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기독·시민·플랫폼을 표방하는 청어람ARMC(청어람·오수경 대표)는 올해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 40일 채식 순례 챌린지'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하루 한 끼 채식을 실천하고 이를 온라인 채팅방에 공유했다. 매일 다채로운 음식 사진과 다양한 경험담이 올라왔다. 기자 역시 사순절이면 으레 하던 '절제 의식' 차원에서 챌린지에 참여했다. 기후와 환경, 동물권과 채식, 하나님나라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즐거운 경험이었다.

청어람은 이처럼 일상에서 직접 참여하는 신앙 운동을 고민하는 단체다. 과거에는 강좌 및 세미나를 통해 신학·신앙 담론 형성에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삶과 밀접한 영역에서 개신교인을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복음주의에 뿌리를 둔 기독 단체들 중 '페미니즘'을 활발히 논하는 몇 안 되는 단체다.

누군가는 이런 청어람의 활동을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청어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염원하는 그리스도인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항의 전화를 퍼붓고, "기독교 내 페미니즘 유입의 최선봉"이라고 또 공격한다. 얼마 전 <코람데오닷컴>은 '달란트 비유'로 논란이 된 성서유니온선교회가 청어람을 후원해 왔다고 비난했고, 이에 성서유니온선교회는 즉각 '후원 중단' 의사를 밝혔다.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공격을 받은 청어람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것 같았다.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갈 법도 했지만 청어람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청어람을 비난하는 기사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유입 최선봉"이라는 어구를 인용해 역으로 페미니즘 북 클럽 홍보물을 게시했다. 후원자들이 먼저 알아보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세력이 흔들면 흔들수록 청어람은 굳건해져 갔다.

최근 일에 대한 입장도 듣고 이야기도 나눌 겸 5월 31일 청어람 사무실을 찾았다. 왼쪽부터 이명훈 간사, 이민주 간사, 오수경 대표, 박현철 팀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최근 일에 대한 입장도 듣고 이야기도 나눌 겸 5월 31일 청어람 사무실을 찾았다. 왼쪽부터 이명훈 간사, 이민주 간사, 오수경 대표, 박현철 팀장.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어람은 외부 세력의 딴지 걸기에도 주저할 틈이 없다. 6월만 해도 기존 프로그램에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까지 더해 8개나 운영한다. 주제도 참신하고 다양하다. 신학책 함께 읽기, 페미니즘 시각으로 단편소설 읽기, 인문·사회과학 강좌, 동물신학 토론하기 등 기존 교회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생소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일에 관한 입장도 들어 볼 겸 "다양한 담론과 폭넓은 상상력으로 새로운 신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청어람 구성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청어람이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다. 5월의 마지막 날, 청어람이 입주해 있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5층 '청어람홀'에서 오수경 대표, 박현철 팀장, 이명훈·이민주 간사를 만났다. 네 사람은 이번 일로 변한 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늘어난 후원 메시지에 힘입어 더 당당하게 일에 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래는 네 사람과의 일문일답.

- <코람데오닷컴> 기사가 보도된 후 구성원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합니다.

이민주 /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낭독한 후 항의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구성원 중 가장 늦게 들어와서, 외부 공격을 받은 건 그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그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저희를 후원하는 단체를 언급한 거라, 후원 담당으로서 다른 단체들까지 걱정됐어요. 후원자 중에 혹시라도 비슷한 곤란을 겪는 분이 계시지 않을까도 걱정됐고요.

이민주 간사는 이번 일로 새롭게 후원을 결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일이 힘이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민주 간사는 이번 일로 새롭게 후원을 결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일이 힘이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오수경 / 저는 처음에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어요.(웃음) 워낙 이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번에는 후원 단체를 향한 공격이라, 저희 때문에 곤란을 겪는 걸 보니 좀 화가 나기도 하더라고요. 저희가 과거 리더십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많은 교회가 후원을 철회했는데요. 성서유니온선교회는 후원을 지속해 주셔서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의 선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왜곡되고 관계까지 끊어져 버리니까, 개인적으로 좀 속상했죠.

이명훈 / 과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서도 저희를 언급하고 그랬잖아요.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기사를 보니까 과거 몇 년간 저희 활동을 잘 정리를 해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웃음)

박현철 / 구성원 중에는 제가 가장 무덤덤했던 것 같네요. 대표님 말씀처럼 이번에는 후원 단체를 공격해서 저도 그 부분에 좀 화가 났던 것 같아요.

