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남성 중심적인 한국교회 신학 풍토에서 '여성적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가운데 여성적 하나님 또한 남성적 하나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특수한 정체성을 넘어선 하나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신학자가 있다. 조직신학자 최순양 교수(협성대 초빙)다. 그는 여성주의 운동이 생물학적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약자와도 연대할 수 있는 자리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순양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회학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 드류대학교에서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캐서린 켈러 교수(Catherine Keller, 1953~) 밑에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알 수 없는 인간'(The Non-Knowing Self and 'The Impossible' Other)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서 안수를 받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대학교회 청년부 목사로도 사역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사상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1942~)을 소개하며, 이들의 이론을 통해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는 최순양 교수를 11월 16일 감신대에서 만났다.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를 통해 들은 최 교수의 삶과 학문 탐구 여정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조직신학자 최순양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조직신학자 최순양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서울 수유동에서 나고 자랐다. 활달한 성격에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고, 산으로 자주 놀러갔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할아버지가 집을 봐 주는 경우가 많았다. 1남 2녀 중 막내라 그런지, 언니와 오빠에 비해 공부하라는 요구를 상대적으로 덜하셔서 많이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필요성을 느껴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반에서 1~2등 정도 했다. 출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영어영문학과 같은 과에 갔을 것이다. 그러다 고3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보다 할아버지에게 애착이 컸다. 혼자 밥 드실 때 같이 있기도 하고, 술을 마실 때 곁에서 인생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안 나 어린 마음에 도망갔다. 너무 슬퍼서 공부도 안 하고 몇 개월을 낭비했다. 그 여파로 재수하게 됐다.

갑자기 왜 사람이 사는지도 궁금해지고, 삶에 회의감도 들고,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더라.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게 정답이 아닌 것 같아 많이 방황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되는 걸 공부하고 싶어서 사회복지학이나 기독교학에 마음이 갔다. 결국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로 진학한 것은 기독교인이자 사회인으로서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 교회는 언제부터 다녔나. 어떻게 신앙생활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교회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외할머니가 교회를 개척하는 데 참여할 정도로 열의가 많으셨다. 개척에 참여한 교회가 감리회 큰 신학자 집안으로 알려진 김동완·김홍기 목사님의 형제교회(현 평화를만드는교회)였다. 엄마·아빠도 장로님이었는데, 나는 어릴 적 혼자 수유리의 가까운 장로교단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무렵, 다니던 교회에 회의가 생겼다. 그 교회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기복신앙적 메시지에 거부감이 들었고, 신앙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내가 찾고 싶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3 때는 교회에 아예 안 나가다가, 재수할 때 예배하고 싶을 때만 우이감리교회에 갔다.

대학 때 부모님이 다니고 있던 형제교회에 갔는데, 회의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더라. 사회운동을 강조하던 실천적인 교회였기 때문이다. 당시 형제교회가 표방한 것은 이 땅의 하나님나라였다. 현실적이고 사회 변화적 복음을 전파하고자 애썼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존재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자연스럽게 실천적인 감리회의 신앙에 애착을 느꼈고, 교회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다.

최 교수는 실천적 감리회 전통을 따르는 교회를 다니면서 사회 변화적 복음에 눈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감신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최 교수는 실천적 감리회 전통을 따르는 교회를 다니면서 사회 변화적 복음에 눈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감신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신학이 뭔지 잘 모르고 갔지만, 기독교학과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이 재밌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긴 인생에 대한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겠더라. 특히 서광선 교수님의 조직신학 수업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도로테 죌레의 <사랑과 노동> 같은 책을 읽으면서 신학의 패러다임 같은 것을 공부하던 기억이 난다. 죌레는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질문한 뒤, 미국에서 평소 아무 일도 안 하면서 TV를 보며 팝콘을 먹는 뚱뚱한 아주머니 형상으로 그리스도가 올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간접적으로 배운 민중신학에도 매력을 느꼈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한다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고, 내가 생각한 예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이후 감리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감신대 신대원은 그래서 간 것이다. 생각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일단 (학내 사태로) 수업을 들은 날이 전체 일수에서 절반 정도였다. 이화여대는 여학생들만 있어선지 여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감신대는 여성은 소수이고, 교수도 남성이 많아 가르치는 신학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거리감을 느껴 종교사회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 감신대에서 종교사회학 석사 학위논문으로 '한국교회 내 목회 현장에서의 여성 배제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썼더라. 어떻게 쓰게 됐는지, 쓰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궁금하다.

