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피해자로서 교회 재판을 겪어 본 사람들은 교인·목회자 할 것 없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판 과정에서 공정성과 전문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돕는 역할을 했던 현직 변호사들도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단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시스템으로는 교회 재판에 대한 불신을 불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교단들은 저마다 '헌법'이라는 자치 규범이 있다. 교단 운영의 기반이 되는 헌법에 징계 및 재판 규정을 명시해 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한을 행사하며 그 법도를 시행하는 것"이라며 권징에 한껏 권위를 실어 놓고서도, 교회 재판이 죄를 범한 목회자에게 관대한 한편 억울한 사람들을 계속 양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큰 원인 중 하나는 법조문 그 자체다.

각 교단 헌법. 뉴스앤조이 최승현 
각 교단 헌법. 뉴스앤조이 최승현 
죄목, 양형 기준이 없다?

교회 재판, 특히 권징 재판은 사회 법으로 치면 형사재판이다. 교회 구성원이 '죄'를 범했을 때 이를 치리治理하는 목적이다. 조사권이 없다는 근본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무엇이 죄이고, 어떤 죄에 어떤 수위의 징계를 내려야 하는지 명확히 해 두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많은 교단이 교단 헌법에 이를 명확히 기술해 놓지 않고 있다. 형법처럼 아주 세세하게 정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이다.

대부분 교단이 재판 절차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해 놓은 반면, '죄목'은 두루뭉술하게 써 놨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권징조례 제3조 '범죄'에 "교인, 직원, 치리회를 불문하고 교훈과 심술과 행위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나 혹 사정이 악하지 아니할지라도 다른 사람으로 범죄 하게 한 것이나 덕을 세움에 방해되게 하는 것이 역시 범죄이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예장합동과 비슷하다. 권징조례 제3조에 "신도, 직원, 치리회의 신앙과 행위가 성경에 위배되거나 규례를 위반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행위를 하게 한 때에는 범죄가 성립된다"고만 나온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도 징계법 제4조 '징계에 부칠 사건'에 "교역자를 포함한 모든 교인, 치리회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성경 교훈에 준거準據한 본 교회의 교리, 지도 원리, 예배 규범, 생활 규범을 위반하거나 정체政體나 제도 이외의 행동을 취하며 선동하는 사건"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자와 이의 사건"으로만 규정해 놨다.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는 좀 더 자세하게 써 놨지만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 △본 교단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한 자 △교단 내 기관과 총회 규약에 명시한 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총회가 파송한 임원의 선임을 거부함으로 교단의 내부 질서를 문란케 하는 자 △총회 선출직과 교단 산하 공직에 있는 자가 징계 또는 최종 법적 판결로 300만 원 이상의 금고형(형사사건) 이상을 받으면 즉시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여 처리한다.

죄목이 모호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쓰여 있으니, 일반 상식으로 봐도 문제가 있는 행동을 교단에서 징계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목회자의 상습적인 '설교 표절'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죄목에 '설교 표절'이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사건의 당사자나 재판위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된다. 100번 넘게 설교를 표절한 것이 들통난 예장합동 소속 ㄱ교회 ㅅ 목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교인들은 ㅅ 목사를 처벌해 달라고 노회에 고소했는데, 노회의 첫 반응은 "고소 건도 아닌데 고소했다"는 것이었다.

2007년 권징 부분을 전면 개정하고 2019년까지 꾸준히 개정을 진행해 온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과, 2년에 1번씩 입법 의회를 열어 교리와장정을 개정해 온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는 타 교단에 비해 죄목을 상세하게 적어 놨다. 예장통합은 권징 제3조 '권징의 사유가 되는 죄과'에 15개로 죄목을 정했다. 감리회는 재판법 제3조 '범과의 종류'에 일반 범과 17개, 제4조에 '교역자에게 적용되는 범과' 8개를 규정해 놨다.