- 따로 대응 방안을 논의하셨나요.

오수경 / 우리 할 일을 담담하게 하자고 했어요. 악의적인 공격에 반응해서 악의성이 '레벨 업' 되는 걸 허용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동안 외부 공격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기조가 깔려 있기도 했고요.

박현철 / 당당하게 우리 할 일을 하자고 했어요. 이 사건 전에, 원래 '페미니즘 이슈 북 클럽' 프로그램을 페이스북에서 광고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했거든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게시자의 신원 확인 등 추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더라고요.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했는데도 광고를 게재할 수 없었어요. 좀 짜증 나는 상황이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문제 삼으니까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기사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유입의 최선봉"이라는 단어를 포스터에 넣었죠. 물론 광고는 또 거절당했지만, "정면 돌파 멋지다"는 응원 메시지를 남겨 주신 분이 있었어요. '아 이거구나. 이렇게 당당하게 가야겠구나' 싶어서 그다음 날 아예 페미니즘 북 클럽 자체를 무료로 전환하겠다고 광고했죠. 그날로 모집이 마감됐어요.

청어람은 복음주의에 뿌리를 둔 단체들 중 가장 '페미니즘' 이야기를 활발하게 한다. 2016년 여성 혐오 관련 강의.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어람은 복음주의에 뿌리를 둔 단체들 중 가장 '페미니즘' 이야기를 활발하게 한다. 2016년 여성 혐오 관련 강의. 뉴스앤조이 이은혜

- '페미니즘은 개신교와 함께 갈 수 있다·없다' 이런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청어람은 여러 공격에도 꾸준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지금 한국교회, 사회에서 왜 페미니즘을 더 언급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오수경 / 페미니즘은 지금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언어이자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잘 몰랐던 분들은 페미니즘이 2015년 이후에 "출현했다" 이렇게 표현하시는데요. 제가 배우고 관찰한 바로, 페미니즘은 끊임없이 당대 사회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온 운동이에요. 개신교는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종교고, 계속 개혁돼야 하잖아요. 사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상향을 제시하는 개신교 신앙과 페미니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 가지, 종교개혁은 사제 중심의 종교 권력에서 개혁을 일으킨 운동이었잖아요. 한국교회의 위기를 외치며 다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 시대 종교개혁은 한국교회를 지배하는 '남성'·'가부장'·'목회자' 중심 언어와 체제에서 탈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본다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지금 한국교회에 일어나야 할 종교개혁의 언어는 다르지 않고, 오히려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보는 거죠. 연결하려면 일단 알아야 하잖아요. 페미니즘을 공부해 보고, 함께 갈 수 있는지 없는지 탐구해 보자는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배움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페미니즘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공격받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이 주제를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나요.

오수경 / 교회에서 (페미니즘을) 꺼낼 수 없기 때문에 저희 모임에 오는 분들도 있어요. 관련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목사님이 못 읽게 했다는 분도 있고 어떤 참가자는 저희 모임에서 읽는 책을 교회에 들키지 않으려고 커버를 씌워 다니시더라고요. 그 정도로 억압돼 있는 상황이에요. 저희가 공론장을 만들면 여기 와서 말할 수 있고, 또 배운 걸 각자 삶의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으니 계속 이 장을 이어 가고 있어요.

오수경 대표는 후원 단체와의 관계가 이렇게 끊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오수경 대표는 후원 단체와의 관계가 이렇게 끊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민주 / 페미니즘 관련 모임에 참여하면서 한국 개신교회에 가부장제의 그늘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경험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여기서 담론을 더 확장하면 소수자 차별을 발견하기도 하고,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깊게 드리운 그늘에 가려진 사람을 발견하기도 해요. 저도 그동안 몰랐던 언어를 계속 발견하고 있어요.

박현철 / 페미니즘 이슈 안에 '소수자', '젠더' 이슈가 다 들어 있어요. 저희가 단지 페미니즘만 얘기해서 이만큼 공격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비거니즘이나 페미니즘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지금 꼭 필요하고 우리가 다뤄야만 하는 주제인데, 그만큼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 단순히 주제 문제가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청어람의 지향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런 논쟁적 주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방향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면, 더 떠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죠.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하면, 청어람은 더더욱 그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어요.

