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행 11:1-18, 시 148, 계 21:1-6, 요 13:31-35
|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
교회력으로는 부활절 다섯째 주이자, 사회력으로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5·17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 겹쳐 있습니다. 부활의 빛 아래, 기억과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본기도 |
사랑이신 주님,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살림하시며, 사랑으로 구원하셨고, 사랑으로 이 세계를 새롭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새 계명에 순종하여 서로 사랑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양 |
다 찬양하여라(찬 21장) / 사랑이 이기네
시편 148편 1-14절
1 할렐루야.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2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빛나는 별들아,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5 너희가 주님의 명을 따라서 창조되었으니, 너희는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6 너희가 앉을 영원한 자리를 정하여 주시고, 지켜야 할 법칙을 주셨다. 7 온 땅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바다의 괴물들과 바다의 심연아, 8 불과 우박, 눈과 서리, 그분이 명하신 대로 따르는 세찬 바람아, 9 모든 산과 언덕들, 모든 과일나무와 백향목들아, 10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 기어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새들아, 11 세상의 모든 임금과 백성들, 세상의 모든 고관과 재판관들아, 12 총각과 처녀, 노인과 아이들아, 13 모두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만이 홀로 높고 높다. 그 위엄이 땅과 하늘에 가득하다. 14 주님이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셨으니, 찬양은 주님의 모든 성도들과,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드려야 할 일이다. 할렐루야.
| 말씀 |
사도행전 11장 1-18절
1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이,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3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 하고 그를 나무랐다. 4 이에 베드로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5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황홀경 가운데서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에서 드리워져 내려서 내 앞에까지 왔습니다. 6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 위의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7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내게 들려왔습니다. 8 그래서 나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된 것이나, 정결하지 않은 것을 먹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두 번째로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10 이런 일이 세 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모든 것은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 때에 사람들 셋이 우리가 묵고 있는 집에 도착하였는데,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내게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12 성령이 내게,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13 그 사람은, 자기가 천사를 본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었습니다. 곧 천사가 그의 집에 와서 서더니, 그에게 말하기를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14 그가 네게 너와 네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말씀을 일러줄 것이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15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 성령이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시던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 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18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고 말하였다.
요한계시록 21장 1-6절
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6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요한복음 13장 31-35절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32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33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글을 썼던 성서의 저자들은 어떤 이야기를 기록할지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서에서 동일한 사건이 두 번 기록되었다면, 이는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적인 강조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이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걸쳐 반복된 고넬료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복음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확장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사건은 초기 교회 정체성과 사명의 방향을 뒤바꾸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환의 과정은 순조로웠을까요? 아니오. 절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혐오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방인과의 만남은 기존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도전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유대인이 지켰던 음식 규례와 이방인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무엇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엄격하게 구별했고,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강한 혐오를 느끼도록 사회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혐오하는 음식을 이방인이 먹으니, 그들 또한 자연스레 혐오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혐오는 어릴 적부터 학습되고 전수되는 믿음이었고,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감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혐오가 단지 문화적 관습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체화한 혐오를 곧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고, 이는 곧 신앙의 이름으로 혐오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하나님도 베드로의 믿음을 돌리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위한 맞춤형 환상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주신 후에야 베드로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합니다.
베드로는 마지못해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지만,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을 이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줄 수 있는 동료를 6명이나 대동하고서야 고넬료의 집으로 들어가지요. 그리고 비로소 성사된 고넬료와의 만남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혐오하던 이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이 임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이후 베드로의 신앙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베드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이 한 문장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침묵을 이끌었고, 결국 그들의 사고를 전환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뜻이란 바로 혐오를 넘어서는 사랑이었습니다. 만약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방인 혐오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당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소수자에게 가지는 감정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방인에게 가졌던 감정은 과연 다른가요? 정말 그 감정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학습한 혐오의 결과일까요?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 말씀 앞에서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장운영 / 당인리교회
| 적용 질문 |
- 읽은 말씀에서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새겨진 한 구절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껴졌나요?
- 베드로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신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돌아봅시다. 지금 내 마음속에 우리가 넘어서야 할 '혐오'는 없습니까?
| 세속성자의 기도 |
부활의 능력이 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기도합시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하오니,
우리 가운데 새 힘을 불어넣으소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내쫓으시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두려움을 걷어 내소서. 부활의 능력을 거슬러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는 힘들을 우리가 겁내지 않게 하시며, 부활의 증거이신 성령을 따라 더 사랑하는 쪽으로 주저없이 나아가게 하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 약속하신 주님. 작금의 한국 사회가 성찰하고 돌이켜 회개해야 할 것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더 많이 가진 자들의 안일함과 무지가 동료 시민들의 생명을 빼앗고 사회 곳곳의 생명력을 꺼뜨렸던 역사를 돌아봅니다. 시류에 휩쓸려 과거를 답습하지 않게 하시며,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불평등한 구조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위중하고 다급한 때일수록 정치권과 시민들, 그리스도인들이 정의와 평화를 향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5·18 민주화운동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정의와 평화,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우리가 기도하오니,
오늘 민주주의를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가 45년 전 광주를 잊지 않게 하소서. 푸르른 5월이지만, 그날 광주는 짙은 회색이었고 잔인한 폭력과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스러져 간 시민과 그 이전과 이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신원하소서. 여전히 떠도는, 아니 갈수록 잔혹해지는 역사에 대한 왜곡과 악의적인 폄훼가 사라지게 하시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이 진심으로 참회하며 진실을 드러내게 하소서. 다시 맞은 이 5월에 함께 기도합니다. 비극을 넘어 부활의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폭력을 넘어 정의와 평화에 이르게 하소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회,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맨 앞에 놓이는 사회, 누구도 억울한 죽임을 당하지 않는 사회, 그 누구의 죽음도 쉬이 잊히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하소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지 우리에게 알려 주세요. 우리를 할퀴는 수많은 말들을 덮고도 남는 당신의 한없는 사랑을 우리가 잊지 않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깜빡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그를 홀로 두지 말아 주세요. 어두운 밤 내내 그의 곁에서 당신의 사랑을 속삭여 주세요.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힘입어, 비 오는 날엔 빗속에서 노래하게 하시고, 맑은 날엔 무지개 아래에서 왈츠를 추게 해 주세요. 후렴에는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하시고, 박자에 몸을 맡길 때면 서로의 발을 밟지 않을 수 있도록 살펴 주세요. 우리가 사는 동안 오래오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하나님 내내 반주해 주세요. 하나님, 한국교회가 우리의 춤에 손뼉을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눈치를 챙기라고 살짝 귓속말을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