'무엇이 죄가 되는지' 만큼 재판의 기본이 되는 것이 '어떤 죄에 어떤 수위의 징계를 내려야 하는지'다. 예를 들어, 감리회는 재판법 제5조 '벌칙의 종류와 적용'에서 어느 정도 기준을 정해 놨다. 제3조 '범과의 종류', 제4조 '교역자에게 적용되는 범과' 각 항에 따라 견책·근신·정직·면직·출교를 내리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감리회도 모든 범과에 양형 기준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며, 감리회를 제외한 대부분 교단은 양형 기준 자체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상습 설교 표절 목사는 노회에서 '강도권 정지 6개월'과 '설교 클리닉 이수'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판례라도 잘 정리가 돼 있다면 이전 판결을 참고해 재판의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겠지만, 총회 차원에서 판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교단이 없는 실정이다. 매년 9월 정기총회 보고서에 회기 내 있었던 재판 판결문 전문을 실어 놓는 교단이 더러 있지만, 이것들을 아카이빙하지는 않는 것이다. 감리회의 경우 한 교단 소속 목사가 개인적으로 판례를 모아 놓은 책을 펴낸 바 있다.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들

교단 징계 규정 중에는 오늘날 현실에 맞지 않아 사문화한 법조문도 더러 발견할 수 있다. 감리회 재판법 제3조 '범과의 종류' 17항 "음주·흡연의 행위를 하였을 때"가 대표적이다. 이는 목회자뿐 아니라 일반 교인에게도 적용되는 범과로 분류돼 있다. 제5조 '벌칙의 종류와 적용' 2항에 따라, 감리회 소속 교인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경우 견책·근신·정직 등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이유로 징계를 당하는 경우는 없다.

예장합동은 권징조례로만 보면 4심제다. 흔히 장로교회의 치리회로 알려진 당회, 노회, 총회에 더해 '대회'라는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대회는 예장합동 헌법 정치 제11장에 규정돼 있는데, 쉽게 말해 노회 3개 이상이 모인, 즉 노회보다는 크고 총회보다는 작은 조직이다. 이에 따라 권징조례 124조부터 133조까지 대회 재판국을 규정해 두고 있다. 하지만 예장합동에서 대회는 실체가 없다. 이 또한 사문화한 규정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예장합동 권징조례는 전면 개정한 적이 없어 조문 자체가 수십 년 전 쓰던 옛말로 돼 있다. 예를 들어 제2조 '권징의 목적'은 "진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권병權柄과 존영을 견고하게 하며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덕을 세우고 범죄한 자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 법조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해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재판을 맡은 이들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높인다.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듯한 조항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은 교단 헌법 권징편 제3조 '권징의 사유'에 죄목을 12개로 정리해 놨다. 이 중 12항은 "각 교회 및 치리회 문제로 사회 법에 고소하는 행위"이고, 제7조 '책벌의 종류와 내용'에 따르면 이 조항을 어길 경우 면직될 수 있다. 교회 분쟁을 사회 법정에 제소할 권리를 강하게 제한해 놓은 것이다.

감리회에도 비슷한 법이 있다. "교회 재판을 받기 전에 교인 간 법정 소송을 제기하거나, 교인의 처벌을 목적으로 국가기관에 진정·민원 등을 제기하였을 때"와 "감독·감독회장 선거와 관련하여 교회 재판을 받기 전에 사회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였을 때" 출교 대상이 된다. 교회 재판을 받은 후에도 사회 법정에 제소해 패소했을 경우 출교다.

