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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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식의 역할은 아크로팰리스 입구가 마지막인 것 같았다. 고동식이 직접 운전한 초대형 세단은 입구로 들어선 뒤 지상 주차장 초입에서 멈춰 섰다. 뒷좌석을 어색해하며 앉아 있던 민규는 이제는 적잖은 해방감에 사로잡힐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조차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차에서 내린 민규에게 펼쳐진 아크로팰리스는 그에게 뉴욕 생활과는 또 다른 별천지를 선사했다.

민규가 14년 동안 목회자로 재직했던 곳은 뉴욕한인교회였다. 처음 3년간은 부목사로 시작했지만 그 3년이란 시간조차도 민규에겐 제왕적 담임목사 밑에서 신음하는 부교역자의 모습과는 달랐다. 처음부터 민규를 위해 담임목사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 둔 한인 교회에서의 부목사 시절, 그 뒤 3년을 충분한 담금질의 시간으로 판단한 장로회와 재직자들의 90프로를 육박하는 압도적인 찬성과 지지로 차지하게 된 담임목사 자리까지. 한 교회를 14년 동안 섬겨 온 민규에게 꽃길처럼 제시된 혜택이라고 해도 그에게 주어진 사택은 뉴욕 변두리의 아파트였다. 하지만 민규는 그곳이 싫지 않았다. 음악 혹은 미술을 전공하는 각국에서 모인 유학생들이 주로 렌트하는 변두리 아파트는 밤마다 피아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예술인들끼리 밤새도록 와인을 마시며 토론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식의 일상이 지칠 법도 했지만 민규에게는 남다른 추억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추억이란 것이 험악하고 날이 선 날카로움으로 돌변한 순간부터 지옥으로 돌변했지만 적어도 민규에게 뉴욕에서의 주거 공간은 티 나지 않은 세련됨과 아늑함이 묻어 있는 나름의 정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래도 율주시는 서울이라는 중심 수도에서 한참을 벗어난 변방이다. 민규는 보통 혐오 시설로 알려진 원자력발전소가 4기 이상 밀집되어 있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혐오 시설 집합소처럼 인식된 곳이 율주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이 편견이라고 다그치기라도 하듯 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초고층 아파트 아크로팰리스는 거대한 성채였다. 입구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일개 사단 병력을 연상케 하는 경호 업체 직원들의 절도 넘치는 모습이 민규에게 아크로팰리스에 거주하는 입주민을 일종의 성채에 거주하는 귀족들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거기에 부가된 이중, 삼중 바리게이트까지.

바리게이트를 모두 통과하고 들어선 아크로팰리스 지상에서 고동식은 허탈하리만치 단순한 입주 소개와 인사를 끝냈다. 차의 키홀더에서 꺼낸 카드 키 한 개를 민규에게 건네주면서.

- 1804호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카드 키를 받아 든 민규가 되물었다.

- 이 카드 한 개면 다 되는 겁니까?

- 물론입니다. 그리고 차는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 저 차를 타라고요?

- 듣기로는 직접 운전하시는 걸 희망하신다고 들어서요. 제가 만약 잘못 들은 거라면…

그렇게 말한 고동식이 다시금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민규는 고동식에게서 그러한 불안을 지워 주기 위해 손짓까지 해 보이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 아. 아니에요. 맞습니다. 한국에서도, 뉴욕에서도 운전기사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 말씀하세요. 목사님.

- 저 차가 너무 크고 화려해서.

그도 그랬다. 차에서 내렸을 때 민규가 품었던 또 하나의 추가된 생각은 검은 중형 세단이 국산이 아닌 독일산인 것을 확인했다. 생소한 엠블럼 탓에 한참을 망설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차가 마이바흐 2016년식인 것이 감지되었다. 뉴욕에서도 아주 가끔 봐 오던 세단이었다. 그 차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고동식이 싱겁다는 듯한 말투로 민규의 우려를 일축했다.

- 김 의원님, 아니 김 장로님께서 허락하신 성의입니다.

- 아무리 성의라 하셔도…

- 목사님 명의로 된 것도 아닌데요.

명의가 아니라는 말을 꺼낼 때, 고동식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옅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고동식의 말엔 아크로팰리스의 집도, 마이바흐 초대형 세단도, 그 모든 것도 민규의 것은 아니란 사실을 유독 인지시켜 주고 싶은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민규는 그런 고동식의 과시에 애써 침을 뱉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민규는 오직 그저 자신에게 할당된 자리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민규는 뉴욕한인교회에서부터 시작된 태풍으로부터 이제는 쉬고 싶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고동식이 건네준 카드 키를 받아들고 1804호로 들어선 민규는 소파에 그대로 머리를 박은 채 죽은 듯한 잠에 빠져들었다. 아파트 안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를 실감하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민규는 그저 눈에 보이는 소파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잠들기 시작했다. 그는 옷도 벗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쉴 수 있다는, 안식할 수 있다는 마음뿐이었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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