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일명 '애도 기간'은 끝났지만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애도와 연대의 기도회가 열렸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무지개신학교, 몇몇 신학자가 주최한 이 기도회는 11월 10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세례자 요한성당에서 열렸다. 50~60명이 앉을 만한 작은 예배당에 70여 명이 모여 문밖까지 사람들이 자리했다. 기도회는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기도회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참석해 연대의 말을 전했다. 박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 초기 '참사'나 '학살'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며 국가의 책임이 드러나 참사로 받아들이게 됐지만, 유가족에게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저희들이 보기에는 (이태원 사건도) 분명히 참사이지만, 유가족 앞에서는 모든 단어가 참으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은희 전도사는 정부가 희생자라는 말 대신 '사망자'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7일간의 '애도 기간'을 정하는 등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와 너무 닮은 정부의 대응에 소름이 끼친다"며 "참사 이후 신속해야 할 것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마음 단속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는 몇 번이나 울음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는 몇 번이나 울음을 억누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월호 참사 이후 아이는 정말 '이름'만 남게 됐다고 말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박 전도사는 "그래서 이름에는 아이의 전부가 담겨 있다. (중략) 그런데 정부는 영정 사진은커녕 이름도 없는 추모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저 156이라는 숫자로 참사를 기록하려 했다. 그렇게 156명은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찾아온 이들과 함께 울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국가가 정한 애도 기간이 끝난 이후에 이 기도회 모임을 가져 주신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너희는 끝을 냈으나, 너희는 지우려 했느나,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지워진 것을 생생하게 복원해 기억하겠다는 마음이 담긴 기도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매월 29일이라도 끝까지 기억하고 연대했으면 합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오든 오지 않든, 156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울고, 그들이 못다 한 말들을 우리라도 대신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도… 요즘 정말 많이 옅어졌거든요. 이제 잊힐까 봐 두렵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다시 한번 더 선명하게 소환해, 희생자들이 지워지거나 그때의 약속이 잊히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회는 정해진 예전에 따라 진행됐다. 중간 순서로 애도와 연대의 이야기 순서가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도회는 정해진 예전에 따라 진행됐다. 중간 순서로 애도와 연대의 이야기 순서가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무지개신학교 령진은 세월호 참사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학교와 가족조차도 애도하지 못하게 해 밤마다 기숙사에서 숨죽여 울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나는 슬프다. 나는 소리쳐 울고 싶다' 이 말을 하는 것이 나의 애도의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재빠른 애도의 종식이 아닌 애도와 함께 머무르기를 나는 택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회장 민김종훈(자캐오) 사제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희생자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섣부른 종교적·문화적·정치적 신념에 따라 가볍게 진단하고 무책임하게 해석하며 희생자들을 비난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신익상 교수 또한 너무 빨리 신학적 해석을 내리는 것을 경계하며,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기도회는 입장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은 다음 세 가지를 호소했다.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가 국가 시스템의 부실과 미비로 인한 참사임을 인정하고, 너무 늦지 않게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국인·외국인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가 모여 슬픔을 나누고, 참사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만남과 소통과 협의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지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이들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안전을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희생자와 피해자임을 분명히하며, 그 어떠한 피해자 혐오도 없도록 모두가 - 특히 언론이 - 애써야 할 것입니다.

참석자들은 "우리에게 애도의 정해진 시한은 없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어도 우리는 계속 애도할 것이다"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희생자를 애도하며 유가족, 생존 피해자와 연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입장문을 낭독하는 평화와신학 정경일, 무지개신학교 박자연,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민숙희(마가렛) 사제(사진 왼쪽부터). 사진 제공 민김종훈 사제  
입장문을 낭독하는 평화와신학 정경일, 무지개신학교 박자연,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민숙희(마가렛) 사제(사진 왼쪽부터). 사진 제공 민김종훈 사제  

국가 부재의 시대, 사회와 교회가 애도의 공동체입니다

살해된 나의 백성, 나의 딸을 생각하면서, 내가 낮이나 밤이나 울 수 있도록, 누가 나의 머리를 물로 채워 주고, 나의 두 눈을 눈물 샘이 되게 하여 주면 좋으련만! - 예레미야서 9장 1절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소년이, 2022년 10월 29일, 청년이 되어 이태원 참사를 겪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 스스로 위험을 느끼고 알리는 시민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부는 책임 있는 응답과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존재하고 정부 기능이 작동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습니다. 하지만 위험이 닥치는 순간마다 국가는 부재하고, 국민은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일터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전국이 '진도 앞 바다'이고 '이태원 골목'입니다. 희생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눈물로 애도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와 연대하고자 합니다.

