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보수 교계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에도 법 제정을 찬성하는 개신교인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김영주 원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 10명 중 4명(42.4%)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한다고 했다. 반대는 31.5%, 판단 유보는 26.1%였다. 1년 전 조사와 비교했을 때, 반대 응답이 6.7% 감소한 수치다.

기사연은 2월 25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2021 개신교인 인식 조사 통계 분석'을 발표했다. 전국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생태·통일·젠더·신앙 등 6개 분야를 물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1월 19~24일 온라인으로 조사했으며,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다. 김상덕 연구실장(기사연), 신익상 교수(성공회대)가 책임연구자로, 정경일 교수(성공회대), 송진순 교수(이화여대), 이민형 교수(성결대)가 연구자로 참여했다.

이날 차별금지법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정경일 교수는 반대층 감소가 찬성층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법 제정과 관련해 중립적 의견 그룹이 (2020년 조사 대비) 6.4% 증가했다. 이는 급진적 인식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차별금지법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에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부모 성씨 선택' 2명 중 1명 찬성했지만,
다양한 가족 형태 인식은 '보수적'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타성 여전
 

연구팀은 개신교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와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생각 등을 물었다. 조사 결과 개신교인들은 보수적인 가족관을 유지하고 있었고, 성소수자·무슬림 등에 대한 배타성도 여전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혼 동거'에 관한 개신교인의 입장은 찬성 36.7%, 반대 36.1%, 판단 유보 27.2%로 나타났다. '비혼 출산'에 대한 의견은 반대(53.4%)가 찬성(21.2%)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부성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부모의 성씨를 자유롭게 선택해 아이에게 부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2명 중 1명이 찬성했다.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이슬람 신자가 이웃으로 이사 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외국인 노동자 이웃에 대해서는 개신교인 37.5%가 '거리낌 없다', 28.1%가 '싫다'고 답했다. 동성애자와 이슬람 신자의 경우에는 부정 응답이 높았다. 동성애자 이웃의 경우 17.9%가 '거리낌 없다', 57.2%가 '싫다'고 했다. 이슬람 신자 이웃은 13.9%가 '거리낌 없다', 62.2%가 '싫다'로, 개신교인 과반수 이상이 동성애자와 무슬림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젠더 분야 조사 결과를 발표한 송진순 교수는 "오늘날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비혼·미혼·만혼·이혼·재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와 대안 가족이 출현하고 있지만, 개신교인들은 정상 가족 신화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왜곡된 법·제도로 누가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는지 돌아보고,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가족 느슨하게 연대하고 지원할 수 있는 인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교회가 '혐오의 진원지'라는 비판을 넘기 위해서는 취약 계층과 소수자·이방인을 섬기고, 이들과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신앙적·윤리적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 극복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핵 발전 장려 질문에는 의견 엇갈려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조사에서 개신교인들은 기후 위기 극복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했지만, 세부적인 방안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들은 주로 개인·정부보다 기업이 기후 위기 대응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고 봤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이 가장 부족한 분야'를 묻자, 기업 40.9%, 개인 25.6%, 정부 23%, 환경 시민단체 3.7%로 나타났다.

기후 위기 극복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석탄·석유·천연가스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발굴하고 장려해야 하는지'를 묻자, 에너지 전환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87%에 달했다. 하지만 '핵 발전을 장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찬성 36.2%, 반대 33.3%, 판단 유보 30.5%로 반대 의견 간 엇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도 자연과 인간을 동등한 권리 주체로 보는 관점은 24.4%에 그쳤다. 인간이 '청지기'로서 자연을 보존·관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64.5%로 가장 높게 나왔고, 인간에게는 자연을 정복하고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응답은 5%였다.

환경 분야를 조사 결과를 발표한 신익상 교수는 개신교인이 기후 위기 노력 주체로 기업을 꼽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설문 결과는 '절망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후 위기를 주제로 설문 조사를 할 때, 개념 자체만 제시하면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는 답변이 나오지만, 경제 관련 현안과 함께 논의될 때면 가장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번 설문에서도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가장 부족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분야로 기업을 꼽았지만, 동시에 기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태도가 나타났다. 즉 기후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신교인 정치 성향, 중도 > 진보 > 보수
1년 전 비교해 보수 감소, 진보 증가
 

이번 조사는 특히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책에 관한 개신교인의 인식을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개신교인의 정치 성향은 진보 30.4%, 중도 47.3%, 보수 22.3% 순으로 나타났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보수층에서 6.5%가, 진보층에서 1%가 중도 성향으로 이동했다. 2020년 조사에서는 진보 31.4%, 중도 39.8%, 보수 28.8%였다.

정경일 교수는 이 같은 결과가 보수 개신교인의 정치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진보 정권'으로 인식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보수 집단의 반감과 정권 교체 열망을 고려할 때 보수층이 감소한 결정적 요인을 찾을 수 없다며 "대선 정국으로 돌입하면서 나타난 보수 내부의 복잡한 균열, 코로나19 시기 보수의 대표를 자처한 '전광훈 집단'의 행태에 대한 사회적 반감 등으로 인한 보수의 자기 인식 및 표현의 다변화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개신교인은 대선 이후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1+2+3순위)로 '경제 분야'를 꼽았다. 부동산 안정(49.5%), 경제성장(42.1%), 일자리 창출(41%), 양극화 해소(26.5%)에 이어, 검찰 개혁(19.4%), 복지 강화(18.7%), 사회 통합(15.4%), 공정(14.6%), 언론 개혁(14.5%), 4차 산업혁명 준비(11.7%), 기후 위기(10.9%) 순이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택 공급 대책으로는 무주택자를 위해 장기 임대 공공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66.5%로 가장 높았다. 이어서 공공 부문 주도의 주택 공급 확대 57.8%, 도심 주요 지역의 주택 공급 활성화 39.4%,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 36.3% 순으로 나타났다.

기본 소득제 도입에 관한 의견을 묻는 항목에서는 찬성보다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왔다. 개신교인 43.3%가 반대, 34.7%가 찬성, 22%가 판단을 유보한다고 했다.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기보다, 선별 복지 정책인 '취약 계층 복지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신교인이 2배 더 많았다. 최근 화두가 된 주4일제 도입은 찬성 46.6%, 반대 35.3%, 유보 18.1%로 나왔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는 개신교인 10명 중 7명(70.5%)이 반대한다고 했다. 찬성 의견은 10.7%에 그쳤다.

정경일 교수는 "일반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경제성장이 국민 통합, 공정 사회, 경제 양극화 개선, 부정부패 청산 등의 과제를 압도하는 것처럼, 이번 개신교인 인식 조사에서도 경제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총평했다. 그는 "개신교 신자가 일반 시민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개신교인의 '신자성'과 '시민성'이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지만, 개신교인의 사회적 인식과 실천에서 사랑·희생·환대 등 개신교 신자의 윤리적 독특성이 부재하거나 부족하다는 사실은 종교의 사회적 의미를 되묻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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