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제 한국에서 HIV/AIDS는 감염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만 잘 받으면 평생 문제없이 살 수 있는 병이다. 전문가들은 HIV/AIDS가 당뇨·고혈압 등과 마찬가지로 약만 잘 먹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기대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의학적 발전에도, 한국교회가 HIV/AIDS 감염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죽음의 질병'이라고 불리던 30년 전과 다를 게 없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2015년경부터 시작한 한국교회 반동성애 진영의 감염인 낙인찍기는 시간이 갈수록 정점을 갱신하고 있다. HIV/AIDS와 동성애가 연결돼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입을 빌려 국회 국정감사에까지 등장했다.

반동성애 진영은 한국에서 HIV 신규 감염의 주된 경로가 '남성 간 성 접촉'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규 감염을 막기 위해 정확한 감염 경로를 알리고 이에 대한 예방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HIV/AIDS의 전 세계 확산 방지를 선도하는 유엔 산하 조직 'UNAIDS'는, 사회 전반에 걸쳐 호모포비아(Homophobia) 즉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기류가 HIV/AIDS를 확산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반동성애 진영이 HIV/AIDS 감염을 막기 위해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감염을 예방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11월 28일, 한국 사회에서 HIV/AIDS 감염인의 현실에 주목하는 학자 세 명을 만나 좌담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김승섭, 엄중식, 이훈재 교수. 뉴스앤조이 장명성

한국 사회에 확산하는 HIV/AIDS를 향한 그릇된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나섰다. '세계에이즈의날'(12월 1일)을 맞아 감염내과·보건학·예방의학·사회의학 등을 전공한 현직 교수들과 변호사, 보건 경제학자 등 20여 명이 모여 '에이즈바로알기연구회'(가칭·연구회)를 발족한다. 의학적 사실과 근거에 입각한 HIV/AIDS 연구 정보를 보건 의료 분야 종사자와 대중에게 알리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2018년 세계에이즈의날을 앞둔 11월 28일, 연구회에 참여하기로 한 교수 세 명과 함께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에 참여한 이들은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이훈재 교수,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HIV/AIDS와 관련해 저마다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엄중식 교수는 인천 길병원에서 HIV/AIDS 감염인을 만난다. 그는 각종 감염병 연구를 하는 감염내과 전문의다. 특히 HIV/AIDS 환자와 관련한 문제에서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감염인 인권침해 문제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승섭 교수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사회역학'을 공부한 학자다. 지난해 발표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의 한 챕터에 HIV/AIDS 감염인이 겪는 고통이 질병에서만 오는 게 아닌 사회적 차별에서 기인한다는 내용을 정리해 담았다. 이훈재 교수는 한국에서 HIV/AIDS 감염인이 일상생활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는지 연구해 왔으며,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같은 주제로 연구해 여러 차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세 교수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HIV/AIDS 편견을 바로잡고 의학적·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알리는 차원에서 연구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HIV/AIDS 관련 정보에 대한 사실 여부를 물을 때는 저마다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현재 의학계의 정설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주장에 일일이 반박해야 하는 것인지 반문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보수 개신교와 반대되는 '진보 진영의 주장'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 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의학적 사실'이다.

한국교회에서 동성애와 HIV/AIDS를 엮는 작업은 꾸준히 진행돼 왔다. 2017년 반동성애 집회에 등장한 피켓.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한국 사회에서 HIV/AIDS는 여전히 무서운 질병이고, 성적으로 문란한 이들이 걸리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HIV/AIDS는 어떤 병인가요.

엄중식 / HIV/AIDS는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감염병 중 하나입니다. 전통적으로 잘 알고 있는 매독·임질, 최근에야 성 접촉을 통해서도 전파 가능하다고 알려진 B·C형간염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 이런 것들이 모두 성 매개 감염병입니다. HIV/AIDS가 발견된 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약 10년 동안 많은 사람이 죽게 됐죠.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죽음의 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치명적 질환이고, 한국처럼 치료 접근성이 좋은 사회에서는 만성적 감염병 중 하나라고 보면 됩니다.

