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교회 친구로부터 한 기독교 데이팅 어플을 소개받았다. 문화인류학적 호기심이 나를 앱 다운로드 화면으로 인도했다. 앱을 켜자마자 창세기 2장 18절 말씀이 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다음 화면에는 만남이 성사돼 데이트를 진행 중인 커플 한 쌍, 결혼에 성공한 커플 두 쌍의 사례가 띄워져 있었다.

작정하고 결혼을 권하는 앱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앱은 아무개 장로 목사 등이 참여하는 가정 사역의 일환으로, 홈페이지에 "청년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교제하여 행복한 크리스천 가정을 이루는 열매로 맺어지길 축복한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인지 가입 조건이 꽤 까다롭다. 장난스러운 가입은 사절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실명과 출석 교회를 밝혀야 하고, 신분증까지 찍어 제출해야 한다. 프로필을 빼곡하게 적어 내고 나면 가입 승인까지 하루 넘는 시간이 걸린다. 운영팀이 프로필을 일일이 검토해 승인 처리를 하기 때문이다. 몇몇 질문에 대충 답변해 봤다.

Q: 당신의 매력이 뭔가요?
A: 잘 모르겠는데요.

결과는 반려. 자꾸 가입이 반려되는 탓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영팀 보시기에 좋을 만한 성실하고 일관된 답변을 내놓아야 했다.

어쨌든 내 관심사는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이런 앱을 사용해서 어떤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다양한 하위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전국 2만 개 교회 20만 청년들이 사용하는 인기 앱이라는 이 어플을 기준으로 본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타인에게 소개를 받음직한 기독 청년의 자격을 승인받아 '건강한 믿음의 가정'을 세울 수 있다고 분류될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가입 요건을 꼼꼼하게 읽었다. 일단 자녀 없는 미혼 남녀여야 한다. 사회적 질서 및 미풍양속에 문란이 되는 행위자도 안 된다고 한다. 아니, 사람이 '돌싱'일 수도 있고, 자녀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미풍양속에 문란이 되는 행위자가 대체 누구인지도 애매하다. 이 첫 번째 관문을 넘지 못하고 탈락해 버릴 사람들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들의 사정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뭐, 세상적으로 보면 좋은 결혼 상대가 아니긴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든 말든 하여간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거지, 오케이. 일단 그렇게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넘기자 신앙고백과 기도 제목을 입력하는 란이 나타났다. '세상의 기준을 바꾸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오랜 염원을 적었다. 벌써부터 뭔가 모순이 생겨나는 것 같아 인내심이 빠르게 소모됐다. 이후 뻔뻔하게도 출신 학교, 재직 회사 등을 적는 란이 연달아 나왔고, 나는 그만 초반의 기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야, 이거 학교랑 전공을 그대로 쓰라고 하는데?" 당황해서 친구에게 묻자 친구는 "거기서부터는 '듀오'(결혼 정보 회사)의 영역이기 때문이지"라고 답했다. 앱에 나온 답변 예시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K대 연극과'처럼 쓰지 말고 '서울대 경영학과'라고 쓰라"는 문구를 읽고 감탄했다. 하나님… 왜죠?

슬슬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그냥 한번 써 보자. 끝까지 가 보자! 내가 졸업한 학교와 현재 직장을 적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세상적인 조건을 따지는 걸 보면, 학벌과 직업을 맞춰 상대를 추천해 주겠다는 뜻이겠지? 자연스레 상대의 스펙을 기대하게 됐다. (잊지 말자! 이 어플의 목적은 신앙인끼리 만나 행복한 크리스천 가정 이루기다!)

