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울증과 우울증이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도움을 드리는 '조우네마음약국'입니다. 먼저 오늘 함께해 주신 가족 여러분 인사할게요."

"안녕하세요. 조울증과 함께 산 지 26년 된 '조우'입니다."
"네, 저는 조우와 함께 8년째 살고 있는 조우 아내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우 형님 친동생이고 조울증 18년 차 '그레이'라고 합니다."
"네, 저는 그레이와 결혼한 지 6년 차 되는 그레이 아내입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성인 남녀 네 명의 목소리가 유튜브 영상에서 흘러나왔다. 두 부부가 운영하는 '조우네마음약국'은 조울증과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다. 유튜브 채널 중에서는 조울증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조울증 환우를 병명의 '조울'과 사람을 뜻하는 영어 표현 'er'을 붙여 '조울러'라 부른다.

'조우네마음약국'에서는 조울러 고하영·고하림 형제와 두 사람의 아내들이 나와 일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조울증을 앓기 시작했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려운 점, 조울증을 앓는 가족과 지낼 때 유의해야 할 점, 결혼 생활에서 힘든 부분 등 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30대 부부의 평범한 이야기들을 편안한 목소리로 읊어 나간다.

형제가 둘 다 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도 이목을 끄는데, 두 부부가 겹사돈이라는 데서 채널 청취자들은 또 한 번 놀란다. 이곳에서는 딱히 비밀이 없다. 조울증과 함께여도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왼쪽부터) 고하영·고직한·고하림 부자.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울러'를 도우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왼쪽부터) 고하영·고직한·고하림 부자.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울러'를 도우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우네마음약국'에는 방송 초창기부터 간간이 등장해 온 또 다른 부부가 있다. 고 씨 형제의 부모 고직한 선교사 부부다. 과거 학원 복음화 운동에 매진했고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하던 그 고직한 선교사다. 그는 사랑의교회 분쟁 이후 갱신위원회에 몸담으며, 지금은 일터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일구어 갈 수 있는지 진로·소명 강의를 하고 있다.

고직한 선교사도 고등학교 때 이유 모를 불면증을 겪으며 괴로워하기도 했고, 고 선교사 아내 역시 대학교 때 조울증과 비슷한 증상을 겪다 기적적으로 나았다. 이런 이유로 고 선교사는 자신의 가족을 '사이코 패밀리'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합쳐서 20번 가까이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 나는 50번도 넘게 지옥을 오갔다." 이제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번갈아 입원하며 애를 태우던 두 아들은 약 2년 전부터 기적처럼 나아지기 시작했다. 큰아들 하영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시점도 이때다. 약을 완전히 끊은 건 아니다. 여전히 최소한의 약을 복용하고 있고 언제 재발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두 아들은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고직한 선교사는 이 일로 최근 '사단법인 좋은의자' 상임이사가 됐다. 좋은의자는 2015년, 한국 정신간호학의 대모로 불리는 故 김수지 박사 주도로 설립됐다. 정서적·심리적 약자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며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역할을 계획했으나, 김 박사 사망으로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일생 한국교회를 돕고자 했던 고직한 선교사는 조울러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좋은의자 상임이사로서, 한국교회가 정신 질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공론화하고 싶다고 했다. 조울러 두 사람 또한 자신들의 경험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7월 1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고직한-하영·하림 부자는 20여 년간 지나온 긴 터널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고직한 선교사는 '사단법인 좋은의자' 상임이사를 맡았다. 좋은의자는 조울러와 가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직한 선교사는 '사단법인 좋은의자' 상임이사를 맡았다. 좋은의자는 조울러와 가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조우네마음약국'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고하영 / 처음에는 우리 가족 경험을 주로 담은 방송만 만들어 올렸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조울증의 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병력이나 그동안의 투병기 등을 소개했다. 형제가 이렇게 오래 투병하고 있으니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사소한 것까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우리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영상에 댓글로 궁금한 점을 남겨 주시는 분이 많았다. 막상 조울증을 진단받으면 당사자가 됐든 가족이 됐든 막막하다. 조울러 혹은 가족은 궁금한 게 많아도 의사에게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없다. 당장 이 병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지, 완치는 되는지, 사회생활은 가능한지,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막 진단을 받았는데 계속 사귀어도 될지, 미혼이면 결혼은 할 수 있을지, 아이는 낳아도 되는 건지, 언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지, 증상에서 특이점은 뭔지 등등 질문이 셀 수 없이 많다. 사람마다 증상도 조금씩 다르고, 정도도 달라 조울러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유튜브 댓글로 궁금한 점을 묻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아예 카카오톡 채팅방을 개설해 그곳에서 소통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내가 주로 상담하는데, 이제는 고정적으로 300명 넘는 이들과 소통한다. 아내는 이 일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대학 때 전공한 사회복지 공부도 다시 하고 새롭게 자격증도 땄다.