감리회 여성 목회자들이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여성 관점에서 여성 목회자 현실을 파악하려 하는 기관이나 개인도 없었고, 여성 목회자에 대한 통계도 없었다. 연회 보고서를 보면서 전체 목회자 중 여성이 몇 퍼센트인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산했던 기억이 난다. 현황을 파악하는 일부터 힘들었다.

논문을 위해 여성 목회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한국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목사 안수를 위해 심사할 때) 결혼 안 한 목회자에게 "결혼을 왜 안 하나? 남성 신도들 유혹하려고 결혼 안 하나?"라고 묻고, 결혼한 목회자에게는 "남편 목회를 보조하는 '사모'가 아니라 왜 단독 목회를 하려 하나?"라고 묻는 등 말도 안 되는 일을 겪는 상황이었다. 기가 찼다. 오래 사역했지만 전도사로만 남아 있는 여성 목회자도 많았고, 남성 목회자가 자리를 가로채기도 했다.

- 지금은 그 논문을 쓴 시점에서 20년도 더 지났는데, 상황이 나아진 것 같은가. 2020년 감리회의 현실은 어떤가.

감리회 여성들이 의식을 갖고서 성폭력 목회자들을 고발하고 자발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모습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발전한 것 같다.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도 생기고, 적극 활동하려는 젊은 여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는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미국 감리회에서 안수받으려다가 상황이 안 돼서 한국에 돌아와 안수를 받았다. 선배 목회자가 운영하는 쉼터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었는데, (심사받을 때) 한 목사님이 "왜 선배 목사가 일하는 데 가서 일하느냐? 세습하려는 거냐?"고 묻더라. 세습의 개념을 모르는 분 같았다. 남편에 대해 물어서 안산에서 목회한다고 했더니, 사모를 안 하고 단독 목회로 왜 남편 목회에 도움을 안 주려 하느냐고 묻더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예전과 거의 똑같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여성 목회자를 일종의 액세서리로 여기는 인식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도 보면, 이동환 목사에게는 정직 2년을 선고했는데, 그에 비해 성폭력 문제가 제기된 목사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았나.

최순양 교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 목회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최순양 교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 목회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 석사과정 후 미국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됐나.

감리회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이 감신대에서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논문을 쓰면서 마주한 한국 상황도 절망적이라 막연하게 미국 감리회는 조금 낫지 않을까 싶었다. 미국에서 신학을 하는 여성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남편이 먼저 미국으로 유학 가게 됐는데, 나는 배우자 신분으로 따라가 그곳에서 토플을 공부하면서 준비했다. 감리회이면서 진보적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인 드류대학교에 지원하게 됐다. 드류에 어떤 교수님이 있는지는 몰랐다. 갔더니 캐서린 켈러라는 멋있는 조직신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학부 때 느낀 조직신학에 대한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이분 지도로 학위를 받았다.

- 유학 생활은 어땠나.

많이 힘들었다. 아이 낳고 돌이 됐는데, 남편이 비자 만기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육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해 온 것이 아까워 박사과정을 관두지 못했다. 복지 제도 도움을 받아 경제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 아이를 맡기는 오전 9시부터 데려오는 오후 5시까지만 공부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나머지 시간은 아이 키우는 데 썼다.

유학 생활이 내가 완전히 바뀌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하루에 약속을 3~4개 잡을 정도로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했는데, 오롯이 혼자 보내고 육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안 좋게 말하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서 우울한 시기를 보낸 것이고, 좋게 보면 나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학위를 마쳤다. 너무 힘들어서 2008년 겨울까지 학위논문이 통과되지 않으면 놓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켈러 교수님에게 심정적 위기를 호소했더니, 할 수 있다며 전폭 지지해 주셨다. 2008년 12월로 심사 날짜를 맞춰 주셨고, 제2심사위원에게 사정이 생겨 시간 내에 학위논문 심사를 못 하게 되자 다른 사람으로 급히 교체해 주시기까지 했다. 그 배려 덕분에 시기 내 기적적으로 마쳤다. 켈러 교수님은 애정도 많으신 분이었고,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계셨다.

