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은 10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은 10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과 재생산 정의, 권리 보장에 대한 신학적 연구 모임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이 10월 28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그리스도인 낙태죄 완전 폐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개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10월 7일 형법의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 14주 내 임신 중단 전면 허용, 24주 내 조건부 허용을 명시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은 기독교인들과 관련 단체들이 연서명한 성명에서 "임신 중단을 정죄하는 목소리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며 "국가·종교·사회는 개인의 삶의 자리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누군가를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았다. 낙태죄 완전 폐지는 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어 가는 중요한 걸음"이라고 했다.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이영미 교수(한신대)는 학회 회장단이 공동 작성한 입장문을 낭독했다. 그는 낙태 문제는 태아 생명권(프로라이프) 대 여성 자기 결정권(프로초이스)으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출산과 임신 중단에 대한 판단은 태아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단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과 생명권을 함께 고려해야 할 중차대한 선택의 과제"라며 "여성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생명 존중은 위선"이라고 했다.

형법에 낙태죄가 남아 있는 한, 여성의 생명이 위협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믿는페미 새말 활동가는 "낙태죄가 존재하는 사회는 임신 중단을 결정한 여성이 몰래 병원을 찾고, 불법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사회"라며 여성이 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생명을 해치는 불의한 사회라고 했다. 새말 활동가는 "낙태죄가 존속함으로써 발생하는 명백한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 그것은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하나님에 대한 기만"이라고 말했다.

청어람ARMC 오수경 대표는 임신 중단을 선택한 여성에게 교회가 어떤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오 대표는 "어느 여성도 쉽게 그저 쇼핑하듯 임신 중단을 선택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일이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기에 그런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그 여성의 곁에는 무엇이 놓여야 하는가. '죄'라는 낙인인가, 존중하고 이해하며 돌보는 '이웃'인가. 어느 편이 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인가"라고 물었다.

기자회견은 기독여민회 남궁희수 목사의 기도로 마쳤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생명의 파괴자'라는 오명으로 굴레를 씌우는 모든 편견과 억압이 멈추길 원한다"며 "여성을 그저 '보호하겠다'는 입법의 과정에서 이를 넘어 여성과 남성, 인간의 평등이라는 귀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그 경험을 존중할 수 있는 경청의 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성과재생산크리스천포럼은 정부에 △여성의 생명과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법안을 유지하려는 행위 중단 △입법 예고안 철회하고 임신 중지와 유지, 출산과 양육 전반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원 정책 마련을 요구하고, 국회에는 책임 있는 자세로 낙태죄 폐지 논의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사람을 처벌하고 통제하는 법이 아닌 삶을 살피고 지원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를 결정했습니다. 이는 임신중절의 범죄화가 임신중절의 책임을 온전히 여성에게만 지게 하고, 여성의 건강권, 평등권,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인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난 10월 7일, 정부가 발표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죄'를 유지한 채 '낙태죄'의 성립 조건의 범위만을 조정한 안이었습니다. 국가가 계속하여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임신중절의 여부와 조건을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부 개정안에 강한 우려를 표합니다.

'낙태죄' 완전 폐지는 더는 여성이 국가의 인구 계획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어떤 몸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지를 타인이 결정하는 인권침해를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여성이 임신으로 일터나 학교를 떠나야 하거나, 불평등한 성관계가 만연한 상황에서 임신 중지의 책임을 오로지 여성에게만 전가해 왔습니다. 여성들은 불법적으로 시술해 주는 병원을 찾아다니고,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는 약을 먹고, 출산 후 아이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간 수많은 여성이 임신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우리가 이렇게 위협을 받고 있다고 증언해 왔음에도 '낙태죄'라는 법안은 임신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일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만 감당하도록 요구해 왔습니다. 이런 법은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의 입법안대로라면 임신 14주의 시기를 놓친 여성들은 상담 기관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입증해야 하고 다시 24시간을 기다려야 병원에 갈 수 있습니다. 만일 병원과 의료진이 임신중절을 거부하면 다시 상담 기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임신 중지에 있어서만큼은 진료 행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여성들은 상담 기관과 의료 기관을 기약 없이 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임신 중지에 관한 결정은 당사자가 처한 다양한 사회적 조건들 때문에 이루어지기에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한 쉽게 바뀔 수 없습니다. 규제와 통제는 안전한 임신 중지 시기만을 놓치게 할 뿐입니다. 이런 법이 어떻게 여성들의 생명과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겠습니까.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규제들로 안전한 보건의료 접근성을 가로막는 조치들은 결코 생명 존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난 10월 12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의 대표 발의로 형법상 낙태죄를 완전 폐지하는 입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이 안은 여성의 임신 주수, 사유에 제한 없이 임신 중지에 대한 정보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의 의료 접근권과 건강권을 지원하는 '권인숙 의원 안'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처벌로써 통제하는 법안이 아닌, 각각 삶을 살피고 조력함으로 여성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며 환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책임과 역할입니다.

한국교회는 시대마다 정부의 인구 관리 정책에 맞춰 신학적 담론을 제공하며 정치적 파트너 노릇을 해 왔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28)라는 성서 구절을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는 "적게 낳아 잘 키우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번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출산 장려 정책을 펼 때는 무조건 많이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교회가 각 사람이 존엄하게 살도록 힘써야 하는 종교의 책무를 외면한 채 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좇은 결과입니다.

