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12월 21일 안산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12월 21일 안산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세월호 가족들이 생명안전공원 착공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열 번째 성탄절을 맞았다. 세월호 가족들의 가장 큰 염원 중 하나는 전국에 흩어진 아이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희생자들을 기억·추모하기 위한 생명안전공원 건립이었지만, 몇 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참사 10주기인 2024년 4월까지 완공 계획이었던 생명안전공원은 기획재정부 예산 문제로 10주기에 맞춰 착공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12월 21일 안산 4·16가족협의회 강당에서 성탄 예배를 열었다. 아기 예수가 마굿간 말구유에 누였듯 아이들이 누일 생명안전공원이 하루빨리 건립되길 염원하고, 동시에 또 다른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초청해 위로했다. 예배에 모인 세월호·이태원 유가족들과 그리스도인 140여 명은 생명안전공원이 하루속히 착공되고,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제정돼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뤄지도록 기도했다.

호성 엄마 정부자 씨가 지지부진한 생명안전공원 건립 상황을 설명했다. "11월 23일 예산 중간 보고가 나왔는데, '진실의 방'과 소공연장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하더라. 또 가족들이 아이들을 만나러 오면 상도 차리고 가족들끼리 이야기도 나누려 한 공간과 카페도 규모를 축소하라고 했다. 전체 예산 513억 원에서 11억 원이 삭감됐다. 뿐만 아니라 위원회 심의 절차도 거쳐야 하는데, 그 위원회는 내년 4월에야 구성된다. 그조차 총선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호성 엄마는 "그럼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빛이 세게 내리쬐나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예배한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더 외치고 기도하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있고 친구들이 살았던 이곳에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호성 엄마는 생명안전공원이 오는 2024년 4월 내에 착공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호성 엄마는 생명안전공원이 오는 2024년 4월 내에 착공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은 별이 된 아이들과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했다. 매번 예배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 왔지만, 이번 성탄 예배에서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담았다.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정경일 박사는 "그동안 생명안전공원 예배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떤 아이들의 삶과 꿈은 과거형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 성탄 예배에서는 모두 현재형으로 바꿨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지금 여기 성탄 예배에 초대하자"고 말했다. 

민지 아빠, 정원 엄마, 은지 아빠, 웅기 엄마, 창현 아빠, 순범 엄마, 수인 엄마, 주현 엄마, 은정 엄마, 지혜 엄마와 각 교회·단체에서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별이 된 아이들 250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부천에서 온 조현주 씨가 교사·일반인·선원 희생자 11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참가자들은 이들의 찬란했던 삶과 꿈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쳐 내는 이들도 있었다.

이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이 호명됐다. 세월호 가족들이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아들딸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이었다. 지성 엄마와 창현 엄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읽어 내려갔다. 159명 중 유가족협의회에서 공개한 115명의 이름이 호명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또다시 눈물을 닦아 냈다. 

세월호 가족들은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아들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세월호 가족들은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아들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호성 엄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4·16 가족의 다짐과 호소' 시간, 단상에 오른 그는 '죄송하다'며 입을 뗐다.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호성 엄마는 이태원 가족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그동안 말을 걸지 못했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좀 더 현명하고 용기가 있었더라면,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만들지 않았을 텐데… 정말 미안합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우리 세월호 가족들이 힘이 많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냈는데, 진짜 진심으로 우리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랐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가다가 또 아들딸들이 희생되니까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진짜 미안합니다."

호성 엄마는 이태원 유가족들과 함께 가족들이 바라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끝까지 이뤄 내겠다고 했다. 그는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떠나 보낸 엄마 아빠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제발 이 아픔을 거둬 줬으면 좋겠다. 왜 자식 잃은 부모가 자식 잃은 부모에게 미안해서 말을 걸지 못하는 세상이 됐을까"라면서 "그래도 이게 엄마의 길이고 아빠의 길이면 걸어갈 것이다. 자식들이 엄마 아빠 살려 달라고 외쳤을 텐데 그거에 비하면 괜찮다. '제발 그만하라'는 귀찮은 눈빛을 받아도 우리는 끝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임종원 씨 아빠 임익철 씨와 김의진 씨 엄마 임현주 집사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연내 통과를 위해 국회 앞에서 24시간 철야 농성과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며,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임현주 집사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별가족'들은 매일 고통, 절규, 지옥 같은 삶 속에서 여전히 길거리로 나와서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부르짖고 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은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별들의 명예 회복을 이루기 위해 여야가 협력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사명이다. 사랑하는 별들이 당한 억울한 희생의 진실을 우리 별가족들은 반드시 규명할 것이다. 함께 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이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연대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이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연대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박득훈 목사(성서한국 사회선교사)는 하나님은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주신다며, 이들의 정의가 이뤄질 때 진정한 평화가 시작된다고 설교했다. 박 목사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 어두운 시대에 억압당하고 슬퍼도 어디 하소연할 데 없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평화라고 말하신다. 군사력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눌러 침묵시키는 평화는 가짜 평화다. 누울 자리가 없어서 마굿간의 말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에게서 정의와 평화가 시작된 것처럼, 이들의 정의가 시작될 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임할 것"이고 말했다. 

안산YMCA 강신하 이사는 "유가족들의 한 맺힌 절규는 풀리지 않고 있다.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혐오와 배제가 사라지고 사랑과 연대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 속히 오게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참가자들은 세월호·이태원 가족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참가자들이 적은 기억과 연대의 문구들. 뉴스앤조이 나수진
참가자들이 적은 기억과 연대의 문구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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