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은퇴하는 A교회 담임목사 후임으로 B교회 목사가 옵니다. 그런데 A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의 아들이 B교회 담임목사로 취임합니다. 교단법 때문에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할 수 없는 A교회 목사가 B교회 목사와 사실상 거래를 한 것입니다."

지난 1월 15일, <뉴스앤조이>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익명의 제보자는 담임목사가 수억 원의 전별금을 받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을 위해 교차 세습을 한다고 주장했다. 확인 결과 제보 내용은 사실이었다. 제보자는 A교회 담임목사도 지난 2001년 교차 세습을 거쳐서 왔고,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세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습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고 세습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도 목회 대물림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자체적으로 받은 제보와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공동대표 김동호·백종국·오세택)가 수집한 자료를 검토한 다음 세습한 교회를 취재했다. 최근 2년간 세습을 완료했거나 과정을 밟고 있는 교회 23곳 중 10곳을 선정해 직접 찾았다. 교인 수가 50명 미만이거나 이미 언론에 보도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교회들은 취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일부 목사들은 취재를 거부하면서 교회 문을 걸어 잠갔다. 교회 내부에는 세습으로 인한 갈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교인들은 "세습이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목회 대물림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아버지가 아들 또는 사위에게 교회를 직접 물려주는 직계 세습을 비롯해서 임마누엘교회(김국도 목사)처럼 한 다리 건너뛰며 '징검다리' 세습을 한 곳도 있었다. 선교를 빌미로 지교회를 세우고 아들을 부목사나 담임목사로 파송한 곳도 있다. 2~3명의 목사가 동시에 임지를 맞바꾸며 진행한 '교차' 세습도 많았다.

취재 내용을 유형별로 나누고, 세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알아봤다.

▲ <뉴스앤조이> 기자 두 명은 세습한 교회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목회자 대다수는 취재를 거부했다. 취재에 응한 목사들은 하나같이 세습이 아니라고 말했다. 대부분 "교단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공동의회와 당회에서 민주적으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세습을 완료한 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장성현

전통적인 '직계 세습'…세습은 우회해야 제맛?

① 교차 세습. 요사이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이다. 교인들이 세습을 반대하거나 교단법상 세습이 불가한 경우에 주로 쓰인다. 단점이 있다면 임지를 맞바꾸는 형태라 두 교회의 재정이나 교인 수가 어느 정도 비슷한 게 좋다.

교차 세습의 고전 유형부터 살펴보자. 인천 ㄱㅅㅈㅇ교회 장 아무개 목사는 아들 목사를 후임으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교인들이 반발이 예상외로 거셌다. 직계 세습에서 교차 세습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같은 교단에 규모가 비슷한 교회를 탐색했다. 장 목사는 천안 ㄱㄴㅇ교회를 낙점했다. ㄱㄴㅇ교회 고 아무개 목사가 ㄱㅅㅈㅇ교회 담임으로 왔고, 장 목사의 아들은 ㄱㄴㅇ교회 담임으로 갔다.

교차 세습의 진화형도 있다. 세 교회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서울 ㅇㅎ교회 문 아무개 목사는 사위를 위해 교차 세습을 강행했다. 대학 후배인 ㅎㅇㅈㅇ교회 서 아무개 목사를 후임으로 데려오고, 부천 ㅅㄹ교회에 있던 사위 목사를 ㅎㅇㅈㅇ교회로 보냈다. 사위 목사의 빈자리는 ㅎㅇㅈㅇ교회 부목사가 메웠다. 세 교회는 차례로 담임목사를 맞바꿨다.

② 징검다리 세습. "목회자의 자녀가 같은 교회에서 '연속'으로 목회할 수 없다"는 교단 세습방지법의 허점을 노린 유형이다. 임마누엘교회(김국도 목사)로 인해 유명해졌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정도 다른 사람이 담임목사를 하게 한 다음 원래 담임목사의 자녀나 사위에게 교회를 넘겨주는 방식이다. 주로 직계 세습을 금지하고 있는 교단의 교회들이 쓰는 방법이다.

충남 서천군 ㅈㅇ교회 한 아무개 목사는 세습방지법이 제정되자 미국에 있던 아들을 급히 불렀다. 아들을 부목사로 세우고 한 목사 자신도 부목사가 됐다. 한 목사는 인근 교회에서 목회하던 김 아무개 목사를 담임목사로 데려왔다. 김 목사는 정년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6개월 뒤 김 목사가 정년 은퇴했고, 아들은 자동으로 담임목사가 됐다.

③ 지교회 세습. 교인 1,000명 이상의 대형 교회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다. 대기업 회장 자녀가 계열사 사장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데, 아버지 목사가 지교회를 세워 아들을 담임이나 부목사로 파송하는 방법이다. 일부 교회는 아들 목사를 위해 지교회를 새로 지었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한 뒤 지교회에 있던 아들 목사를 모 교회 담임목사로 불러올 수도 있어 대형 교회가 선호한다.

