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청와대 앞 분수대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토지 강제 수용에 반대하는 토지난민연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건설노동조합, 도서정가제 개악을 규탄하는 한국서점인협회, 부당노동행위 일삼는 현대위아 처벌을 요구하는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등에서 매일 피켓 시위를 벌인다.

줄지어 서 있는 피켓들 끝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진행하는 릴레이 단식 농성장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을 알리는 데 동참하는 의미로 10월 5일부터 릴레이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두 명이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단식하며 농성장에 머물다가, 새로운 참가자가 오면 배턴터치하는 방식이다. 방인성·박승렬 목사를 시작으로, 그간 박득훈·홍인식·김기원·최형묵·조윤하·하성웅·강동희·이진오·조헌정·이규원·김디모데 목사와 이정화·정대일·정상규·이혜경 집사, 더불어숲평화교회가 단식기도회를 이어 갔다.

오세요 목사(왼쪽)와 김희헌 목사가 함께 오전 기도문을 읽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오세요 목사(왼쪽)와 김희헌 목사가 함께 오전 기도문을 읽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0월 20일 아침부터 21일 아침까지는 김희헌 목사(향린교회)가 신학자 모임 '대구와카레' 회원 자격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릴레이 단식에 참여한 이들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7시 두 차례 기도한다. 오전 8시 기도 때는 미리 준비한 기도문을 번갈아 가며 읽는다. 21일 단식기도를 맡은 오세요 목사(한백교회)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마주 앉아 기도문을 읽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더 이상 늦춰지지 않고 속히 이뤄지도록 기도합시다. 4·16 진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여정이 안전하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도록 기도합시다. 사회적참사특별법 개정을 위한 30일간의 10만 국민 동의 청원이 소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각성하고 약속한 대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최선을 다하도록 기도합시다. 희생자 유가족들과 생존 학생들, 생존자 가족 등 세월호 참사를 겪은 모든 이들이 평안한 일상을 이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김희헌 목사는 기자에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또 다른 생계형 이슈가 계속 등장하니까 세월호 참사는 이제 대중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약속한 대로 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진상 규명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요 목사는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촉구'라고 적힌 걸개를 몸에 두르고 농성장에 앉았다. 오 목사는 "진실 버스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릴레이 단식기도를 시작한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누구는 '이제 그거 다 해결되어 끝난 문제 아니냐'고 묻는다. 해결된 건 없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계속 기억해야 할 것 같아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쨍쨍하던 해는 자취를 감췄다. 쌀쌀한 바람에 손끝이 시렸다. 오세요 목사는 추운 날씨를 예상했다며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경찰이 와서 말을 걸었다. 경찰은 릴레이 단식 초창기만 해도 깔개도 반입하지 못하게 해 참석자들과 마찰을 빚었지만, 이제는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은 "날이 많이 쌀쌀하니 핫팩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라. 이런 게 동역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2시가 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사정을 피켓에 담아 분수대 앞으로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2시가 되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사정을 피켓에 담아 분수대 앞으로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현재 세월호와 관련해 진행 중인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은 2가지다. 하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 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클릭)이다. 올해 12월로 끝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 및 권한 강화,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의 공소시효 정지 등을 골자로 한다. 다른 하나는 '4·16 세월호 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클릭)다.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 하단에 있는 '동의하기'를 누르고, 본인 인증을 하면 참여할 수 있다.

안건이 국회에 회부되려면 30일간 10만 명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청원이 시작된 지 16일(21일 기준)이 지난 현재, 서명자는 이제 막 3만 명을 돌파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서명운동을 진행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속도가 더디다. 릴레이 기도회 실무를 맡고 있는 전남병 목사(선한이웃교회)는 "세월호 가족들은 이번에도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국민·언론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21일 정오 피케팅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1일 정오 피케팅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2시가 되자 이전보다 더 많은 시위자가 청와대 앞 광장을 찾았다. 그리스도인들은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단체 피켓 시위를 한다. 이날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맡았다. 김현아 팀장을 비롯한 간사 세 명이 피켓을 들었다.

기윤실 최진호 간사는 사회참여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세월호였다고 했다. 최 간사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304명의 죽음을 보며 사회구조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이제 끝난 거 아니냐고 묻는데 아직 밝혀질 것이 많이 남았다. 세월호가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더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빈 엄마 전인숙 씨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매일 청와대 분수대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경빈 엄마 전인숙 씨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매일 청와대 분수대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여러 피켓 사이로, 또 다른 세월호 피켓 시위자도 보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경빈 군 엄마 전인숙 씨였다. 전 씨는 지난해 11월 13일부터 매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여기 이렇게 나와 있으면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부모들은 6년 전부터 오직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워 왔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현 정권 모습을 보며 이제는 우리가 목숨이라도 내놔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전과 달리, 운동의 동력이 많이 떨어진 문제도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싸울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덜하다는 것이다. 전 씨는 "'이제 그만 좀 하지, 아직도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분들은 진상 규명이 안 됐다는 것조차 모른다. 우리 부모들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진상 규명이다.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인숙 씨가 매일 피켓을 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함께하고 싶은 시민도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를 찾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전인숙 씨가 매일 피켓을 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함께하고 싶은 시민도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를 찾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도 적극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이슈가 많아 세월호는 이제 사람들에게서 많이 잊혔는데, 조금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전인숙 씨는 "내년이면 공소시효가 끝난다. 7년이 되어 가는데도 이룬 게 없다고 하면 내가 경빈이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다. 꼭 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 씨도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10월 10일부터 13일째 단식 농성 중이다. 김 씨는 대통령 직속 수사단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그는 "공소시효가 끝나면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진상 규명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 씨도 10월 10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 씨도 10월 10일부터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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