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올 한 해도 한국교회에는 '반동성애'로 사상을 검증하고 이에 굴복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낙인·공격이 이어졌다. 수년 전부터 보수 교계와 반동성애 집단 인사들이 외쳐 온 주장들이 각 교단과 신학교에 제도로 정착됐고, 이것이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 해였다. 교회 지도자들은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동성애 찬반 여부를 물어 검증했고, 조금이라도 성소수자 인권 활동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낙인찍어 사역지를 잃게 만들거나 추방했다. 

올해 2월, 서울장신대학교(황해국 총장)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려던 학생 A는 '동성애자 판명 시 퇴학'이라고 적힌 서약서 때문에 입학을 포기했다. 서울장신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의식 총회장) 총회 결의라며 서약서 제출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A는 '적발 시 퇴학'은 물론이고 부모에게까지 보증을 서라고 하는 이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원을 철회했다. A는 "이렇게까지 비인도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며 한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여성 목회를 하겠다는 꿈도 접겠다고 했다.

같은 시기 총신대학교(박성규 총장)는 성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에 가입한 학생 6명을 모조리 색출해 징계했다. 학생들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모임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특별 지도'라는 이름으로 반동성애 단체가 주관하는 교육을 이수해야만 했다. 총신대는 군 복무 중이던 한 학생이 복학하기를 기다린 후, 올해 12월 추가로 그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이 학생은 졸업을 위한 모든 요건을 갖추고 내년 2월 졸업할 예정이었으나, 징계로 졸업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는 과정에서도 사상 검증에 직면해야 했다. 2018년 장로회신학대학교(김운용 총장)에서 '무지개 행동'으로 징계를 받았던 김지만 전도사는, 올해 6월 목사 고시에서 탈락했다. 목사 고시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김 전도사에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했는지 아느냐"는 등 질문을 던졌다. 양심을 거스를 수 없었던 김 전도사는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답을 유도하는 심사위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불합격했다.

장신대 무지개 행동의 또 다른 당사자인 서총명 전도사도 올해 12월, 약 1년간 사역했던 교회에서 사임했다. 반동성애 진영 한 목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서 전도사의 신상과, 그가 사역하는 예장통합 소속 교회의 이름과 전화번호, 교회의 담임목사와 원로목사 이름까지 올리는 등 '좌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를 어떻게 전도사로 둘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서 전도사는 교회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사임을 선택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에서는 목사가 쫓겨났다. 경기연회는 12월 8일,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출교'했다.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숱한 절차적 하자와 고발인들에게 편향됐다는 지적에도 개의치 않았다. 목사직만 박탈하는 면직이 아니라, '더 이상 감리회 신자 자격조차 없다'는 출교를 선고했다. 12월 18일 이동환 목사 출교 선고 규탄 기자회견에 참가한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출교당한 이들로부터 시작했던 개신교가 이제 어느새 주류가 되어 누군가를 재판하여 출교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한국 개신교가 부패했던 중세 가톨릭의 모습을 답습하는 사이, 가톨릭은 성소수자 문제에 더디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 냈다. 이동환 목사 출교 선고 후 열흘이 지난 12월 18일, 교황청이 동성 커플의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Dicastery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은 가톨릭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을 발표했다. 신앙교리성은 가톨릭 교리를 증진·보전하는 '교리부'와 사법 기능을 하는 '규율부'로 구성된 교황청 내 핵심 부서다.

10쪽 분량 문서에는, 하느님은 모든 이를 환영한다며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을 축복할 수 있다고 나온다. 또 "교회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영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면서 "사제는 축복을 받아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모든 상황에 처한 이에게 교회가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아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교황청은 동성 커플 축복이 혼인 성사나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그럼에도 교리에 갇혀 동성 커플의 축복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교회는 특정 교리나 규율에 고정된 채 사목적 실천을 해서는 안 된다. 축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 완전성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톨릭 내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초기부터 성소수자 문제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를 시사해 왔다. 교황은 올해 1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며, 하느님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우리 각자가 존엄을 위해 싸우는 힘을 사랑한다"면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들이 법안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7월 11일에는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는지' 질의에 대해, 혼인 성사와 혼동되지 않는다면 연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인 혼인관을 고수하고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 왔기에, 교황청의 이번 결정은 의미 있는 한 걸음으로 평가받는다. 가톨릭 앨라이 단체 아르쿠스 이전수 공동대표는 12월 2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문서를 보고 (교황청이)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에서도 성소수자 이슈는 국가나 문화에 따라 시각이 다양하다. (교황청이) 반대파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면서도 축복을 허용할 수 있게 기술적으로 조절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성 혼인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은 아쉽지만, 가톨릭교회가 변화를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감리회의 뿌리인 영국성공회에서도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유의미한 변화가 이어졌다. 영국성공회는 동성혼을 법제화한 영국 사회 내에서도 여전히 동성 결혼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올해 2월 총회에서 찬성 250표, 반대 181표, 기권 10표로 동성 커플에게 축복기도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년간 '사랑과 믿음 안에서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토론해 온 결과였다. 11월 15일 열린 총회에서는 축복기도뿐 아니라 동성 커플을 위한 축복 예배를 시험적으로 시행하는 안도 통과됐다.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출교하는 등 퇴행하는 사이, 가톨릭은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18일 가톨릭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동성애 문제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 온 가톨릭교회였기에, 느리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 출처 Pope Francis 인스타그램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를 축복한 목사를 출교하는 등 퇴행하는 사이, 가톨릭은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18일 가톨릭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동안 동성애 문제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 온 가톨릭교회였기에, 느리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 출처 Pope Francis 인스타그램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자캐오 신부는 12월 26일 <뉴스앤조이>와 만나 "가톨릭과 성공회의 결정은 세계 그리스도교 스펙트럼 안에서 보면 이미 성소수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교단·교파들을 이제야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공동체마다 전통과 맥락이 있기 때문에 응원할 만한 일"이라면서 "두 곳 모두 제도의 급변이 가져오는 여러 부작용과 극단적인 갈등을 우려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동행할 것인지 고민하며 사회와 계속 발맞춰 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환대 목회로 출교당한 이동환 목사는 교황청의 동성 커플 축복 승인을 두고 "부럽고 속상하다"고 했다. 그는 27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가톨릭은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시작한 개신교는 오히려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들을 발본색원해 출교하겠다는 등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성소수자와 더불어서 사역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있는 분들까지 위축되고, 나와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오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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