보통 성 매개 감염병 혹은 감염 질환의 경우, 얼마나 전파력이 있고 치명적인가에 따라 등급을 매겨 구분합니다. 1종에서 5종까지 있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병들을 지정 감염병으로 나누는데요. HIV/AIDS는 3종 법정 감염병에 속합니다. 통제가 가능하고 전파력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병이라는 겁니다.

HIV/AIDS는 치료하면 큰 문제가 없는 병이 됐습니다. 외래 진료를 할 때 가장 짧은 시간에 별다른 고민 없이 진료할 수 있는 질환이 에이즈입니다. 환자가 약을 잘 복용하고 검사만 정기적으로 받으면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조절하기 쉬운 병이 됐습니다. 완치는 힘들지만 당뇨 같은 병보다 대응하기 더 쉬운 병입니다.

전파력은 체내 HIV 검출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조기에 진단해서 약을 꾸준히 잘 먹는 경우 혈액에서 HIV가 검출되지 않습니다. 사실상 전파력이 '0'에 가깝습니다. HIV를 전파할 수 있는 상황도 물론 있지요. 그건 본인이 감염됐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감염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이 진단을 빨리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대응 체계를 갖추고, 그 사람들이 수시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확인하며, 혹시 감염된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치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가천대 엄중식 교수는 "HIV/AIDS는 다양한 성 매개 감염병 중 하나"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HIV 신규 감염인 90% 이상이 남성이며 남성 간 성 접촉을 통한 감염인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꼭 알려야 신규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엄중식 / 남성 간 성 접촉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맞습니다. 그건 분명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려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요 감염경로를 알리는 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취약 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나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관리적 차원에서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감염 전파를 막자는 차원에서, 이런 현실을 알리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행동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 문화를 안전한 방향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라 기본 지식과 대응책을 가르치는 등 개인 역량을 키워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훈재 / 남성 동성애가 HIV/AIDS 감염의 주된 경로니까 이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동성애자를 망신 주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진짜 HIV/AIDS 예방을 걱정한다고 하면, 남성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역량을 투입해야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HIV/AIDS와 동성애가 연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감염 예방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죠.

그렇게 하면 감염을 예방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중에서도 감염 위험이 큰 사람이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걸 자꾸 망설이게 됩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존감도 낮아지죠. 그렇게 따지면 매독·임질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성 매개 감염병도 많은데요. 그런 병은 여자 혹은 이성애자들이 많이 걸리니까, 저 논리대로 하자면 이성애의 위험성을 알리고 남녀 못 만나게 해야 하는 거죠.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개인 혹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억지로 엮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주장입니다.

김승섭 / 그들은 실제로 감염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HIV 유행을 걱정한다면, 조금만 공부해도 자신들이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게 과학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HIV/AIDS는 우리가 모르는 신규 감염병이 아니라 연구 결과가 많은 병이니까요. 그래서 이분들이 정말 HIV 감염을 걱정하기 때문에 하는 주장이 아닐 거라고 짐작하는 거죠.

인하대 이훈재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질병관리본부와 함께 HIV/AIDS 감염인 실태를 조사해 연구 결과로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HIV/AIDS 감염 원인을 '남성 간 성행위'라고 일축하고, 이것이 '동성애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섭 /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이야기할 때 사회인구학적 요인을 변수로 언급하는 일은 드뭅니다.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HIV 감염률이 높은 게 분명하다고 해도, 동성애가 이 현상의 원인이라 부를 수 있는 변수에 해당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HIV 감염이 증가하는 이유는 동성애자가 섹스를 해서도 아니고, HIV에 감염된 동성애자가 섹스해서도 아닙니다. 남성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누구든 간에 HIV 감염인과 안전하지 않은(unprotected) 섹스를 하고 약을 안 먹어서 그런 것이죠.

