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사역기획국 요셉입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추석에는 방역 지침이 완화되어 부모, 형제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제 소셜미디어 피드에도 풍성한 먹거리와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많이 올라오더군요.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조금 정신없는 연휴를 보냈습니다. 누님이 지난 주말 코로나19에 확진됐거든요. 매형과 초등학생인 세 조카도 함께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무증상이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매형과 누나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발열과 산소 부족 증세로 의식이 불안정했던 매형은 급히 앰뷸런스를 타고 경북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조카 하나가 아빠를 간병하기 위해 따라갔지요.

누님은 두 딸과 경기 북부에 있는 생활 치료센터에 입소했다가 다음 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폐에 염증이 발견됐고 고열과 후각・미각 상실,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이 글을 쓰는 오늘(23일) 매형은 여전히 산소 공급을 받고 있고 누님도 발열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고비는 넘긴 듯합니다. 조카들은 미열이 있긴 하지만 의젓하게 부모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님이 숨을 토하듯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읽으며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를 가장 괴롭게 한 건 무력감이었습니다. "힘내라", "마음을 강하게 먹어라", "큰 문제 없을 거다", "기도할게" 라고 답신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몇 자 안 되는 메시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연휴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저녁 뉴스에서 일일 확진자 수가 2000명을 넘겼다는 보도를 봤습니다(23일 21시 기준). 역대 최다라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나마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역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과 요원들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독자님과 저희 모두 이 재난의 시대를 잘 이겨 내길 기도합니다.

사역기획국 요셉

처치독 리포트

'교회 재판'을 재판해 봤습니다

"그냥…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ㅎㅎ"

교회 재판과 관련한 기획 기사를 준비해 보려 한다고 말하자, 저희 자문 변호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수차례 교회 관련 송사를 대리하시면서 교회 재판의 민낯을 보셨던 거죠. "애초에 재미없는 '법'과 관련한 이야기인데다가 문제점도 굉장히 많고 복잡한데, 들인 노력에 비해 인기는 없을 것 같아요." 기자들의 노고에 더해 기사 조회 수까지 고려하시는 걸 보니 과연 <뉴스앤조이> 자문 변호사라 할 만합니다.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 뭔 교회 재판이냐. 어차피 지적해도 달라지지 않을 건데. 사람들이 별로 읽지도 않을걸?' 기자들과도 하지 말자고 했죠. 근데 또 생각해 보면 당위성은 있었어요. 교회 재판은 너무 중요한데, 교단 스스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가지고 교회의 법도를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하는데, 저희가 그간 취재한 것만 해도 엉터리로 진행된 경우가 상당히 많았거든요.

고민 끝에 또다시 이런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에잇! 이런 걸 우리가 안 하면 또 누가 하냐.' (저희는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사건에 뛰어듭니다….) 추석 연휴 전 <뉴스앤조이>가 기사 8개로 풀어낸 '교회 재판을 재판한다'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교회 재판 문제점의 종합판

먼저 억울함을 호소하려 교회 재판 문을 두드렸다가 더 억울해진 사람들을 만나 보기로 했어요. 이들을 대리했던 현직 변호사들도 만나 봤죠. 이들의 반응은 역시 '황당했다', '실망했다' 등 비관적이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혹은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 교회 재판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100% '아니'라고 답하는 모습에는 제가 다 참담해졌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 사건 하나하나 속에 교회 재판의 문제점이 모두 응집돼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법조문, '형님 동생' 하는 사이에서 재판을 맡는 '인맥 재판', 기본적인 절차도 지키지 않아 사회 법정에서 번번이 뒤집히는 판결들….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잘 분류해 보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편집국 기자들이 모두 기획 단계부터 달라붙었습니다. 8월 말 편집회의 때 화이트보드를 가져다가 '교.회.재.판'이라고 써 놓고 문제점을 하나씩 정리했어요. 명절 연휴 전까지 기사를 내기로 하고, 시간상 아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더라도 이참에 '교회 재판 문제점의 종합판'을 써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회의 끝에 △허술한 법조문△불투명한 재판 과정과 결과△사용처를 알 수 없는 재판비용△재판위원과 목사·기자들의 금품 수수△재판위원들의 비전문성·비독립성△기본 절차 문제로 사회 법에서 뒤집힌 교회 재판등 총 6가지 문제로 정리가 되더군요. 여기에 앞뒤로, 교회 재판을 통해 더욱 억울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와 교회 재판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안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저희가 그간 취재해 온 교회 재판 기사들을 검색해 주욱 읽다 보니, 다시 한번 그때의 분노와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사건의 피해자들이 겪었을 충격과 상처를 가늠해 보다가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솔직히 아닐 것 같았습니다. 교회 재판이 억울한 사람을 더 억울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 편만 든다면, 교회에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교회 재판의 권위가 바닥이라는 건

아마 한국교회 대다수 교인은 교회 재판을 경험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없는 게 좋지요. 그런데 분쟁을 겪은 교인들도 자신들에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교회 재판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 재판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고요.