- 켈러 교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달라. 그분 밑에서 무엇을 배웠나.

종교적 심성이 불교나 도교에 가까운 분이다. 해체주의 신학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말해진 전지전능한 하나님,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체계적인 철학적 변증의 하나님이 '잘못된 하나님'이라는 말을 했다. 부정신학, 신비주의 신학에도 심취해 있었다.

이분이 말하는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다. 처음 여성신학을 공부할 때는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uether, 1936~), 엘리자베스 존슨(Elisabeth Johnson, 1941~) 등이 말하는 여성적 하나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해체주의·구조주의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언어는 이분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남성에 대비되는 여성을 말해 봤자, 계속 남성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켈러 교수님 밑에서, 여성적 하나님이라는 말이 결국 '주인의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주인의 언어란 백인 남성 중심적 주체를 '인간'으로 상정한 형이상학적 주체를 기본값이라 생각하고, 비교 관계로 여성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여성적 하나님을 언급할 때도, 여전히 백인 남성 주체를 정상값으로 놓고 반대되는 차이를 지닌 존재를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기존 여성신학자들이 말하는 여성적 하나님은, 서구 백인 남성 주체와 반대되는 차이를 가졌기에 주인의 언어에 매여 있는 셈이다.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남성이 지어 놓은 이름에 순응하는 것일 수 있다. 차라리 여성이라는 존재를 아무 지칭 없이 말하면 좋겠다고, 요즘에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여성에게 '여성이다', '여성적이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오히려 해방적인 것처럼.

켈러 교수님은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과 섞여 계시는 하나님 개념을 좋아하셨다. 하나님을 특정 사람 이름이나 정체성으로 말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정한 정체성으로 말하는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조금씩 모두의 정체성을 담은 하나님이면 가장 좋겠지만, 불가능하니 특수한 정체성을 넘어선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게 정치적으로 옳다.

엘리자베스 존슨 등 1~2세대 여성신학자들처럼 '여성이신 하나님',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전략적으로 말할 필요는 있다. 다만,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어느 특정 이미지에 가두지 않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본다.

2017년 10월, 캐서린 켈러가 방한했을 당시 강연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7년 10월, 캐서린 켈러가 방한했을 당시 강연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박사 학위논문 주제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알 수 없는 인간'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준다면.

논문 쓸 때 켈러 교수님뿐만 아니라, 트린 민하(Trinh T. Minh ha, 1952~)라는 탈식민주의 아시아 페미니스트 여성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존의 탈식민지 이론은 서양이 여기 있으면 동양이 저기 있고, 여성이 여기 있으면 남성이 저기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트린 민하는 다르게 말한다. '남성이 이렇고 여성은 이런 존재다'고 말하는 게 여성을 편들어 주고 여성 해방을 말하는 듯하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남성이라고 했을 때 서구 백인 남성의 주체로 정의되는 특징이 있다. 그 정의를 따르면서 남성이 이렇고, 여성은 저렇다고 설명하면 유색인종 여성은 여전히 서구 백인 남성과의 차이에 매인다.

인간의 정체성 기준을 서구 백인 남성으로 세워 놓고, 비서구·비백인·비남성 존재들은 그에 반대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의 틀을 깨뜨려야 한다. 그 틀을 깨뜨리지 않고 비서구·비백인·비남성을 정의하면 여전히 서구 중심 사고에 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소개하는 방식은 용이할 수 있지만 서구의 틀에 비서구를 가두는 일이다.

여러 혼종된 특징을 동시에 말하면서 이분법을 교란하는 게 해방적이다. '알 수 없는 인간'을 말하는 일은 기존의 이분법적 분류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을 이분법적 틀에 가두지 않는 작업은 하나님을 이분법적 틀에 가두지 않는 것과 같이 간다. 이 이야기를 논문에 썼다.

과거 부정신학자는 알 수 없는 신비의 하나님에 대해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을 다룰 수 없다'까지 말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자크 데리다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은 '서구 형이상학의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가'를 논한다. 하나님뿐 아니라, 억압받은 타자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갈 때도 이분법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이 이를 가르쳐 줬다. 여태까지 나를 표시하는 언어가 '서구 백인 남성의 형이상학'에 갇혀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주인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많은 경우 자신이 그렇게 하는 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주인의 언어를 어떻게든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것이 절대어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너는 여성이니까 이렇게 해"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이럴 수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존재다"고 문제 제기하는 일이 우리가 낼 수 있는 균열이지 않을까.

