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드러날 교회의 본질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보잘것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예수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사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귀 뒤를 따라가던 제자들 모습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과 권력에 들뜬 제자들. 같은 길을 걸었지만 목적은 달랐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길을 함께 걸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얼마 전, 상당히 영향력 있는 목회 관련 잡지에 실린 두 분 목사님 글을 읽었습니다. 두 분 다 초대형 교회를 담임하는 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절망스러웠습니다. 사용한 단어들은 분명 신앙의 언어였지만, 단어들 뒤로 보이는 모습은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글의 주제는 예수님을 따르자는 것인데, 권력을 탐하는 교회 모습이 행간마다 절절히 배여 있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그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희망이 있을까. 속이 상한 채로 집에 가다가 매일 마주치는 교회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밝은 불이 켜져 있는 커다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원의 상징인 동시에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 아버지에게서 외면받은 가장 외로운 그곳. 그 십자가를 우리는 거대하고 빛나는 십자가로 변질시켰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신 방식은 예루살렘 권력이 아닌 처절한 고통의 십자가라는 진실이 저 빛나는 커다란 십자가 뒤로 감추어졌습니다.
전광훈 씨와 그를 추종하는 일부 교인이 한국교회를 욕보이고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의 핵심은 교회가 정치·경제 권력을 획득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 아닐까요. 권력 욕구는 아무리 화려한 신앙 언어로 포장한들, 하나님 이름을 욕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전광훈 씨가 거칠어서 그렇지 그가 말하는 내용은 다 옳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의교회 부목사라는 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런 주장을 하시더군요. 메시지가 옳으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정통 대형 교회 목사나 장로 중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전광훈'으로 표면화한 문제는 일부 극단적인 자들의 일탈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전반에 펴져 있는 문제입니다. 전광훈 씨의 막말이 문제라고요? 그 내용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거의 망상에 가까운 주장을 옹호하는 일부 주류 개신교와 전광훈은 한 쌍입니다. 전광훈을 통해 드러난 것은 한국교회 민낯일 뿐입니다.
대면 예배가 목숨과 같으니 이해해 달라는 교회의 모습에 사람들은 냉소를 보냅니다. 교회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세상도 압니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걸요. 한국교회를 향해 도대체 이웃 사랑은 무엇인지 세상이 묻고 있습니다. 비상식적이고 망상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이거나 특정 집단을 배제하며 힘을 과시하는 교회가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어두움을 밝혀내는 교회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교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으리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철 지난 이데올로기나 특정 집단에 반대하는 것으로 교회의 동력을 유지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이웃과의 소통과 사회를 향한 공감 능력이 '좋은 교회'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라는 말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교회가 위기에 빠진 적은 없습니다. 교회가 아닌 것들의 위기일 뿐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역설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초대형 교회 목사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역사적으로 전염병 이후에 교회 부흥이 왔다고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 아닌 것들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고, 교회의 본질인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고대하는 부흥입니다. 다행히 우리 곁에는 그런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올해로 <뉴스앤조이>는 창간 20년을 맞았습니다. 20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개혁 운동의 결과가 이것이냐는 비판도 듣습니다. 지치기도 합니다. 열정은 떨어지고 재정은 고갈되는 정말 어려운 시기입니다. 다시 질문해 봅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믿음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함께 걸을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도 분투할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아닙니까. 분명 변화는 오고 있습니다. 이미 새로운 교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도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더 유심히, 민감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향한 기대와 열정을 잃지 마시고 함께 세워 가길 소망합니다.
강도현 대표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