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 사회는 개신교를 '보수 집단'으로 인식한다. 종교인 과세나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저항 등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동원하는 모습이 깊게 각인된 탓이다. 그런가 하면 세습과 성 추문 등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는 개신교가 변화하지 않고 폐쇄적이며 구시대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데 한몫한다. 교회를 향한 사회적 비판이 일 때마다 한쪽에서는 '일부' 교회의 만행일 뿐이라고 반박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에 의해 재현된' 개신교와 실제 개신교인들이 인식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지 비교하고, 개신교인들이 어떤 미디어를 통해 신앙·정치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지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김영주 원장)은 2020년 12월 18일부터 28일까지 전국 개신교인 성인 남녀 1000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하고, 4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기사연빌딩 이제홀에서 '2020 개신교인 미디어 활용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사연은 개신교인의 신앙·정치 성향이 미디어 활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미디어 활용에 따른 신앙·정치 의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겠다는 연구 목적을 세우고, 지앤컴리서치에 조사를 의뢰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수준이다.

 

'개신교인의 신앙·정치 성향 유형별 미디어 활용' 발표를 맡은 박진규 교수(서울여자대학교)는 설문자들의 신앙 성향과 정치 성향 응답을 토대로, 교인들이 어떤 경향을 나타내는지를 발표했다.

정치와 신앙 성향을 조사하기 위해, 기사연은 정치 성향을 △매우 보수적 △약간 보수적 △중도지만 보수에 가깝다 △중도지만 진보에 가깝다 △약간 진보적 △매우 진보적 등 6개 항목으로 나눠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신앙 성향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질문을 주고, 각각 4점 척도로 측정했다. △타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에 대한 동의 정도를 묻고 △성경에 관한 생각을 묻는 항목에서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으며 문자 그대로 믿고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 가까울수록 1점, "성경은 사람을 통해 기록되었으므로 당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해석해야 하고, 현재 상황에 맞춰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가까울수록 4점을 매기게 했다.

다만 이 구분은 설문 조사에 응한 이들의 자가 응답(self-report)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진규 교수는 "정치 성향의 경우 설문 조사 당시의 현실 정치 이슈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각 그룹의 일반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좋다. 실제로는 진보층의 비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먼저 신앙·정치 성향에서 모두 보수적이라고 응답한 A 그룹은 전체 응답자 중 1/3을 조금 넘긴 34.5%를 차지했다. 스스로를 정치적 보수로 규정함과 동시에,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가장 강하고 성경은 무오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개신교의 모습이 A 그룹 성향과 가장 유사하다고 말했다.

A 그룹의 연령별 구성을 보면 60대 이상이 33.3%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8.8%로 가장 적었다. 교회 직분별로는 목회자·중직자 그룹의 48.3%가 A 그룹에 해당했다.

이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은 언론의 개신교 보도 행태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A 그룹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응답은 85.1%로 다른 그룹보다 20~30%가량 높게 나타났다. 또,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49.8%가 기독교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를 이용한다고 했다. 주로 언급된 채널로는 '신의한수', '진성호방송' 등이 있었다. 박 교수는 이런 현상이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교수는 "A 그룹이 대변하는 세력은 한국 사회에서 신학적 보수성을 앞세우면서 정치적 보수 진영 목소리에 적극 동참한 개신교 집단으로, 2000년대 이후 미디어를 통해 구성된 개신교 이미지의 대세를 이룬다"고 말했다. A 그룹은 미국에서 1980년대 이후 집단 세력화해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미친 '복음주의 우파' 그룹과 유사하며, 이를 바탕으로 A 그룹을 '유사 근본주의 그룹'으로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신앙과 정치 성향 모두 진보라고 응답한 B 그룹은 응답자 중 19.4%로 나타났다. A 그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 그룹의 특징은 61.8%가 교회 내 아무 직분이 없다는 점이다. 반면 목회자·중직자에서는 B 그룹에 속한 이들이 10.7%에 불과했다.

미디어 이용 패턴에서는 정치 성향이 신앙 성향보다 더 많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A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신교를 향한 언론의 비판을 더 민감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B 그룹은 개신교 관련 언론 보도의 공정성에 대해서 53.3%만이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절반에 이르는 수치이지만, A 그룹의 '언론 보도가 불공정하다'는 응답 85.1%과는 약 30% 차이 나는 수치다.