동성애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성관계를 갖지 못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약을 먹고 콘돔을 쓰도록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어떤 것이 사회인구학적 요인에 해당하는 변수이고, 어디까지가 행동에 대한 변수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한 사회가 질병의 원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변경 가능한 것'(modifiable)을 원인으로 삼는 것은, 실제로 사회가 개입할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동성애자 집단에서 감염률이 높은 것'과 '동성애가 원인'이라는 것은 간극이 매우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HIV 감염의 원인을 동성애에서 찾는 건 학술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동성애를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효과는 '낙인찍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낙인이 심한 HIV/AIDS 감염인을 동성애 집단과 연관시키면서 이들이 더 드러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뛰어난 도구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환자가 오지 않는 한 사용할 길이 없습니다. 위대한 의학적 성취가 있다 하더라도 접근성이 차단되는 순간 소용없는 것이죠. 한국 사회에서 혐오, 특히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는 이 모든 지식을 무용지물이 되게 만듭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HIV/AIDS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했을 때 효과가 있고 어떤 정책을 했을 때 효과가 없는지 연구한 결과물이 많죠. 그런데 그 어떤 연구도 호모포비아, 동성애자 집단에 책임을 돌리는 정책이 HIV 감염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증거에 입각한 정책주의에 어긋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그 의도와 무관하게 호모포비아는 감염인 치료를 막는 장벽입니다.

김승섭 교수는 "HIV/AIDS 환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한다. 그렇기에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연구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질병에 걸렸는데 그것을 왜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도 한국교회에서는 널리 퍼진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엄중식 / 일본만 하더라도 장티푸스, A형간염 같은 감염병은 국가가 치료비, 격리 비용 다 지불합니다.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거든요.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한 행동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염병은 기본적으로 개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겁니다. HIV/AIDS도 마찬가지 개념인 거죠.

이훈재 /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건학 교과서에 반하는 내용입니다. 한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때, 개인의 행동에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이미 발병한 결과로 보고 사회가 보장하는 시스템 안에서 그 질병을 치료하는 게 맞습니다. 본인 과실로 걸린 질병은 치료해 주지 않고, 타인에 의해 장애를 입은 것만 치료해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HIV/AIDS 감염인 치료를 지원한다는 건 개인 혜택 차원으로 볼 문제가 아닙니다. 일차적으로 개인을 치료하는 목적도 있지만, 감염병 환자를 치료한다는 건 전파력을 상실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따라서 전파 가능성이 있는 감염병은 국가가 치료를 전담하는 것입니다. 보건학적으로 이를 '외부 효과'라고 합니다. 개인에게 편익을 주는 게 아닙니다.

UNAIDS는 동성애 때문에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을 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느냐고 보는 인식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감염인을 조기에 치료하여 얻는 사회적 편익이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이죠. 이전에는 면역 세포 수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져야 약을 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염인이 원하면 약을 처방합니다. HIV/AIDS 감염 예방 첫 번째 원리는 감염인을 치료하는 것이고, 한국은 그나마 그걸 잘해 온 나라입니다.

HIV/AIDS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아프지 않으면 감염인이 약을 먹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국가가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부과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프지 않으니까 약을 끊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타인에 대한 전파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비용 부담 없이 치료하자는 게 전 세계적 동향입니다. HIV/AIDS 치료의 가장 효과적인 첫 번째 전략입니다.

김승섭 /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 질병에는 개인적 원인이 있습니다. 사회보험에 해당하는 건강보험은 그 원인 하나하나를 따져 어떤 병은 치료해 주고 다른 병은 치료해 주지 않는 보험이 아닙니다. "HIV/AIDS 환자에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몇 조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그건 감염인이 취업을 못 하거나 하는 다양한 기회비용까지 계산한 사회적 비용입니다.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공공 보험으로 HIV 감염인을 지원하는 게 전파 차단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지난해 세계에이즈의날,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된 단체들이 국회에서 '디셈버퍼스트'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HIV/AIDS 인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항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의료인 사이에서도 HIV/AIDS를 향한 오해가 심각한 수준인가요.

엄중식 /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가 'HIV 감염인 의료 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요. 여기에 대한병원의사협의회에서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HIV/AIDS 감염인에 대한 과도한 차별 금지는 진단에 어려움을 주고, 감염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며,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HIV/AIDS 감염인 식별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가이드라인 폐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허점이 많은 성명입니다. 의료인을 대상으로 에이즈 교육을 제대로 시작한 게 200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그것도 일부 병원에서만. 제대로 된 HIV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의사가 전체의 70~80%는 될 겁니다.

