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2:7-14, 시 51:1-10, 딤전 1:12-17, 눅 15:1-10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창조절 둘째 주일입니다. 창조절은 단지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주일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무리가 가득한 시절, 우리는 언제라도 생명을 선택하며 생명의 길에 서야 합니다. 생명을 찾는 마음이 가득한 주일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기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주님, 우리가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길을 헤멜 때에도 지켜보시며, 결국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스스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찾으심을 우리가 신뢰하게 하시며, 우리도 주님을 찾고 만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빈자리 있습니다(황푸하) / 나의 영원하신 기업(찬 435)

시편 51편 1-10절

1 하나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베푸시어 내 반역죄를 없애 주십시오.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나의 반역을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판결은 옳으시며 주님의 심판은 정당합니다. 5 실로, 나는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6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주십시오. 내가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씻어 주십시오.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입니다. 8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주님께서 꺾으신 뼈들도, 기뻐하며 춤출 것입니다. 9 주님의 눈을 내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10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말씀

출애굽기 32장 7-14절

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9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 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님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4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니, 주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주님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다.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12 나는 나에게 능력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4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이 말씀은 믿음직하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씀입니다. 나는 죄인의 우두머리입니다.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심의 한 사례를 먼저 나에게서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17 영원하신 왕, 곧 없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누가복음 15장 1-10절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 다니지 않겠느냐? 5 찾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다."

8 "어떤 여자에게 드라크마 열 닢이 있는데, 그가 그 가운데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느냐? 9 그래서 찾으면,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습니다' 할 것이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찾는 이의 마음

어릴 적 엄마가 두부를 사 오라고 손에 1000원을 쥐여 주시면, 저는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어느새 손에 있던 돈을 잃어버렸던 거죠. 비가 오다가, 갠 날이면 우산을 학교에 두고 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내일은 꼭 우산을 챙겨서 집에 오리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을까요. 외식을 하고 식당에 두고 온 목도리, 어느새 주머니에서 빠진 장갑, 서늘한 아침에 입고 나갔다가 따뜻한 한낮에 벤치에 벗어 놓고 온 겉옷.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러 간 횟수가 얼마나 될까요. 돈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10원, 100원, 500원, 1000원, 5000 원, 만 원, 5만 원... 얼마부터 잃어버리면 찾으러 가시나요?

오늘 복음서 본문에는 '찾는 이'의 마음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이, 하루치 품삯을(드라크마) 찾는 이, 죄인을 찾는 이. 이야기는 단지 찾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함께 앉아 식사하며 잔치를 벌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6절, 이어지는 탕자 본문). 이 '찾는 이들의 비유'가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을 받아들이고 함께 식사한 것을 비판한 데에 대한 반응으로 말씀하신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인종과 성별과 계급을 넘어서는 받아들임은 누가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잃어버린 것들은 왜 '잃어버려지게' 되었을까요? 양이 너무 어려서 한눈을 팔았거나, 아니면 너무 늙어서 미처 따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전은 발이 달려서, 스스로 땅에 떨어진 건 아니겠지요? 잃어버려진 것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적어도 복음서에서는 무리를 잃은 이가, 찾음을 당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찾는 이의 마음이 중요했지요. 그리고 찾아서 데리고 오면, 무리에 남아있던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지갑 속 동전들의 환대가 필요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에서 이어지는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동생을 환대하지 않았지요.

새삼 제가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았던 목도리와 장갑과 겉옷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차 안 이곳저곳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100원짜리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러다 문득 홍수 속 가축들이 떠오릅니다. 애써 찾았지만, 결국 도축장으로 끌려간 가축들이지요. 홍수와 화재 속에서 주인은 애타게 가축을 찾기도 하지만, 그 마음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예수님의 마음과는 다릅니다. 속절없이 떠내려 가거나, 타 버리는 가축들이 생명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산과 돈이기 때문에 발을 동동 구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양들은 주인이 있는 재산이기는 했지만, 오늘날처럼 공장식 산업으로 오로지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생산된) 양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율법서에 생명이 피에 있기에 피를 먹지 말라는 건 생명을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광야 시대에는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모든 도축은 제사 때에만 허용되었습니다(레 17:3-4). 제사의 목적이 아닌 도살은 금지돼 있었습니다. 즉 개인적으로 고기를 잡아먹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도살은 제의적 행위이며, 공동체적 행위였습니다(화목제, 이 일을 예수님이 몸소 당하셨구요).