- 한국에 돌아와 여성신학을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신학이 주목을 받는 현상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한국의 페미니스트 신학 담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강남역 사건 이후, 생물학적 여성들이 단합해 서울 혜화동에 모여 집회하는 모습을 좋게 봤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여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자각해 의욕적으로 활동하며 문제의식을 만들어 내는 일은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해체주의적 여성주의 입장에서 '생물학적 여성'만 연대하면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본다.

어떤 사안에 대한 분노, 변화를 향한 욕구를 표출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가면 여성들만 싸우게 될 수 있다. 생물학적 여성만의 연대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지닌 다양한 여성이 함께해야 훨씬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반응은 보통 반반이다. 동의해 주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 힘 빠지게 왜 그러냐. 이렇게 모여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반응하는 분도 있다. "여성들 안에도 차이가 있다"고 하면, 그게 왜 대안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여성운동만으로 가는 게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 만약 여성이 기득권이 되는 경우가 생기면, 여성적 문제의식을 놓아 버릴 것인가. 여성주의가 여성이 남성 자리를 대치하는 평행이동을 지향하는 것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다른 사회 약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서발턴'(Subaltern, 정형화한 범주에 들지 못해 배제되는 사람들 – 기자 주)이라는 용어를 더 좋아한다.

스피박도 페미니즘이 이분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나누고, 남성은 가해자로 여성은 피해자로 놓으면서 여성 스스로가 가질 수 있는 가해자성을 보려 하지 않는 경우를 비판한다. 여성 간에도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여성만이 아니라, 약자의 얼굴에서 어떻게 여성을 같이 겹쳐서 볼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자기 정당성에 빠져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어떤 운동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애정을 담아 민중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민중신학은 자신들이 그리는 약자의 얼굴에 여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개혁적으로 시도해 보려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여성신학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권위 의식으로 기준을 만들거나, 약자가 누구인지에 민감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최순양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두 이론을 통해 현대 철학과 교차성 있는 신학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최순양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론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두 이론을 통해 현대 철학과 교차성 있는 신학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스피박과 버틀러를 비롯한 현대 사상가들을 불러오면서 신학적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작업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스피박과 버틀러는 둘 다 기존의 지식인 기득권을 고발한다. 조금 다른 모습의 지식인이 되라고 요청한다. 신학자나 여성학자는 아무래도 지식인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계속 깨닫기 위해 두 사람의 이론이 필요하다.

지식인으로서 글을 쓸 때 누군가를 대변한다거나 재현한다고 하지 않나. 대신 말하는 역할, 어떤 사람을 대신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은 대부분 지식인이다. 그럴 경우, 직접 만나 보지 않은 채로,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이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라는 식으로 말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지식인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전지적 시점을 버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갖고 있지 않고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변하는 지식인이라면, 대신 말할 때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알고 있는지 솔직하게 밝힌다면 착각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성신학자 곽푸이란(Kwok Pui-lan, 1952~)의 예를 들면, 그는 '동양 여성에게는 관음보살이라는 여신 이미지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렵고 황당하다. 관음보살은 중국에서 들어온 중화사상의 결과물인 측면이 있다. 한국 여성들은 이제 오히려 동양적 이미지보다는 서구적인 신 이미지에 더 익숙한 측면도 있다. 자신이 확인해 보지 않은 채로 진리인 양 이야기하는 일을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이게 무척 힘들다. 글을 쓰는 욕구를 저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정확하게 말하려면, 솔직하게 쓰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게 성숙한 글쓰기 자세가 아닐까.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내가 별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 지식적으로 어떤 사람을 표현할 때 내가 먼저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학자나 지식인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게 허구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만 옷깃을 여미는 게 아니라,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그들에 대해 훨씬 조심하고 겸허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하면 누가 글을 쓰겠어?' 싶기도 한데, 딜레마로 남는 부분인 것 같다.

