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유塗油는 우리 각자의 치유와 해방을 의미합니다. '기름 부음'이라는 이 도유식은 성찬식과 같습니다. 떡과 잔을 함께 나누는 형제자매의 몸짓을 함께 보는 것처럼, 도유식에서도 서로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눈앞에 놓인 기름이나 물을 찍어 자신의 치유와 해방을 바라는 위치에 바릅니다. 행위자의 치유와 해방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도유 과정에 동참합시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예배에 참석한 20여 명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며 인도자 오현선 목사(공간엘리사벳)의 안내에 귀 기울였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직접 준비한 물 혹은 기름을 찍어 안수하듯 몸 한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이 광경을 보면서 두 손 모아 말없이 기도하는 이도, 눈물을 찍어 내는 이도 있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공동대표 강호숙·박유미·방인성)는 '예수를 기다리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로 대림절 시리즈 강좌와 성탄 예배를 준비했다. 지난 4주간 강좌에서는, 교회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어떻게 이를 말할 수 있는지, 한국교회에서 교회 성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구성원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폈다.

공간엘리사벳 대표 오현선 목사가 '그리스도여, 당신 안에 내가 깨어납니다'라는 주제로 예배를 인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공간엘리사벳 대표 오현선 목사가 '그리스도여, 당신 안에 내가 깨어납니다'라는 주제로 예배를 인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2월 24일 성탄 예배는 이 시리즈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리스도여, 당신 안에 내가 깨어납니다'라는 주제로 여성주의 예배 형식으로 기획한 이번 예배는 몸으로 참여하는 의식을 예배 곳곳에 넣었다. '도유식'도 그중 하나다. 한국 개신교에 익숙한 예식은 아니지만, 치유 혹은 깨어남을 의미하는 그리스도교 예식이다.

참가자들은 마리아가 향유를 담은 옥합을 깨 예수의 발에 붓는 장면이 담긴 복음서를 읽었다. 복음서마다 이 장면을 묘사한 방법도 다르고, 마리아의 호칭도 '한 여자', '죄를 지은 한 여자', '마리아'로 제각각이다. 장소 묘사도 전부 다르다.

말씀을 전한 오현선 목사는 "네 복음서의 기록이 같지 않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처받은 죄인, 인간 이하 취급을 받은 존재가 예수 공생애 사역 속에 경험한 예수를 통해 해방되는 걸 느꼈다는 점이다. 예수가 곧 죽음을 맞는다는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이후에도 예수의 삶과 사역을 증언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예배를 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예배 주제로 정한 '예수 안에 내가 깨어납니다'라는 말은, 살아 있는 메시아에게 기름을 붓는 등 예수의 사망과 부활을 감지한 여성들이 몸으로 드린 증언이라고 오현선 목사는 말했다. 성서는 이 여성들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치유하고 해방하신 예수가 우리 곁에도 오심을 기억하자고 오 목사는 말했다.

"상처받고 무시당하고 좌절하지만 여전히 예수 복음의 참뜻을 믿고 추스리고 연대하는 마리아들 곁으로, 우리 곁으로 예수가 오시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악하고 사악해진 종교 지도자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인간 됨을 팔아 치운 자들,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비굴한 자들을 빈손으로 보내고 부끄럽게 하시려고 예수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중략) 여기 모인 우리는 이 예수를 온 맘으로 기다리며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리스도여 위로하고 치유하고 해방하시는 주여, 당신 안에 내가 우리가 깨어납니다. 아멘."

각자 자신이 가진 기름 혹은 물을 잔에 따른 후, 액체를 손가락으로 찍어 몸 원하는 곳에 가져다 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각자 자신이 가진 기름 혹은 물을 잔에 따른 후, 액체를 손가락으로 찍어 몸 원하는 곳에 가져다 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설교가 끝난 후 도유식을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먼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를 기억하며 기름을 찍어 몸 어디든 바르라는 오현선 목사의 안내에 따라 행동했다. 이어 두 번째는 부활한 예수를 알아본 자매들, 이름이 지워진 여성들을 기억하는 기름 부음 의식이었다. 마지막은 각자의 해방과 치유를 위한 도유식이었다.

도유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간단하게 소감을 나눴다. 한 참가자는 "그동안 이 본문을 여러 번 읽고 묵상했는데, 오늘은 2000년 시공간을 오가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님에게 직접 도유하는 듯한 감동도 있었다. 또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에게 도유하는 것 같은 감동이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나의 치유를 위해 어깨를 어루만질 때 다른 분들이 이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봐 주셔서 좋았다"고 말했다.

예배는 공동 축도로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한 스카프를 카메라 앞에 들어 보였다. 현장 예배였다면 서로 손을 맞잡거나 스카프를 직접 연결한 채 축도문을 읽었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옆 사람 화면에 나온 스카프와 연결되게끔 자신의 스카프를 들어 보였다. 화면 속 스카프가 하나로 연결된 모습으로 축도문을 읽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 그들과 더불어 아픈 상처를 싸매고 치유하여 마침내 맞이할 해방 세상에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여신들이 두려움 없이 하늘 뜻 펼칠 때, 그 한 생명, 온 존재 안에 머물러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축복합니다."

참석자들은 준비한 스카프를 손에 들어 연결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공동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참석자들은 준비한 스카프를 손에 들어 연결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공동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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