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울증과 철학적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가 열렸다. 조울증에 좌절하지 않고 이를 천재성으로 승화해 낸 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10월 31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는 특이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조울증과 철학적 삶: 우리 모두는 조울증-천재!'라는 주제의 '종교와 건강' 심포지엄이다. 신학을 가르치는 곳에서 조울증 강의는 제법 낯설다.

조울증에 대한 한국교회 인식은 어떨까. 주최 측은 행사를 열며 "현대사회에서 목회를 감당하는 이들에게 정신적 장애에 대한 무지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교회에서 조울증에 빠진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직 '조울증' 학자가 감신대를 찾은 건 여러 면에서 특별했다. 미국 드류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코링턴(Robert S. Corrington) 교수는 40년 넘게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술과 자살 충동을 견디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는 18살 때 정신과 의사에게 조현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1960년대는 조현병과 조울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때다. 26년간, 44살이 될 때까지 그는 조현병 환자로 취급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46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흔히 우리가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는 '조현병'과 달리, 조울증(양극성장애)은 감정 기복이 양극단을 넘나드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플라톤과 헤겔의 스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고, 때로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했는데, 오히려 이런 점들이 연구와 저술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아이작 뉴턴, 루드비히 반 베토벤, 프리드리히 니체 등은 모두 가벼운 조증 상태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조울증-천재"라는 주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 로버트 코링턴 교수는 조울증 약들을 설명했다. 조울증은 제대로 된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투병 20년 후에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또 다른 발표자인 펜실베이니아 웨스트체스터대학 오지아(Jea Sohpia Oh) 교수도 우울증과 고통 문제를 어렵게 꺼냈다. 이혼하면서 아이들과 떨어지게 된 그는 이틀간 쓰레기봉투처럼 한쪽 구석에 처박혀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상실감이 너무 커 우울해졌고 무능해졌지만 그는 그 에너지와 상실감을 연구로 환원했다. 살아남기 위해 연구했다고 밝힐 만큼 절절한 과정이었다.

그는 아직도 우울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우울증은 삶의 선물이자 은총이 되었고, 슬픔은 삶의 에너지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마치 민들레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과정처럼, 우리 또한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복 목사(꽃재교회)가 목회적 관점에서 논평했다. '정신적 질병에 대한 교회의 신학적 반성'이라는 주제로 논평한 그는, 학술적으로 흔히 쓰는 '반성'을 교회는 'reflection'이 아닌 'apology'로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목회하는 동안 이런 질병에 무지해 저질렀을 실수가 생각나서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앞에서 동정하는 척하지만, 우리와 함께하거나 자녀와 어울리려 하면 경계하고 뒤에서는 뒷담화를 풀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인식을 극복하고, 종교가 정신적 문제의 궁극적 치유 과정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그 주변인이 다수 참석했다. 자녀가 조울증을 유전으로 물려받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 자녀가 조울증을 겪는 사람, 매주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강의를 주의 깊게 들었다.

▲ 오지아 교수는 극심한 우울증을 '천재성'으로 바꿨다. 포스트식민주의에 관한 뛰어난 작품들이 그의 고난 속에서 나왔다. 그는 민들레가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