교인 5,000명이 넘는 경기도 광명시 ㄱㅇ교회. 담임 김 아무개 목사는 정년이 다가오자, 지난 2010년 미국에서 목회하던 아들을 데려와 부목사로 세웠다. 당시 ㄱㅇ교회에는 지교회만 3개였는데, 지난 2012년 연건평 1,600평, 지하 2층에 지상 6층 규모의 새로운 지교회를 세웠다. 아들은 지교회 담임목사가 됐다.

천안 ㄱㄹㄹ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1980년 이 교회에 부임한 이 아무개 목사는 부흥을 일으켰다. 4개의 지교회를 건축했고, 현재 아들 목사는 지교회 ㄱㄹㄹㄴㅂ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아버지 이 아무개 목사는 ㄱㄹㄹ교회와 ㄱㄹㄹㄴㅂ교회의 지도목사로 돼 있다. 담임목사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ㄱㄹㄹ교회의 담임목사는 제3의 인물이어서 징검다리 세습 의혹을 받고 있다.

④ 직계 세습.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자 널리 쓰이는 유형이다. 복잡하게 임지를 맞바꾸거나 허수아비 목사를 앉힐 필요가 없다. 아버지 목사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 아들을 후임 목사로 세우면 끝이다. 세습방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교단에서 주로 쓰인다.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경기도 고양시 ㅅㅅㅈㅇ교회 정 아무개 목사는 아들 목사를 2003년 부목사로 청빙했다. 4년 후 공동의회를 열어 아들 목사를 차기 담임목사로 확정했다. 2012년 새 예배당 건축과 동시에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했다. 서울 구로구 ㅅㅎ교회 이 아무개 목사는 아들 목사를 2008년 목회기획실장으로 임명해서 일종의 경영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 2011년 아버지 목사가 별세하자 2012년 당회는 아들 목사를 2대 담임목사로 추대했다.

⑤ 합병 세습. 앞에 나온 네 가지 유형이 임지를 맞바꾸거나 목회지를 대물림하는 형태였다면, 합병 세습은 아버지 목사 교회와 아들 목사 교회가 통합하는 방식이다. 기업 M&A와 유사하다.

김 아무개 목사는 30여 년 전 인천시 서구에 ㅅㄷㅅ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는 교인 수 500여 명의 중형 교회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정년이 다가오자 신도시에 종교 부지를 구입해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새 예배당은 아들 목사가 차지했다. 두 교회는 모 교회와 지교회 관계가 아닌 각각 독립된 교회였다. 부자는 다른 예배당에서 8개월간 목회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목사는 ㅅㄷㅅ교회를 폐쇄했다. 90억에 교회 건물을 매각했다. 아버지 목사는 교회 재산을 정리하고, 교인들과 함께 아들 교회로 이전했다. 아들 교회는 가만히 앉아 아버지 교회 재산과 교인을 흡수했다. 현재 아버지는 원로목사, 아들은 담임목사로 있다.

▲ 감리회와 예장통합, 기장 등 일부 교단이 세습방지법을 제정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칙 세습은 정교해 지고 있지만, 현행법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다.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지난 2013년 예장통합 총회가 열리는 명성교회 앞에서 세습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유명무실한 세습방지법…당사자들, "세습 아니야"

사례에 등장한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세습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공동의회 결의와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청빙됐기 때문에 세습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교회를 세워 아들을 담임목사로 파송한 한 목사는 "내가 시무하는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세습이지 지교회에 아들을 파송한 게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교회 사무장은 "밖에서 봤을 때 세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교단은 감리회,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 다양했다. 감리회에 속한 교회가 많았는데, 10개 교회 중 6개나 됐다.

교단 헌법은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세습을 막기 위해 감리회와 예장통합, 기장 등 일부 교단이 세습방지법을 제정했지만 목회 대물림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예장통합에 속한 한 교회 담임목사는 세습방지법이 통과되자 징검다리 세습을 통해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줬다. 교차 세습을 하거나 지교회를 세워 아들 또는 사위에게 교회를 물려줘도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습방지법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 백종국 공동대표는, 지금의 세습방지법은 '세습 금지 선언'에 가깝다면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조사하고 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하위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교회 성장은 주춤한 반면 목회자 공급은 과잉이기 때문에 세습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봤다. 백종국 공동대표는 "현재 교회 수에 비해 목회자가 2~2.3배 정도 많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임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물림 시도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세반연 공동대표 중에 한 명인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는 3년 전 세반연 출범 기자회견 때 "세습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세습 반대 운동이 더 힘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목사의 기대와 달리, 목회자들의 임지가 줄어들고 좀처럼 교인들의 의식이 개혁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세습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호시탐탐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줄 생각에 잠겨 있는 목사님, 목사님은 몇 번 유형이 마음에 드시나요? 

▲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는 아들에게 징검다리 세습을 강행했다. 김 목사는 지난 2012년 소속 교단 감리회가 세습방지법을 제정한 것을 두고 "악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성경에는 자식들이 제사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자손손 제사장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직을 계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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