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교회 청년들은 2월 28일 주일 저녁 예배 후, 계속되는 2차 가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ㅎ교회 청년들은 2월 28일 주일 저녁 예배 후, 계속되는 2차 가해에 항의하는 뜻으로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너희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른들한테 왜 그러냐고! 교회를 흩으려 하지 말라고!"
"죽도록 고생해서 너희들 밥해 줬는데 이럴 수 있어? 교회를 같이 세워야지!"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월 28일 주일 저녁 예배 직후 ㅎ교회 로비는 소란스러웠다. 중년 여성 집사들이 청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청년들 손에는 "강압적인 용서·감사 멈춰 달라", "피해자의 입을 막는 2차 가해 중단하라", "예배 때 제대로 된 말씀을 듣고 싶다", "편 가르기X 청년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ㅎ교회를 개척한 아버지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받은 김 아무개 목사(44)는 여성 청년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 지난해 11월 초 사건이 공론화하자 김 목사는 자취를 감췄다. 이후 김 목사는 소속 노회에서 제명 처리됐지만, ㅎ교회는 혼란에 빠진 상태다.

일부 청년은 아들의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회장' 아버지 목사가 2차 가해를 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넘어가려는 아버지 목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아버지 김 목사는 2015년 아들을 담임목사로 세우고, 자신은 '당회장 목사'로 활동해 왔다.

"영적 지도자, 기어코 감옥에 넣어야 하나"
노회에 "아들, 선교 및 유학 간다" 거짓 보고
아버지 목사, 피해자들에게 <감사> 책 줘

아버지 목사는 피해자 측이 문제를 제기한 직후부터 "사회 법으로 가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아들 목사를 우회적으로 두둔했다. 성폭력 공론화 다음 날인 지난해 11월 3일, 그는 전 교인에게 "본 교단 헌법은 사회 법에 고소하는 자는 영구 제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자 훈련 과정에서 일어난 폭언과 폭행, 성취행(성추행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 - 기자 주)을 한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지만, 그래도 제자를 사랑한 스승으로, 영적 지도자로 일한 담임목사를 기어코 감옥에 넣어야 한다면 과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까요? 행복할까요?"라고 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는 아직 교인으로 등록돼 있던 피해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같은 날 아버지 목사는 "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당회, 노회, 총회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어요. 믿는 사람들끼리 세상 법적으로 가는 것을 성경은 금하고 있어요. (중략) 세상 법정으로 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복음 전파를 막게 되며,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성령을 거역하게 되어 서로 불행해지고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만 주님의 심판에 맡기면 행복을 누리다 천국에 갑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가해자의 아버지이자 ㅎ교회 당회장인 김 목사는 사건 후, 믿는 사람끼리는 사회 법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전 교인에게 보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가해자의 아버지이자 ㅎ교회 당회장인 김 목사는 사건 후, 믿는 사람끼리는 사회 법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전 교인에게 보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ㅎ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ㄱ노회는 김 목사를 기소 후 제명 처리했는데, 사전에 아버지 목사가 이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피해자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당회장이 노회에는 아들을 '선교 및 유학으로 해외 파송한다'고 알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피해자들이 직접 노회 목사들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징계 절차를 밟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목사는 아들 목사의 범죄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피해자 측의 거듭된 요청에 뒤늦게 교회에 이 사실을 알렸다. 지난해 11월 말 "김 전 담임목사는 ㅎ교회에서 폭언, 폭력, 성추행, 성폭력 등의 불미스러운 사유로 퇴출되었으므로 절대 ㅎ교회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하나님 앞에서 서약합니다"라고 쓴 서약서를 교회에 게시했다. 노회가 작성한 기소장도 동시에 공개했다.

피해자들과 청년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또 있다. 아버지 목사가 주일예배 설교 시간에 지속적으로 용서와 감사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가 쓴 <감사>(규장)라는 책도 전달했다. 피해자들은 "책을 받았을 때 너무 화가 났다. 당회장의 이런 행동이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용서하지 않는 내가 신앙심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은 아버지 목사뿐만 아니라 몇몇 교인도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한 피해자는 "내가 어떤 심경인지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그래서 어디까지 간 거냐', '교회 리모델링까지 다 마친 지금 폭로하는 이유가 뭐냐', '네가 용서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일부 교인은 피해자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상담하면서 일상적인 격려 차원의 터치였는데 너희가 이상하게 받아들인 것 아니냐', '자매도 당시에는 좋았는데 지금 맘에 안 드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며 김 목사 편을 들었다. 평소 정말 좋아하고 의지했던 집사님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ㅎ교회 주보에는 아버지 김 목사가 '당회장목사'라고 병기돼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ㅎ교회 주보에는 아버지 김 목사가 '당회장목사'라고 병기돼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아버지·아들 목사 감싸는 교인들
아버지 목사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당회장 아버지 목사는 공론화 직후 자신이 한 발언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문제를 제기한 이들의 요청을 다 받아 줬다고 말했다. 그는 3월 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처음에는 교회만 나가게 해 달라고 하더니, 그 후에 노회에 보고해 제명까지 돼 목사로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가정에도 알려져 현재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잃을 건 다 잃고, 우울증에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내가) 교회에 서약서·기소장도 2주간 붙였다. 그렇게 해서 끝난 거다"고 말했다. 노회에 아들 목사를 '선교 및 유학으로 해외 파송'으로 보고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는, "죄송하다"고 답했다.

청년들은 하루라도 빨리 후임 목사를 뽑아 교회가 안정화되길 바라는데, 당회장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담임을 청빙하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 목사는 "후임자 청빙은 코로나19 때문에 늦어진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후임자 청빙이 마무리되면 당회에 내 거취를 맡길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피해자들은 아들 목사를 상대로 한 형사 고소를 논의 중에 있다. 한 피해자는 2월 28일 기자와 만나 "김 목사의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가족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꺼리는 피해자들도 있다. 논의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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