'위안부' 할머니와 한 국회의원 관련 이슈가 있지 않았나. 누가 누구를 대변·대표하느냐는 문제에 취해, 당사자가 불편을 느꼈다고 하는데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아예 말을 못 하게 했다. 그런 힘이 이미 형성돼 있으니 서발턴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서발턴이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서발턴 당사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사실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서발턴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을 지닌 많은 지식인, 서발턴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사람 앞에서 옷깃을 여며야 한다. 그런데 위치가 전도돼 있다.

최 교수는 신학자 등 지식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에, 항상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최 교수는 신학자 등 지식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에, 항상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스피박 등의 이론을 통해 성서 읽기를 시도하는데.

구약성서에 나오는 라합을 예로 들면, 과거 해석을 보면 라합을 신앙의 민족 이스라엘을 선택한 모범이 되는 여성으로 그려 왔다. 그러다 탈식민주의 여성신학 관점에서는 자기 민족을 배반한 인물로 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라합을 '매국노'라는 식으로까지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둘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라합은 기존 시각으로는 알 수 없는 약자적 위치에 있다. 그것을 이스라엘 중심주의나 탈식민주의 틀로 본 것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읽을 수 없는 인물이 라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유롭게 질문하며 라합이 어떤 존재였는지 상상해 보는 게 필요하다. 종합적으로 라합의 존재를 상상해 보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룻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한 신앙심의 모델로 읽기도 하고, 어머니와의 자매애가 본문에 충실하게 반영됐다고 읽기도 한다. 나는 강의할 때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강조한 시각은 결코 상호 관계적이지 않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성 상납을 시킨 것일 수 있다"고 말하면 듣는 이들은 충격을 받기도 한다.

왜 그렇게 시어머니를 곡해하느냐고 반응하기도 한다. 룻을 남성 중심적으로 대상화한 해석에 대한 반대급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자매애를 강조하는 게 여성에게 힘이 되는 시선 아니냐며 왜 찬물을 끼얹냐고 되묻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시각을 이야기하기보다, 독자가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다 보면서 '이럴 수도 있겠구나' 선택하도록 놔두는 게 맞다고 본다. 만약 여성주의 시각이 너무 여성들을 영웅화하거나 미화한다면, 그게 더 나쁜 측면도 있다. 룻 같은 인물을 볼 때 단일하게 보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보면 어떨까.

스피박이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이렇게 시도한다. 그동안 지식인들은 대중을 단순하게 주도해 왔다. 이런 여지도 저런 여지도 있기 때문에, 특정한 해석이 맞다고 결정 내리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자가 성서를 통해 여성 인물을 만날 때, 다양한 가능성을 알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서를 해체주의적으로 보는 것이다. 성서는 열린 책이 아닌가. 성서 속 다양한 사람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해,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

- 기독교인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책이 있다면.

내가 교재로 많이 사용하는 엘리자베스 존슨의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 연민하며 저항하는 사랑의 주를 찾아서>(북인더갭). 하나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젊은 세대가 읽으면 좋을 법한 책이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다. 신정론, 하나님의 남성성, 인종차별 이슈를 비롯해 기독교가 만든 여러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하나님이 이 같은 구조를 만든 존재가 아니라는 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아픔을 겪고 우리는 위로하는 분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른 하나는 <아픔 넘어 - 고통의 인문학>(유기쁨·이상철·정경일·최순양 지음, 인터하우스 펴냄). 종교적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세월호를 겪으며 고통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쓴 인문학적 글이 담겼다. 학문적이지 않고, 수필식으로 썼다. 고통을 만나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쓴 글이다. 나도 저자로 참여했는데, 고통이란 것은 신비적인 개념이라고 썼다. 고통을 대할 때 신정론적으로 자꾸 설명하려 하지 말고, 고통 자체를 신비의 영역으로 놔두고서 같이 걸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오늘날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은.

교회가 사회에 가서 배웠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여다봤으면 한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뭔가를 제시하려 하거나 리드하려 하지 말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서 겸허하게 배우기를 바란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을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젊은 여성이 교회를 떠나는데, 이들이 왜 교회에 실망했는지 진지하게 들었으면 좋겠다.

최순양 교수가 추천한 책 <아픔 너머>(인터하우스)와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북인더갭). 뉴스앤조이 강동석
최순양 교수가 추천한 책 <아픔 넘어>(인터하우스)와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북인더갭). 뉴스앤조이 강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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