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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승리하셨습니다!"
김국도 목사 은퇴식, 영욕의 43년 목회 마무리…감리회 '삼도 시대' 역사 뒤안길로
  •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승인 2016.04.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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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도 목사가 목회 43년을 마무리하는 은퇴식을 열었다. 거침없는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의 마지막 순간, 은퇴식에 참석한 동료 목회자들이 "(감독)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외쳤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김국도 목사는 임마누엘교회에서 '큰 목사님'으로 통한다. 아들 김정국 목사도, 찬양 인도자도 그를 '큰 목사님'으로 소개한다. 교회 홈페이지 소개 글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회장님'으로도 통한다. 2008년 감독회장 선거 출마 당시 김 목사를 도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회장님'이라 부른다. 집무실 출입문에도 '감독회장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다.

임마누엘교회를 교인 1만 명이 넘는 대형 교회로 키웠지만 '감리회 사태'와 '변칙 세습'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김국도 목사의 목회 여정이 마무리됐다. 김국도 목사 은퇴식이 열린 4월 10일, '영욕'의 43년 여정을 마무리하는 현장을 찾았다.

사역 내려놓는 김국도 목사 "43년 동안 교회밖에 몰랐다"

은퇴식에 앞서 김 목사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43년 동안 교회밖에 몰랐다고 했다. 영웅 심리에 빠질까 두려워 사회적인 일도 하지 않았고 이름 날릴 만한 일에도 끼지 않았다고 했다. "한때는 김대중의 직속 부하 노릇도 했다"는 김국도 목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의원직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형들은 성격이 착하지만 난 아니다. 본래 목회자 될 성격이 아니었다"는 김국도 목사. 그는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40년 전 잠실 벌판에 강남제일교회라는 이름으로 천막 교회를 개척한 후 천막을 뺏긴 것만 수차례였다고 회고했다. 교회 건축 당시에는 일꾼과 마찰이 생겨, 다리를 부러뜨렸다며 구치소에 20여 일 수감된 얘기도 웃으며 털어놨다.

   
▲ 김국도 목사는 자신이 크게 이룬 건 없다고 했다. 그는 "큰 목회는 못했어도 작은 승리는 한 것 같다"고 했다. 영웅 심리에 빠질까 싶어 사회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40년 전 개척한 임마누엘교회는 1만 명이 넘는 대형 교회가 됐다. 그는 담임목사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김국도 목사는 "세습이란 단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땅과 권력, 돈을 물려주는 것이 '세습'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아들 김정국 목사에게 임마누엘교회를 물려주고 사위 조형래 목사를 홍천에 설립한 전인기독학교 교장으로 앉혔는데,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목회는 자식들에게 억지로 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민수기를 보면 에봇을 맞춰서 제사장직을 계승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사위와 아들이 목회자가 됐는데,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들에게 교회 맡기는 거 많이 비난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경험한 노하우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취지였다.

감리교 감독회장이 되지 못한 아쉬움도 표현했다. 은급제도를 바꾸고 교회 성장을 우선하는 교단으로 만들려는 포부가 있었다. 뜻을 펼치기 전에 꺾여서 안타깝다고 했다. 감독회장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폭력과 소송 등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44.4% 지지를 받았는데 안 됐다. 정치적인 서클과 학연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회장직을 깨끗이 양보했다. 감독회장이 되면 교회를 성장시키는 교단을 만드려는 꿈이 있었다. 은퇴 목회자를 돌보려 했다. 장로교회는 은퇴하면 300만 원 정도 준다는데 나는 43년 목회했는데 월 92만 원 준다고 한다. 노후에 목사들이 어려우니까 얼마나 안타까운지. 이런 은급제도부터 과감히 바꾸려고 했다. 교회마다 영혼 구원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는, 액티브한 교회를 양육하고 싶었다. 아이디어는 충분했다."

평소 김국도 목사와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진 작은 형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원로)도 잠깐 얼굴을 비쳤다. 사회자가 축사를 부탁했지만 김홍도 목사는 거절했다. 김국도 목사도 "형들에게 마이크 주면 나에 대한 좋은 소리 한마디도 안 한다"며 웃었다. 김국도 목사는 며칠 전 있었던 서울남연회에서 큰형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원로)도 "고생했다"며 등을 두드려 줬다고 말했다. 두 형은 은퇴식 본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 식전 행사로 열린 타임캡슐 봉인식에 작은형 김홍도 목사가 나타났다.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봉인식이 끝나고 자리를 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상찬 넘쳐난 은퇴식 "회장님 가방모찌 하며 오늘날의 제가 됐다"

"오직 목회만 했다. 큰 교회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작은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닌가" 자평한 김국도 목사. 그는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라 했지만, 은퇴식은 김국도 목사 공을 높이는 상찬으로 넘쳐 났다.

은퇴식은 2,500 객석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이 김국도 목사의 입장을 기립 박수로 맞으며 시작됐다. 설교를 맡은 서울남연회 김연규 감독은 "김국도 목사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목사를 가리켜 "감리교회를 빛낸 영적 거장"이라고 소개하며 청중들과 함께 "김 목사님 내외분, 승리하셨습니다"고 외쳤다.

찬하사를 맡은 전영기 목사(천안반석교회)는 김국도 목사에게 '회장님' 호칭을 사용했다. '회장님'은 감독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회장님 은퇴를 앞두고 20년을 돌아봤다. 20년을 회장님 가방모찌 하면서 (오늘날의) 제가 됐다"고 말했다.

