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Clubhouse). 2020년 3월 출시된 음성 소셜미디어로, 업계 관계자나 친구들과 음성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가입자로부터 초대를 받아야 참여할 수 있으며, 영상이나 글 등은 사용할 수 없고 음성으로만 대화한다." (네이버 지식 백과 - 시사 상식 사전)

백석·장신·총신. 각기 다른 신학교 출신 여성 사역자 셋이 클럽하우스에 모였다. 모두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했지만 응어리진 감정은 동일했다. 한국교회에서 마이크를 빼앗긴,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여성들이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서로 공감하며 신나게 떠들어 댔다.

필자는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뒤 예장합동 소속 교회에서 6년간 주일학교 전도사로 사역에 매진했다. 한번은 교역자 회의 도중 담임목사가 뜬금없이 "태인 전도사는 어차피 결국 나갈 사람이잖아. 기껏해야 담임목사 사모 정도 될 거 아냐?"라고 했다. 남성 사역자들에게 사역을 잘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게 불똥이 튄 것이다. 순간 당황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같은 자리에 있던 동료 남성 교역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침묵하거나 고개를 가만히 끄덕일 뿐이었다.

또 한번은 결혼 전 자취를 하던 시절, 교육국 디렉터였던 남성 목사가 자신은 함께 사역하는 이들의 집은 모두 방문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온다며, 자정이 넘은 시각 내 자취방에 홀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가정도 있던 남성 목사의 방문 통보는 20대 초반이었던 내게 굉장히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최대한 예의 있게 거절했지만 그 후로 그는 나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그간 만났던 남성 목회자들은 "내 말 한마디면 사역을 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거들먹거리곤 했다. 그들에겐 단순히 허세 섞인 한마디일지 몰라도 여성 사역자가 듣기엔 아주 위협적이었다. 절대적으로 남성 사역자 수가 많은 한국교회에서 그들의 말 한마디는 날마다 나를 옥죄곤 했다.

남성 사역자들은 식사 후 커피·과일 심부름 등 뒤치다꺼리는 여성 사역자들 과업이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교회 안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마땅히 섬김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남성 사역자끼리 모여 여성 사역자를 소외시키거나 견제하는 일도 다반사였고, 남성 사역자가 여성 사역자를 그루밍하는 일도 허다했다. 하나님을 위해 살리라 결심하고 목회자로 부름 받아 나섰지만 교회에선 하나님이 아니라 남성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여성의 사명인양 강요를 받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여성 사역자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자 세 사람이 모였는데, 교회를 떠났거나 교회 안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많은 여성이 '다 된 가부장제 교회에 성 인지 감수성 뿌리기'라는 방 제목을 보고 모여들었다. 사역자·교인이라는 직분을 막론하고 여성이 경험한 한국교회는 성 인지 감수성을 결여한 남성들의 태도·발언들로 시종일관 폭력을 경험하는 장소였다.

개설된 방은 누구에게나 오픈이 돼 있었기에 남성들도 참여도 있었다. 대화 초반에는 남성에게도 스피커 자격이 주어졌지만 이내 제한됐다. 교회 내 젠더 이슈를 주제로 하는 대화 중 남성 스피커가 자신도 힘들다며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말하는 내내 깨알 같은 맨스플레인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교회에서 마이크를 쥐고 놓지 않는 '남성'이 성차별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모임에서조차 '여성'의 마이크를 가로채고 목소리를 빼앗았다. 교회 내 모습을 재현하듯, 바닥에 떨어진 공감 능력을 몸소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여성에게만 스피커 자격이 주어졌다.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교회 내 여성의 지위는 낮고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도 자리매김하기도 어렵다. 여성 사역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부당한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면, 예민하고 이상한, 예수님의 성품을 닮지 못한 '죄인'으로 낙인 찍힐 뿐이다. 도리어 피해자인 여성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오랜 시간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그렇게 교회를 떠난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 피해자들은 교회를 떠났다. 확실한 건 그들 대부분이 가해자와 그에 침묵·동조한 교회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쫓겨났다'는 것이다.

구성원 60% 이상이 여성인데도 남성 기득권으로 옹골진 한국교회는, 여성에게 치밀한 구조적 폭력을 가한다. 강대상을 독점한 남성 사역자의 발언은 스스로 부여한 신적 권위에 힘입어 여성에게 위력을 행사한다. 교단의 여성 안수 여부와 상관없이, 교단이 달라져도 여성에게는 목사라는 직책만 주어질 뿐 남성 중심 구조는 동일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리에게 절망은 있었으나 포기는 없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만 들려왔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일어난 일들을 나누며 함께 분노했다. 하나님께서 과거의 나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함께 분노하고 계시는 듯했다.

밤 10시에 시작된 대화는 다음날 새벽 5시가 가까워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날 우리의 대화에 대한 남성 목회자들의 비난과 조롱 섞인 평가들이 간간이 들려오긴 했지만 이전과 달리 당당할 수 있었다. 사역을 하던 시절에는 성 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남성 사역자의 작태에도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했다. 개인이 다수 권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부당함과 싸우려는 여성들이 곳곳에 있다.

열악한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맡겨진 영혼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버티는 여성들이 자랑스럽다. 예전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좌절하고 절망하는 여성 사역자가 이 글을 본다면, 언제든 당신에게 용기가 돼 줄, 당신과 같은 여성들이 여기에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우리 여성들은 연대를 통해 가부장적 한국교회에서 눌린 사람들의 목소리, 약자들의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아 가고 있다. 다 된 것 같았던 가부장제 교회에 우리 방식대로 성 인지 감수성을 뿌리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태인 /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전도사로 사역하다 여성 사역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탈피, 현재는 교회 내에서 '사모'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사모 호칭과 역할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여성적 혜안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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