관계란 기본적으로 유·무형 재화의 교환이다. 연애 또한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매우 노골적인 거래에 가깝게 해석돼 온 역사가 있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돌베개)에서, 데이팅 어플이 남녀 관계에서 가장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지향하기 위해 '무엇을 거래할지'의 범주를 보다 명확하게 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만든 시스템이 내 특징을 남들이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번역하고 항목화해 준다. 심지어 우리는 해시태그화된다. 무엇을 내세워 주고받을 것인가? #외모 #돈 #학벌 #취미 등등. 믿는 사람끼리 하는 이 데이팅 어플에는 #신앙이 추가된 것인데, 이렇게 데이트 경제 시스템에 신앙을 하나의 '거래 항목'으로 포섭한 이 앱은 두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 첫 번째, 신앙을 측량해서 자원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한 것 같긴 하다. 이런 앱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그 근거가 된다. 여기서는 프로필에 배치한 여러 장치들 - '교회에서 맡은 역할은?', '성경 인물 중 어떤 타입인가요?' 등의 질문이 촘촘하게 이어진다 - 을 통해 신앙을 측정하고 가늠할 수 있는 무엇으로 만든다. 앱을 통해 남의 사진을 보면서 외모를 평가할 수 있다면, 신앙 또한 여러 장치를 통해 평가가 가능해진다.

또 #신앙 항목이 없는 타 어플에서 나와 매치되는 사람의 스펙 A와 본 어플에서 매치되는 사람의 스펙 B를 비교해 'A - B'를 단순 계산해 보면, 시장에서 측정되는 신앙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주어진 현상이 그랬다는 것이다. 만약 신앙을 이런 식으로 계량화하기 싫었다면, 앞서 기입해야 했던 세상적 조건도 묻지 않았어야 했다. 참고로 나는 믿는 남성을 만나는 값이 좀 비싸다는 사실을 배웠다.

- 두 번째, 그래서 이 가능함이 이대로 괜찮은가?

신앙을 자원화하고 핵심 항목으로 내걸었으나 동시에 세상적 조건도 놓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어플 내 연애관은, 나를 건강(?)과 행복(?)과 신앙의 가치(!) 사이에서 진동하는 분열된 위치에 놓았다. 어플은 이 혼란을 책임지지 않고, 이중적인 행동을 종용하며 분열을 부채질한다. 이를테면 신앙 외의 조건을 보되, 노골적으로 '봤다'고 말해선 안 된다. 어플 공식 블로그에 운영진이 남긴 어플 사용 가이드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직접적인 부위보다는, 인상 혹은 스타일이 좋으시다고만 개떡같이 말해 줘도 우리 ○○(앱 이름)녀들은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아, 나 예쁘다고?"

내 곁에서 이 혼란을 즐겁게 구경하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 데이팅 앱의 블랙코미디적 웃김은 미칠 듯이 세속적인 조건들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덮어 마치 '세상과 다른' 것처럼 만들려는 눈물겨운 시도가 제3자에겐 너무 명백히 보이지만, 그 안의 당사자들은 그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척 역할극을 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아."

세상적 기준과 신앙을 같은 선상의 항목으로 놓고 들이밀듯 매칭되는 구조는, 앞서 대강 설명했듯이 '신앙에 값을 매기는' 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후기를 찾아보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남성이 여성의 '신앙심'을 탓하는 유의 내용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여느 데이팅 어플이 그러하듯 이 어플에도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데, 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 쪽, 즉 여성의 신앙이 의심받는 구도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인상 깊게 읽었던 후기를 다소 순화해 첨부하며 두 번째 의문을 곱씹어 본다.

"호감이 있어 만남 요청을 보냈지만 계속 답이 없네요. 이 앱은 목적이 돈벌이인가요? 기독교를 믿는 여자들의 헛된 신앙심인가 봐요. 개념이 없고 천사가 아닌가 봐요. 기독교 신자들이라면서 돈 따지고 외모 따지고 뭐예요?"

그러게, 뭘까. 내가 천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래도 나는 이 앱과 안 맞는 것 같다.

*이 글은 심정용의 도움을 받아 썼습니다.
한유리 / 머리 아플 때 시편 23편 부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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