고하림 / 형이 방송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좋아 보였다. 나는 조울증을 앓은 지 18년 차고 아직 형처럼 안정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가 경험했던 것들, 느꼈던 점들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 종교 망상으로 증상이 시작됐는데, 이 부분을 설명하면 교회, 특히 목사님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흔히들 교회에서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하면 바로 귀신 들렸다고 하면서 축사를 시도한다.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기도하기 전에, 상대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직한 / '조우네마음약국'에서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크리스천 가정이라고 하니까 정말 많은 분이 상담을 요청한다. 상담자의 70~80%가 기독교인이다. 우리에게 하소연하는 분들은 교회에서는 병 이야기를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얘기했다가 상처받은 분도 많고. 아주 사소한 부분부터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지점까지 범위는 다양한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사자 경험이다.

'조우네마음약국'의 콘텐츠는 '조울러'들의 궁금한 점에 답하고 경험을 나누는 내용이 많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
'조우네마음약국'의 콘텐츠는 '조울러'들의 궁금한 점에 답하고 경험을 나누는 내용이 많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

- 선교사님은 사역자로서 자녀가 모두 조울증을 앓는다고 공개했을 때 받는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교회는 유독 병을 죄와 연결 짓는 문화가 있기도 한데.

고직한 / 하영이는 내가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하던 1994년경 조울증 증세가 시작됐고, 하림이는 사랑의교회에서 신생 교회 개척 작업을 하던 2003년경 발병했다. 하림이는 조증이 심해지면 교회 게시판에 이상한 글도 쓰고 그랬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교인들이 이상하게 볼 것도 같고 해서 차라리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인 한 명 한 명 붙잡고 설명하기는 힘들겠다 싶던 차에 마침 교회에서 설교 순번이 돌아왔다.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고 설교 시간을 이용해 '상처 입은 치유자'를 주제로 설교했다.

고하영 / 아버지의 그 설교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고직한 / 그때 편안하게 '우리 가족은 사이코 패밀리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설교 시간에 좋은 방식으로 풀어내니까 아는 분들은 기도도 많이 해 주셨다. 처음에는 조울증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축사 기도를 하는 등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런 건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고하영 / 다행히 아버지 사역 환경이 이런 우리를 이해하고 받아 주는 분위기였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의 편차가 심하다는 게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조증이 왔을 때는 분위기 메이커가 돼 사람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리더십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울증이 몰려오면 저 아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괜찮고 멋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럴 때 많은 환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상을 반복해서 한다. 하지만 우리 형제는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부분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 수많은 분의 중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두 분은 본인이 조울증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고하영 /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발병했는데, 그때 할머니가 먼저 눈치채고 병원에 가 보라고 하셨다. 할머니 가족 중 정신 질환을 앓은 분이 있어 내 병을 남들보다 빨리 알아차린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 질환이 한순간에 급작스럽게 찾아온다고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수면 장애, 식욕 장애 등으로 시작한다. 서서히 안 좋아지다가 어느 날 확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면 정신 질환일 확률이 높다. 폭발하기 전 알아차리는 게 가장 좋다.

