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매년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지킵니다. 1981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신고된 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는 의학의 발전과 함께 더 이상 공포스러운 질병이 아닌, 고혈압·당뇨와 같은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 변화에도, 한국 사회에서 HIV/AIDS 환자를 향한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특히 최근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진영에서는 AIDS 환자에게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 중 하나도 AIDS 퇴치일 텐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AIDS가 사라질까요.

<뉴스앤조이>는 한국교회 내 커져 가는 AIDS 반감을 보면서, 'AIDS'라는 질병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①HIV/AIDS란 무엇인가 ②한국교회는 어떻게 AIDS 공포를 퍼트렸나 ③'AIDS 혐오'와 감염인의 삶 ④미국과 프랑스의 HIV/AIDS 대응을 주제로 기사를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HIV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콘돔! 
- 오 이런, 어떻게 '콘돔'이라는 말을 꺼내?
- 뭐라구? 말도 안 돼. 널 도와줄 수 있는 고등학생들이 있어. 날 따라와.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1995년 프랑스 공영방송이 방영한 아동·청소년 대상 과학 프로그램 '마법이 아니야'(C'est pas sorcier, 한국에서는 '키즈 사이언스 마법은 없어'라는 제목으로 방영)에 나온 주인공들의 대화다. '마법이 아니야'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원리 등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다.

'Le SIDA'(AIDS)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이 프로그램에서 주인공들은 AIDS에 대해 설명한다. AIDS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이름(HIV)과 함께, 이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왜 문제가 되는지 △감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영상·자료·인터뷰 등으로 설명한다.

이 프로그램은 2008년 'Le SIDA, la lutte continue'(AIDS, 싸움은 계속된다)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더 AIDS를 다뤘다. 약 14년 동안의 의학 기술 발전을 설명하며, HIV 감염인도 여러 종류의 약을 한꺼번에 먹으면 AIDS로 확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마저도 현재는 알약 하나로 대체 가능하다.)

공중파 방송에서, 게다가 어린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이렇게 자세히 AIDS를 다루는 건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AIDS는 '죽음의 병', '문란한 성관계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는 인식 때문에, AIDS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2008년 방영한 'AIDS 싸움은 계속된다'의 한 장면. 주인공은 각종 도구를 동원해 AIDS를 설명한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1981년 AIDS가 처음 발견된 이후, 전 세계는 AIDS 퇴치를 위해 힘을 합쳤다. 이번 기사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의 HIV/AIDS 현실을 소개하고, 이 나라들에서 취하고 있는 HIV 감염 예방법을 소개한다.

HIV 감염 '취약 계층'에
"남성 간 성관계 갖는 사람" 명시
정죄 대신 예방법 제시

AIDS가 처음 발견된 이래 세계적으로 AIDS는 확산 추세였다. 특히 아프리카 서부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AIDS 확산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프리카에는 여성 감염인이 많고, 그들이 출산한 자녀가 바로 감염되는 '모자 감염'이 많았다.

그 외 HIV 감염인이 제일 많은 나라가 프랑스와 미국이다. 프랑스는 발병 이래 감염인 수가 꾸준히 증가했으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 HIV 감염인 수는 7,938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08년 6,390명, 2013년 6,250명, 2015년 5,925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랑스에서 HIV 감염인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남성 간 성관계를 갖는 사람'이다. 2015년 신규 감염인의 43%가 이들이다. 해외에서 태어난 이성애자 여성이 23%로 2위다. 해외에서 태어난 이성애자 남성이 15%,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성애자 남성이 9%로 그 뒤를 잇는다. 프랑스에는 아프리카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2004년 HIV 감염인 정점을 찍은 뒤 감소 추세로 돌아서기까지 사회 각층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민간단체 'SIDACTION'(씨닥씨옹)의 공이 컸다. 1994년 설립된 씨닥씨옹은 AIDS를 뜻하는 프랑스어 SIDA와 행동을 뜻하는 action을 합친 단어다. AIDS 예방과 확산 방지, 최종적으로 퇴치를 위해 활동하는 곳이다.

씨닥씨옹은 HIV/AIDS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이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집중 홍보했다. 1996년부터 단체 이름과 동일한 '씨닥씨옹'이라는 모금 방송을 시작했다. 현재 HIV/AIDS가 어떤 상황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이 병을 퇴치하기 위해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 설명하며 공개 모금했다.

2000년부터는 매해 더 적극적으로 방송을 주도하고 있다. 1년 중 2박 3일 날짜를 정해 각종 방송에서 HIV/AIDS를 집중 설명한다. 공중파 TV, 라디오 등에서 하루 종일 HIV/AIDS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주요 목적은 모금이다. 이때 모금한 돈으로 HIV/AIDS 연구, 프랑스·아프리카 감염인 지원 사업 등을 벌인다.

