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죄인과 극소수의 의인으로 구성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죄인을 복원시키는 한 사람, 예수가 거기 있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외치면서. (중략) 성서를 읽는 것은 성서로 세상을 보고, 거기서 현재를 사는 통찰력을 얻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다. 빛나는 미래를 맞으려면 인간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책세상), 157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12년 전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 제목에 끌려 구입한 책이었다. 막연히 성경이 뭔지 알고 싶었던 시절, 결론부를 읽고서 가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성경을 읽는다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법 공들여 쓴 듯한 저자 소개나, 신학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들어가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교단 신학교 서울장신대(총회 인준) 김호경 교수가 쓴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 초판은 2001년 출간됐다. 2015년 찍은 12쇄로 초판이 마무리되는 등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 책은 19년 만에 새 옷을 입었다. 올해 2월 리커버판이 출간된 것이다. 여러 동화를 제멋대로 섞어 놓은 맹구 이야기를 통해 네 복음서가 다양성을 잃어버렸을 때 발생하는 슬픔을 설명하는 등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성경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신학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고자 하는, 김 교수가 지향하는 신학자 정체성과 관련이 깊은 책이다.

김호경 교수는 일반 출판사에서 문고판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에 이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을 발췌해 번역하고 성서신학자 시선으로 해제를 단 <신학-정치론>(책세상), 종교와 과학의 상호 의존적 역사를 짚은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책세상), 성경 속 예수에 대한 신학적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예수가 상상한 그리스도>(살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모든 불평등과 불의와 억압과 배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자"로서 바울을 조명하는 <바울 -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을 넘어서>(살림) 등을 출간했다.

2004년부터 예장통합 총회 인준 서울장신대학교에서 전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호경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2004년부터 예장통합 총회 인준 서울장신대학교에서 전임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호경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여성신학자 피오렌자의 <성서 소피아의 힘 - 여성 해방적 성서해석학>(다산글방)을 번역하고, 성경에 등장한 여성 인물들 모습을 살펴본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대한기독교서회)를 펴냈으며, 예장통합 여교역자 모임 전국여교역자연합회에서 활동하는 등 여성신학자로서도 무게를 감당해 왔다. 스피노자 연구 권위자 스티븐 내들러가 쓴 <스피노자 -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텍스트)·<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글항아리)을 비롯해 스피노자 관련 저작들도 번역했다. '연세 신학 100주년 기념 성경 주석'에서 자신이 전공한 누가복음을 맡아 작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성서신학자로서 활동해 온 김호경 교수를 6월 30일 인터뷰했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 구로 오류동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나, 왜 신학을 시작하게 됐는지를 포함해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생각 등을 들었다.

-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기독교 집안은 아니었다. 예일여중에 진학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됐다. 미션스쿨이라 매주 학교에 교회 주보를 가져가야 했기 때문이다. 주보를 몇 장씩 가져와서 나눠 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모범생 스타일이라 주보를 받기 위해 직접 교회에 갔다. 혼자서는 못 가고 엄마를 모시고 갔는데, 그게 우리 집안 첫 신앙생활이었다. 엄마가 교회에서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온 집안이 기독교인이 됐다. 고등학생 때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고, 대학에 가고 나서야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인식했다.

- 학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국문학에 흥미가 있었던 건가.

아빠가 신문기자였다. 항상 글을 쓰셨는데, 4남매 중 내가 아빠 재질을 가장 많이 닮았다. 큰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내 글을 괜찮게 봤다. 문학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 아침에 대한 시 한 편을 들은 일이었다. 정확히 무슨 시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감성으로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문학이 그렇게 좋더라.

부모님은 국문과 진학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불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엄마는 세련돼 보이는 불어불문학을 권했다. 대학생 때는 다른 것보다 평론이 정말 재밌었다. 시·소설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평론을 해야겠다고 굳혀 갈 즈음 변화를 겪었다. 신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 어떤 계기가 있었나.

내가 1979년 대학에 입학했다. 1학년 때 10·26을 겪었고, 198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냥 무난하게 살았는데, 혼란스럽더라. 어느 편을 좇아야 할지 몰라,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처음으로 신학적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무엇을 하시며, 내가 어떻게 믿기를 원하시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마음을 알아야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볼 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신학 공부였다.

