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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신앙, 눈감아 버린 공적 참여
[탐독의 시간]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회의 정치학>(IVP)…기독교 이후의 기독교 고민하다
  • 김승환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20.01.13 15:49

새로운 기독교 지형의 도래

필립 젠킨스는 <신의 미래 The Next Christendom>(도마의길)에서 기독교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 북반부 백인 남성이었다면, 오늘날은 남반부 흑인 여성으로 지리적·문화적·인종적·성적으로 판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

기독교가 4세기 로마제국에서 공인받은 이후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제국의 전쟁을 축복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적극 옹호하면서 '크리스텐덤'(Christendom: 기독교 왕국, 제국적 기독교)을 지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전혀 다른 형국을 맞이하고 있다. 중심에서 변방으로, 다수자에서 소수자로 위치 이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이후의 기독교를 고민해야 하는 포스트-크리스텐덤(Post-Christendom)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 이후의 기독교를 세계를 살아간다. 필립 젠킨스뿐 아니라 스튜어트 머레이는 'Post Christendom'을, 하우어워스는 'After Christendom'을 꺼내 들었다. 세속화를 경험한 오늘날 기독교는 더 이상 과거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 이후의 기독교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기독교는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으며, 다원화한 사회에서 다른 많은 종교 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다. 안방을 차지하던 정착자에서 어느 곳으로든 옮길 수 있는 체류자 신분이 되었다.

기독교인은 동질화한 문화와 사회의 편안함이 아닌 사회에서 낯선 이방인, 유랑자, 순례자로서 살 것을 요청받는다. 더 나아가 지배자의 삶에서 증인의 삶으로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 복음을 설명하던 시대에서, 복음을 살아 내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파수꾼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으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선교사가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위치 전환은 새로운 문화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포스트-크리스텐덤이라 부른다. 이것은 기독교 이야기들이 근간을 이루던 사회 안에서 기독교 믿음이 그 사회와의 밀착된 관계성을 잃어 갈 때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다. 기독교 신념을 가르치고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교회와 단체가 그들의 신도들뿐만 아니라 상징과 의미, 가치의 언어들로 표현되었던 고유의 영향력을 잃어 갈 때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 믿음과 신앙의 언어가 공유되지 않는 사회에서 기독교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것을 요청받는다.

물론 서구 교회와 한국교회는 상황을 달리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이기에 역사 안에서 다수가 되고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했던 시기는 없었다. 권력 중심부에서 무엇인가를 장악하고 지배했던 적은 없었지만, 서구 교회 모습을 답습하는 한국교회는 권력 지향적 서구 기독교를 닮았다. 군사정권 시절, 정부 비호로 자유롭게 집회를 열었고 정치인들을 지지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해 갔다.

최근 한기총을 비롯한 기독교 단체들은 광장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며 신도와 비신도들을 이끌어 가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교회는 정치의 한복판에 놓여 있으며, 공적 참여를 과감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서구 교회가 밟고 왔던 크리스텐덤 문화가 놓여 있다.

<교회의 정치학 - 기독교 세계 이후 교회의 형성과 실천> / 스탠리 하우어워스 지음 / 백지윤 옮김 / IVP 펴냄 / 262쪽 / 1만 3000원. 사진 출처 IVP

포스트-크리스텐덤에서의 교회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탈기독교 시대, 탈크리스텐덤 사회에서 교회가 후퇴하는 전략을 고수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교회의 정치학>(IVP)에서 하우어워스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언어를 구사할 것과 대안 정치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주장한다. 이것은 평소 그가 오해받았던 분리주의(sectarianism)의 오명을 벗어내고, 세상과 단절된 동떨어진 공동체를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점령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와 세상을 향해 동시에 외친다. 교회를 향해서는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복음주의 운동을 제안하고, 사회를 향해서는 국가로 대표되는 거짓된 보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질문한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교회 안팎으로 전선을 구축해서 기독교의 신념과 진리를 가지고 자유주의 정치와 지적 체제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그동안 하우어워스가 보여 줬던 방식이 아니다. 서문에서도 <교회의 정치학>이 자신의 다른 저서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 표현했다. 예일학파와 칼 바르트, 존 하워드 요더,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영향을 받은 그가 공동체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공적 참여를 지향하는 최근의 공공신학적 노선으로 옮겨 간 듯한 인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그가 주장했던 교회의 교회 됨, 그리스도인의 제자 됨은 바로 사회를 향한 존재론적 공적 참여였으며, 이는 덕과 성품, 내러티브로 무장한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텐덤에 젖어 있는 주류 기독교가 누려 왔던 권력과의 결탁을 포기하고 적당한 타협으로 지탱해 온 교회의 기득권과 정치적 영향력이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와 제자 공동체 됨을 고민한 결과이다.

하우어워스가 책 후반부에서 레슬리 뉴비긴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교적 증언으로서 교회 공동체와 선교적 삶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비전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스토리, 즉 성경 이야기를 증언하는 공동체로서 교회와 그런 삶을 보여 주는 증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이후 곤곤해진 정치제도는 합리성으로 무장한 채 시민들에게 이상적인 사회 건설이란 달콤한 구원을 약속하는 듯 보인다. 인간적 삶과 도덕성은 이성의 검증을 거친 후 완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국가와 정치인은 하나님과 종교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하우어워스는 그런 구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교회가 배제된 덕스러움과 윤리의 한계를 고발한다.

현대사회가 전제하는 정의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성을 무장한 정의 추구는 결국 지배 담론 추구일 뿐이며 그들의 정의 안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가치와 배제된 이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질문한다. 진정한 정의는 평등과 자유가 아닌 인간 됨의 온전한 회복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이상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어워스는 현대 담론에 결여된 가치와 신념을 교회와 신앙의 언어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한다. 그런 민감한 분별은 주류 위치에서 안주하지 않고 복음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감각에서 나온다.

이러한 접근이 기독교가 사회에 동떨어진 채 분리되어야 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공적 참여와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현장에서는 적절한 변화와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하겠지만, 하우어워스는 증언자 자세로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며 자유주의 체제가 말하지 않는 반대편 목소리를 끌어오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종말이나 해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의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기독교로 변화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포스트-크리스텐덤은 어떤 식으로든지 교회에 회개와 회복의 시간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주변부로의 이동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시는 예수의 삶을 가르칠 것이고, 다수에서 소수자로의 이동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할 것이다. 정착자에서 일시 체류자의 삶은 하나님나라 백성 본연의 삶을 보여 줄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따르는 삶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다원화한 사회에서 기독교가 특권을 버리고 이웃 종교들과 함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도록 할 것이다. 증인의 삶으로, 교회 본연의 모습인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를 실천하도록 할 것이다. 권력 지향적 기독교 모습을 내려놓고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회는 그 자체로 정치체이며,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정치의 구현이라면 우리는 세속 정치와는 다른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정의와 자유라는 달콤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기독교의 가치와 의미를 하나님의 더 큰 시각에서 들여다보면서 우리만의 대안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시금 중세처럼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자는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현실성이 떨어진 전략이라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하우어워스는 주류 개신교가 바라보지 못한 미묘한 지점들에 메스를 들이대며 교회만의 모습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길들여진 신앙과 눈감아 버린 공적 참여에 과감한 전환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김승환 / 장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새물결아카데미에서 공공신학을 강의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신학, 급진정통주의, 도시신학, 공동체주의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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