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했던 피해자를 기리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은 지난해부터 한국 사회 주요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기가 센 일부 여성'만 관심 갖는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여전히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교회에서 성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말하면 '자유주의신학에 물들었다'고 오해를 사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여러 단체 중 교회만큼 성 역할을 나누고 그에 충실한 곳이 없다. 신학적·정치적으로 보수화한 한국교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을 없애고, 차별을 없애자는 말만큼이나 불편한 주장이 또 있을까.

이 불편함을 정면 돌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청어람ARMC(청어람·양희송 대표)는 5월 15일 '청년 사역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제8회 청년 사역 컨퍼런스를 열었다. 청년 사역 컨퍼런스는 매해 두드러지는 주제 하나를 정해 청년들 삶과 연결해 보고, 교회가 이를 어떻게 실제 사역에 적용할 것인지 나누는 행사다. 올해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여성 참가자가 크게 늘었다. 주최 측은 "청년 사역자는 아닌데 참석해도 되느냐"는 여성들의 문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강의에는 청년 사역에 몸담고 있는 목회자·사역자보다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교회 청년이 더 많이 참석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 컨퍼런스는 주제 강의 2편, 현장과 실천, 닫는 강의 순으로 진행됐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강사로 나섰다.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김홍미리 선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백소영 교수, 성평등 강사 심에스더 선생, 서서울 IVF '갓페미' 기획팀, 전 총신대 강사 강호숙 박사가 참여했다. 기자도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 내 여성 혐오 사례를 발표했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페.미.니.즘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김홍미리 선생은 종교가 사회에 계속 질문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첫 번째 주제 강의 "페미니즘이 뭐기에: '말할 수 없음'과 '들을 생각 없음'의 관계에 대하여"를 맡은 김홍미리 선생은 다양한 사례를 비교하고 질문을 던지며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기독교는 과거 크리스천아카데미·기독여성회 등을 통해 세상에 질문하는 역할을 꾸준히 감당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페미니즘'과는 친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즘이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기 위해서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질문을 던질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누구에게 던지는지 생각해야 한다.

"권력이 교차하는 위치에 따라,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이 말을 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많다. 나는 과거 한 강의에서 어떤 참석자에게 '일어나서 말해 달라'고 주문한 적 있다. 신체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 부분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무엇을 질문하고, 질문하지 않는지 살펴보면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보인다."

김홍미리 선생은 한국 사회 여러 차별 요소 중 젠더(Gender)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들며 여성의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현상을 언급했다. 대표적으로 언론 보도에서 발생하는 여성 구분 짓기는 차별이 전제돼 있다고 했다. 안 좋은 행동을 하는 여러 사람들을 언급할 때 남성은 그렇지 않지만 여성은 굳이 '여성'이라고 표기한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문화는 또 다른 현상을 낳는다. '자취방', '자취녀'는 검색엔진에서 성인 인증이 필요한 단어지만 '자취남'은 그렇지 않다. '화장실 몰카'도 마찬가지다. 김홍 선생은 "누군가에게 어떤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자들에게는 그냥 화장실이겠지만, 여성에게는 그냥 화장실이 아니라 숨겨진 카메라가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여성에게 자취방은 아늑하고 포근한 곳이 아니라, 누군가 침입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젠더에 대한 고민 없이 이 단어를 그냥 소비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홍미리 선생은 여성에게는 문제가 되는 사안이 왜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지 질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현상을 말할 수 없게 하고 침묵하게 하는 문화는 생각보다 촘촘하고 절대적으로 짜여 있다는 것이다. 들으려는 의지, 말을 걸어 보려는 의지, 궁금해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라야 이런 문제가 조금씩 드러난다고 했다.

이럴 때 종교의 역할은 뭘까. 김홍미리 선생은 "어떻게 들리게 할 것인가, 어떻게 말할 공간을 열어 둘 것인가"가 종교의 역할이 돼야 한다고 했다. 과거 크리스천아카데미와 기독여성회가 했던 것처럼, 질문을 던지고 그에 맞게 움직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신교, 남성 시각 지배적
'페미니즘' 렌즈 끼자

백소영 교수(이화여대)는 교회와 페미니즘은 함께 가면 좋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백소영 교수는 교회가 페미니즘에 어떤 태도를 취하면 좋을지 설명했다. 백 교수는 한국교회에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소개하면 많은 사람이 경직된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들리던 말도 안 들리게 하는 단어가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세에는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인류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본 데 비해, 종교개혁 이후에는 여성을 '돕는 배필'로 봤다고 했다. 백 교수는 "이렇게 여성이 남성을 돕는 존재로 지음받았다고 보는 시각은 꽤 오랫동안, 최근까지도 교회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20세기 끝자락인 1999년, 한 대형 교회에서 목사가 여성은 하나님께 순종하듯 신자의 자세로 남편을 따라야 한다고 설교했다. 여성은 세 가지를 해야 하는데 첫째는 순결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둘째는 사역하듯 자녀들을 돌보고, 셋째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완전한 남성을 만드는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 성경에 입각한 바람직한 여성이라는 메시지였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여성을 응시하는 방법보다는 분명 진보했지만, 여전히 남성이 응시 주체가 된다."

