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서총명(32)은 12월 5일 사역하던 ㄱ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를 사임했다. 표면적으로는 '사임'이지만 반강제적인 일이었다. 반동성애 진영 한 목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서총명을 저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총명이 '무지개신학교' 굿즈를 판매한다며, 이름과 사진, 소셜미디어 주소 등은 물론, 일하던 교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담임목사 및 원로목사 이름과 사진까지 게재했다.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일자리까지 빼앗는 반동성애 세력의 비열한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서총명은 일명 '무지개 행동' 당사자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니던 2018년,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아이다호데이)을 맞아 또래들과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정학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후 소송을 통해 징계는 무효가 됐고 학교로부터 손해배상금까지 받아 냈지만, '무지개 행동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스스로도 이력서를 쓸 때 징계 사실을 넣어야 하는지 아닌지 고민하게 됐다. 징계당한 지 5년 반이 지난 지금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역 교회에서 사역하고 싶었다. 그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내에 '안전한 교회'가 몇 개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적었고 그곳을 혼자만 꿰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보통의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뿐 아니라 함께 징계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뒤이어 나올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지역 교회에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 공식처럼 굳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바꿔 말해, 보통의 교회에서 버티지 못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이 교단 안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ㄱ교회 고등부는 그렇게 구한 사역지였다. 학교 홈페이지에 구인 공고가 올라오면 거의 모든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담임목사가 자신의 징계 사실을 알고도 뽑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근 1년간 사역하면서 서총명이 학교에서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이나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가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역은 즐거웠다. 갑작스러운 사임 소식에 고등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이 보낸 아쉬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면 그의 사역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서총명은 반동성애 목사의 공격이 시작된 날 바로 사임을 결정했다. 그래도 자신에게 사역할 기회를 준 교회인데, 혼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반동성애 인사가 소셜미디어에 교회 이름과 전화번호, 담임목사 및 원로목사 이름·사진까지 게재했다는 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서총명을 쫓아내지 않으면 곤란을 겪게 될 것이라는. 반동성애 진영의 저열함과 악랄함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서총명은 ㄱ교회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빠르게 사임을 결정했다.

서총명 전도사를 12월 20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총명 전도사를 12월 20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왜 아무도 막지 못하는가

어쩌면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을지도, 아니 늘 마음 한 켠에 불안을 여미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서총명은 그렇다고 무지개신학교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동성애 반대에 눈이 뒤집힌 이들에게는 서총명이 뭐 하나 덜 하고 더 한들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물어뜯을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이다. 언젠가는 공격했을 것이고 그것이 그날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연말 교역자들의 인사이동 시즌에 터트려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서총명은 반동성애 진영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런 인간들이니까. 이미 알려진 반동성애 진영의 악랄함을 한 번 더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불의의 공격을 당했지만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생각보다 그리 깊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가 아쉬웠던 지점은 오히려 '우리 편'에 있었다. '에큐메니컬'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 특히 예장통합 교단의 선배 목회자들에 대한 것이다. 이전부터 고민은 많았지만 오래 삼켜 온 이야기다.

강제로 사임을 선택하며 서총명은 생각했다. 몇 년 전, 함께 징계받은 친구 세찬이는 목사 고시에 합격하고도 교단에서 불허해 목사가 되지 못했다. 올해 여름, 역시 함께 징계받은 지만이는 목사 고시 면접 자리에서 '동성애 찬반' 질문을 받고 결국 불합격했다. 성소수자와 관련해서는 매년 더 높은 담을 쌓는 교단 상황을 알고 있다면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도 막지 못했다. 잔뼈 굵다는 에큐메니컬 진영 목사들은 일이 다 벌어진 후 위로와 응원을 보낼 뿐이었다. 위로와 응원은 고마운 일이나 늘 뒷맛은 썼다. '왜 이 예견된 상황을 아무도 막지 못하는가.'

선배들은 서총명에게 '버티라' 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어찌 버텨 봤지만 교단의 토양은 더욱 척박해질 뿐이었다. 알고 있다. 신학적 정당성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걸. 그러나 그 신학의 언어들은 어디에 심겨 어디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이제 예장통합이라는 토양에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것 같다. '에큐메니컬'이라는 이름은 땅에 심기지 못하고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실체가 불분명한 어떤 것이 돼 버린 듯했다. 서총명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없는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버티라는 것인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마침 상영 중인 영화 '서울의 봄'은 서총명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의 생각에 '서울의 봄'을 본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전두환 신군부의 악함뿐 아니라 명분과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들을 막지 못한 반대 세력의 무능함 때문이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진영 선배 목회자들을 무능하다 치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작금의 현실에서는 작은 희망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장통합 총회에서는 수년간 계속해서 반동성애 관련 법들이 만들어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장통합 총회에서는 수년간 계속해서 반동성애 관련 법들이 만들어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다른 교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서총명은 4년 전, 한동대학교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가 징계를 받은 학생과 함께 간담회를 열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서총명은 말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서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서도 일어날 거라고. 4년이 지난 지금 감리회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연회에서 출교를 당했다. 이제 감리회에서는 성소수자 환대를 이야기하는 목사는 쫓겨나고, 예장통합에서는 아예 목사조차 되지 못한다. 

서총명이 뛰어나서 미래 일을 예견한 게 아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아무도 막지 못했을까. 정말 막지 못할 일이었을까. 에큐메니컬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교단이 나아가는 방향에 문제의식을 가진 목사들에게는 어떤 전략이 있었을까. 교단 총회에서는 왜 매년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법만 강화했을까. 왜 총회 석상에서는 반대하는 발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긴 법안들이 몇 년 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은 하고 있을까. 그것을 막을 전략이 있기는 했던 걸까.

교단 정치의 권한이 있는 목사들은 정치를 해야 한다고 서총명은 생각했다. 학생들은 권한이 없기에 운동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젊은 목회자들이 밖에서 외치면, 권한이 있는 목사들은 안에서 바꿔 내야 했다. 서총명과 동료들이 징계를 당했을 때, 징계가 무효가 돼도 목사가 되는 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선배 목사들은 학교 총장과 이사들을 만나고, 총회 신학교육부와 고시부에 찾아가 설득해 줬어야 했다. 이동환 목사가 쫓겨날 때 선배 목사들은 재판위원들을 만나 설득했어야 했다. 동료 목사들을 어르고 달래더라도 공론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자신을 구제해 달라는 게 아니다. 운동 방식과 전략에 대한 이야기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서총명도 알고 있다. 이런 방식이 정답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는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 확신한다. 서총명이 보기에 지금 에큐메니컬 진영의 운동 방식은 '예수 만들기'다. 피해자가 나오면 그 뒤에 선다. 피해자가 버티지 못하면 사람들도 사라진다. 그러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또 그 뒤에 선다. 그 결과가 작금의 한국교회다. 서총명은 피해자는 결코 예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피해자가 버티려면 최소한의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도 원래 피해자는 생기면 안 되는 것이다. 

뒤에 선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 기대를 뒤로 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피해자는 뭔가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서총명은 지금 멈춰 서기로 결정했다. 보통의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반동성애 진영의 공격으로 낙오했고, 더욱 황폐해진 에큐메니컬의 생태계를 보고 있다. 사역을 계속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이것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인지 정말로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앞길을 도둑맞은 듯한 삶에서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서총명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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