이것들은 무분별한 소송 제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최근 몇 년 사이 신설한 조항이다. 실제로 교단 안에서 소송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대한민국 헌법 제27조)를 제한하는 내용이라 사회 법에서 무효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군소 교단에 속한 ㅊ교회는 한 교인이 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 등으로 그에게 징계를 내렸다. 이 교인은 '당회 결의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9년 1월 당회 결의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헌법 제27조 제1항은 재판청구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중략) 재판청구권의 행사 자체를 피고(ㅊ교회) 내지 피고의 교인에 대한 항명이나 도전으로 여기는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춘천 D교회 피해자들이 기침 총회 회관 앞에서 진행했던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독교반성폭력센터와 춘천 D교회 피해자들이 기침 총회 회관 앞에서 진행했던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 사회는 5~6년 전부터 '페미니즘 리부트'라 할 정도로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성 인지 감수성이 중요해졌다. 도덕이라는 기준으로만 평가해도 교회는 사회보다 한층 높은 성도덕이 요구되지만, 지금 교회는 성 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사회보다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이유가 성범죄로 문제가 된 목회자들을 제대로 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재 교단을 막론하고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법을 보유한 교단은 전무하다. 앞서 언급했듯 죄목 자체가 두루뭉술하게 서술돼 있는 것이 문제다. 물론 성폭력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성폭력이라는 명칭과 내용이 조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 한다. 동료 목사들이 '봐주는' 건 다른 기사에서 다룰 문제지만, 명확한 조문이 있다면 봐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

교단 징계 규정이 미비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가장 최근 사례는 춘천 D교회 S 목사 사건일 것이다. S 목사는 미성년자 강제 추행 등으로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S 목사가 소속한 기침 교단에 그를 치리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기침 총회는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성범죄자를 어떤 절차에 따라 징계해야 할지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침 총회는 9월 15일 정기총회에서 S 목사에게 '제명'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내렸다. 이는 환영할 일이나 피해자들은 총회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받지 못한 채 7개월 넘게 기다려야 했다. 

예장통합은 권징 제3조 '권징의 사유가 되는 죄과' 7항에서 "파렴치한 행위(성범죄 포함)로 국가 재판에 의해 금고(성범죄자의 경우는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된 범죄행위"라고 규정해 놨다. 감리회는 재판법 제3조 '범과의 종류' 13항에 "부적절한 결혼 또는 부적절한 성관계(동성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포함)를 하거나 간음하였을 때"라고 정해 놨고, 이를 어겼을 시 정직 이상 징계를 받게 해 놨다. 규정에 성 문제가 언급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일례로 감리회 서울남연회 심사위원회는 2019년 10월,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당시 제자와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한 S 목사를 불기소했다. 당시 심사위 관계자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성관계'는 없었기 때문에 교리와장정 문구상 기소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노교수가 어린 여성 제자와 여러 차례 유사 성행위 등을 했지만, 성기를 삽입하는 '성관계'는 없었기 때문에 기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리회 구성원들은 반발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감리회 구성원들은 반발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죄목과 양형 기준이 없다 보니, 교단에서는 판결을 회피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ㅅ교회를 담임했던 박승렬 목사는 친족 강간 미수 및 무고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노회는 사회 법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미뤘다. 게다가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됐는데도 노회 재판국은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는 나중에 총회에서 뒤집어지긴 했으나, 사회 법정에서 중형을 받아도 교회 재판에서 얼마든지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교단 내 여성 단체들이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성폭력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행태에 따라 징계 수위를 명확히 정해 놔야 신속하고 엄정한 치리가 가능하다. 여성 단체들이 조직돼 있는 예장통합과 기장, 감리회 등에서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이 총회 안건으로 올라가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법을 제정한 교단은 없다. 성폭력 대응 매뉴얼·지침 등만 제작·배포됐을 뿐이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성 목사가 없는 예장합동·고신·합신 등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없다.

헌법 개정 절차는 적어도 2년 필요

교회 재판의 근거가 되는 교단의 징계 규정 자체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사실을 보통의 교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알지 못했다가 목회자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회에 분쟁이 발생하면 교회 재판을 청구하고 결과적으로 '피를 보는' 것이다. 교단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헌법을 개정하려면 절차상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징계 규정이 현실에 맞게 정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조문 자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것은 교회 재판이 기반부터 무너져 있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교회 재판이 어그러진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재판 과정과 판결문을 비공개하는 교단들의 폐쇄적인 관행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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