "어디 나라 출신인가", "한국에는 왜 왔는가" 등을 묻는다. 몇 번 대화가 오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들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에 고객들이 불쾌해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내일의커피 바리스타 중에는 손님들과 인연을 맺어 함께 관광지에 놀러 가거나 식사에 초대받은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 난민을 고용해 교육하는 내일의커피 문준석 대표를 1월 9일 내일의커피에서 만났다. 카페에 들어서자, 문 대표는 계산대 앞에 서서 직원들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알려 주고 있었다. 그는 "카페는 작지만 하나의 열린 사회다. 사람 대 사람으로 난민을 만나 교제하고, 난민을 둘러싼 선입견을 깰 수 있도록 이런 공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문준석 대표는 난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 봉사 활동으로 난민과 첫 만남
"어둡고 무기력할 거라는 편견
실제로 보니 긍정적인 사람들"

문준석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난민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난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 그가 난민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건 2009년 교회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국내외 난민을 돕는 시민단체 피난처(이호택 대표)가 당시 문 대표가 다니던 높은뜻푸른교회(문희곤 목사)에,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 문화를 소개해 달라며 몇몇 가정을 부탁했다.

문 대표는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대부분 콩고에서 온 난민이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난민들, 교회 청년들과 함께 서울 곳곳을 놀러 다녔다. 놀이공원에 가고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등 가볍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난민들이 사는 집에 찾아가 아프리카 전통 음식과 빵을 먹기도 했다.

난민과 직접 소통한 경험이 문 대표가 지니고 있던 편견을 깨뜨렸다. 그는 "난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둡고 무기력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직접 만나서 교제하니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 한잔이 누군가에게 밝은 내일이 될 거라는 소망이 담겼다. 사진 제공 문준석

안정적인 회사 관두고
내일의커피 창업
난민 고용해 2년간 직무 교육

문준석 대표는 교회에서 아프리카 난민들과 수년간 교제하며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자세히 듣게 됐다. 한국은 난민 인정을 받으면 체류를 보장해 주지만, 취업이나 교육 기회는 좀처럼 제공하지 않는 야박한 사회였다. 여러 기회에서 배제된 난민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바깥으로 밀려났다.

문준석 대표는 이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카페를 만들어 난민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이 아이디어로 그는 2014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같은 해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위키 서울'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창업 자금을 더해 2014년 10월 서울 대학로 골목에 내일의커피를 열었다.

문 대표는 "30대 초반에, 가정도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관두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난민 친구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일을 보면서 자꾸 부담이 생겼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시민단체를 통해 알게 된 아프리카 난민을 바리스타로 고용했다. 내일의커피를 오가는 사람들이라도 난민을 향한 편견과 오해를 깰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봉사 활동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바리스타가 만든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라는 점을 내세우니 고객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단골 고객들은 우리 직원들과 친하게 지낸다. 한국인 바리스타보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바리스타 친구들의 이국적인 외모를 보고 고객들이 먼저 말을 건네더라. 바리스타 친구들도 밝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편이다.

난민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며 야시장에 데려가고, 한국은 여기에서 옷을 사야 한다며 동대문에 같이 가기도 한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거나 결혼식 청첩장을 주는 고객도 있었다. 사람들이 난민을 사람 대 사람으로 허울 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

내일의커피는 고용된 이들에게 커피 관련 지식을 포함해 서비스업에 필요한 기술과 한국어 등을 가르친다. 문 대표는 "우리는 최장 2년간 직원을 고용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바리스타를 양성하려면 기간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난민들에게는 한국인을 상대로 서비스업에서 종사한 경험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다른 카페나 레스토랑 등에서 일자리를 구할 때 고용주들에게 어필할 만한 경력이 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가 커피 지식부터 서비스업에 필요한 기술, 한국어 등을 직접 교육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난민 부정적 반응 일부 이해
거짓 정보는 분별해야
강도 만난 이웃 내쫓는 교회
따뜻하게 맞이하고 포용해야"

한국은 2018년 4월, 예멘인 500여 명이 내전을 피하기 위해 제주도로 몰려오자 난민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확산됐다. 여론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예멘 난민이 청년들 일자리를 빼앗고 안전을 해친다며, 강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에 일부 교회는 예멘인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를 더해 반대 여론에 동참했다.

문준석 대표는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안전이나 일자리에 한국 사회가 예민하다. 난민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공격성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난민을 비판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난민을 둘러싸고 거짓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졌다.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에도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다. 난민을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사실관계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당시 많은 교회가 난민 반대 여론에 동조해 문 대표는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경 가르침대로 난민에게 적극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난민들은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나그네와 같다. 그런데 2년 전 한국교회 모습은 이들을 내쫓은 거나 다름없다.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여기까지 온 난민들을 교회가 먼저 나서서 돕기는커녕 부정하고 배척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선교를 무척 열심히 한다. 이슬람권 국가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선교하러 떠나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오는 사람을 막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포용하는 일이 교회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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