고하림 /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린 건 형이다. 그때 나는 종교 망상으로 조증이 찾아왔는데, 형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그때 내 모습이 형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줬는지 형이 먼저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고하영 / 조증이 시작되면 뇌가 더욱 제 기능을 못 한다. 예를 들면,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뒤섞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불교 신자들에게 조울증이 나타나면 자기가 몇천 년 된 미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 같은 경우 삼국지를 열심히 읽을 때 발병했는데 내가 유비가 아닐까 상상했다. 하림이는 자신을 예수님 혹은 성령이라 여겼다.(웃음) 우울증과 조현병이 양극단에 있다면 그사이의 수많은 스펙트럼 중 하나가 조울증이다. 조현병에 가까운 조증이 오면 귀신 들린 것처럼 보이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고직한 / 이 병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기본적인 정신 건강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하면 분명히 달라진다. 한 사람이 살면서 불면증·우울증·공황장애·조울증 등 정신 질환에 걸릴 확률이 25%다. 4명 중 1명은 일생에서 정신 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 모른다. 이제 우울증·공황장애 같은 건 많이들 알고 있는데 조울증은 여전히 잘 모르는 영역이다.

하영 씨는 미국 치유 집회에 참석한 경험을 설명하며, 한국 사역자들도 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없이 조울러들을 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하영 씨는 미국 치유 집회에 참석한 경험을 설명하며, 한국 사역자들도 정신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 없이 조울러들을 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 교회도 정신 질환을 겪는 신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고하영 / 성경에 '갇힌 자', '포로 된 자'라는 단어가 나온다. 악한 영이 아예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자기 의지보다 귀신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조울러들은 귀신 들린 게 아니라 뇌 기능 이상으로 도파민이 멈추지 않고 분비되는 것이다. 그러면 도파민에 취한 모습을 보인다. 이게 귀신 들린 모습과 비슷할 수 있는데, 상담하는 사람이 잘 판단해야 한다.

고하림 / 교회, 특히 사역자는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런 문제로 중보 기도를 요청해 왔을 때, 이 사람에게 축사를 해야 하는지, 빨리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으라고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관련 교육을 받고 실력을 쌓으면 좋겠는데,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약을 잘 먹고 관리 잘하는 조울러에게 약을 끊으라고 하는 목사도 있다. 나도 그런 말을 듣고 과거 1년간 약을 끊은 적도 있다. 그때 나는 누가 봐도 침착하고 이상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치유됐다고 느꼈는데 1년 뒤 쓰나미처럼 몰려오더라. 그래서 지금도 누가 신앙의 힘으로 3개월째 약을 끊고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 다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얘기해 준다. 약 끊은 뒤 10년간 잘 살아도 재발할 수 있는 게 조울증이다.

고하영 / 조울증을 앓아 보니 이 병은 영·혼·육을 동시에 치료해야 한다. 약물로 육체를 치료하고, 상담 등을 통해 정신적으로 도움받고,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에 자주 노출되는 것을 통해 영적인 것을 채울 수 있다. 그런데 목사들은 너무 영적으로만 가려고 하고, 심리 상담하는 사람은 너무 심리 치료로만, 정신과 전문의들은 너무 약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나는 세 가지가 통합된 치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울러에게 약을 끊어도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약을 처방해 준 의사뿐이다. 의사 외에는 약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고 지시할 수 없고, 그런 지시를 따라서도 안 된다. 외상은 눈으로 확인 가능하니까 치유된 것을 알 수 있지만 정신 질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유독 이 병을 신앙이나 기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치유 사역자는 "이제 약을 끊고 기도로 이겨 내자"고 하는데, 정말 위험한 발언이다.

'조우네마음약국'에 오는 수많은 사연 중 기독교인 가족의 하소연이 정말 많다. 교회에서 자녀를 치유한답시고 상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고, 전문가도 아닌데 나섰다가 돌이킬 수 없이 병세가 심해진 경우도 있다. 부모는 교회에서 하니까 믿고 맡긴 건데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거다.