3학년 때부터 기독교학과 수업을 조금씩 들었다. 처음 접한 신학 수업은 헬라어. 그다음에 들은 것이 통일신학의 선구자인 조직신학자 박순경 교수님 수업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칼 바르트를 비롯해 여러 신학자에 대해 들으며 독일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보면 어쭙잖은 생각이었지만, 신학을 하려면 독일에서 해야 한다고 봤고, 신학 중 최고가 조직신학인 줄 알았다.

내가 고집이 센 편이라 누구에게 물어보고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생각대로 밀고 나가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가족은 모두 교회를 다녔지만, 내가 순하게 신앙생활하길 바라셨다. 그런데 딸이 들어가지 말라던 국문과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한 것이다. 독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조금 기막혀 하면서도 선뜻 보내 주셨다.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라며.

- 독일에는 혼자 간 것인가. 독일 가서 공부해 보니 어떻던가.

다른 전공을 하고 있던 남편 될 사람이 먼저 가 있었다. 독일 유학 중 결혼하면서 공부를 다 못 끝내고 돌아오게 됐다. 그래도 독일 생활이 좋았다. 언어도 충분히 공부했을뿐더러 신학의 즐거움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독일은 한국과 학제가 달라서 기본 고전어 히브리어·헬라어·라틴어가 끝나면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어학은 따라갈 만했는데, 조직신학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만둬야 하나', '내 길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다 성서 본문을 주석하는 성서신학 계열 과목을 들으면서 신학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성서 텍스트 분석은 얼마나 지겨울까' 싶었는데,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빤한 줄 알았던 텍스트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찾는 즐거움이 좋았다. 평론에 재미를 느낀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똑같이 텍스트를 살피는 것이니까. 국문학 공부가 성서 비평에도 도움을 많이 준 셈이다. 국문학에서 신학으로 바꾼 게 다른 경로를 택한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제일 좋은 경로였다.

김호경 교수는 문학에 뜻을 두고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가 신학으로 길을 틀었다. 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보내면서 생긴 역사적·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호경 교수는 문학에 뜻을 두고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가 신학으로 길을 틀었다. 1980년대 격동의 현대사를 보내면서 생긴 역사적·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한국으로 돌아와 이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박사 학위는 연세대에서 받았다.

독일에서 학위를 못 마치고 왔으니 석사과정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대에서는 장상 교수님에게 지도를 받았는데, '네 목소리를 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는 남의 글을 군더더기 없이 알아들을 수 있게 요약하는 것은 잘해서 자신 있었는데, 내 목소리 내기가 자신 없고 힘들더라. 박사까지 공부할 엄두가 안 났다. 그때 나를 지도한 장상 교수님이 용기를 많이 주셨다.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말고 계속 공부하라고.

연세대에서는 서중석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장상 교수님은 역사비평, 특히 편집비평 쪽으로 연구했고, 서중석 교수님은 성서를 볼 때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교수님을 찾아가 박사로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박사는 한솥밥 먹는 한 식구여야 하는데 당신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걱정하시더라. 타 학교 학생이고, 교단 신학교가 답답해 옮기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생면부지인 나를 뽑아 주셨다.

사실 연세대로 간 이유 중 하나는, 이대에서 여성신학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대 풍토가 여성신학 중심이니까. '여성신학이라는 작은 테두리에서 나의 신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연세대에서 공부할 때 양성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남녀가 섞였을 때 겪는 문제를 확실하게 실감했다.

나는 학교도 '여중-여고-여대'를 나왔고, 독일에서는 여성이라기보다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어려움이 더 컸다. 그런데 연세대에 들어갔더니 같이 공부하는 남자들이 대놓고 "여자가 왜 신학을 박사까지 공부하지?", "왜 이대에서 굳이 여기까지 왔지?" 묻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이래서 여성신학이 필요하구나' 깨달았다는 점에서도 연세대 박사과정은 의미가 있었다.

- 누가복음의 식탁 교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논문을 썼다. 왜 누가복음으로 쓰게 됐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누가복음은 여성을 비롯해 낮은 자, 소외된 자를 많이 언급해 관심이 갔다. 논문거리가 없을까 고민하며 계속 읽다가 성전은 주로 바깥에서, 식탁은 안에서 이야기되는 구조를 발견했다.

누가복음은 총 24장이다. 1~2장은 서론으로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다루는데, 사가랴가 성전에서 봉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19장 28절~24장은 결론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배경으로 겪는 수난 이야기다. 서론과 결론 부분은 성전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나머지 본문은 식탁 교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19장 삭개오 이야기까지 계속 밥을 먹는다. 예수님과 밥 먹는 내용이 성전 이야기에 둘러싸인 액자 구조인 셈이다.

