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찬민 기자] '제자도'나 '제자 훈련'이라는 말은 한국교회 교인에게 익숙하다. 프로그램화한 제자 훈련은, 소규모 그룹에서 성경을 심도 있게 공부해 교회 리더를 길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많은 인재가 교회 안에서 역량을 발휘하지만, 과연 교회 밖에서도 예수의 '제자'로 살고 있을까.

재세례파로 알려진 아나뱁티스트(Anabaptist)가 말하는 제자도는 의미가 다르다. 교회 경영을 위해 필요한 리더를 길러내는 일이 아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지금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문선주 총무)가 1월 18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제4회 아나뱁티스트 컨퍼런스를 열었다. KAC는 매해 컨퍼런스를 열어, 아나뱁티스트의 핵심 가치 세 가지인 제자도·평화·공동체를 번갈아 다루고 있다. 올해 주제는 '급진적 제자도를 말하다'로,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제자도의 의미와 실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컨퍼런스에는 80여 명이 참석했다.

문선주 총무는 16세기 아나뱁티스트 급진성을 오늘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재세례파가 유아세례 거부했던 이유
행위 자체보다 시대 저항 정신 중요

문선주 총무와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는 각각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 제자도란 무엇인가?', '이 땅에서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했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1부 발제를 맡았다.

'급진적'이라는 표현은 자칫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 과격하고 극단적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문선주 총무는 급진적이란 말은 본래 '뿌리로 돌아가자'는 의미라고 했다.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전통과 사제 권위로부터 교회를 장악한 국가권력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당시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게 16세기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 정신이었다고 문 총무는 설명했다. 아나뱁티스트가 유아세례를 거부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아나뱁티스트는 유아세례와 병역을 거부하는 집단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나뱁티스트의 급진적 제자도란 어떤 특정한 행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대 문제를 진단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실천을 말한다. 문선주 총무는 "21세기 아나뱁티스트는 유아세례를 가지고 논하지 않는다. 지금은 기독교와 결탁한 맘모니즘이나 기독교가 힘으로 무언가를 지배하려는 나르시시즘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덕만 교수는 사회 부패를 더 강화하는 흐름에 저항하는 것이 급진적 제자도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아나뱁티스트들만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배덕만 교수는 한국 역사 속에서 급진적 제자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서서평 선교사를 소개했다.

서서평은 191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와 성경과 간호학을 가르쳤다. 모든 생활비를 털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던 그는 1934년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서서평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으로 치뤄졌다. 배 교수는 "서서평은 아펜젤러나 언더우드처럼 유명하진 않았지만, 오늘날 그를 호남 지역 영성의 모체로 연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급진적 제자도가 거창한 사회운동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사회 부패를 더 강화하는 이 시대 흐름에 저항하는 것이 급진적 제자도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한국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아주 작은 운동이었다. 이것이 사회구조 자체를 바꿀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시대에 저항해, 나와 교회 공동체를 지킬 수 있도록 개인적 영성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덕만 교수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몰락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상황이야말로 16세기 가톨릭교회의 전야前夜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나뱁티즘 운동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환경·교육 영역에서
급진적 제자도 실천하는 사람들

발제자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서 제자의 삶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컨퍼런스 2부에서는 안홍택 목사(고기교회),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송인수 대표(사교육걱정없는세상)가 각자 어떤 활동을 해 왔고, 이것이 어떻게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하는 삶으로 연결되는지 소개했다. 이들은 아나뱁티스트는 아니지만, 아나뱁티스트가 말하는 급진적 제자도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안홍택 목사가 시무하는 고기교회는, 소박한 지역 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고기교회는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신 지역사회 연대에 힘쓴다. 도서관과 카페, 플리 마켓을 운영하고 마을 축제와 작은 음악회를 열어 주민들과 호흡한다. 세월호 가족과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처럼 자본과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과도 연대한다.

안 목사는 "교회는 다른 기관이나 기업과 달리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는 집단이 아니다. 고기교회는 가난을 즐거워한다. 지역과 소통하고, 역사 현실에 참여하고, 녹색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최병성 목사는 환경 파괴를 일삼는 난개발에 맞서 싸워 온 '1인 군대'다. 그동안 4대강 사업, 쓰레기 매립장, 시멘트 공장 건립 등을 반대해 왔다. 최 목사는 "이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이라는 생각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다. 후손에게 이 터전을 남겨 주기 위해 지구를 지키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막는 데 교회가 앞장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제자도는 하나님 말씀을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가신 길을 걷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지키는 것은 생명과 평화의 길이다. 환경과 신앙은 별개일 수 없다"고 말했다.

송인수 대표는 교육 영역에서 자신이 실천한 제자의 삶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은 이해 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이지만, 송 대표는 고통받는 학생들을 생각해 입시 경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운동에 뛰어들었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등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거쳐 나온 정책들이 한국 사회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송 대표는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삶, 타자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기 중심성을 버리기 어렵다. 타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우리 삶을 쏟아붓는 삶을 사는 게 제자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일상에서 어떻게 급진적 제자도를 실천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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