교회 안에는 임신중절을 정죄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임신중절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서로 살피고 돕는 공동체적 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차별적 문화와 교리의 한계를 성찰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임신중절을 정죄하는 목소리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국가·종교·사회는 개인의 삶의 자리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누군가를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낙태죄 완전 폐지는 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어가는 중요한 걸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변화에 함께하겠습니다.

- 정부는 일부 종교계의 반대를 앞세워 여성의 생명과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법안을 유지하려는 행위를 멈추십시오.

-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역행하는 '입법 예고안'을 철회하고, 임신 중지와 유지, 출산과 양육 전반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원 정책을 마련하십시오.

- 국회는 이제서야 시작된 '낙태죄 완전 폐지'를 위한 논의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십시오.

2020. 10. 16.
성과 재생산크리스천포럼 외 179개의 개인/단체 연서명 (2020.10.28. 오전 6시 기준)

가시나고그(예장통합), 감리교신학대학교 제36대 총여학생회 이룸(감리교/단체), 강사은(성공회), 강지영(성공회), 걱고근생(예장통합), 겨울빛, 고다현(감리교), 구미정(감리교), 금실(감리교), 기남(독립),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예수사회행동(느헤미야협의회/단체), 김경선(예장통합), 김나경(기장), 김다혜, 김동규, 김대연(예장합동), 김미경(예장합동), 김민정, 김석원(기장), 김수나(가톨릭), 김수산나(기장), 김시은(감리교), 김신애(감리교), 김신애(예장통합), 김샛별(기장), 김주혜(예장통합), 김준수, 김준태(기장), 김지효(장로교), 김예나(감리교), 김예원(기장), 김유미(감리교), 김은선(감리교), 김주희(예장합동), 김지혜(감리교), 김태영(성공회), 김하나(기장), 김호진(기장), 김현지(예장), 김혜령(한기신협), 김화숙(예장), 김행민(장로교), 김희석(예장통합), 권이민수(기장), 김환희(장로교), 권명보, 꼬까새(기장), 나영(기장), 남기연(기장), 노승훈(성공회), 도치, 뚜르스(감리교), 뚜리루(감리교), 레몬키위(예장통합), 레오나, 록자(예장합동), 마그(기장), 마리아(성공회), 무지개신학교(초교파/단체), 믿는페미(초교파/단체), 박김예림(기장), 박단(감리교), 박미소(기장), 박성민(감리교), 박성인(감리교), 박소영(기장), 박영은(순복음), 박은애(감리교), 박은호(성공회), 박예찬, 박정희, 박제민(예장통합), 박주미(감리교), 박준헌미가(성공회), 박진하, 배지은(기장), 비비안(성소수자부모모임), 섬돌향린교회(기장/단체), 소리꽃(기장), 송아람(장로교), 송아름(예장통합), 수산나(감리교), 시우(성공회), 쌔미, ㅇㅎㅅ, 아델(가톨릭), 안영주(예장합신), 안재서(가톨릭), 양양(감리교), 엘리(감리교), 엘리사벳(가톨릭), 오늘(예장통합), 오수경, 오트(성결교), 오한별(장로교), 유연희(감리교), 유영상(기장), 유진우(기장), 윤혜인(장로교), 이경아(기장), 이경옥(성공회), 이경희(성결교), 이경희(초교파), 이나임(감리교), 이동훈(기장), 이드, 이명훈(예장통합), 이민하(기장), 이선영(예장통합), 이성진(성공회), 이수경(장로교), 이숙진, 이신효(성공회), 이영미(기장), 이영직(성공회), 이영찬(성결교), 이우연(기장), 이은재(감리교), 이원우(기장), 이종민, 이현수(침례), 이현정(성공회), 이혜련, 이혜선(성공회), 임영경, 자캐오(성공회), 장근지(감리교), 장선영(성소수자부모모임), 장예진(독립), 장주성(성공회), 전태호(예장고신), 정다혜(가톨릭), 정동준, 정명진(예장합신), 정우(기장), 정유은(감리교), 정지은(예장고신), 정하덕(예장/개혁), 정현재(예장통합), 정혜진(한기신협), 조배정(예장합동), 조수미(가톨릭), 조안(기장), 조은빛(예장합동), 조은아(예장통합), 조이, 주정원(성공회), 조지훈(가톨릭), 지서영(성공회), 진정은(기장), 찡야, 차현아(감리교), 창연(감리교), 최수아(장로교), 최유미(감리교), 최준규(성공회), 최한나(침례교), 쿠마(예장통합), 폴짝(예장통합), 하민지, 하얀향기(예장통합), 한국여성신학회(단체), 한신대학교 제 73대 총학생회 한빛 성평등국(기장/단체), 한신대신학대학원 성정의위원회(기장/단체), 한영숙(감리교), 허준혁(기장), 혁명기도원(단체), 홍다은(기장), 홍예선(감리교), 홍정선(가톨릭), Anna Lee p(성공회), CL Kim(ECC), Gp(독립교단), Jayeon Lee(장로교), Lynn(장로교), soyoung(예장합동), vindy(예장), weirdAlly(감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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