"최고의 스승이셨다. 4평 천막에서 1,100배 축복을 받은 산증인이시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전국 방방곡곡, 세계 오지 밀림도 마다 않고 달려가는 선교사셨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신 실천신학의 대가셨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목회하고 싶었다. 목회를 모방하고, 도용하기 시작했다. 설교도 많이 가져다 썼다. 엘리사의 심정으로 회장님 양복 16벌을 물려 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양복도 회장님이 맞춰 주신 것이다. 넥타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280달러짜리로 사 주신 것이다."

전 목사는 후회되는 점도 있다고 했다.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이 하나 있다. 감리교 개혁을 놓친 것이다. 44.4%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도 잘 보필하지 못해 아픔을 남겼다"고 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면서 모셨다"는 그는 회중들에게 할렐루야 삼창으로 회장님의 미래를 위해 축복해 달라고 했다.

"성역 43년을 강녕하게 은퇴하심을 축하드리며 할렐루야!”

"김국도 회장님 43년 목회가 기독교 역사에, 감리교 역사에 큰 승리가 되게 하심을 할렐루야!"

"100세 시대,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크게 쓰임 받으실 줄 믿으며 할렐루야!"

전 목사는 큰절로 찬하사를 마무리했다.

축사를 맡은 김국도 목사의 친구 함무근 목사(미국 임마누엘연합감리교회)는 "이제부터 진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아들에게 목회지를 물려준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미국에서 휴스턴 레이크우드교회(Lakewood Church)의 조엘 오스틴(Joel Osteen)이 안수도 받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존 오스틴(John Osteen)의 뒤를 이어 교회를 담임하면서 아버지 때보다 6배 이상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도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를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klin Graham)에게 맡겼다.

T. L. 오스본(T. L. Osborn)은 인터내셔널가스펠센터(International Gospel Center)를 딸과 사위에게 위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제는 마음 편하게 자신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목회자를 두고 떠나신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어진 목회 계승식에서 김국도 목사는 아들 김정국 목사에게 자신이 입던 가운과 스톨, 자신이 쓰던 성경책과 만년필, 그리고 자신이 타고 다니던 BMW 자동차 키를 넘겨줬다. 가운을 입히고는 "목회 잘해"라며 김정국 목사를 발로 툭 찼다. 평소 '조인트'로 명성이 자자한 김 목사는 아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김국도 목사의 목회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해병대'와 아프리카 마사이족의 특송 등이 이어진 후 은퇴식은 끝났다. '영욕의 43년 목회'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김 목사는 앞으로 해외 선교와 군 선교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국도 목사는 자신이 입던 가운을 아들 김정국 목사에게 물려줬다. 자신의 성경책과 만년필, 그리고 타고 다니는 BMW 차 키를 넘겨주는 '목회 계승식'을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감리교 사태' 촉발한 감독회장 선거, 징검다리 세습으로 교계 안팎 비판

김국도 목사는 큰형 김선도 목사, 작은형 김홍도 목사와 함께 소위 '감리교 삼도 형제'로 불린다. 3명 다 교인 1만 명 이상의 대형 교회를 담임했고, 아들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줬다.

김선도 목사와 김홍도 목사는 변선환 교수(감신대)를 종교재판으로 축출하는 데 앞장서 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김홍도 목사는 "십일조 안 하면 암 걸린다" 발언과 교회 돈 횡령, 성 추문으로 지탄받았고, 법원에 위조 서류를 증거로 냈다가 2014년 말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감독회장을 지낸 두 형의 뒤를 이어 김국도 목사도 2008년 감독회장직에 도전했다. 김국도 목사는 전과 때문에 후보 등록 당시부터 자격 논란이 있었다. 44.4% 득표율로 당선됐으나 금권 선거 논란과 후보 자격 시비 등으로 갖은 소송과 다툼이 끊이지 않아 감리회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감독회장실을 차지하려는 다툼 때문에 감리교 본부가 폐쇄되기도 하는 등 교단 전체가 혼란에 시달렸다. 감독회장실이 있는 감리회 본부 16층에는 용역이 동원됐고, 소화기 분말이 여기저기 난무했다.

이후 2012년 전용재 감독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여러 감독이 번갈아가며 임시 수장을 맡았으나 혼란은 가중됐다. 법원이 장로교회 장로인 백현기 변호사를 감독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할 정도였다. 지난해 4월 모든 소송이 취하되기까지 김국도 목사의 감독회장 출마로 비롯된 '감리회 사태'가 완전 종식되는 데는 장장 7년이 걸렸다.

감리교신학대학교를 나온 두 형과 달리 김국도 목사는 목원대학교 출신이다. 소위 'KD 라인'으로 대변되는 김국도 목사 측 인사들은, 감신대 출신이 감리회 본부를 장악하고 있다며 들고일어난 협성대·목원대 출신의 '비주류'였다. 김국도 목사는 이들의 대부이기도 했다.

감독회장 선거에는 실패했지만 아들에게 목회직을 넘기는 데는 성공했다. 2012년 감리회는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가 연속해서 담임목사직을 맡을 수 없다'는 이른바 '세습방지법'을 신설했다.

그러나 2013년, 김국도 목사는 자신의 후임으로 1달짜리 '임시 담임목사'를 앉혔다가 곧바로 담임자를 아들 김정국 목사로 바꾸는 '징검다리 세습'을 감행했다. 법의 허술한 점을 파고든 것이다. 감리회는 2015년, 이런 방법까지 차단하는 '징검다리 세습 방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시점이었다.

   
▲ 김국도 목사는 해병대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마지막을 축하하기 위해 해병대 전우회도 참석해 특송을 불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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