저희가 그동안 다뤄 온 '가나안 성도', '세속 성자'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교회 안에서 신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교회나 목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 내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한국교회에는 이런 고민과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없었어요. 10년 전에 가나안 성도 모임을 시작했을 때도, 교회 잘 다니는 사람을 모아서 뭘 하려던 게 아니에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이죠. 저희는 가나안 성도가 다시 교회로 돌아갈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고민을 나눌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했어요. 지금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을 논하는 맥락도 비슷한 것이고요.

오수경 / 김재수 교수님 사건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학자는 그런 관점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요. 페미니스트도, 퀴어도 주류 해석과 다른 방식으로 성서를 읽고 나눌 수 있죠. 교회 안에서 이런 질문과 토론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방황하거나 (교회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분명히 있거든요. '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겠어'가 아니라 그냥 교회에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이야기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도 청어람은 페미니즘·이주민·난민·퀴어 관련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어요.

"거대 담론 넘어 '경험' 나누는 신앙 운동 추구"
"교회·신앙의 다음 모습 함께 고민하자"

- 과거에는 청어람이 신학·신앙 강좌나 세미나를 주로 진행했다면, 최근 청어람은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삶과 밀접한 주제를 많이 다루는 것 같아요.

박현철 / 과거 주요 주제로 삼았던 것들을 조금 정비해, 올해 키워드를 신앙·신학·사회·페미니즘·비거니즘으로 잡았어요. 신앙·신학은 그동안 해 온 것들이고, 요즘 공을 들이는 건 아무래도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이죠. 두 주제를 조금 신선하게 다뤄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기존에는 저희가 대중 강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올해는 소모임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강의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같은 주제의 다음 강의까지 최소 몇 달은 기다려야 하거든요. 하지만 소모임 같은 경우는 관심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에 와도, 그 주제의 모임 하나 정도는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운영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올해 비거니즘 경우는 책 모임, 채식 순례 챌린지를 했는데 지금은 다시 책 모임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언제 와도 참여할 수 있는 셈이죠.

청어람ARMC 콘텐츠를 기획하는 박현철 팀장은 흐릿한 경계에 존재하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청어람ARMC 콘텐츠를 기획하는 박현철 팀장은 흐릿한 경계에 존재하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오수경 / 지금까지 저희가 복음주의 운동 영역에서 생산했던 건 거대 담론이었어요. 요즘은 큰 주제보다는 미시 담론 중심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죠. 늘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는데, 이전과 논의하는 내용이 똑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대 변화에 맞게 이야기도 다르게 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좀 더 다양한 주제를 준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명훈 / 얼마 전 진행한 40일 채식 순례 챌린지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판을 만드는 차원에서 진행해 본 거였어요. 저는 다른 단체에서 하루 한 끼 채식을 경험해 봤는데요. 보통 일주일, 길면 한 달 이렇게 하거든요. 청어람에서 동료들과 채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순절도 다가오는데 연결지어서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주셨어요. 40일이면 너무 고난이도 도전이 아닌가 싶어서, 열 명만 참여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참가자 모집을 시작하니 예상보다 많은 분이 신청해 주셨어요. 오히려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저희 차원에서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죠.

개신교인들이 사순절에 이사야서 말씀 놓고 금식도 많이 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신앙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챌린지여서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3년 정도 채식을 했는데, 신앙적으로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나 지인을 많이 만나지 못했거든요. 참가자분들이 하루 한 끼 채식만 했을 뿐인데 성서 텍스트가 다르게 읽힌다든지, 동물에 대해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이런 피드백을 바탕으로 또 다른 기획을 세워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 페미니즘이나 비거니즘을 다룰 때, 개신교와 연관성을 묻는 분들도 있잖아요.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경우도 있고요. 특정 주제를 다룰 때 개신교와의 연결 고리를 중요하게 보는지 궁금해요.

박현철 / 소모임 체제로 전환하면서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은 청어람이 왜 기후 위기도, 환경 문제도 아닌 '비거니즘'을 다루는지 의아해하시거든요. 예를 들어 '기후 위기'를 다룬다고 하면 담론 중심의 운동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신앙 운동을 하는 단체고, 신앙 운동의 핵심은 '실천'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중 강의 위주에서 소모임으로 전환한 것도 그동안 우리가 '말'만 하는 운동이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이론·담론도 소중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쉽게도 많은 운동이 '말'에 집중돼 있어요.