2017년 씨닥씨옹 포스터. "수많은 성과에도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부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화 한 통화면 기부가 가능하다. 맨아래에는 씨닥씨옹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송사 로고가 나열돼 있다. 씨닥씨옹 홈페이지 갈무리

1년에 한 차례 방송하는 씨닥씨옹은 사회에 만연한 HIV/AIDS 공포를 없애는 역할을 했다. 감염인이 직접 나와 자기 이야기를 하고, HIV/AIDS 전문가가 지금까지의 의학적 성과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질병을 둘러싼 각종 유언비어에 전문가 입장에서 대답하고, 예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려 준다. 프랑스 공영방송 France2에서 하루 종일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남성 간 성관계를 갖는 사람'을 '취약 계층'으로 지목한 건 맞다. 그러나 동성애가 AIDS의 원인이라거나, AIDS 확산을 막기 위해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AIDS 환자가 어떻게 비참한 말로를 보내는지 과장해서 설명하기보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감염인이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 보는 차원에서 캠페인을 진행한다.

'낙인 지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예방약 복용도 허용하는 미국

반동성애 운동 진영은 국내 질병관리본부가 미국처럼 AIDS 원인을 '남성 간 성관계'라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미국은 그 원인을 명확하게 '동성애'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숨기고 있느냐며 질병관리본부를 압박한다. 하지만 질병의 '원인'과 '감염경로'는 다른 말이다. 특히 HIV/AIDS 같은 감염병은 감염경로를 따지는 것이 맞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게이, 양성애 남성'이 HIV 감염 취약군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른 예방법도 상세히 알려 준다. 가장 간단한 예방법은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도 처음 HIV/AIDS가 발견된 1980년대에는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했다. 이 병에 '남성 동성애자 암'(gay cancer)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남성 동성애자만 감염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자 '낙인 지우기'는 꾸준하게 진행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HIV/AIDS 낙인 지우기를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콘돔'이라는 감염 예방법을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예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감염 취약 계층이 HIV/AIDS 감염을 우려해 예방약을 복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즉 HIV 감염이 예상될 것 같은 성관계를 했을 경우 사후 처방약을 먹는다. 이 방법은 노출 후 예방법(Post-exposure prophylaxis)이라 불린다.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발생 후 72시간 내에 약을 복용하기 시작해 약 30일간 지속하는 경우 감염률이 대폭 낮아진다.

노출 전 예방법(Pre-exposure prophylaxis)도 있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비감염인이 예방을 위해 미리 약을 복용하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이 방법을 취하면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는다 하더라도 감염 확률을 90%까지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는 HIV 감염률과 관련한 정보를 알려 주는 페이지가 따로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 갈무리

"HIV/AIDS 혐오는 보건학적 무지에서 비롯
AIDS 해결은 인권 관점에서 바라봐야"

매년 12월 1일은 전 세계가 지키는 '에이즈의 날'이다. 한국도 이날이 되면 정부·기업·기관들이 AIDS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치료와 예방을 위한 사업을 홍보해 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에이즈의 날'은 돌아오고 비슷한 행사들이 열린다.

'에이즈의 날'이 꾸준이 지켜진다고 해서 HIV/AIDS 혐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앞선 기사에서 살펴봤듯이 한국 사회 AIDS 혐오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DS 혐오는 AIDS 확산 방지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확산을 부추긴다는 데 동의한다.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이 열심히 활동한 지난 몇 년간에도 HIV 감염인은 꾸준히 늘었다.

세계적인 HIV/AIDS 감염 연구 권위자 돈 오페라리오 교수(브라운대)는 <한겨레21> 1187호에 실린 김승섭 교수(고려대)와의 대담에서 "기본적으로 우리는 모든 HIV 감염을 법·종교·도덕의 관점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랬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안전한 성관계를 맺고 감염의 위험이 있을 때는 초기에 자주 검진받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HIV 감염인들은 이중 낙인에 괴로워한다. 사회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은데, 여기에 AIDS를 '죽음의 질병'인 것처럼 과장해 그들에게 또 다른 낙인을 씌운다. 반동성애 운동가들이 퍼트리는 이 낙인은 HIV 감염인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숨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확산을 부추기는 꼴이 된다.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는 올해 펴낸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동성애와 HIV/AIDS에 대한 이와 같은 거부감이 상당 부분 보건학적 무지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AIDS는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 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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