오늘 성서일과 네 개의 본문이 모두 죄인의 회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면, 과연 죄란 무엇일까요? 복음서 본문에서 그 의미를 찾아본다면 저는 '찾는 이가 찾으러 올 것이라는 믿음 없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리를 이탈한 양이 마주하는 죄는 점점 빛을 잃은 하늘과 사막의 추위, 늑대의 울음소리 속에서 자신은 죽게 될 거라고 포기하는 마음일 겁니다. 잃어버린 동전이 마주하는 죄는 지갑 속 동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채 집 안 어느 가구 밑에서 일평생 먼지와 엉켜 지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에 대해 모르는 무지이며, 그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마음입니다. 그 죄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두려움 속에 가둡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과 두려움, 죄와 관계없이 주인은 기어코 이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의 상태 때문이 아니라 주인의 사랑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우리도 이 주인인 양 행세하지는 맙시다. 소위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겠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하는 무례한 전도는 경계합시다. 저는 진짜 잃은 양을 찾아보려 합니다. 동물들 말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 동네에 뜬, 장에 갇혀 있는 개를 어떻게 하면 풀어 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스스로 '잃어버렸다 느끼는 이들'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임소연 / 숨탄것들의교회

적용 질문

- 주님이 당신을 찾고 계시나요? 아니면 이미 찾음을 당하셨나요?

- 당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주님이 찾아 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세속성자의 기도

강과 바다를 위한 기도

물을 만드신 하나님, 생명을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 물의 힘을 기억합니다.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이 거주지를 집어삼키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배를 뒤집을 수 있음을 기억합니다. 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의 취약함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물을 남용했습니다. 말라 가는 강과 뜨거워지는 바다에 쓰레기를 퍼부으며 물의 창조주를 무시하였습니다. 경고하시는 하나님, 이 땅의 인간들이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게 하소서. 강과 바다를 식민지 삼아 이뤄 온 성장을 종결시켜 주소서. 드넓은 바다 풍경의 경이로움에, 흐르는 강물에서 얻은 평화에 붙들린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을 꿈꿉니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려고 너나없이 애쓰는 세상을 꿈꿉니다. 영문도 모른 채 멸종되어 가는 수중 생물들을 돌봐 주소서.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을 기억하소서. 극심한 가뭄으로 식수와 생활용수가 끊겨 가는 강릉의 시민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비를 내려 주소서.

무기 없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합시다

자비와 평화의 주님, 오늘도 폭력의 사고가 그치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집과 도시가 무너지는 일들이 이어지고, 평온하던 일상 속에서도 총기 사고로 생명을 잃는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어떤 이들은 '무기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그것이 빼앗아 가는 생명의 무게를 생각하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님, 더 이상 철과 불로 만든 무기들이 사람을 위협하거나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게 지켜 주소서. 이사야의 비전처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날이 속히 오게 하소서. 우리 마음 속의 미움과 증오, 무엇보다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고, 참된 평화에 대한 갈망과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강자의 힘이 아니라, 약자를 돌보고 존중하는 자리에서 평화와 안전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하소서. 특별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평화를 살아 내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손에 붙들린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

전 세계의 이주민과 난민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그네의 보호자가 되신 주님, 여러 가지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땅에서 외로운 길을 걷는 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특별히 세계 곳곳에서 이주민과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존중받고, 새로운 사회 속에서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생계를 위해 국경을 건너는 이주 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전쟁과 가난, 기후 위기 때문에 고향을 떠난 난민들이 머무는 자리마다 평화와 보호를 누리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그네였고, 예수님도 난민이셨으며, 우리 모두가 이 땅의 거류민이자 순례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세계의 모든 사회와 공동체가 두려움과 배제를 넘어 환대와 연대를 선택하게 하시고, 이주민과 난민을 돕는 이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