비거니즘 얘기하고 싶으면 채식 식당 가서 먹어 보는 것으로 시작하거나, 정말 의미 있고 좋은 책이 있다면 일단 함께 끝까지 읽어 보자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기존의 사회운동, 학술 운동하는 단체와 차별점이 있다면, 대중에게 쉽게 풀어 주는 정도가 아니고 직접 '경험'·'실천'해 볼 수 있도록 돕는 면에 집중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은 '이 주제를 누가 잘 설명하지?'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직접 해 볼 수 있지?'로 고민의 중심이 옮겨 가는 것 같아요.

오수경 / 청어람의 입장이 애매할 수도 있고 입체적일 수도 있는데요. 사실 많은 개신교인이 모든 사안을 성경적 관점에서 규명해야만 안심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반대로 보거든요. 신앙의 언어로 치환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이게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겨 두면 발견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지더라고요. 개신교인으로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할 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구성을 바꾸면, 다양한 언어와 실천 방법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모임을 지속하면서 확인하고 있어요.

이민주 / 청어람 오기 전에는 전혀 다른 기관에서 일했는데요. 개신교인이긴 하지만 청어람에 와서 오히려 관심사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이전까지 잘 모르던 분야나 영역을 알게 되고, 같은 관심사를 둔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이명훈 간사는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데, 같은 주제를 고민하는 신앙인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명훈 간사는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데, 같은 주제를 고민하는 신앙인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욕도 많이 먹지만 반대로 뿌듯한 순간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민주 / '세속 성자들의 이야기'라고 평범한 사람들의 신앙 이야기를 글로 발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대표님 인터뷰를 제외하고 17편이 나갔는데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전에 삶이나 신앙, 일상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을 드리고 답변을 받거든요. 저는 이 답변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이 답변에 한 사람의 경험·생각·성찰이 다 들어가 있어요. 존재가 다르게 보이는 것도 있고, 답변을 읽으면서 저도 제 경험을 떠올리며 배우는 부분도 있어서 좋습니다.

오수경 / 대중 강의를 진행할 때는 잘 몰랐는데요. 여러 이유 때문에 소모임으로 전환하면서 참가자들 면면을 더 밀접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강좌나 세미나로 진행할 때는 강의가 끝나면 참가자들끼리 혹은 주최자와 단절되잖아요. 이분들의 생각을 듣거나, 강좌를 통해 어떻게 생각이 변하고 성장하는지 체감하지 못했는데요. 소모임을 하면서 함께 대화하다 보니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고, 이를 통해 배움·성장할 수 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또 그동안 서울 중심으로 모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지방에 계신 분들은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온라인으로라도 참여해서 연결되는 게 좋다는 피드백을 들으면, 오히려 그게 큰 힘이 되고 우리가 계속해야 하는 사인이라 여기기도 하죠.

이명훈 / 청어람이 가끔 다른 단체의 행사를 도울 때가 있어요. 얼마 전 무지개신학교가 주최한 한국교회와 장애인 관련 행사에 중계 지원으로 참여했거든요. 저는 이런 연대 행사하면서 배우는 점도 많아서 그런 부분이 좋은 것 같아요. 수어 통역사가 함께하는 중계는 화면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화면 전환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 고려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새롭게 배우는 것도 좋았죠.

박현철 / '세속 성자를 위한 주일 예배문'을 1년 4개월 가까이 제공하고 있어요. 사실 한국교회에서 온라인 예배가 가능하다고 하는 분들도, 직접 해 보지 않고 얘기한 측면이 있거든요. 해 보지도 않고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담론으로만 논했다면, 저는 온라인 예배를 지속했을 때 생기는 실질적 문제에 당면했고 그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저희 자료를 꾸준히 이용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누군지 저희도 몰라요. 저도 교회 사역을 했었기 때문에 설교나 예배를 준비하면, 청중이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완전히 어둠 속에 있어요. 이분들이 누구인지 연결 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새로운 도전을 만난 기분입니다.

오수경 / 세속 성자도 그렇고 페미니즘·비거니즘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저희가 전혀 몰랐던 대중을 발견하게 돼요. 누구 소개를 받고 오거나, 본인이 찾아보고 오시거나, 계속 신청자가 꾸준히 있기 때문에 이 모임들이 지속 가능한 거거든요. 새로운 대중을 발견하는 차원에서라도 계속하는 데 의미를 발견하고 있어요.