앞으로 교회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백소영 교수는 "돕는 자"에 중점을 뒀다. 돕는다는 것은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따른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았을 때 상대방의 부족함이나 장점, 상대방은 무엇을 꿈꾸는지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교회와 크리스천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예수께서 그렇게 원하셨던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시기를 좀 더 앞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호숙 박사(맨 왼쪽)가 참석자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이어서 전해운 간사, 장미빛 간사, 표선아 간사, 심에스더 선생, 기자. 사진 제공 청어람ARMC

총신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다 부당해고를 겪은 강호숙 박사는 청년 사역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그는 '성경적'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더 성차별 설교를 많이 한다며 분노했다. 강 박사는 "한국교회가 성을 만드신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부끄럽게 하면 그 여성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부끄러우시겠느냐. 여성을 함부로 비하하는 한국교회가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강호숙 박사는 주체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홍미리 선생이 말한 것처럼 계속 질문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성경 해석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태도 △교회 전통적인 신앙과 이미지, 관습과 문화를 재평가하려는 태도 △여성의 질문과 요구가 실천에 이르도록 수렴하고 적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발맞추려면 사역 현장에서도 방향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지금 한국교회 청년 사역에 필요한 것은 "남녀평등을 지향하고, 탈권위적이며, 진리와 문화를 구분하며 이뤄 가는 사역의 민첩성"이라고 말했다.

강호숙 박사는 성차별 설교에는 피드백을, 기존 남성이 지배하는 교회 정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여성 할당제 도입을, 여성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교회 문화에 대응하는 '토크 버스킹'을, 서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성 커뮤니티를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교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바꿔 수행하면서 여성 친화적이고 남녀가 평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했다.

강 박사는 "가부장적 교회에서 남성들은 과연 행복한가를 묻고 싶다.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과 함께하는 교회가 될 때, 청년 사역의 역동성과 함께 행복도 찾아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회 내 여성 혐오 여전
바꾸려면 어떤 노력해야

1시간씩 진행된 강의 외에는 모두 사례 발표로 채워졌다. 기자는 올해 3월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교회 내 여성 혐오'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조금 더 구체적인 여성 혐오 발언을 소개했다.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차별, 혐오 발언 대부분은 △복장, 외모, 나이 지적 △성 역할 구분 △성차별 설교였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이슬람·동성애 등 문제에는 위원회를 만들어 대처하면서, 교회 내 성폭력이나 여성 혐오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여성 혐오 발언에 달린 "이래서 교회를 떠났다"는 댓글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성평등 전문 강사 심에스더 선생은 혼전 순결, 동거, 낙태, 성폭력 등 가장 예민한 주제를 맡아 설명했다. 심 선생은 한국교회에서는 쉽게 '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섹스'를 입에 올리기 힘들어하는 현실에서 '순결'을 논할 때는 왜 언제나 '여성의 혼전 순결'을 말하는지, '동거'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결혼하기 전 남녀가 같이 사는 불순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에스더 선생은 교회가 '낙태'라는 단어에 보는 한결같은 반응도 되짚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에도 문제가 있지만, 무조건 죄의 문제로 가져가는 교회에도 낙태 책임이 있다. 낙태에 대해 단순히 생각하고 여성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낙태에 대해 유기적인 사회 문화적 관점을 이해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낙태는 무조건 죄'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각 사람마다 상태와 상황에 일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표선아 간사(IVF)가 '갓페미' 기획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 청어람ARMC

대학생 선교 단체 IVF 서서울지부에서 활동하는 전해운·장미빛·표선아 간사가 기획한 '갓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있었다. '갓페미'는 대학생 선교 단체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첫 모임이었다. 사역 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서로 공유하다 모임을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기독교 내 여성 문제는 언제나 '은혜' 혹은 '믿음'으로 넣어 놓고 굳이 꺼내 보지 않으려 한 현실을 직접 타개하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발표를 맡은 표선아 간사는 "갓페미 모임은 여성들이 모여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구나'를 공유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다. 그동안 교회와 선교 단체 내에서 느낀 '혐오 발언'을 본인만 느낀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느꼈다는 걸 알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얻은 점을 나눴다.

"이야기의 장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로에 서 있는 이들에게 '신앙과 페미니즘,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이 문제를 계속해서 함께 고민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 패널 질의응답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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