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2014년 4월 16일, 부활절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순복음교회를 다니던 조미선 집사는 궁금했다. '부활절 직전 대한민국을 관통한 이 엄청나고 충격적인 사건 앞에 우리 목사님은 어떤 설교를 하실까.' 그날 들은 설교는 이랬다.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고 행동해야 한다. 분노하거나 애통하지 말고, 이 문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조용히 기도하라. 각자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니, 자기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라를 위해 중보하라. 무엇보다 이 일에 깊게 들어가지 마라. 우울증에 걸리고 사탄이 틈탈 수 있다."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은 세월호 참사를 어쩌다 일어난 사고로 축소하거나 당시 정부를 옹호하고 나섰고, 유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사회적 참사와 관련해 신앙인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포기할 수 없는 약속>(새물결플러스)에는 조미선 집사의 사례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를 겪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신앙의 변화를 겪었는지, 또 세월호 가족과 어떻게 연대해 왔는지 그 기록이 담겨 있다. 2015년부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예배해 온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의 기획으로, 그리스도인 50명이 글을 썼다.

<포기할 수 없는 약속> 첫 번째 북 토크가 5월 24일 경기 수원에서 열렸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성균관대역 앞 피켓 시위,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등 세월호 관련 활동을 이어 온 수원성교회(안광수 목사)가 공간을 내줬다. 단원고 희생자 문지성 양 어머니 안명미 씨를 비롯해, 남기업·임재옥·정승민·박은아·이선옥 씨 등 집필진 6명과 수원성교회 교인 40여 명이 참석했다.

5월 24일 수원성교회에서 <포기할 수 없는 약속> 북 토크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5월 24일 수원성교회에서 <포기할 수 없는 약속> 북 토크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수원성교회 집사인 남기업·박은아·이선옥 씨는 2015년 5월부터 성균관대역 앞에서 교인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피켓 시위를 벌여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박은아 씨는 참사 직후 교회의 무관심한 태도에 실망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마지막 주 열린 교회 '금요 기도회'는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 부활의 기쁨에 열중해 있었다. 그는 이때 신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경험했다고 했다.

그러던 2015년, 교회에서 피켓 시위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무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모으고 계시는구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 그는 교인들과 함께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희생된 아이들을 향한 죄책감과 슬픔으로 시작한 피켓 시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도 생겼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 더욱 지쳐 갔다. 피켓 시위를 기획한 이선옥 씨도 이 방식이 맞는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피켓 시위를 계속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씨는 "초기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욕을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그런데 한 해 두 해 가면서 우리도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갈수록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지더라.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계속 (피켓을) 드는 게 맞나', '언제까지 해야 하지', '이 방법이 최선일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하지만 잊혀지면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도 잊지 않고, 사람들도 잊지 않는 방법이 피켓 시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일마다 피켓을 드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아픈 이웃에게 동참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머릿속 생각만으로는, 단지 이해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음을 주일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느꼈다. 간혹 '우리가 그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하는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에 어느 정도 다가가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중략) 그럼에도 계속 피켓을 들었다. 유가족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이 행위는 힘들어하는 그들 곁에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나아가 말씀 속의 실천적 삶을 연결해 피케팅을 예배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마음도 들었다." (259쪽)

대안 학교 교사인 정승민 씨(안양제일교회)는 2016년 1월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는 소셜미디어에 매일 '세월호력'과 함께 기도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기도할게'라는 말이 오히려 무관심의 다른 표현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참사를 해석하려고 애쓰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기도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침마다 기도 제목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예은 어머니에게 취지를 말씀드렸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그때부터 '기독인 밴드에 기도 제목 올리기'가 시작되었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이 아니니 주님께서 막지 않으시면 중간에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이어 나갔다. 월요일에는 '진상 규명', 화요일에는 '나라와 교회', 수요일에는 '특별조사위원회', 목요일에는 '추모 사업', 금요일에는 '세월호 가족'으로 구분 지어 기도 제목을 아침마다 나누었다." (333쪽)

정 씨의 기도문 올리기는 어느덧 '3326일째'를 맞았다. 그는 "몇 년 하면 진상 규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 '언제까지 올려야 하나', '이게 과연 의미가 있겠나'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어느 날 날짜가 잘못됐다는 연락이 왔다. 관심을 갖고 보는 분이 계셨던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지만 그것이 힘이 되고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날 북 토크에는 교인 40여 명이 참석해 집필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북 토크에는 교인 40여 명이 참석해 집필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안명미 씨는 참사 이후 교회에 크게 실망했지만,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한테 화가 나서 매일 왜 그랬냐고 물었다. 3~4년은 기도를 일부러 안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살 수 있는 건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하나님한테 화났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녹아내렸다"고 말했다.

안 씨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계속 기억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작년 한 해 '번 아웃'이 와서 활동을 쉬었다. 집에 있으면 계속 잡생각이 나서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이 일 저 일 쫓아다니다 보니 다운이 되더라. 하물며 부모들도 그런데 계속 같이해 달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세월호의 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꺼지면 다시 피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문제가 언제, 얼마나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불이 안 꺼지게 잘 관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수원성교회 안광수 목사와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도 참여했다. 안 목사는 "세월호 유족들의 마음에 상처와 어려움을 준 교회가 많다. 한국교회 대표는 아니지만, 목회자로서 대신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사건을 대하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자꾸 정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드리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수원성교회 안광수 목사는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며, 교회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수원성교회 안광수 목사는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며, 교회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염 경제부지사는 "글을 보면서, 동시대에 같은 아픔을 겪은 학부모·이웃·선배로서 이 땅에 다시 이러한 비극이 없도록 행동하는 양심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동료 의식을 갖고 함께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책을 기획한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은 다른 지역에서도 북 토크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집사는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지만, 간접적인 인과관계는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있을 때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고, 완전한 진상 규명을 수없이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아무 입장 표명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바로잡지 않으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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