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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에이즈 위험 국가'? 그것도 틀렸다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분석④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8.10.11 15:46

"2013년 우리나라의 에이즈 감염자는 누계 1만 명을 넘어 공식적으로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가 되었습니다. 2008년 백신 개발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국은 에이즈 감염자가 잠복기를 거쳐 '폭발 직전'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이즈학회 부회장은 '미국이나 태국의 사례를 보면 에이즈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부터 신규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우리도 이와 비슷하게 에이즈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동아일보, 2008.4.4.) 한국이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가 될 것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건사연) 블로그에 2014년 9월 4일 올라온 글 일부다. 건사연 한효관 대표는 <한겨레>가 동성애 관련 가짜 뉴스 유포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블로그 글에 따르면 한국은 공식적으로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다. 그 근거는 뭘까.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한가모)는 10월 7일 블로그에 해명 글을 올려, 이 주장에 대한 출처를 제시했다. 이들이 올린 해명 자료는 다음과 같다.

4. 한국 에이즈 위험 국가

2008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미국이나 태국의 경우와 같이 에이즈 감염자의 숫자가 1만 명을 넘으면 에이즈 감염이 폭증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http://news.donga.com/List/Ec/3/all/20080404/8563624/1

"성영철(포스텍 생명과학과) 한국에이즈학회 부회장은 국제백신연구소(IVI) 주최로 2일 서울대에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백신' 국제 심포지엄에서 "과거 한국은 비교적 에이즈에 안전한 국가였지만 몇 년 안에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감염인지원팀 이인규 씨도 "미국이나 태국의 통계 보고서를 보면 공식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부터 신규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우리도 이와 비슷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의 에이즈 누적 감염자 숫자가 2013년 1만 명(10,423명)을 넘어서면서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가 되었다.

http://www.innonews.kr/news/view.html?no=9225§ion=110&category=207

먼저 이들이 말하는 '에이즈 위험 국가'라는 게 무엇인지 짚기 전, 다시 한 번 HIV/AIDS에 대한 기초 지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러 기사에서도 설명했듯이 HIV 바이러스 감염과 AIDS(에이즈) 확진은 다르다. HIV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정확한 진단을 통해 꾸준히 약을 먹고 관리하면 기대 수명은 50년이다. 20대에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았다 해도 관리만 잘하면 70대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이 HIV/AIDS를 '만성질환'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IV 바이러스 감염인이 다른 사람과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일부 전문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반동성애 진영이 자주 인용하는 연세대 김준명 교수도 2015년 JTBC가 보도한 "'에이즈 걸리면 죽는다?'…국내 첫 환자, 30년째 건강"에서 "3~4가지 약을 한 가지 약으로 합쳐서 하루에 한 가지 약만 먹어도 치료가 되는 (시대가 왔다.) 건강한 사람들의 여명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지식을 갖고 한가모의 '한국은 에이즈 확산 국가' 해명 자료를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출처는 2008년 <동아일보> 기사다. 10년 전 열린 '백신 개발 국제 심포지엄'에서 HIV 신규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니 에이즈 백신 개발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게 기사 취지다.

한가모가 두 번째로 제시한 출처는 '한국언론미디어협동조합'이라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가 아니다. 누군가가 '보도 자료' 난에 올린 글이다. "2013년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로 지정된 한국의 현실"이라는 글은 2014년 12월에 올라온 것으로, 작성자도 출처도 없는 정체불명의 글이다.

한국에서 HIV/AIDS 감염인이 겪는 차별은 심각하다. UNAIDS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가모는 이 두 가지 자료를 근거로 "한국은 2013년 에이즈 누적 감염자 수가 1만 명이 넘었으니 '에이즈 위험 국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3년 한국 HIV/AIDS 내국인 누적 감염자 수는 8662명이다. 2014년에는 9615명, 2015년에야 1만 502명이 됐다.

한가모의 주장은 전제 자체가 틀렸다. 세상 어디에도 '에이즈 위험 국가',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라는 국제적이고 공식적인 기준은 없다. 단지 에이즈가 전염성 질병이기 때문에 전염 경로 등을 파악해서 등급을 정하는 정도다. '감염인 1만 명'이 등급을 정하는 근거도 아니다.

