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판도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를 주제로 한 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의 인기가 뜨겁다. 12월 7일 개봉한 판도라는 2주 연속 예매 순위 1위를 달리는 중이다. 다른 재난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소재를 다뤄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판도라 내용은 이렇다. 6.1 규모 강진으로, 노후 원전인 '한별발전소'가 타격을 받는다. 지진 전 문제가 몇 차례 있었지만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결국 원전 사고로까지 이어진다.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이 없는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방사능 유출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된다. 영화는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12월 17일 환경 단체 '녹색연합'은 시민과 함께하는 판도라 특별 상영회를 진행했다. 엄마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초등학생 열댓 명이 눈에 띄었다. 상영 후 김제남 전 국회의원(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과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가 나와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현실이 다른 점, 탈핵 가능성, 탈핵을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질의응답식으로 정리했다.

녹색연합에서 '판도라' 관람 후 김제남 의원과 이헌석 대표를 초대해 원전의 미래와 대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한국, 원전 사고 일어날 수 있다

- '판도라' 어떻게 보셨나.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이헌석 / 배경은 한국이지만, 사고 내용은 후쿠시마와 유사하다. 당시 있었던 일을 영화로 잘 만든 것 같다. 이 일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다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심각하다. 영화는 수위 조절이 된 상태다. 단언컨대 피해 정도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현장의 ¼ 정도로만 다뤄졌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국민이 고속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서울로 도망가는 장면이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뿐 아니라 인근에 사는 모든 지역 사람이 대피한다. 차가 한번에 몰리니 정체가 심해지고, 결국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길 위를 걸어간다. 그러나 실제로 사고 나면 영화처럼 돌아다니지 못한다.

군부대가 들어와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다. 사고 현장 인근에 있던 사람들은 움직이는 방사선 폐기물 취급받는다. 후쿠시마 사건을 보면, 현장에 있던 주민들에게 방사선이 없는지 확인 절차를 밟고 나서 밖으로 내보냈다. 이런 절차를 거부하면, 법에 따라 계엄령에 준하는 통제를 받게 됐다.

김제남 / 가상의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지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절통스러웠다. 영화에서는 6.1 규모 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9월 지역 주민을 놀라게 한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 규모가 5.8이었다. 충분히 6.1 규모의 지진이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 한국은 지진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11년 이후 일본 열도가 뒤틀렸다. 뒤틀린 단층에서 계속해서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 이 영향은 일본과 맞닿아 있는 대륙에까지 미친다. 문제는 활성 단층(지진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 발견된 한국에도 영향을 준다는 거다. 이 때문에 여러 단체는 한국에서도 강도가 센 지진이 발생하면 원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만 아니라고 할 뿐이다.

원전 폐쇄해도 '블랙아웃' 문제없다

- 영화에서 총리가 원전을 멈추면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현상이 일어날 거라고 한다. 한국은 원전밖에 답이 없는가.

김제남 /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은 총 전기량 중 30%를 원전에서 공급받고 있다. 사람들은 원전을 폐쇄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그러나 잘 계획하고 준비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원전을 탈피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를 사용하면 된다. 일단 가스, 석탄이 있고 지금은 미비하지만 신재생에너지도 사용할 수 있다. 원전 외 다른 에너지 발전소들은 사용률이 낮을 뿐, 지금도 가동 중이다. 정부가 원전을 많이 가동하기 위해 다른 발전소를 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이 신재생에너지에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용율이 1~2%니 취약한 거 맞다. 그러나 2011년 탈핵을 선포한 독일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취약한 것도 아니다. 독일도 탈핵 선포를 하기 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6%였다. 인력과 예산을 쏟으면 가능한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에너지를 아껴 쓰는 거다. 일본은 원전 54개를 가동했는데, 다 멈췄다. 이유는 하나다. 위험하니까. 그래도 블랙아웃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일본을 살펴보니, 1년에 핵발전소 10개가 생산하는 양을 절약하고 있었다.

정부가 말하는 블랙아웃은 국민을 겁주기 위한 것이고, 잘 준비한다면 오히려 안전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판도라'에서도 대통령이 "너무 늦었다. 조금만 빨리 손을 썼다면"이라는 말을 계속한다. 우리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김제남 의원과 이헌석 대표는 지금부터 잘 준비하면 독일처럼 한국도 탈핵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일본과 독일 상황을 비추어 볼 때, 한국도 탈핵 가능성이 있을까.