박 교수는 신앙·정치 모두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B 그룹을 '확장된 자유주의 그룹'이라고 지칭했다. 이들은 한국 개신교 지형에서 한신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신학과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박 교수는 한국 개신교 내에 신앙·정치 측면에서 진보적 자의식을 지닌 사람이 20%나 된다는 것은 절대화하기 어렵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학적 자유주의와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소위 자유주의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진영의 확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앙적으로는 보수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로 분류한 C 그룹은 A 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8.5%를 차지했다. 대체로 타 종교의 진리 및 구원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스스로를 정치적 진보로 규정했다.

이 그룹은 40대(29.5%)와 50대(23.5%)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4단계로 구분하는 신앙 정도에서도 3단계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75%(3단계 34.9%, 4단계 40.7%)를 넘는다. 교회 직분별로 보면 목회자·중직자 32%, 서리집사 34%가 스스로를 C 그룹에 속한다고 인식했다.

박 교수는 이 그룹이 1980년대 독재 정권 당시 사회참여에 적극 나섰던 '복음주의 운동'과 1960~1970년대 미국 인종차별·전쟁 반대 시위에 나섰던 '복음주의 좌파'(evangelical left)와 유사한 성격을 띈다고 분석했다. C 그룹은 '복음주의 진보' 그룹이라고 명명했다.

박 교수는 "복음주의 진보 그룹은 한국 개신교에서 신앙적 보수성이 언제나 정치적 보수성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 내부의 갱신과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 이 그룹이 한국교회의 허리 역할을 맡아 주도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이 그룹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신앙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라고 응답한 D 그룹은 전체 17.6%를 차지했다.

이 그룹의 특징 중 하나는 20대가 23.9%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비록 오차 범위 내에 있기는 하지만, A~D 그룹 중 D 그룹에서 20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30대까지 확장하면 D 그룹 내 20~30대 비중은 43.8%까지 올라간다.

D 그룹을 교회 직분별로 보면, 목회자·중직자는 9.1%에 그친 데 비해 직분이 없는 교인은 61.4%를 차지했다. 20대 비중이 높고, 교회 전통 질서에도 속하지 않은 교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신앙·정치의 느슨한 결합 그룹'이라고 지칭했다.

박진규 교수는 "최근 청년 개신교인의 정치적 보수화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한국 사회 각종 여론 지표에서 20대 청년의 보수화 경향이 나타나는 점이 반영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이들을 아웃사이더라거나 신앙이 약한 집단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이론적 틀로는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이해나 해석도 새로운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 개신교에서 이전에 보기 어려웠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D 그룹이 한국교회 변화를 주도할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규 교수는 미디어에 비친 한국교회의 모습과, 한국교회 구성원들인 개신교인이 인식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고, 특정 그룹이 과잉 또는 과소 대표됐는지를 살피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연 유튜브 채널 갈무리
박진규 교수는 미디어에 비친 한국교회의 모습과, 한국교회 구성원들인 개신교인이 인식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고, 특정 그룹이 과잉 또는 과소 대표됐는지를 살피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연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박진규 교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개신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고비마다 교회와 선교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집단감염이 계속됐고,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해 교단 차원에서의 반발이 있기도 했다.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 등은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개신교는 코로나 국면 전후에서 존재감을 크게 발휘했고, 앞으로 차별금지법 등 이슈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사 결과는 최근 한국교회 지형의 흐름과 양상을 읽고, 향후 변화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신앙·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동성애와 진화론 등 한국 개신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요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은 반대 비율이 높았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80.7%, 이슬람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4.5%, 낙태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4.3% 등으로 모두 과반수를 넘겼다. 

특히 동성애에 관해서는 신앙·정치 모두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A 그룹에서 94.4%가 반대했고, '복음주의 진보 진영'으로 명명된 신앙은 보수, 정치는 진보 성향이라고 응답한 B 그룹에서도 93%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신앙·정치 모두 진보 성향이라고 응답한 B 그룹에서만 반대한다는 응답이 46.7%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응답자들은 동성애·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영향을 주는 요인 1순위로 TV(30.7%)를 꼽았다. 목회자가 영향을 미친다(16.8%)는 응답이 2위를 차지했고, 기독교인에게 영향을 받는다(13.1%)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한편, 이들이 교계 정보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유튜브 채널(1+2위 합산)에서는 뉴스타파가 40.5%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신의한수(26.6%), 3위는 시사타파TV(26.1%), 4위는 가로세로연구소(15.3%), 5위는 김어준의다스뵈이다(14.8%)였다. 그 뒤로 노무현재단알릴레오(11.2%), 김용민TV(9.6%), 전광훈 목사의 너알아TV(6.5%) 순이었다.

기사연은 이날 발표를 토대로 젠더와 세대 관점에서 본 미디어 수용성과 활용 특징도 분석해 발표했다. 유지윤 박사(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이성민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발표 내용과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은 기사연 홈페이지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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