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탈핵을 설명하는 노(老)교수 말에 걱정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젊은 학자들의 발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음 세대에 핵발전소의 위험을 전달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할 때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12월 15일 탈핵천주교연대가 준비한 강의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폭로한 이 교수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 김정욱 교수(서울대학교 명예)다. 기독교인 학자로서 4대강 사업 반대와 탈핵 등 여러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 왔다.

<뉴스앤조이>는 12월 19일 오후 청담동에서 김정욱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언제 사고가 날지 예측할 수 없는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고도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를 질책했다. 그는 복음의 영역이 아니라며 환경문제에 무관심한 한국교회에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결론은 이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탈핵 운동을 해야 한다." 왜 핵발전소가 위험한지, 기독교인들은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김정욱 교수의 답변을 정리했다.

기독교인 학자로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김정욱 교수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환경 단체들은 활성 단층인 한국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핵발전소가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맞다. 최근 경주 지역에 계속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강진과 여진이 번갈아 가며 발생한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은 가장 오래된 고리 발전소가 지진 6.5 규모에 맞춰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새로 짓는 발전소는 내진 설계를 7.0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언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말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진 설계를 7.0으로 올리겠다는 말은 곧 내진 설계가 6.5로 맞춰져 있는 발전소가 위험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6.5로 내진 설계된 노후 원전은 폐쇄해야 하는데, 핵발전소 관계자들은 폐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전히 안전하다며 애초에 정한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정말 대책이 없다. 핵발전소는 안에 있는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하지 못하면 폭발하게 돼 있다. 강진이 나면 냉각수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손 쓸 방법이 없다.

잘못된 것은 바로 끊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안도 없는데 당장 핵발전소를 그만둬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대안이 있을 때 그만두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후 대안이 없었지만 발전소를 폐쇄했다. 그럼에도 블랙아웃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1년 전기 사용율을 이전보다 18% 줄였다.

- 일본은 한국과 상황이 다르지 않나. 한국은 가정용보다 공업용 전기 사용율이 높다.

그 점도 맞다. 주로 석유화학이나 제철 쪽에서 사용하는 전기량이 많다. 그러니 기업체가 절약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공업용 전기세가 너무 싸다. 기업에서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정부에서 사서 쓰는 게 더 싸니 말 다했다. 정부가 탈핵에 관심이 있다면 전기량을 절약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탈핵을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정부가 탈핵에 관심이 없다는 거다.

- 탈핵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주로 일본과 독일을 예로 든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강제적으로 폐쇄를 했지만 독일은 케이스가 다르다. 왜 우리는 독일처럼 탈핵을 선언할 수 없을까.

핵발전소 사업에 너무 많은 사람이 연계돼 있다. 흔히 우리가 '핵 마피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핵발전소 사업 종사자, 학자, 정부 관료 등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체되지 않으니 그대로 있는 거다. 국민이 요구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하지 않으면 정부는 절대 스스로 하지 않는다.

- 12월 15일 탈핵천주교연대가 주최한 자리에서 사드(THAAD) 이야기를 꺼냈다. 핵발전소와 사드는 어떤 관계가 있나.

사드는 핵 문제와 관련 있어서 이야기했다. 지금 핵무기가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함부로 쏘지 못한다. 핵무기는 쏘는 나라도 공격을 당하는 나라도 모두 멸망한다. 그런데 미국은 이제 사드를 통해 핵무기를 막겠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쏘면, 미국이 대기권 밖에서 날아오는 핵무기를 찾아서 한국 땅에 못 떨어지게 대응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 북한과 한국은 1,000km도 안 걸린다. 북한에서 핵무기를 발사하면 한국에 10분도 안 돼서 떨어진다. 미국이 위치를 찾아낼 수 없는 시간이다. 불가능하다.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쐈다고 치자. 사드가 배치된 지역뿐 아니라 주변 지역은 다 절단 난다. 만약 땅이 좁은 한국에서 핵무기가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지진으로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다.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는 한국에 배치되면 안 된다.

김정욱 교수는 핵발전소가 폭발하면 손 쓸 방법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 2년 전 <뉴스앤조이>와 4대강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환경 담론 자체가 잘 안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달라졌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람들이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정부 정책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지 않는 점에서는 진일보했지만,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한국교회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4대강 사업이 이슈일 때, 꽤 많은 한국교회가 4대강 사업에 찬성했다. 핵발전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핵발전소 문제 얘기했다고 교회 구성원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어떤 경우는 "좌파, 정치적"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 그래서 교회보다 가톨릭에서 더 많이 강의하는 것인가.

교회에서는 나를 잘 부르지 않는다. 반면 가톨릭은 4대강 때도 활발히 활동했다. 가톨릭은 주교회의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했다. 이게 한국교회와는 다른 점이다. 개신교는 대부분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무관심하거나 정부 정책에 호의적이거나.

먼저 무관심한 이유를 살펴보면, 한국교회는 복음과 무관하다 싶으면 관심을 끈다. 탈핵과 복음은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하나님의 지상명령과 맞닿아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종교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잘 보존하는 게 피조물의 도리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11장 18절에서 "땅을 망하게 하는 이는 멸망시킨다"고 말씀하신다. 창조하실 때도 잘 다스리라고 당부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명령이다.

교회가 정부 정책에 호의적인 이유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중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을 "정부에 복종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잘못된 권세에 저항하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모세는 자신을 길러 준 바로가 그릇된 일을 할 때 대적했다. 예수님은 헤롯 왕을 여우라고 불렀다. 당시 예수 시대 사람들에게 여우는 경멸의 동물이었다. 여우 머리가 되기보다는 사자 꼬리가 되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 법정에서 헤롯이 하는 말에 대꾸도 안 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잘못된 정권에 축복 기도나 해 주고 박근혜를 고레스 왕에 비유한다.

- 어떤 정치인은 '탈핵은 표가 되지 않는 공약'이라고도 한다. 교회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면 달라질까.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교회는 교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 주기적으로 모인다. 어느 곳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이겠는가. 교회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목소리를 내면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 기독교인이라면 꼭 탈핵 운동을 해야 할까.

범죄를 보고 침묵하는 것도 범죄다. 우리는 잘못된 점을 폭로해야 한다. '동의' 대신 '폭로'를 선택해야 한다. 성경만 보더라도 온갖 추잡한 범죄가 다 나와 있다. 한국교회는 사건을 보고도 쉬쉬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성경에도 맞지 않다.

핵발전소는 결국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며 세워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밀양 송전탑을 보자. 거대 송전탑이 들어선 이유는 서울에 많은 양의 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할머니들은 송전탑이 싫다고 몇 년간 투쟁 중이다. 핵발전소는 다른 지역 사람 또는 후손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우리는 가족 구성원을 희생시키며 내가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타인을 희생시키며 나 혼자 잘살아 보겠다는 건 기독교 정신과 어긋난다. 기독교인은 억울하게 희생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함께 돌봐 준다.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탈핵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형 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함께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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