보통 누가복음은 80년대에 쓰였다고 본다. 이미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된 시점이다. 성전이 없는 상황에서 유대인은 정경화 작업을 했다. 기독교인은 새로운 상징을 준비했는데, 그것이 바로 식탁 교제다. 예수가 주인 되는 식탁에서 정결법을 비롯한 모든 경계를 허물고 밥을 나눈다. 식탁의 거룩함이 성전의 거룩함을 대치한다. 논문을 쓰면서 성경을 읽을 때 전체 구조를 보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지금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전체 구조를 파악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식탁을 개방하는 것은 예수에게 구원의 상징이다. 예수의 식탁에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은 사라진다. 예수의 구원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듯이 예수의 식탁에서도 배제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예수의 식탁에 초대된다. 예수는 사회에서 버림 받은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 불결한 사람들을 식탁으로 부른다. 그래도 그의 식탁은 더럽혀지지 않는다. 정결법을 지키지 않아도 예수는 거룩하다. 성서는 계속해서 말한다.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우선한다고.

 

예수는 모든 사람을 성적, 사회적, 경제적 차별에서 해방하며 그들 하나하나를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인간 사이에 놓였던 모든 장벽을 허물고 인간과 인간을 만나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폐쇄성은 가능하지 않다. 배타와 폐쇄, 가름과 닫음은 이미 그가 예수 밖에 있음을 드러낸다. 예수의 구원의 특징은 바로 개방성이다. 예수는 모든 이를 향해 자신을 엶으로써 모든 이들이 서로를 향해 서로를 열게 한다. 이러한 예수의 힘은 우리에게 철저한 개방성을 요구한다."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 133~134쪽)

- 전체 구조를 파악하면서 성경을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맥에 따라 잘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괄호 안에 알맞은 단어를 넣는 형식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무 의미가 없다. 단어를 넣어 봤자, 그 단어 의미를 모르니까. 성경도 몇 번 읽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읽은 횟수가 아니라, 1장만 종일 읽어도 이 이야기가 앞뒤 내용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문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강의 첫 시간, 학생들에게 성경책을 펼쳐서 보여 주고는 한다. 펼친 다음 "여기 뭐가 보이냐"고 묻는다. 보통 "글자가 있다"고 답한다. 그 후 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본다. "흰 종이도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성경에는 글자가 있지만, 글자만 따라가면 안 된다. 글자와 글자 사이 여백에 주목해야 한다. 여백에는 글자로 다 채우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채우지 못한 이야기, 문맥을 찾다 보면 여백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럴 때 저자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보인다.

자기 힘으로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온갖 매체에서 좋은 설교, 좋은 성경 공부를 들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남의 것을 아무리 들어도, 주체적으로 의미를 찾는 힘을 키우지 않으면 가르치는 사람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성경 읽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어렵다고 그냥 덮지 말고 노력해서 읽으면 좋겠다.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니 몇천 년 동안 남성 해석자들이 말해 온 대로 해석돼 왔다. 그렇게 따라가다가 최근에 와서 남성 중심의 여성 차별적 해석에 문제 제기하니 질서를 뒤엎는다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나.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자기 눈으로 성경을 읽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스스로 성경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그런 훈련을 위한 보조 텍스트로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 등을 출간했다.

- 교수님에게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은, 성경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의미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어떻게 들어오시는지, 인간은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 준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반응을 한 사람들은 구원을 얻고 생명에 이른다. 그 길을 보여 주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 내가 성경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자신의 정체성을 신학자라고 인식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박사 학위를 끝내고 난 후다. 국문과 졸업 후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15년 걸렸다. 결혼하고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아이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서 돌아보니,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신학적 물음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학위를 받아야겠다는 생각만 남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 시대에 어떻게 신앙해야 하는지 가장 쉽게 설명해 주는 신학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중 교양서를 많이 출간한 것은 신학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관련 있겠다.

