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재생산포럼 집행위원 나영 활동가가 청어람ARMC 특별 강좌 '낙태, 죄를 넘어 생명으로' 첫 번째 시간 강연을 맡았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낙태죄 폐지의 시대, '여성의 선택'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결하는 구도로 보면 헌법재판소가 왜 낙태죄 폐지 결정을 내렸는지, 새로 입법될 관련 법안에는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청어람ARMC(양희송 대표)는 '낙태는 죄'라는 단순한 인식을 넘어 헌재 결정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소개하는 특별 강좌 '낙태, 죄를 넘어 생명으로'를 기획했다.

3주간 계속되는 강연 중 첫 번째 시간은 나영 활동가(성과재생산포럼 집행위원)가 맡았다. 서울 종로 청어람홀에서 5월 20일 열린 '낙태죄 폐지,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하기'에서, 나영 활동가는 낙태죄 폐지 결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이 담고 있는 여러 맥락만큼, 대안 또한 여러 층위에서 논의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영 활동가는 그동안 국가가 임신 중지를 '처벌'하는 데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임신 중지로 가지 않도록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임신 중절 시술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의료인을 교육하고, 의료 기관을 확대하며, 공정하고 공평하게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 중절 허용 주수 등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는 해외 기준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는 수동적인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봤다. 나영 활동가는 "현실적으로 임신 기간 산정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주수에 따라 제한하는 방법보다는, 가급적 이른 시기에 할 수 있도록 보험을 적용하고 의료 기관 접근성을 높이며 상담을 지원해야 한다. 또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향한 차별과 낙인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임신 중지를 처벌하는 방향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여성에게만 죄를 지우던 방식을 넘어 △당사자 동의를 얻지 않은 임신 중지 △의도적으로 임신 중지를 알선하는 행위 △임신 중지에 대한 허위 자료를 유포하는 행위 △임신 중지를 막으려는 의도를 갖고 상담하는 행위 △임신 중지를 시술하는 의사나 병원, 환자를 방해하는 행위 등 처벌 기준 자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나영 활동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낙태는 죄'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조금 더 고민을 확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강의를 마친 뒤 질의응답 시간에는, 그동안 여성 단체가 사용하는 '재생산'이라는 단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영 활동가는 재생산이라는 말에 임신과 출산, 양육 과정을 포함하는 말이며,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지닌 생명을 키워 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키우는 행위를 당연한 자연 섭리로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들 노력에 더해 사회적 요건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이 단어를 쓴다고 설명했다.

"낙태죄 폐지까지는 동의하겠는데 그럼에도 낙태는 죄"라고 말하는 개신교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묻는 질문도 나왔다. 개신교인이기도 한 나영 활동가는 "낙태는 죄"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조금 더 고민을 확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낙태가 죄라면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에게만 죄책감을 지울 게 아니라,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 불평등을 바꾸는 게 기독교인의 역할 아닌가 싶다. '태어나게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태어난 생명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등 책임을 감당하는 것도 기독교인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희송 대표는 참석자들에게 "기독교계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두고 가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정책이나 법률 차원의 논의도 있기 때문에 이 사안이 지니고 있는 여러 층위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바라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어람ARMC는 5월 27일 녹색병원 산부인과 윤정원 과장과 함께 의료인의 관점에서 낙태죄 폐지를 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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