김승섭 / 감염인을 직접 만나 보지 않은 사람을 따지면 90%가 넘겠죠. 감염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겁니다. 대부분의 의대 졸업생이 HIV 감염 환자를 만날 일이 드물어서, 의대에서도 HIV 감염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가르치거나 비중이 없어요. 감염인이 가는 병원도 제한돼 있는데, 그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평생 감염인을 만날 일이 없어요. 이 학생들은 앞으로 만날 환자도 아니고 치료할 환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겠죠.

이전에는 환자 수가 매우 적은 이유도 있었고요. 여러 조건 때문에 의사들이 감염인에 대해 많이 모른다고 봐야죠. 내과 의사가 이비인후과에 대해 잘 알기 어렵거든요. HIV는 감염내과에서도 매우 소수가 전공한 것이라, 나머지 의사들이 전문적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이훈재 / "HIV/AIDS 환자를 돌보다 깨물린 적도 있다"고 말하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에이즈에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HIV/AIDS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걸 드러내려고 한 얘기예요. 에이즈가 무슨 광견병도 아니고, 깨물었다고 해서 전파되는 사례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HIV/AIDS 환자를 진료하는 게 엄청 위험한 것처럼 묘사한 거죠.

엄중식 / HIV/AIDS가 한국에서 발병한 지 30년이 넘었잖아요. 꽤 많은 감염인이 여러 시술도 받고 수술도 받고 하는데요. 진료 과정에서 의료인이 감염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그렇게 감염률이 낮습니다.

- 곧 발족하는 에이즈바로알기연구회(가칭)에는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엄중식 / 국회와 같은 공간에서 국회의원이 질병관리본부장을 공격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동성애와 HIV/AIDS를 어떻게든 엮으려는 사람들은 객관적 연구 자료를 악용하면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지요. 그렇게 이용하라고 만든 자료가 아니거든요. 계속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데, 이쪽에서도 전문가가 나서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이죠.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법령 등 감염인 지원 정책을 만들고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아 참여하게 됐습니다.

김승섭 / 이전에는 당뇨병 환자(diabetes patient)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당뇨와 함께 사는 사람'(person with diabetes)이라 부릅니다. 조현병 환자(schizophrenic patient)라고 부르던 걸 지금은 '조현병을 지닌 사람'(person with schizophrenia)이라고 부르죠. HIV/AIDS도 '감염인'이라 칭했는데 지금은 'PL' 즉 'HIV/AIDS와 함께 사는 사람(people living with HIV/AIDS)'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양한 삶의 환경에서 여러 경험을 겪고, 삶의 일부로 그 병을 갖고 가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의학에서도 사람은 앓고 있는 병 자체로 취급당하면 안 된다고 보는 추세입니다. 어떤 특정 질병을 겪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엄성 자체가 훼손되지 않는 길,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 HIV/AIDS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HIV/AIDS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심한 나라 중 한 곳입니다. 사회적 낙인이 심하므로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들키게 될까 봐 약을 안 먹습니다. 친구와 가족 중 누구에게도 감염 사실을 말할 수 없어요. 병원 가서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불안해서 병원에도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혐오와 낙인 앞에는 의학의 발전도 필요 없습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등등 다양한 계층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이 가장 약자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훈재 / HIV/AIDS 감염인의 삶은 전혀 가치가 없을까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이 병에 감염된 사람의 삶은 비난받아야 하고 가치가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거짓 정보가 종교 안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라 선량한 국민과 의료인들에게까지 확산하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국회까지 진출했습니다.

단순히 진영 논쟁을 할 문제가 아니라 세계 의학계, 보건학계, 세계보건기구, UNAIDS 같은 곳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연구회를 꾸리게 됐습니다. 현재 참여 의사를 밝혀 주신 분들은 20여 명인데요, 12월 중순에 공식적으로 발족하고 대중에게 좀 더 알기 쉽게 HIV/AIDS의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일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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