국제기구가 정한 HIV/AIDS 관련 등급을 살펴보자. 세계보건기구(WHO)와 전 세계 HIV/AIDS 종식을 위해 노력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 UNAIDS는 HIV/AIDS 관련해 4가지 등급을 정했다. '낮은 수준'(low-level), '집중된'(concentrated), '일반화한'(generalized), '전염성이 높은'(hyperendemic)으로 분류한다. 인구 전체에서 HIV/AIDS 감염이 발생하는 경로, 방법, 속도 등을 따져 결정한다.

미국 CIA는 해마다 <월드팩트북 World Fact Book>을 발간한다. 이 책에는 전 세계 국가들의 각종 정보가 수록돼 있는데 'HIV/AIDS - 성인 유병률'도 수록하고 있다. 감염인이 가장 많은 15~49세를 기준으로, 전체 인구와 감염인의 비율을 따져 인구에 비해 얼마나 많은 감염인이 있는지 측정한다.

이 통계는 HIV/AIDS가 발생하는 비율을 집계해 제일 순위가 높은 나라부터 낮은 나라까지 표기하고 있다. 1위는 아프리카에 있는 스와질란드로, 유병률이 27.2%다. 레소토(25%), 보츠와나(21.9%), 남아프리카(18.9%), 나미비아(13.8%) 등 아프리카 국가가 뒤를 잇는다. 이 나라들은 동성 간 성행위로 인한 신규 감염보다, 이성 간 성행위 혹은 모자 감염이 월등하게 많다. 순위 제일 아래에 있는 나라는 몰타로 0.1%다.

1위부터 109위까지 순위가 매겨진 이 자료에 한국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의 HIV/AIDS 유병률은 0.1%도 안 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 15~49세는 2583만 6026명. 현재 누적 감염인 1만 2320명이 모두 15~49세라고 쳐도 약 0.04%다.

UNAIDS가 발표한 2018년 아시아 신규 HIV 바이러스 감염인 예측 자료에는, 1위 인도(8만 8000명), 2위 인도네시아(4만 9000명), 3위 파키스탄(2만 명)이라고 나온다. UNAIDS가 나라별 상황을 기재한 자료를 보면, 세 나라 신규 감염인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감염 경로는 '동성 간 성 접촉'이 아닌 '감염된 주사기 사용'이었다.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는 '남성 간 성행위'로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전체 신규 감염인의 3.8%에 불과했다.

UNAIDS가 발표한 2018년 아시아의 HIV 바이러스 신규 감염인 예상 숫자. 한국은 정확한 수가 나오지 않지만 4년째 1190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는 점을 보면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위험' 수위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UNAIDS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에서 HIV 바이러스 감염인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HIV 바이러스 감염인이 첫 발견된 1985년부터 신규 감염인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들어 신규 감염인 수는 한 해당 1000명대를 넘어섰고, 그 뒤로는 매년 약 1190명 선에서 관리되고 있다. 한가모가 출처로 내놓은 2008년 <동아일보> 기사의 우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는 않았다.

한국과 관련한 UNAIDS의 최신 자료는 '차별'에 대한 것이다. UNAIDS는 지난해 6월, 한국의 HIV/AIDS 감염인들이 심각한 차별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UNAIDS는 한국 감염인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동의 없이 다른 의료진에게 감염 사실을 전달하고,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등 여러 차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HIV 바이러스는 예방이 최선이고 혹시 감염된다 하더라도 잘 관리하면 충분히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을 입을 모은다. HIV/AIDS 환자를 낙인찍고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입하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HIV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이들을 더 숨게 만들어 바이러스를 증폭시키게 된다는 것이 현 의학계의 결론이다. HIV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거두고, 환자들이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감염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가모를 비롯한 한국교회 반동성애 인사들은 그동안 "한국은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다. 그러니 에이즈의 원인 동성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은 에이즈 확산 위험 국가도 아니고, HIV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는 방법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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