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10번 출구에 17일 일어난 살인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출근길 서울 강남역은 여전히 복잡했다. 5월 19일 아침 8시 30분,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바쁘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10번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잠깐 발을 멈췄다. 출구 오른쪽 벽에는 전날 34세 남성에게 죽임당한 24세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고 바닥에는 국화가 놓였다.

사건은 5월 17일 새벽 1시경 일어났다. 강남역 인근 한 노래방 건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을 숨지게 했다. 이 남성은 그날 오전 10시에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살해 이유에 대해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답했다. 피해자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경찰은 이 사람이 한때 신학원을 다녔으며, 정신분열증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 19일 아침, 강남역 10번 출구.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끔찍한 살인 사건에 추모 물결이 일었다. 소식이 알려진 18일부터 사건 장소와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 국화와 근조 화환이 놓였다. 특히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 범죄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글이 많았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입니다", "여성 혐오를 멈춰 주세요. 묻지 마 살인이 아니라 혐오 범죄입니다", "여자를 강간하지 마세요. 여자를 죽이지 마세요. 어렵습니까?"

추모 행렬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19일 오전에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많은 사람이 포스트잇 메시지를 남기고, 다른 사람이 적어 놓은 메시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수백 수천 개의 메시지 앞에서 깊이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먼발치에서 그저 눈물만 흘렸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처럼 여러 모양으로 살 수 있었을 피해 여성의 꿈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언니는 꿈이 뭐였어요?", "부디 그곳에서라도 꿈을 이뤘길 바라요."

메시지를 남긴 한 30대 여성은 "사건 당시에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적었다"고 했다. 포스트잇 여러 개를 붙인 한 20대 여성은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나에게 대신 메시지를 적어 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에게 무의식이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도 '여성 혐오'라는 무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성을 추모하는 사람이 많지만,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을 조롱하며 잔인한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다. 극우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여자가 밤늦게 술 마시고 다니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거다", "정신병자가 벌인 일에 왜 여성 혐오를 뒤집어씌우느냐", "강남역 포스트잇 불태우러 갈 사람 없느냐"는 글과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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