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5년 차 발달장애 청소년 부서의 교사입니다. 제가 교회 내 장애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민망한 마음이 큽니다. 저희 부서만 해도 10년이 넘도록 교사로 섬겨 주시는 분이나,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시는 분, 특수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분 등, 차별을 더 깊이 체감하는 분이나 전문성이 뛰어난 분이 많거든요. 그런데도 용기를 내 보는 것은 사랑청소년부를 섬기기 전에는 저 또한 사랑부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낯설게 느꼈던 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교회와 우리가 넓혀야 할 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해요.

'발달장애 부서'의 방향에 대하여

현재 저희 교회 발달장애 부서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1, 청년 2 총 4개 부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장애·비장애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밑거름을 만들어 결국 부서가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해 왔어요. 이를 위해 매월 셋째 주를 통합 예배 주간으로 정해, 발달장애 부서 예배 없이 일반 교육 부서에 예배하러 갔고요.

그런데 저희 부서 아이들의 통합 예배 참여율은 점점 낮아졌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지정 구역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다 오는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힘들거든요. 중·고등부 아이들이 사랑부 예배에 참여하는 쪽이 통합에 가까운 방법이 되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나왔지만, 강제할 수는 없기에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통합 예배는 사라지고 부서 내 찬양 예배가 생겼어요. 완전한 통합이 어려운 현재로서는 아이들 특성을 온전히 존중하고 함께 예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장애·비장애 통합, 정말 불가능할까요?

발달장애 부서만의 노력으로는 교회 내에서조차 통합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 또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종종 보는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무서워했던 사람이었으니 이해되는 부분이에요. 조용한 장소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자기 몸을 때리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모르는 사람의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청소년부 5년 차, 이제는 대중교통에서 그런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아이들 같아요. 버스에서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손을 반복해서 흔드는 친구를 보면 '바람의 결을 좋아하는구나, 기분 좋은 느낌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하철에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휴대폰 기종을 묻는 친구를 보면 '전자 기기에 꽂혀 있는 게 꼭 OO이(부서 학생) 같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온기를 담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확장되더라고요.

이 사회를 살아가는 발달장애인들이 그런 따뜻한 시선을 받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회에서조차 배제되고, 눈총을 받기 일쑤예요. 1년 전, 발달장애 어린이·청소년 부서는 교육 부서에 속해 있다가 장애인사역위원회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 계기는 '교육부 특별 새벽 기도회'였는데요. 한 주간 교육 부서 아이들이 새벽 기도로 새 학기를 준비했고, 사랑어린이·청소년부도 함께 참여했지만, 모든 기도 제목과 행사는 비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까닭입니다. 이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 교육 부서의 행사에서 동등한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자주 있었어요. 저희 교회 교육 부서의 문제만은 아니죠.

당신의 불편함이 배제의 이유가 되나요?

어떤 교인들은 발달장애인이 공동체에 함께하는 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편해하는 기색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특히 청년부에서는 "주일에 편히 나눔 하고 교제하러 왔는데 왜 이런 불편을 감내해야 하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속상함을 넘어 화가 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청년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청년부 수련회에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발달장애 부서 청년 교사들이 팀을 따로 꾸려 참여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발달장애 청년들과 수련회에 함께하기 위해 제안했던 방안 중 하나였어요. 구분하고 분리하는 방법은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그쳤지만요.

물론, 다른 청년을 불편하게 하는 발달장애 청년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은 꼭 필요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용인해야 하는 것도, 아예 배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건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 보통은 리더들이 어디까지 이해하면서 어떤 부분을 제재해도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어요. 때문에 장애인사역위원회 목사님을 청년부 리더 모임에 모셔서 장애 이해 세미나를 진행하며 발달장애를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청년부에서 장애 이해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면서, 교회에서 전 교인을 대상으로 이런 세미나를 진행하지 못하는 부분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5년째 느끼지만, 발달장애인을 향한 눈총은 청년부에만 있지 않거든요.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요

부서에서 했던 특송 중 '우리가 꿈꾸는 나라'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는 "사자와 어린양이 뛰노는 그곳, 어린이 독사 굴에 손 넣어도 되는 그곳"이라 표현하는데요. 언젠가 길에서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해 찾으시는 장소까지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이 더 따뜻해지면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은 더불어 사는 기쁨과 사랑이 있는 세상을 빚으셨을 텐데, 우리는 내가 편한 게 우선이고 나만 편하게 살려고 해서 서로 상처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비장애 교인이 우선인 교회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사랑하듯 나를 먼저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님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곁에서 5년을 느꼈을 뿐인데도 속이 상하는데, 평생 배제와 질시를 온몸으로 느끼는 발달장애인, 아니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을 지키며 사랑으로 돌보시는 부모님들 마음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더더욱이요. 그러니 우리 교회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면, 자연스럽고도 무심하게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주위에 장애인이 있지만 낯설게 느껴진다면, 내 시야가 좁았던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겠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 낸다는 교회에는 꼭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새해에는 교회 안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글을 줄여요.

이선영 / 사회적 감수성이 현저히 낮은 교회가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가득한 청년. 교회에 매일 실망하지만 아직까지는 어찌저찌 붙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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