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선명한 초록색 잡지. 작년 9월 어느 날 사무실로 배송된 이 잡지의 정체는 '평화 저널 <플랜P>' 창간호였다. 사회적으로는 코로나19가 한창이고, 교계는 온라인 총회로 바쁜 시기였다. '평화'를 생각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냥 책장에 꽂아 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나에게나 사회에나 평화가 필요하지.' 한동안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한 꼭지씩 읽어 보았다.

<플랜P>는 작년 9월 창간한 계간지다. 12월 15일 선명한 빨간색 2호(겨울호)를 펴냈다. 알파벳 P로 시작하는 말을 각 호의 주제로 삼았다. 1호는 People(사람), 2호는 Pause(멈춤)였다. 발행 전 각 주제에 맞는 포럼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싣는다. 평화운동가와 단체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설문 조사를 통해 데이터화를 시도했다. 영화·책·음반 등 문화영역을 평화적인 시각으로 살펴보고, 독자들이 일상에서 평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챕터도 있다. 여순 항쟁 같은 주목받지 못한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는 내용도 있고, 코로나 시대 육아하는 엄마들의 솔직한 이야기도 담았다.

한 권당 100쪽에 달하는 지면에는 평화에 대한 내용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주제도 일상의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점이 좋았다. <플랜P>는 나에게 숨 가쁘게 지내던 일상에서 잠시나마 평화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잡지가 됐다.

2호를 펴낸 기쁨도 잠시, 3호를 준비해야 하는 압박감 속에 지내는 <플랜P> 발행인 김복기 목사와 편집위원 김가연 씨를 만났다. 김복기 목사는 캐나다 메노나이트교회(Mennonite Church Canada) 선교부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서는 아나뱁티스트센터(KAC) 총무를 지냈다. 김가연 씨는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교(EMU)에서 갈등 전환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이자 피스모모에서 평화저널리즘 팀장을 맡고 있다. 인터뷰는 1월 13일 서울 종로 엔피오피아에서 진행했다.

<플랜P> 김가연 편집위원(왼쪽)과 김복기 발행인. 사진 찍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플랜P> 김가연 편집위원(왼쪽)과 김복기 발행인. 사진 찍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플랜P>는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김복기 / 한국에서 평화운동을 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한국은 평화 담론이 남북문제에 많이 치우쳐 있었다. 나는 평화에 대해 강의할 때 4개 매트릭스로 설명하곤 한다. 개인의 평화, 하나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생태·환경과의 평화다. 통일 문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일상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한 가지는, 평화 단체가 여러 개 있는데 서로 잘 모르다 보니 협력도 잘 안 되더라. 매체를 만들어서 소개하고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6월, 이런 매체를 만들어 보자고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그때 가연 씨를 비롯한 편집위원들과 연결됐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좋은 분들로 팀이 구성됐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하고 있지만.(웃음)

김가연 / 김복기 선생님 전화를 받고 '그런 취지라면 당연히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2019년 6월이면 셋째를 낳고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나는 '피스 빌더'(Peace Builder) 정체성이 있었고, 내가 관심 있는 평화 저널리즘과 연결되는 지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역량 문제가 고민이 되지만 같이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김복기 / 지금도 가연 씨 첫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왜 이제야 전화하셨어요?"라고 했다.(웃음)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제안자이기는 했지만 과연 좋은 팀이 꾸려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통화를 하고 뭔가 되겠다 싶었다.

- 2호까지 펴낸 소감은?

김가연 / 솔직히 창간호를 내기까지 '이게 제대로 나올까' 싶었다. 그런데 1호가 제법 잘 나왔다. 2호는 좀 더 신경 쓰니 더 잘 나왔다. 저널이 나오자 사람들이 반응하고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게 그저 신기하다. 무엇보다 상품성 있는 결과물이 나와서 좋다. 잡지는 그 자체로 지속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데 홍보할 마음이 생긴다. 앞으로 크라우드 펀딩도 하고 싶다. 기대감이 생겼다.

