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진실 버스가 평택에 갔을 때였어요. 세월호 가족들과 일반 시민이 만나는 간담회 자리였는데요. 50대 남성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이니까 당연히 진상 규명이 잘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믿고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 들어 보니까 그게 아닌 걸 알았다. 진상 규명이 되는 그날까지 힘을 보태겠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정말 많았어요. '정부도 바뀌고 국회도 새로 구성됐는데, 세월호 당연히 잘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세월호 희생자 김시연 양 엄마 윤경희 씨가 답답한 듯 말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을 맡고 있는 윤 씨는 '4·16 진실 버스'(진실 버스)의 총괄 진행을 맡았다. 진실 버스는 세월호 참사 7주기까지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사회적참사특별법 개정''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를 촉구하며 10월 6일부터 21일간 전국을 순회했다.

진실 버스는 전국을 다니며, 현재 진행 중인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을 알렸다. 국민 10만 명에게 동의를 얻어야 국회에 상정된다. 11월 5일 끝나는 청원은 현재(29일 오후 3시) 각각 7만 2965명, 6만 5673명이 서명했다. 윤경희 씨와 세월호 가족들은 10만 명 돌파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고자 국회를 찾은 윤 씨를 10월 29일 오전 한 카페에서 만났다. 노란 점퍼를 입은 윤 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강행군 때문에 조금 지친 모습을 보이다가도, 진실 버스 순회 때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세월호 희생자 김시연 양의 엄마 윤경희 씨는 '4·16 진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만난 많은 사람에게 힘을 얻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월호 희생자 김시연 양의 엄마 윤경희 씨는 '4·16 진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만난 많은 사람에게 힘을 얻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진실 버스는 21일간 쉼 없이 달렸다. 가족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매일 비슷한 일정을 소화했다. 보통 오전 7시, 이르면 6시 30분부터 출근 캠페인을 진행했다. 낮에는 각 지역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회적 참사와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과 만났다. 저녁이 되면 퇴근 캠페인을 진행하고, 피케팅을 돕기 위해 온 시민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간담회를 열었다. 저녁 9시경 일정을 마치면, 다음 날 활동할 도시로 이동한 후 밤늦게 잠들었다.

윤경희 씨는 강행군 속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각 지역의 환대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진실 버스가 방문한 지역의 교육감들이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취해 왔다. 출근 캠페인 때 말없이 찾아와 함께 피켓을 들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교육감은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 미안하다며 영상으로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교육감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은 안전한 학교를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마음으로 진실 버스를 응원했다.

각 지역의 노동자, 시민, 각종 참사 피해자들도 세월호 가족을 반겼다. 윤경희 씨는 "진실 버스를 계획하면서 괜히 지역에 부담을 지우는 거 아닌가 고민했는데 기우였어요. 지역에서 더 열심히 사람을 모아 주시고, 우리와 만나게 해 주셨어요. 피케팅 등의 활동에 힘을 보태 주셨고요"라고 말했다.

윤경희 씨는 진실 버스를 통해 세월호를 향한 꺼진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세월호 진상 규명을 향해 노력하던 각 지역 시민단체들의 관심은 조금씩 시들었다. 게다가 세월호 진상 규명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됐으니, 으레 잘하겠거니 생각하며 관심에서 멀어진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이 직접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시각이 바뀌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가는 곳마다 아직 제대로 진상 규명 된 게 없냐고 물으시는 분이 많았어요. 잘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너무 관심을 두지 않았어서 미안하다는 분도 있었고요. 여전히 함께 아파해 주시고, 힘을 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가족들은 진실 버스를 통해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을 돌 때마다, 노동 현장에서 안전사고 등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노동자 가족들께서 와서 도와주셨어요. 그분들도 상황은 세월호랑 같아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비정규직 문제, 노동자가 물건처럼 쓰이는 현상 등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는 것이죠. 세월호가 진상 규명이 되어야, 다른 피해자 가족분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에요."

세월호와 관련한 두 가지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이 마감되는 11월 5일까지 10만 명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월호와 관련한 두 가지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이 마감되는 11월 5일까지 10만 명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왜 세월호 가족들이 지금 또 나왔냐고 해요. 그런데 저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슬픈 일이지만, 2014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아요. 저희가 거리로 나서면 그제야 정부에서 움직임이 있어요. 그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최근에서야 정부 관계자들이 만나자고 해서 만나고 있어요.
 

생명안전공원도 마찬가지예요. 부지도 선정되고 뭐라도 지어지고 있는 줄 알지만 그대로예요. 기획재정부에서 예산도 절반으로 줄이고, 안산시에서 가족들에게 반대 주민들 설득하라고 해서 설득 작업을 직접 하고 있어요. 가족들이, 우리 부모들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결성될 때부터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특조위의 수사권·기소권을 주장했다. 수사권이 없는 특조위 활동이 어떻게 한계에 부딪히는지 직접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사법 경찰권(수사권)이 부여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미 총선 전부터 △대통령 기록물 공개 △사회적참사특별법 개정 △피해자 모욕 처벌 등을 담아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질의했다. 여기에 동의하고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응답한 의원이 178명이다. 최근 4·16해외연대·S.P.Ring세계시민연대는 21대 국회의원 156명에게 △공소시효 연장 △대통령 기록물 공개 △사참위에 수사권 부여 동의를 받아 냈다.

이처럼 이미 국회에서도 세월호와 관련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진행해야 한다는 데는 충분히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윤경희 씨는 말했다. 윤 씨는 "대통령이 지금껏 하지 못했으면 이제 국회가 대통령을 움직이게 해야 해요. 가족들이 계속 나설 게 아니라 이제 국회가 나설 차례"라고 말했다. 국회 국민 동의 청원 숫자가 10만 명을 넘어가면 국회가 이를 다뤄야 한다.

윤경희 씨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호소했다. 시연이는 참사 6일 만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육지로 올라왔다. 나중에 복원한 그의 휴대폰에는 배가 침몰하기 전 간절하게 기도하던 시연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연이는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학교에서 기도회를 열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을 보인 아이였다.

"세월호 연대 활동에 늘 기독교인들이 계셨어요. 이번에 진실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릴레이 단식으로 함께해 주시고 있고요. 2014년에도 기독교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지요. 내 자식을 잃은 것처럼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해 주셨어요. 부모들은요, 2014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달라진 게 없거든요. 기독교인들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더 이번 일에 관심을 보이시고, 청원에 참여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국회 국민 동의 청원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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