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8:4-7, 시 113, 딤전 2:1-7, 눅 16:1-13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창조절 셋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의 집을 잘 가꾸고 보존하는 신앙과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본기도

창조의 하나님,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기반이 되시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지탱하시며 넉넉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고 크고 작은 욕심으로부터 지켜 주소서. 그래서 우리도 다른 이들과 넉넉히 나누고 베풀어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함께 다스리시고 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비 준비하시니(심형진) / 다 찬양하여라(찬 21)

시편 113편 1-9절

1 할렐루야. 주님의 종들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2 지금부터 영원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3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4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다. 5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 높은 곳에 계시지만 6 스스로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고, 7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셔서, 8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백성의 귀한 이들과 함께 앉게 하시고, 9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조차도 한 집에서 떳떳하게 살게 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말씀

아모스 8장 4-7절

4 빈궁한 사람들을 짓밟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을 망하게 하는 자들아, 이 말을 들어라! 5 기껏 한다는 말이,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 가짜 저울로 속이자. 6 헐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빈궁한 사람들을 사자. 찌꺼기 밀까지도 팔아먹자" 하는구나. 7 주님께서 야곱의 자랑을 걸고 맹세하신다. "그들이 한 일 그 어느 것도 내가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

디모데전서 2장 1-7절

1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 기도와 감사 기도를 드리라고 그대에게 권합니다. 2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3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며, 기쁘게 받으실 만한 일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6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대속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꼭 적절한 때에 그 증거를 주셨습니다. 7 나는 이것을 증언하도록 선포자와 사도로 임명을 받아 믿음과 진리로 이방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참말을 하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13절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청지기 하나를 두었다. 그는 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2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그 일을 볼 수 없네.' 3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낯이 부끄럽구나. 4 옳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아들이도록 조치해 놓아야지.'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그 사람이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7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였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말하기를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였다. 8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인들 내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 특히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세상에 상처를 남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쓰는 전력, 입는 옷, 먹는 음식, 손에 쥔 전자기기까지 그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정의롭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어렵사리 마련한 집이 누군가의 삶터를 밀어낸 자리일 수도 있고, 내 저축이 군수산업이나 환경 파괴의 자금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돈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크든 작든 우리 손에 쥔 재물에는 그림자가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의 증식은 쉽사리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아모스서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곡식을 비싸게 팔아 치우는 부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가짜 저울과 불공정한 거래로 사람들을 짓눌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저울을 속여 이익을 남기는 관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이 죄를 끝까지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속 안식일은 익숙하시겠지만, 초하루 축제는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초하루는 매달 첫날에 나팔을 불고 제사를 드리던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날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새 달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언어로 말하자면, 달력의 첫 장을 넘기며 마음을 고쳐 먹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당시 상류층은 의례를 지키는 체하면서 마음은 탐욕으로 굳어 있었고, 그 틈으로 불의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는 당시 불의한 사회의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유대 율법은 동족에게 이자를 금했지만, 현실에서는 현물 대출과 장부 처리로 우회했습니다. 청지기가 빚을 깎아 준 장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그중 유력한 설명은, 그가 주인의 과도한 이자 혹은 자신의 수수료 몫을 덜어 냈다는 것입니다. 기름은 100을 50으로(약 50%), 곡식은 100을 80으로(약 20%) 낮춘 것을 보면, 당시 현물 대출이 상당한 고금리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유 속 청지기는 분명 불의한 사람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고, 해고 통보를 받은 뒤에도 주인의 허락 없이 장부를 손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주인이 그를 칭찬한 이유는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재물을 관계로 전환'하는 영리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재물이 불의하게 축적되고 사용되는 현실을 모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재물이 불의하니 무조건 피하거나 거리를 두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관건은 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역설적 명령이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여기에는 두 층위의 실천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재물을 목적으로 삼지 말고 수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처럼 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본문의 마지막 구절과도 맞닿습니다. 둘째는 말 그대로 이 재물을 수단 삼아 '친구'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돈은 관계의 왜곡을 쉽게 만들어 냅니다. 돈을 주는 쪽은 권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때로는 사람 전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갑질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후원이나 원조처럼 값없이 주는 것들도 상대방에게 빚지는 마음을 갖게 해 동등한 관계를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신 '친구'는 일방성과 불균형을 깨뜨리는 이름입니다. 친구는 빚이 아니라, 서로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값없는 증여에서 비롯되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재물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돈을 매개로 사람을 조종하거나 혼자 잘난 듯 위세를 떠나는 일을 버리고, 재화를 인격적 만남의 수단으로 돌려놓으라는 권면입니다.

돈으로 자신의 구원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서로의 구원에 참여하게 하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공동의 풍요를 세우는 방식으로 사용할 때, 불의한 청지기는 비로소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구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운영 / 당인리교회

적용 질문

- 읽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한구절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껴졌나요?

- 내가 가진 재물이나 자원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왜곡하는 데 쓰인 적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또 반대로, 관계를 살리는 데에는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세속성자의 기도

창조절 기도 3 - 땅과 산을 위한 기도

땅의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오니, 고통받는 땅의 생태계를 살펴 주소서. 인류가 기억하지 못하는 먼 과거에도, 하나님께서는 흙에서 싹을 움트게 하시고 산에서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뭇 생명들이 땅의 소산을 먹고 한 시절을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질서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질서를 해쳐 왔습니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땅에 묻었고, 탐욕스럽게 나무들을 베었습니다. 땅의 열매를 거저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잊고, 지켜야 할 본분을 저버린 우리를 용서하여 주소서. 나날이 무너져 가는 생태계를 인간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게 하소서. 극심한 가뭄으로, 참혹한 산불로,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생명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모든 존재들의 고통을 기억하시고, 잿더미 위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을 지켜 주소서.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는 가자지구를 구원하소서

구원의 주님, 집단 학살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폭격과 학살, 봉쇄가 오래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깡패짓을 누구도 말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만행을 지켜보는데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고, 가자지구의 시민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 속히 폭력을 멈추어 주시고 봉쇄를 풀어 주소서. 굶주린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안전한 거처를 다시 허락하소서. 주님께서는 악인들의 무력에 이 세계를 내주지 않으시고, 지금도 평화로 이 땅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온 세계에 드러내소서. 죽어가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소서. 우리도 멀리서나마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며 기도를 보태겠습니다. 주님 더 이상 지체 마시고 가자지구를 속히 구원하소서.

각 교단의 총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한국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 부끄럽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기보다 실망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정의를 따르기보다 힘과 이익을 좇아왔고,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보다 분열과 혐오를 키워 왔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고쳐야 할 일들,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애써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다음 주 진행될 몇몇 교단 총회가 그런 성찰과 갱신의 시작이 되게 하소서. 모인 이들이 각자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교회의 미래를 책임 있게 고민하는 진정성을 보이게 하소서. 특히 이 시대가 주목하고 있는 중요한 안건들을 하나님의 뜻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예수를 머리로 삼은 참된 교회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지 함께 묻고 길을 찾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더 이상 추락하지 않고, 중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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