- 앞으로 청어람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으신가요.

박현철 / 흐릿한 경계에 있는 대안적이면서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교회와 사회의 경계일 수도 있고, 교회 안과 밖의 경계일 수도 있고,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일 수도 있겠죠. 경계가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거든요. 경계쯤에 존재하는 안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떤 말도 오갈 수 있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때론 교회에 더 가깝고 때론 사회에 더 가까운 유동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수경 / 2016년에 페미니즘 관련 강좌를 열었다가 양쪽 진영에서 전부 욕을 먹은 적 이있어요. 한쪽에선 페미니즘 얘기하는데 왜 기독교와 연관짓느냐고 하고, 한쪽에서는 페미니즘을 왜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느냐는 거죠. 청어람은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양쪽을 걷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페미니즘이나 퀴어 문제 같은 경우 저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양극단의 의견만 정답인 것처럼 부각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조금 더 배우고 싶고, 조금 더 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숨게 되거든요.

예전에 사회학자 엄기호 선생님이 "말하지 못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을 지나 이제는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어떻게 말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이 문제는 개신교 영역에서 더 심한 것 같아요. 교회에서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말하게 하고,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줄 것인가를 앞으로도 고민할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바라기는 청어람이 안전하고 든든한 공간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책 모임 진행할 때 '이곳은 안전하고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하는데요. 개신교 영역에서 한 곳 정도는, 조금 틀린 말을 해도 바로 배제하지 않는,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고요. 사람들이 청어람을 그런 곳으로 여겨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이라서 신학교를 자퇴하고, 존재를 축복했다고 정직을 당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면 좋지 않을까, 누군가 청어람을 '자기 편'이라고 생각해 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어요.

더 다양한 이야기와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청어람을 응원해 주세요. 뉴스앤조이 이은혜
더 다양한 이야기와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청어람을 응원해 주세요.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명훈 / 코로나 전에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으로 많이 진행했는데요. 이제는 참가자의 목소리도 많이 들을 수 있거든요. 쌍방이 소통하는 대화 모임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대'는 허물어지고 일반 사람의 목소리가 많이 유통되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사람들과 상호 교류하는 과정에서 청어람만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민주 / 제 경험으로 비춰 보면, 어떤 질문이 생각났을 때 충분히 숙고하기 어렵더라고요. 한쪽에서는 계속 이게 답이라고 하고 있잖아요. 균열 같은 게 생겼을 때 충분히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이 되면 좋겠고요. 또 이런 생각이 들 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오수경 / 저희가 평소 회의할 때 수다를 많이 떨어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도 돈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들 주변에는 자본·조직이 모여 있는데, 환대하고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은 어렵게 버티더라고요. 조금 더 다양한 논의 지점을 만들고, 이런 이야기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위해서라도 '사세 확장'을 하고 싶어요.(웃음) 늘 다음 세대 운동에 대해 말만 하지, 정작 현재에 투자하지는 않잖아요. 더 많은 말들이 오갈 수 있도록 청어람을 '후원'해 주세요.

박현철 / 저는 목사이기도 해서 교회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이제 좀 다음 장,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면 좋겠어요. 교회 개혁 운동하는 분들은 여전히 기성 교회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어느 부분에 매여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전의 교회는 이제 좀 놔 주고 다음 스테이지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갖고 내일을 맞이할 것인지 생산적이고 건강한 고민을 이어 가면 좋겠어요.

이명훈 / 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청어람을 찾으셨던 분들이 다른 분야의 모임까지 참여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이처럼 고민하는 신앙인이 청어람에 와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 가면 좋겠어요. 저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좋아해서 어디까지가 이웃이고 어떻게 하는 게 사랑하는 것인지 계속 고민하거든요.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사세가 확장돼서 더 많은 주제를 다룰 수 있다면 좋겠네요.(웃음)

이민주 / 저는 후원 담당이라 그런지 이런 굴곡이 있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사람'에 주목하는 것 같아요. 이번 일을 이유로 후원을 끊으신 분들고 있고, 반면에 계속해서 저희 곁을 지키고 있거나, 새롭게 함께하기로 결정해 주신 분들도 있거든요. 이런 분들과 함께 서로 용기와 격려를 주고받으면서 편견을 지우고, 경계를 확장해 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후원도 해 주시고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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