교회 재판의 권위와 신뢰도가 이토록 떨어져 있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신뢰도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교회 재판만이라도 제대로 돌아갔다면 지금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교인분들과 목사님들이 이번 <뉴스앤조이>의 '교회 재판을 재판한다' 기획 기사를 보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아쉽게도 역시 자문 변호사님의 말씀이 정확하네요. 들인 노력에 비해 조회 수가 전혀 나오지 않았어요; 몇 안 되는 인력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기사가 재미없는 것은 저희의 고민이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독자님들의 삶에 가닿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이번 기획은 영상으로도 제작됩니다. 10월 초에는 좀 더 재미있는(?)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집국 권효

그리스도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협동조합 미스터리

자본주의 경제사에 등장하는 조직 중 가장 이상한 조직은 아마 협동조합 아닐까 생각합니다. 효율성이 곧 생존 법칙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200년 가까이 생존해 왔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영리를 표방하는데도 말이죠.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이 제시한 협동조합 7원칙을 보면 이게 영리 조직의 원칙으로 가능한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1.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2.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3.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4. 자율과 독립

5.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6. 협동조합 간 협동

7.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영리 조직이 이런 원칙들을 다 지켜 가면서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전 세계 인구 중 12%가 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전체 노동인구 중 무려 10%가 협동조합에 의해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유엔은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하고 지구적 문제들을 풀어 나갈 구체적인 방안으로 협동조합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년 가까이 된 비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류 경제학은 협동조합 현상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무시한다고 봐도 무리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100년 전에도 주류 경제학은 협동조합을 무시했다는 사실입니다. 협동조합을 경제학의 주요 분야로 올려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19세기 경제학자 찰스 지드는 주류 경제학이 "신데렐라의 새엄마와 언니들처럼 협동조합은 그저 청소나 하라"는 요구를 한다고 일갈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세계경제에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협동조합이 등장합니다. 세계대전 전후, 1970년대 오일쇼크, 2000년 초 버블,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까지 세계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어김없이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투수로 협동조합이 소환됐습니다. 2세기 전 고안된 비효율적 경제조직이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그 생명력이 대단합니다. 그 이유가 여럿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자본주의 체제로는 담을 수 없는 '인간 됨'의 중요한 요소들을 협동조합이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대체로 1844년 영국 로치데일에서 현대적 형태의 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28명의 노동자가 십시일반 자본을 모아 '협동'이라는 간판을 걸고 잔인했던 18세기 영국 자본주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지요. 그들은 스스로를 '개척자'로 불렀습니다. 단순히 사업을 함께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로버트 오언이 주창한 협동 사회에 정신적 기반을 두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려 했던 '차티스트운동'의 영향을 받았으니 사업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그전에도 협동을 기반으로 한 경제조직을 만드는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처절한 실패를 거듭할 끝에 로치데일 선구자들이 드디어 생존 가능한 협동 모델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이후 1만 5000개 넘는 협동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지금은 지역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협동조합은 아마도 생협일 텐데요. 가장 큰 한살림생협, 아이쿱생협의 조합원 수를 합치면 100만 명이 넘고 매출액도 1조 원을 상회합니다. 우리의 협동조합 역사 또한 짧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협동조합은 목포소비조합으로 1920년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협동조합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협동조합은 일제의 찬탈에 맞선 민중운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협동조합은 민중의 옆에서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교회 또한 협동조합 운동에 활발히 참여했습니다. 첫 시작이었던 로치데일에서도 교회의 역할이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유럽 전역에 협동조합 운동이 퍼지는 과정에서 교회가 주요 동역자로 참여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협동조합은 아마도 '몬드라곤'이 아닐까 싶습니다. 1956년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5명의 청년 노동자와 함께 시작한 몬드라곤은 현재 7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동원력이 협동조합 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들이야말로 경제적 이익보다 ‘인간 됨’을 우선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도 교회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큰 기여를 했는데요. 1960년 가브리엘라 수녀가 세운 성가신용협동조합이나 원주에서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시작한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이 대표적입니다. 개신교의 역할도 컸습니다. 이승훈, 이찬갑, 조만식 등등 기라성 같은 신앙의 선배들이 협동조합 운동의 리더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살아 있습니다. 왜 교회가 협동조합 운동에 열심을 냈을까요? 하나님나라 원리에 협동조합 운동이 어느 정도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교회가 적극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선교적으로도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협동조합 운동은 교회의 교회 됨을 드러내고 하나님나라 경제 원리를 이 세상에 구현할 수 있는 좋은 통로입니다. 그 역할에 충실할 때 사람들은 왜 교회가 이렇게 열심히 협동조합 운동에 헌신하는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여전히 경제적 이익과 상관없이 헌신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전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본주의 교과서들은 경제적 이익이 의사 결정의 유일한 잣대라고 가르칩니다. 현실을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맘몬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지 않습니까. 협동조합 운동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맘몬에 대항하는 교회들이 협동조합 운동에 적극 참여해 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그래 왔듯이 더 많은 교회들이 협동조합 운동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저희도 함께할 방법을 고민하겠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이나 참여 방안들을 고민하는 교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 말고 연락 주십시오.

<뉴스앤조이> 강도현
dreamer@newsnjoy.or.kr

※처치독은 일주일 동안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이슈와 사건들을 쉽게 풀이해 주는 뉴스레터입니다. 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주 금요일 오후 처치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