참사 다음 날 오전에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7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정부는 애도의 시한만이 아니라 방식도 정해 강요했습니다. 관공서 조기 게양 및 공무원 검은 리본 패용을 '근조' 글씨 없는 리본이어야 한다는 상세 지침과 함께 하달했습니다. 정부가 설치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는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도 없습니다. 정부의 이와 같은 일사불란한 행태는 두 가지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는 '책임 회피'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기억'의 원천 봉쇄입니다.

참사 앞에서 국민은 물론 정부 관계자도 함께 슬퍼해야 하지만, 애도 중에도 정부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가족과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참사 관련 사실들과 증거들이 숨겨지거나 사라지기 전에 진상을 규명하고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슬픔의 시간에도 일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이며, 정부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입니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은 단지 또 한 명의 '추모객'이 아니라, 공감하는 정치인, 책임지는 행정가입니다. 156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 앞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태도를 보였다면, 참사 이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며 분노케 한 정부 주요 당국자들의 책임 회피 망언들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참사 이후 정부와 여당이 보인 행태는 그들의 의도가 기억의 통제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어느 여당 정치인은 국가 애도 기간 동안은 '추궁'하지 말고 '추모'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은 그저 슬퍼하기만 할 뿐, 분노하지도, 항의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한 추모 외의 모든 표현은 '불순한 추모'라며 국민을 겁박했습니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의 학습된 공포를 보여 줍니다. 그들은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와 시민이 공유하는 참사의 기억이 세월호 참사 때처럼 자신들에게 치명적 위기를 가져올 거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을 위협당하는 '국민의 위기'보다 책임 추궁을 당하는 '정부의 위기'가 더 중요할 뿐입니다.

정부가 '관제 애도'와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기억'만을 강요할 때, 시민은 '자발적 애도'와 '위험한 기억'의 공동체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언론의 기억 통제에도 희생자와 생존자의 기억이 조금씩 알려지고 공유되고 있습니다. 국가 시스템이 부재했던 그 밤,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했던 시민과 외국인이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심폐 소생술을 했고, 눈물을 흘리며 죽은 이들의 손을 모아 주었고, 몸을 가려 주었고, 취약해진 서로를 돌봤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책임 회피에 골몰하고 있을 때, 시민은 세월호 이후에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미안해했습니다. 이태원의 상인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따뜻한 밥 한 상을 차려 바치며 슬퍼했고, 추모의 꽃을 나눠 주었습니다. 슬픔으로 부서진 가슴의 사람들은 희생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라며 애도의 말을 적어 전했습니다. 국가 부재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연대하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숨 쉴 수 없는 시간에, 서로의 숨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애도와 연대의 공동체를 이뤄 가는 우리는, 정부와 언론과 시민사회에 호소합니다.

첫째,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가 국가 시스템의 부실과 미비로 인한 참사임을 인정하고, 너무 늦지 않게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둘째, 한국인·외국인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 피해자가 모여 슬픔을 나누고, 참사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만남과 소통과 협의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지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셋째, 참사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이들은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사람들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안전을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희생자와 피해자임을 분명히하며, 그 어떠한 피해자 혐오도 없도록 모두가 - 특히 언론이 -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애도의 정해진 시한은 없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어도 우리는 계속 애도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애도와 연대 방식은 다양할 것입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거리에서 정의를 외칠 것이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것이고, 아픔을 노래할 것이고, 비탄과 저항의 그림을 그릴 것이고, 애통한 가슴으로 시를 쓸 것이고, 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희생자를 애도하며 유가족, 생존 피해자와 연대할 것입니다. 하느님/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으로 갈아입히실 때까지(시편 30:10).