나는 신학 바깥에 있던 사람이다. 신학을 전공하겠다고 생각한 후에야 신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비전공자로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교회에서 읽는 책과 신학교에서 읽는 책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상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일절 들어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교회에서 전혀 듣지 못한 내용을 신학교에서 배울까. 이대·연세대뿐 아니라 교단 신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더라.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교인들은 신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모른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바탕으로 풀어 써서 교인들이 읽을 만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논문을 열심히 써서 학문적 진전을 통해 전공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그 내용을 쉬운 형태로 만들어서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람. 나는 후자다.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예수가 상상한 그리스도> 등 내가 기획해 쓴 책은 모두 일반 출판사의 문고판 책이다. 독자층을 넓히고자 비기독교 출판사를 택했고, 사람들이 두꺼운 책은 잘 안 읽으니까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썼다. 수업하거나 글을 쓰는 등 신학적 사고를 제시할 때 친숙하게 설명하기 위해 시·그림·영화 등 문화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2019년 출간한 <씬과 함께>(CBS북스)도 영화를 통해 신학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2001·2005년 초판이 출간된 바 있는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리커버판. 책세상 출판사는 '우리 시대' 문고 시리즈 중에 오랫동안 독자의 관심을 받은 책들을 선별해 리커버 개정판을 펴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2001·2005년 초판이 출간된 바 있는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리커버판. 책세상 출판사는 '우리 시대' 문고 시리즈 중에 오랫동안 독자의 관심을 받은 책들을 선별해 리커버 개정판을 펴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을 축약해 번역하고 해제를 달았다. 관련 저술들도 번역하는 등 스피노자에 대해 비중 있게 연구해 온 것 같다. 스피노자에 주목한 이유는.

스피노자는 철학과 조직신학으로는 소개가 됐지만, 성서신학 쪽으로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성서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다. 오늘날 성경 해석에 많이 쓰이는 역사비평 방법의 태두다. 중세에는 성경을 계시의 산물로 여겼기에 성경에 대한 분석적 태도를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성경이 지금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한다. 성경이 만들어진 배경에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역사비평이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히브리어에 능통했던 스피노자는 구약성경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전 시대에 가능하지 않았던 성경 해석을 주장한다.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되고 전달되는 역사적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당대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불린다. 종교적 색채를 벗어날 수 없던 유럽에서 근대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해석학적 방법은 단순히 성서의 의미를 재구성해 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그의 목적은 성서와 그것을 점유함으로써 생긴 과도한 권위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신학-정치론>에 나타난 성서 해석은 과거의 예언자들과 성직자들이 갖고 있던 권위를, 역사적-언어적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로 옮겨 놓는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일반 사람들이 권위 있는 사람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 독자적으로 성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종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한다." (<신학-정치론> 해제)

스피노자는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쓴 <신학-정치론> 마지막 소제목이 '자유 국가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야 한다'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자유가 실현되는 보편적 종교를 추구했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 사람들은 '너는 성경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야만 해'라는 강요 앞에 놓여 있었다. 스피노자는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할 수 있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했기에 성경을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스피노자 삶을 보면, '어떻게 신앙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변동하는 시대 상황에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교에서 파문당했다. 욕먹고 수난을 겪었다. 스피노자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꿋꿋함'이다. 남이 뭐라고 비난하든 개의치 않고 자유를 말하면서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갔기 때문이다. 사상만 따지면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은 상황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시대 속 스피노자의 삶과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려움과 비난에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스피노자의 입장에서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그것은 또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스피노자가 성서 해석에서 찾아내고자 한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자유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미움과 불화,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와 관용과 자유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중략) 그는 시대적인 억압과 불안으로부터 종교의 역기능을 폭로하고, 자유와 관용을 지향하는 새로운 종교에 보편적 종교(religio catholica)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므로 <신학-정치론>에 담겨 있는 것은 종교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이렇듯 새로운 종교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욕망이다." (<신학-정치론> 해제)

- 미래 사회에 대한 주제로도 비중 있게 강연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가.

우리는 근대 이후 포스트모던을 겪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고 있다. 무지막지한 변화를 경험했고, 경험할 사람들이다. 지금 코로나19가 삶을 많이 변화시켰다. 사실 코로나19로 맞닥뜨리게 된 일들은 미래학자가 늘 하던 이야기였다. 준비 없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코로나19가 미래를 당겨온 것이다. 미래를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회는 미래를 논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지금까지 했던 대로 똑같이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답이 없다. 뉴노멀 시대에는 새로운 기준과 방향이 필요하다.

