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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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아무래도 거긴 그만 가는 게 좋은 것 같아.'

'형. 내 말 들려? 내 말 … 듣고 있는 거야? 형? 형!'

'형 … 형 …'

14년 전의 민규, 그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동시에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할 수만 있다면 바닥까지 비워 내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결국 민규의 비워 내고 싶은 희망은 실패한 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지금 이 순간까지 지울 수 없는 비극의 한순간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14년 전의 사순절 고난주간. 그 주간에서 쏟아 낸 유재환의 설교는 한마디로 처참했다. 낮고 낮은 강단 위에서 절규하듯 설교하는 유재환 목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던 율주제일교회 교우 일부는 그 처참한 전율의 쓰나미를 견딜 수 없어 오열하거나 몸을 떨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절망의 반응으로 일관했다. 그날도 유재환 목사는 울먹임, 오열의 정서를 가득 담아 한마디씩 이어 나갔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그 못 자국 앞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과 이 땅을 악마의 먹구름으로 휘덮어 버린 어둠의 광기에 대좌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려는 비상한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 비상한 결단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조롱과 멸시만이 가득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합니다. 돈과 축복, 우리 가족, 우리 지역, 우리 공동체만을 위한 유익을 추구하는 길을 과감히 내어 버리고 참 생명과 평화를 줄 수 있는 그 유일하고도 선명한 길을 향해 단호히 결단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 민규야. 나는 단지 기도하러 올라가는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14년 전, 사순절 마지막 주간 주일 설교가 끝난 뒤 청년부 모임에서 민규가 평소 형이라 부르던 김형윤 전도사를 가로막았다. 대학, 청년부를 담당하던 김형윤 전도사는 율주제일교회 6층에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밤마다 기도회를 인도하던 독실한 청년이었다.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다니다가 유재환 목사의 이른바 대각성 설교를 듣고 결단의 길을 선택한 그는 그 후로 회사를 그만두고 율주제일교회에 들어와 전도사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정식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전통과 교리만을 강조하던 당시 신학대학원 풍토가 부패하고 타락한 소돔 땅과 다를 바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던 것이 문제가 되어 학교로부터 제적 처리를 당하기도 한 그였다.

겉모습만 보면 분명 과격하거나 급진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이처럼 보이지만 김형윤 전도사는 민규가 소속으로 있던 대학, 청년1부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친형같은 사람이었다. 청년1부 모두 김형윤 전도사를 전도사로 부르기보다 형 혹은 오빠로 부르는 데 익숙했다.

이렇듯 민규에게 친숙하던 김형윤을 민규가 갑자기 막아서야 할 일이 생겼다. 사순절 설교가 끝나고 난 뒤 민규는 다락방 기도회를 가려던 김형윤을 막아 세웠다. 대학 졸업반이던 자신에게 인생의 멘토와 다름없던 김형윤을 민규가 막아선 이유는 어떤 막연한 예감 때문이 아니었다. 매섭게 파고든 소문 때문이었다. 김형윤을 막아 세운 민규가 한마디 걱정하듯 물었다.

- 형. 그냥 기도회가 아닌 것 같다는 말들이 거의 전부야. 어제도 물조차 마시지 않고 기도만 했다면서.

- 민규야. 기도는 그냥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야. 우리 존재의 모든 걸 내려놓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죄를 고백하는 시간이어야만 해. 오늘 목사님 설교도 똑바로 들어 놓고 왜 이러는 거야.

- 너무 정도가 지나치니까 그렇지. 형의 지금 모습을 봐.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야. 무서워. 내가 아는 형이 맞나 싶어.

민규는 진심을 담아 김형윤에게 물었다. 그 진심이 김형윤에게는 어떻게 들렸던 걸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그 진정한 실체를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들렸던 건 아닐까. 민규의 진심을 확인한 김형윤의 안색은 그 직후, 돌변했다.

- 날 막지 마. 네가 아직 신앙의 농도가 짙지 못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네 신앙의 잣대로 날 판단할 생각은 말란 말이야.

- 형. 난 형을 걱정해서 이러는 거야.

- 유 목사님은 이 땅과 율주시를 돈의 노예로부터 지키기 위해 40일이 훌쩍 넘는 금식 기도도 마다 않고 계셔. 정말 민규 네가 교회를 위하고 그리스도인을 위하고,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한다면 잠잠히 지켜 봐. 신의 놀라운 섭리가 일어나는 그 생명의 불꽃을 지켜보라고.

- 생명의 … 불꽃?

- 하늘 아래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업을 소멸시키는 정화의 불꽃이기도 한… 기도로 타오르는 그 영원한 불꽃 말이야.

'기도로 타오르는…' 민규는 그때, 자신이 멘토처럼 믿고 따르는 김 전도사의 눈빛에 담겨 있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순수를 막지 못했다. 순수의 절정을 잠식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이었다. 민규는 그 순수를 믿고 자신의 멘토를 율주제일교회 6층, 속칭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고난주간의 절정을 알리던 일요일 저녁, 마냥 평화롭고 적극적인 성스러움으로 끓어오르는 교회 6층에서 검붉은 불꽃이 치솟았다. 김형윤 전도사. 그가 말한 것처럼 모든 죄악을 불태워 버릴 듯한 기세로 타오르는 검붉은 불꽃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하지만 그 불꽃은 범속한 세계를 살아가는, 하루하루 울고 웃는 일반인의 시선 속에선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앗아 가는 화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순간 기도 처소를 휩쓸고 간 화마로 인해 김 전도사를 비롯해 5명의 전도사, 권사, 집사 등으로 구성된 기도회원들이 한순간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종교적 광기가 낳은 집단 자살극으로 규정하고 그 배후로 담임목사 유재환을, 그의 극단적인 금식 기도와 결단, 행동을 촉구하는 설교를 지목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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