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쏟아진 물처럼 퍼져 버렸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나의 마음이 촛물처럼, 창자 속에서 녹아내렸습니다.

나의 기력이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께서 나를 흙 속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개들이 나를 둘러싸고, 악한 일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손과 발을 찔렀습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셀 수 있을 만큼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원수들이 나를 끊임없이 노려봅니다.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그러나 나의 주님,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힘이신 주님, 어서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내 생명을 원수의 칼에서 건져 주십시오. 하나뿐인 나의 목숨을 개의 입에서 빼내어 주십시오. (중략)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표준새번역, 시편 22편 14~24절)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박은희 전도사(단원고 희생자 유예은 양 엄마)는 기도하며 시편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기도는 절규로 바뀌고 결국 그는 참아 온 울음을 터뜨렸다. 기도회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사순절 집중 행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 번째 '그리스도인 목요 기도회'가 3월 4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렸다. 17명이 모였으나 코로나19 방역 지침 준수를 요구한 경찰 통제에 따라 9명만 제단을 중심으로 둥글게 설 수 있었고, 나머지는 멀찌감치 떨어져 피켓과 LED 촛불을 들고 기도회에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사순절 집중 행동의 두 번째 '그리스도인 목요 기도회'가 3월 4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사순절 집중 행동의 두 번째 '그리스도인 목요 기도회'가 3월 4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현장 증언에 나선 박은희 전도사는 "진상 규명 약속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민주당의 태도와 꿈쩍도 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며 가족들은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 안명미 씨(단원고 희생자 문지성 양 엄마)가 참사 초기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했던 말을 언급하며 "지성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발판으로 내놓을 테니 밟고 올라가서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어 달라. 그렇게 해서라도 바꿀 수 있으면 제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이들을 밟고 자기들이 목표한 것을 이뤄 낸 뒤 모른 체한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2500일 하고도 14일이 지났다며 한스러워했다. 그는 "아이들이 배 안에서 어른들 말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린 시간도 아까운데 2500일이라니,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제대로 못하고 마냥 기다리라고 하는 게 정상적인 건가"라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7주기를 불과 한달 여 앞두고 있지만 정치권의 모든 관심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집중되면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자료 공개를 왜 가족들이 애원해서 해야 하나. 수사하는 검찰이 당연히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자꾸 가족들이 무릎 꿇고 매달리게 하나. 304명이 죽었다. 대통령이 분명히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약속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진척이 없는 4·16 생명 안전 공원 건립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오늘 안산에서 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라고 하더라. 우리 가족들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제자리로 데려오고 싶다. 아직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이제는 안산 땅을 밟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생명 안전 공원 설계가 들어가도 시공하려면 2024년은 돼야 한다며 "우리 아이들은 그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나. (아이들이) 2014년에 갔는데, 10년이 지나야 안산에 돌아올 수 있는 건가"라고 말했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는 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단원고 희생자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4·16 생명 안전 공원 건립을 호소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날 설교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이었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공동대표 구교형 목사가 '소망을 품은 기다림'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구 목사는 현실의 어려움에도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바꿔 주시고 결국 이 모든 진상을 드러낼 그 순간까지 조금 더 인내하고 신뢰하며 함께 나아가자. 살아 계시고 당신을 찾는 자에게 분명히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끝끝내 하나님의 선한 날을 보게 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최주리 간사와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 등도 각각 기도와 특송을 맡아 힘을 보탰다.

최 간사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고 죄가 밝혀지며 마땅한 이에게 마땅한 처벌이 내려지는 공의의 역사를 마침내 목도하게 해 달라. 진상 규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그 약속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해 달라. 답답한 상황 속에서 무력과 지침을 느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기 원한다.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더해 달라. 우리 믿음과 노력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현호 씨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진실과 연대가 필요하다. 지지 말고 힘을 내자. 끝까지 함께 가자'는 메시지의 노래로 유가족을 위로했다.

사회를 맡은 성서한국 송지훈 사무국장은 "코로나19로 현장에 많은 분이 오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는 분이 많은 줄로 안다. 3월 15일부터 4월 15일까지 교회·단체별 연속 단식 기도 및 피케팅을 시작할 예정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알릴 테니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라고 적힌 피켓과 LED 촛불을 들고 기도회에 참여했다 . 뉴스앤조이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촛불 다시 세월호'라고 적힌 피켓과 LED 촛불을 들고 기도회에 참여했다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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