미국에서 치유 집회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아무도 "신앙의 힘으로 약을 끊자", "귀신아 떠나가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조울증이라고 밝혔더니 "이 사람의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 "약이 잘 작용해서 치유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더라. 치유 사역자들도 기본적으로 조울증이 어떤 병인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거다.

고하림 /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이가 약을 먹는 건 믿음이 부족해서도, 사역자를 믿지 못해서도 아니다. 정신병에 걸린 것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다른 병은 안 그러는데 유독 정신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득한 게 안타깝다.

고직한 / 정신 질환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 한국교회서 이야기되는 '영성'은 건강한 상식을 무시한 선에서 진행될 때가 많아 그 부분이 안타깝다.

고하영 / 조울러에게 약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과도 같다. 우연한 기회에 리튬이 조울증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의사들도 리튬 발견은 기적이라고 한다. 약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목회자 혹은 치유 사역자들이 신앙을 이유로 이 선물을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림·하영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며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림·하영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며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 자녀들도, 이를 바라봐야 하는 부모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다면.

고직한 /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하나는 '패밀리 파워', 가족의 힘이다. 어려움을 당해도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면 괜찮다. 우리는 가족 안전망으로 함께 돌파하자고 했다. 겹사돈이 좋을 때가 이럴 때다.(웃음) 우리 부부, 아들네 두 부부, 사돈 부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산다. 서로 힘들 때 곁에 있어 주고, 혹시라도 재발하면 즉각 도울 수 있도록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역시 복음이다. 바닷가를 걷다가 큰 해일이 밀려와도 땅속 깊이 뿌리내린 바위 하나만 꼭 붙잡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들의 상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중에도 우리 가족은 복음 하나 붙잡고 버텼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도 익힐 수 있었다.

-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 사실을 감추려 하는데, 이를 드러내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고하영 / 하루는 아이들이 아파 함께 약국에 갔다. 약사 자녀로 보이는 사람이 약국에 들어왔는데, 딱 보니까 조울증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그 약사에게 조용히 혹시 자녀분이 조울증이냐고 물으니까 깜짝 놀라시더라. 나도 조울증 환자라고 했더니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자녀분은 이제 막 발병했는데 의사가 평생 약 먹고 같이 가야 하는 병이라고 해서 둘 다 낙담해 있었다. 그런데 날 보니까 아이들도 있고 결혼도 한 것 같고 환자처럼 보이지 않으니,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나의 평범함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또 하나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횃불을 들고 들어가 동행자가 되어 주고 싶었다. 내가 그 터널을 지날 때, '나와 동행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늘 했다. 아픈 과거와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괴롭지만, 어쩌면 이게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사명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진 게 무엇이냐고 물으실 때 모세는 지팡이밖에 없다고 했다. 나중에 그게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뀐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영아, 네가 가진 게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조울증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인생 2/3를 조울증과 함께 살았는데 그걸 그냥 버려두고 다른 일을 한다면, 내가 아팠던 게 아까울 것도 같았다.

마침 아버지가 전에 말씀하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떠올랐다. 그 개념이 없었다면 '조우네마음약국'도 시작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나의 회복도 돕는다. 나의 아픔을 내보였을 때, 날 처음 만난 사람도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다. 그동안 우리는 이 병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누가 알까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듣는 이들이 마음을 여는 것을 봤다. 단순히 우리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다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고하림 / 우리 가족은 조울증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미 높고 낮은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봤으니까, 이제 막 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료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사자로서 함께 장애물을 넘고 더 잘 넘는 법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고직한 / 정신 질환에 관한 교육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적으로 플러스다. 가족이 알아차리지 못해도, 주변에 이와 관련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전문가와 연결해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교회에도 정신 질환을 잘 아는 사람들이 팀을 이뤄 목회를 돕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혹시 귀신 들린 게 아닌가 걱정하며 기도받기 위해 목사님을 찾아 온 사람이 있다면, 정신 질환인지 아닌지 일차적으로 판단해 주는 것이다. '좋은의자'와 함께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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