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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후 교회, 미혼모 지원 및 성교육 강화해야
기윤실 긴급 토론회, 다양한 스펙트럼 발제…주수 제한, 시술 거부권 놓고 찬반 엇갈려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9.04.16 15:17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형법 269조 1항 등에 명시된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여성에게만 낙태 책임을 묻는 이 법안이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66년 만에 여성의 낙태를 비범죄화한 것이다.

낙태죄 폐지 운동의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이번 헌재 결정에 거부감부터 보인다. '낙태 = 태아 살인'이라는 명제가 강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 이후 보수 성향을 띠는 교단이나 연합 기관들은, 낙태죄 폐지가 생명 경시 현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가 단순히 '낙태 반대'를 외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낙태죄 폐지 시대, 한국교회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까.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배종석·정병오·정현구)은 4월 15일 '낙태죄 헌법 불합치, 어떻게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4월 15일 낙태죄 폐지 관련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패널 구성은 다양했다. 프로라이프 전 대표 김현철 목사, 믿는페미 달밤 활동가, 남서울대 문시영 교수, 강남대 백소영 교수,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헌재 판결 전이었으면 낙태 찬반 논쟁이 주를 이뤘겠지만, 결정이 난 뒤라 교회가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토론의 방점이 찍혔다.

돌이킬 수 없는 헌법재판소 결정
"여성을 출산 도구 아닌 시민으로 인정"
"안전장치 없이 내린 판결 아쉬워"

기독법률가회 정종욱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법률적 의미를 간략하게 짚었다. 그는 헌법재판관 구성, 사회적 분위기 등을 볼 때 이번 결정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복합적 관점으로 봐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교계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고려 없이 교리적 잣대로만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믿는페미 달밤 활동가는 '위헌'이 아니라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서 아쉽지만, 여성을 출산의 도구가 아닌 시민으로 인정한 것이기에 환영한다고 했다. 그동안 국가가 여성에게만 임신·출산·양육의 '재생산권' 책임을 전가했는데, 이제는 국가가 재생산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백소영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출산한 여성은 칭찬받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비난받는 존재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 결정은 법이 내재하고 있는 불평등한 요소를 없애고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의 핵심은 '비범죄화'인데 이를 '낙태를 해도 된다'고 받아들이는 시각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낙태를 찬성하는 진영을 프로초이스(Pro-Choice), 반대하는 진영을 프로라이프(Pro-Life)라고 표현한다. 백 교수는 그동안 프로초이스를 '낙태할 자유'라고 번역해 왔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프로초이스'를 '출산의 선택'(Procreative Choice)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출산할 수 있음에도 출산을 선택하지 않은 여성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여성이 어떤 환경에 있는지 살피고, 왜 이렇게 선택했는지 주목해야 한다. 단순하게 낙태하고 싶어 안달 난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부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목사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에 낙태죄 폐지 결정을 내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현철 목사는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 없이 낙태죄가 폐지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오히려 남성들이 낙태죄 폐지를 더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원해서 낙태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이 어떤 환경에 놓이게 할 것인지, 놓이지 않게 할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시영 교수는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시간과 충분히 토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교회가 먼저 이 문제를 살펴보지 못하고 법리적 판결이 난 뒤에야 논의하게 된 건 아쉽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기독교만의 시각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사안이 아닌 공공의 논제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여성도, 남성도, 기독교인도 다 시민이다. 시민이라는 전제 안에서 다뤄야 한다. '기독교 대 여성'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공공신학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주수 낙태 허용?
산부인과 의사의 수술 거부 보장?
입법 과정에서 실질적 조율 사항 남아
"좀 더 세분화한 논의 필요"

헌법 불합치 결정은 국회가 대안 법을 마련할 때까지 현행법을 유지한다. 헌법재판소는 그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까지라고 명시했다. 낙태를 선택한 여성을 형사처벌하는 법안이 사라지게 되면, 새로 만드는 법안에는 몇 가지 구체적 사안이 명시돼야 한다.

첫째는 임신 몇 주까지 낙태를 허용해야 하는지다. 이 사안에 있어서는 찬반 진영의 의견이 확연하게 갈렸다. 홍순철 교수는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22주 내에서는 모체를 떠나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주수를 기준으로 마음껏 낙태하라고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는) 8~9주에서 가장 안전하고 10~12주로 가면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여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9주 이내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밤 활동가는 주수 제한을 두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달밤은 "조건 없이, 주수 제한 없이 여성의 선택으로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피임·낙태에 대한 온전한 정보를 제공받아, 어느 시기나 안전하게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믿는페미 달밤 활동가는 피임 접근권이나 정보가 부족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어느 산부인과에서나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중절수술을 거부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엇갈렸다. 홍순철 교수는 "솔직히 한 명의 태아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하는 입장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술은 가능하면 전국에 있는 공공 의료 기관에서 전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약물을 사용한 임신 중지도 안전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성 혼자 하게 두면 안 된다고 했다.

달밤 활동가는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한 여성은 최대한 빠른 주수 안에 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피임 접근권이나 정보가 부족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눈앞에 보이는 산부인과에 가서 낙인 없이 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때, 헌법재판소가 명시한 여성의 생명권이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낙태죄가 폐지된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낙태를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동의했다. 김현철 목사는 "미혼부 책임법을 만들고, 교회가 미혼모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소영 교수도 "구세군에서 미혼모를 돕는 시설을 운영한다. 크리스천 전문가들이 이 시설에 입소해 있는 미혼모를 적극 돕는다. 교회도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나 교회 안에서나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김현철 목사는 "더 적나라한 성교육을 통해 성관계를 갖고 나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달밤 활동가는 "그동안 성교육이 너무 형편없었다. 피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관계 때 어떻게 하면 임신이 되는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공교육, 기독교 교육 할 것 없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급하게 계획된 토론회임에도 50명 가까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전제로 한 토론회였기 때문에 치열한 찬반 논쟁은 없었다. 기독교적으로 낙태가 잘못된 것이라 논하는 이도 없었다. 이 때문에 참석자 중에는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패널들은 낙태죄 폐지 이슈가 여성 대 태아의 구도로만 볼 게 아니라는 데 어느 정도 동의했다.

사회를 맡은 목광수 교수(서울시립대)는 "오늘 토론을 통해 그동안 양쪽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은 비슷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인데 조금 더 세분화한 토론을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논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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