2022년 11월 10일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무지개신학교,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며 연대하는 신학자 모임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애도와 연대의 이야기 
-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박은희 님(유예은 님 어머니) -

며칠 전 있었던 4·16 생명 안전 공원 예배의 성서 본문은 창세기 4장 9~10절 가인의 아벨 살인 사건 부분이었습니다. 그 본문을 택한 이유는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 참사도 국가로 인한 살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014년 참사 직후만 해도 저는 일부 시민이 세월호 학살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그런 표현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학살은 살인인데, 아이가 그렇게 된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만약에 학살이 사실이라면 저희 아이가 가여워서 저는 도저히 그 억울함과 슬픔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드러나는 증거들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방해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외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참사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참사지만, 유가족 앞에서는 모든 단어들이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유가족에게, 희생된 가족은 아직도 생생하게 곁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불쑥 아무렇지도 않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볼 것 같기도 하고, 이 모든 상황이 꿈이고, 내일은 이전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유가족에게 '사망자'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식한 일입니까? 한 달이 되었습니까? 1년이 되었습니까? 8년이 지나도 생채기에서 피가 흐르는데, '7일간의 애도 기간'이라는 용어는 또 얼마나 경박합니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그들에게 심장이 있기는 합니까? 그 무식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기하듯 마음이 조여 오고 숨쉬기가 힘들었습니다.

참사 이후 신속해야 할 것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마음 단속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부끄러움도 모른 채 뻔 뻔한 변명과 억지 주장만을 늘어놓고, 심지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키지 못해 괴로워하는 가족 들을 수많은 조롱 속에 방치하는 2차 피해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구조를 위해 힘쓴 구조대원들과 시민들까지 희생양을 삼으려 합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너무 닮은 정부의 대응 방법에 소름이 끼칩니다.

참사 초기, 듣기에 가장 불편한 말이 '사망'이라는 말이었다면, 차마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이의 이름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예전 에는 뭔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잃고 보니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되었습니다. 정말 아이는 이름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에는 아이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태어나던 순간, 자라면서 기쁨을 주었던 순간, 사춘기를 지나며 어려웠던 순간, 조금은 성숙해져 자기 꿈을 향해 매순간을 소중하게 보냈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 직면했을 무섭고 혼란스러웠을 그 순간까지…. 아이의 이름 세 글자에는 이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지금도 온몸이 아픕니다. 그래도 아이의 못다 한 말을 하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걸고 아이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가 미처 울지 못한 것까지 울어 주고,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 궁금해하는 것, 밝히고 싶은 것, 다 대신해 주려고 합니다. 그들의 말은 이 시대의 선지자의 말과 같고, 어둠 속에서 길은 잃은 우리들을 향한 간절한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슬픔과 외침을 외면하고 잊는 순간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지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잠깐의 고통은 멎게 하지만 영원한 고통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 우리 모두가 같은 참사를 계속 반복하게 만들 겁니다. 아프지만 기억하고 함께해야 반복의 고리를 끊고 이 지옥 같은 궤도 밖으로 나가 더 멀리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2014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안산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합동 분향소가 있었습니다. 단원고 희생 학생과 희생 교사 그리고 일반인 일부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모여 있는 그 장소를 찾는 사람들은 분향소를 들어서는 순간, 참사가 사라진 304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304개의 우주라는 것을 깨닫고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고는 했습니다. 국가가, 우리 모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저절로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잘못이 없다는 걸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영정 사진은커녕 이름도 없는 추모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저 156의 숫자로 이 참사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156명은 스스로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 찾아온 이들과 함께 울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조용히 참사를 덮고 잊히게 하려는 가해자의 태도에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156명의 존재 자체를 아예 지워 자신들의 책임과 처벌도 지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주도 4·3기념관에 있는 백비처럼 이번 참사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유지되는 동안 분향소 밖에는 불교·천주교·개신교 등의 종교 부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가족이 찾아오건 찾아오지 않건 묵묵히 희생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특히 천주교 부스는 매일 기도회를 가졌고, 개신교 부스는 매주 두 번의 기도회와 예배를 분향소가 사라질 때까지 이어 갔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을 지키지 못한 신으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저도 전도사임에도 기도가 나오지 않는 시간을 아주 오래 가졌었습니다. 누군가 우리 아이를 기억해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비록 아직 신에게 성이 나 있지만, 내가 차마 부르지 못하는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그들이 잊히지 않게 붙들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국가가 정한 애도 기간이 끝난 이후에 이 기도회의 모임을 가져 주신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너희는 끝을 냈으나, 너희는 지우려 했으나,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지워진 것을 생생하게 복원해 기억하겠다는 마음이 담긴 기도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매월 29일이라도 끝까지 기억하고 연대했으면 합니다. 희생자 가족들이 오든 오지 않든, 156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울고, 그들이 못 다한 말들을 우리라도 대신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도… 요즘 정말 많이 옅어졌거든요. 이제 잊힐까 봐 두렵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다시 한번 더 선명하게 소환해, 희생자들이 지워지거나 그때의 약속이 잊히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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