강연할 때는 4차 산업혁명으로 발생하는 미래의 변화를 이해시키는 일에 중점을 둔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안일한 희망보다 변화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게 목적이다. 미래로 갈수록 불평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회들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공동체가 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새로운 성경 해석의 출현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성경의 의미와 기독교의 특징을 밝혀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중략) 세상의 흐름과 무관한 성경 해석과 교리적 이해는 기독교를 경직시키고 쇠퇴시킬 뿐이다. 기독교가 종교의 역할을 온전히 담당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또한 뛰어넘을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한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과학적 사고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혼돈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혼돈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 163~164쪽)

김 교수는 스피노자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 스피노자는 변동의 시대를 살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근대인이면서 포스트모던을 겪고 여러 변화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 교수는 스피노자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 스피노자는 변동의 시대를 살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근대인이면서 포스트모던을 겪고 여러 변화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바울>에서 오늘날을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시대"라고 진단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 역할을 무엇이라 생각하나.

모든 사람이 차별과 불평등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차별과 불평등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차별과 불평등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 교회가 먼저 민감해져서 교회 안에서라도 하나님의 공동체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평등한 현실부터가 문제다. 양성평등부터 이뤄져야 다른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지금 고치지 않으면 미래 사회로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인간사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예수가 이미 폐하여 버린 인간 사이의 오래된 장벽을 다시 세우는 인간의 지난한 노력을 비난하며,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게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복음의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빠질 수 있는 일상적인 악의 고리에서 믿음의 본질을 찾게 하는 것이다." (<바울>)

나는 여성신학자 정체성이 강하지 않았지만, 박사를 마친 이후에는 여성이자 이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여성신학적 글을 써 달라거나 관련 활동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렇게 여성신학적 활동을 조금씩 했다. 여성 신학자 그룹과 여성 교역자 그룹이 있는데, 나는 주로 교단의 전국여교역자연합회를 통해 강연이나 세미나 등에 많이 참여했다.

아무래도 교단 신학교에 소속돼 있으니 교회 현장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교회 내 여성 인식 변화를 위해 강의하기도 한다. 꼭 소개해 줬으면 하는 책이 있는데, 바로 전국여교역자연합회가 양성평등 교육을 위해 2017년 발간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 – 양성평등을 위한 교회 길라잡이>다. 성 역할 고정과 차별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조직신학·성서신학·실천신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을지 다룬 소책자다.

이 책은 전국 노회 여교역자와 교단 신학교들 여학우회 등지에 배포됐다. 배포한 곳에 강의하러 가면, 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들고 오지 않는다. 어디 뒀는지도 모른다. 읽지 않으니 교회 현장에 전달될 리 없고, 당연히 인식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만 한다.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여성 목회자든 남성 목회자든 관심이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

"성경이 말하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은 아마도 인류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기도 하다. 인류는 늘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움은 반질서와 혼란이라는 두려움과 위기감을 주며 기존의 질서에 대한 복종이 안정과 평화를 대변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성에 대한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그것을 구조화하는 악한 질서를 되풀이하는 한, 하나님의 질서와 하나님의 평화는 없다. 더욱이 태생적 다름을 차별화하는 것은, 인간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다름과 차이를 불평등으로 만드는 발판이기도 하기에 더욱 악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 창조와 그 구원에 차별이 없다면, 그리스도 공동체에서 어떤 차별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 14쪽)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 - 양성평등을 위한 교회 길라잡이>는 예장통합 소속 노회 및 신학교 등지에 배포됐다. 양성평등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후 교회의 성차별적 현실을 짚고, 양성평등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등을 제안하는 소책자다.  김호경 교수도 편집위원과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전국여교역자연합회(02-925-5484~5)에 문의하면 양성평등 교육 강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 - 양성평등을 위한 교회 길라잡이>는 예장통합 소속 노회 및 신학교 등지에 배포됐다. 양성평등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후 교회의 성차별적 현실을 짚고, 양성평등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등을 제안하는 소책자다.  김호경 교수도 편집위원과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전국여교역자연합회(02-925-5484~5)에 문의하면 양성평등 교육 강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앞으로의 계획은.

나도 이제 활동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교회 현장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덜 차별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교인이 성서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비유만 묶어서, 혹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여성 이야기만 묶어서 책을 써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나의 성서 이해를 바탕으로 신약개론도 쓰고자 한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조라도 파악할 수 있도록, 두껍지 않고 학문적이지도 않은 개론서를 잘 써 보고 싶다. <신학-정치론>을 완역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번역하다가 멈추고, 번역하다가 멈추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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