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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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주시는 거의 모든 게 변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교회만큼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부러 민규가 그렇게 느끼려고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민규는 마중 나온 고동식의 검은색 중형 세단을 타고 율주시 역사에서 이제는 외곽 취급을 받게 된 율주제일교회로 향하는 20여 분 동안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변해도 너무 변한 14년이었다. 그 14년이 민규에겐 막막한 살풍경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마치 안개로 가득한 율주시의 불투명함을 닮았다.

14년 만에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특별히 종교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율주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은 분명 민규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설렘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설렘과 다르게 험악할 정도로 달라진 율주시의 낯선 풍경이 자신을 흔쾌히 받아 줄지 모르는 의문부호가 되어 오래된 먼지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더구나 민규는 14년의 삶, 그것도 특별히 목사로서의 자신의 공적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자신감을 발판으로 이곳 율주를 찾은 것이 아니다. 금의환향과 같은 대우를 기대하긴 처음부터 어려운 것이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고 쉽게 억제할 수도 없는 성질을 가졌다. 더욱이 지금처럼 SNS가 활성화된 시기엔 민규를 둘러싼 지난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민규의 과거는 이제 떳떳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결정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민규는 그 오점을 스스로 짊고 가야 할 수치스런 짐처럼 여겼다. 그 무거운 짐에 얹힌 율주시의 낯선 풍경, 교회로 오는 내내 민규의 생각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규의 복잡한 마음, 그 잔류물은 교회 안 예배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단숨에 씻겨졌다. 본당 정면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주변 장식이 오히려 돋보이는 파이프오르간,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정면에 오병이어를 상징하는 떡과 물고기 형상이 새겨져 있는 원목 강대상, 높고 높은 천장 끝에 설치되어 있는 천창의 스테인드글라스, 그 내부를 성스럽게 메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양, 이 모든 게 민규의 마음을 신비스럽게 정화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그래서일까. 본당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민규는 뜻 모를 감정의 복받침을 실감했다. 민규는 천천히 걸어와 강대상 의자에 앉아 텅 빈 본당 내부를 훑어보았다. 민규의 뒤를 이어 천천히 본당 안으로 걸음을 옮긴 고동식이 그의 등 뒤에 서서 속삭이듯 말했다.

- 교회는 변한 게 없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민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맞아요. 변하지 않았어요. 모든 게 그대로에요.

녹슬고 낯선 장의자도 그대로였다. 장의자 군데군데 놓여 있는 손때 묻은 옛 성경들도 눈에 들어왔다. 민규가 손에 잡힌 성경책을 점검하듯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종교는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걸 중립성이라고 하더군요.

고동식이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중립성.

그렇게 말한 민규가 말을 아꼈다. 보아하니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고동식, 김인철 장로의 보좌관이란 사람은 종교, 특히 개신교에 대해 관심 가지려는 어떤 의지도 없어 보였기에 더 말을 이어 가 봤자 서로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고동식이 일상의 대화로 돌아왔다.

- 저녁에 김 의원님과 함께 저녁 약속 있으신 건 알고 계시죠?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선 민규가 여전히 시선은 교회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예. 알고 있습니다. 어디서 뵙죠?

-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잠시 후에 제가 모시겠습니다.

- 계속 수고할 일을 만드는 것 같아 송구한데요.

-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 장소가 먼가요?

- 그건 아니지만 이미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요.

-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규의 몸은 익숙한 관성처럼 피아노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성가대석 바로 옆에 위치한 피아노 역시 민규가 14년 전에 봐 오던 이제는 수시로 조율이 필요한 오래된 그랜드피아노였다.

피아노 앞에 앉은 민규의 얼굴에 소년과 같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기독교음악을 공부하던 신학대학 학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즐거운 착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고동식이 짧게 말한 뒤 본당 밖으로 스스로 물러섰다.

- 왜 준비된 사택보다 먼저 교회로 오자고 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게요.

본당은 텅 비어 있었다. 월요일. 이른 저녁의 풍경은 늘 그랬다. 피아노 덮개를 연 민규가 손가락을 길게 펴고는 건반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하울링, 본당을 은근하게 휘덮는 건반 울림이 민규의 귀에 익숙하게 들어왔다. 민규는 짧은 순간이나마 깊은 행복을 느꼈다.

이 상태 이대로만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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