김제남 / 독일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가 있던 2011년 탈핵을 선언했다.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했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2033년까지 계획한 원전 폐쇄를 2022년으로 앞당겼다 - 기자 주) 우리도 그때 선언했다면, 지금보다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을 거다. 당시 독일은 원전 의존율이 30%였다. 지금은 10%로 떨어뜨렸다. 재생에너지 의존율은 10%에서 30%로 올렸다.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우리도 이렇게 하면 좋을 거 같다. 판도라에 나온 한별발전소 수명이 40년이었다. 30~40년 되면 수명을 다한 거다. 그런 건 문을 닫아야 한다. 억지로 연장시키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1년에 하나씩 문 닫는다고 하면, 2040년이면 독일처럼 원전 없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이헌석 / 일본은 최근 10년 사이에 전력 사용이 10%가 줄어 들었다. 후쿠시마 때문만은 아니고 이전부터 계속 감소 추세에 있었다. 작년 통계를 보면 재생에너지로 생산해 낸 전력량이 전체 합쳐서 10%가 넘었다. 후쿠시마 사고 전에는 우리처럼 2~3% 대였다. 그 사이,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많이 지었다. 일본이 핵발전소 54개를 멈췄어도 문제없었다면, 한국이 핵발전소 24개를 멈추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술 문제라기보다 탈핵 정책을 의지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다.

"국민이 직접 원하는 에너지 정책 이야기해야"

- 정부가 직접 나서서 원전을 멈출 것 같진 않다.

김제남 / 맞다. 국민이 원하는 점을 스스로 정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는 절대 알아서 하지 않는다. 헌법 34조 6항에 보면 정부는 국민을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책무가 있다고 나온다. 원전 사고는 재해다. 곧 국가는 원전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사고가 터지면 국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경 30km에 380~500만이 거주하는데, 다른 지역으로 도피하는 것도 힘들고 '방사능 피폭'에 손쓸 수 있는 게 없다. 원전 재난은 미리 예방하고 막아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책을 만들라고 요구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안타까운 건 19대 국회 때 보니, 원전 진흥하는 법만 만들고 있었다. 국민은 요구하지 않는데 원전 산업계가 국회에 로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면 안 된다. 탈핵을 위한 법을 만들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헌석 / 탈핵을 선거 공약으로 걸면 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정치권에서 줄곧 해 온 이야기다. 바꿔 말하면, 탈핵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을 당선시키고 이게 표가 된다는 점을 알려 주면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거다. 그러려면 국민 스스로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 '판도라'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녹색연합은 관객들과 "핵발전은 그만둬라! 영화는 판도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이 있을까.

김제남 / 한 관객이 영화 '판도라'를 두고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고 평가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보라고 많이 권해 주면 좋겠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원전이 위험한 거구나. 원전은 절대 혼자 멈추는 기계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탈핵을 위해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에너지 진단을 받아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다. 멀티탭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기량 30% 이상을 줄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태양광발전소를 세우는 일이다. 혼자 하기 어려우니, 마을이나 단체별로 힘을 모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관심이 없으니 지자체별로 에너지 자립을 돕는 정책을 편다. 서울, 경기, 충남, 제주가 하고 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공부도 하고, 어떻게 하면 에너지 자립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지자체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이헌석 / 탈핵 운동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주변에 나누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이제 곧 후쿠시마 사고 6주기가 다가온다. 이때가 중요한 구심점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2017년 3월 11일 집회 때 탈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현장에 나와 원전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현재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4개다. 앞으로 12개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2030년에는 원전 36개가 가동된다. 핵없는세상을위한공동행동과 여러 시민단체는 노후 원전 폐쇄와 함께 신규 원전 설립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탈핵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잘 가라! 핵발전소 100만 명 서명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시민단체는 서명을 기반으로 2017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탈핵 의사를 전달하고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교회 차원에서도 참가할 수 있다. 핵없는세상을위한그리스도인연대가 진행하는 '잘 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운동'이다. 10만 서명운동은 기독교가 탈핵 운동 차원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참가 교회는 탈핵 예배 드리기, 교회 내 탈핵 공부 모임 만들기, 탈핵 영화 상영하기 등 8가지 방법으로 탈핵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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