김복기 / 우리 편집장과 편집위원들이 다들 대단한 사람이다. 한 분 한 분 역할이 기가 막히다. 평화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하지만 다들 본업이 따로 있고 <플랜P>에서는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편집장도 일정이 바빠 이틀만 일한다. 이런 현실에서 100쪽짜리 계간지 내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 편집회의를 거의 매주 한 것 같다. 겨울호를 내면서는 예상 외로 과부하가 걸려 힘들어하신 분들도 있었다. 이제 또 슬슬 3호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걱정이다.

김복기 목사는 발행인으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을 빌려주는(?) 역할….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복기 목사는 발행인으로서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을 빌려주는(?) 역할…. 뉴스앤조이 구권효

- 봉사로만 만든다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평화 저널을 내는 데 구성원들이 평화롭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 아닌가. 과연 평화 저널은 평화롭게 만들어지는가.(웃음)

김가연 / 우리는 편집회의를 서클(둥그렇게 모여 앉아 한 명씩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청·존중 대화 방법)로 한다.(웃음)

- 와우, 그게 가능하다니….

김가연 / 나도 처음에는 '아이디어 회의하는데 서클이 무슨 말이냐' 싶었다. 적응이 안 됐는데 계속 하다 보니 좋더라. 자연스럽게 근황도 나누게 되고. 인내심도 생기고.(웃음)

김복기 / 사람이 일로만 만나면 너무 팍팍해지지 않나.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게 서클이 가져다주는 큰 장점이다. 이은주 편집장이 서클의 대가라서 아주 잘 진행하신다.

편집회의를 서클로 하자고 해서 경악했다는 김가연 씨. 지금은 좋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편집회의를 서클로 하자고 해서 경악했다는 김가연 씨. 지금은 좋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찌 보면 한없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거창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밋밋한 느낌이랄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평화는 멀어 보이는 주제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플랜P>가 반갑기도 하면서 선뜻 손이 안 가기도 한다.

김복기 / 창간호에 우리 김상덕 편집위원이 이런 글을 썼다. "평화는 모호하고 폭력은 분명하다. 평화에 대한 정의도 구체적인 설명도 쉽지 않다. 누군가 당신에게 가장 최근에 목격한 평화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평화는 뭔가 밋밋하게 보인다는 질문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플랜P> '배움(Learning)' 파트를 보면 실제적인 내용이 많이 나온다. 창간호에서는 '존엄 지키기'와 '마음 챙김'을, 2호에서는 '침묵 고독 성찰'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서 나부터 실천해 본다. 평화가 손에 잘 안 잡힌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이런 실제적인 내용으로 챙기려 한다.

김가연 / 이번 겨울호에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을 실천해 봤는데, 쉽지 않더라. 배달도 못 시키고 장도 못 보겠고 애들 장난감도 못 사 주겠고. 이미 제로 웨이스트를 노력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게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잡지를 만들면서, 만들기 위해서 해 본 것인데, 내 일상에서 평화를 위한 멈춤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평화를 일상으로 어떻게 끌어올까' 고민한다. 나는 '다양한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육, 정책 제안, 저널리즘, 갈등 조정, 예술 등 다양한 툴로 평화를 푸는 분들이 있다. 이 부분은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평화를 먹기 좋게 알릴까. 그게 우리 숙제다.

- <플랜P>를 통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가연 / 평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평화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읽는 잡지가 아니라 그 바운더리를 넘어섰으면 한다. 평화를 얘기하는 건지 모르고 읽었는데 '어?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 내가 잡지를 만들면서 고민하고 변화했던 부분을 독자분들도 경험하셨으면 좋겠다.

김복기 / 지인 중 평화에 대해 오래 연구한 사람이 있다. 그가 이번 2호를 보더니 나에게 전화를 했다. 평화에 대해 연구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 같았다더라.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은. 그런데 <플랜P>를 보면서 길을 찾았다고 했다. 몇 사람이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저널이 되면 좋겠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없는 데서 두 번 잡지를 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하지만 발행인의 과제는 안정적으로 잡지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내 사비를 빌려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하고 있는데.(웃음) 애초에 거대 자본으로 잡지를 찍어 내는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독자분들이 '정기 구독'을 하시거나 '협력 회원'이 되어 주시기를 간청한다. '구독'과 '좋아요'가 아니라, '구독'과 '회원' 부탁드린다.

※ <플랜P> 홈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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