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선생님들이 너 되게 싫어했어."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20대 초반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가 던진 말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학창 시절 왜 그렇게 선생님들한테 맞았을까 얘기하던 중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겠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삐딱하고 까불고 주의 산만했던 나를 선생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 그렇다고 그렇게 개 패듯이 맞을 일이냐?" 우리는 어떤 선생님이 어떻게 때렸는지 이야기하며 웃었다. 욕하면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선생님들에게 맞은 기억이 8할이다. 물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감정적으로, 비인격적으로 맞을 정도로 큰일을 저지른 적은 없다. 존경할 만하고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나는 교사를 증오했고 공교육을 불신했다. 졸업 후 10년 지나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체벌이 금지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격하게 환영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교권 추락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회복적 정의'를 교육 영역에 적용한 <공동체가 새로워지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좋은교사)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를 이렇게 대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이었다. 체벌로 다스리는 교사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는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서도 적용됐다. 힘이 센 아이에게 복종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것이 학창 시절부터 몸으로 배운 힘의 논리다. 교사들이 회복적 관점으로 학생들을 대했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공동체가 새로워지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 / 박숙영 지음 / 좋은교사 펴냄 / 216쪽 / 1만 1000원

"이처럼 강압과 벌, 보상은 학생들로 하여금 내면의 동기보다는 외적 평가나 기준에 의해서 행동하게 함으로써 도덕성 발달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강압과 벌, 보상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하게 하는' 것으로 '힘'에 의한 질서를 배우게 한다." (36쪽)

"소수에게 힘이 집중되는 학교·학급 '짱'의 존재, 학교 폭력이 발생해도 침묵하는 '방관자', 약자에 대한 따돌림 현상 등등… 오늘 우리가 학교에서 겪고 있는 폭력적 현상들은 힘에 의한 질서로 구축된 현 사회구조의 결과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대로 '힘의 논리'로 살고 있으며, 그들이 만들어 낸 작은 사회인 교실은 이 사회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축소판일 뿐이다." (129쪽)

한 가지 희망적인 건 회복적 생활교육이 의외로 넓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을 통해 학교 폭력 사건에 회복적 대화 모임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기존 응보적 정의 관점에서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인지하고, 회복적 정의 관점을 교육 영역에 꾸준히 시도해 온 일부 교사들 노력의 결과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가 무려 17쇄를 찍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저자 박숙영 소장(회복적생활교육연구소)은 한국에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교육 영역에 적용한 선구자다. 2월 4일 경기도 용인 박 소장 자택에서 그를 만나 2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내 학창 시절의 억울함(?)을 털어놓자 그도 자신의 흑역사(?)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회복적 생활교육의 창시자처럼 고평가돼 있다며 부담스러워하는 박숙영 소장 이야기를 들어 보자.

위계·권위에 의한 질서는 시효 끝나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기회와 권한 주는 교육으로
회복적 교육 운동가 박숙영 소장은 교직을 내려놓고 나서 더 바빠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회복적 교육 운동가 박숙영 소장은 교직을 내려놓고 나서 더 바빠졌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기독 교사 모임 좋은교사운동 산하 회복적생활교육연구소 소장입니다. 윤리 과목 교사로 25년간 교직에 있다가 명예퇴직했고요. 지금은 회복적 생활교육을 교사들에게 알리고, 학교 폭력 당사자와 학부모들, 교사들을 만나 대화 모임을 열기도 하고요. 회복적 경찰제 자문위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민사 조정위원, 한국교원대학교 정책대학원 강사 등을 하고 있습니다.

- '회복적 생활교육'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회복적 정의의 교육적 실천입니다. 2011년 좋은교사운동과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이 함께 고민한 결과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어요. 회복적 정의 운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존엄·관계·공동체·정의 회복인데요. 이에 따라 회복적 생활교육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존엄한 개인이 민주 시민이라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활 양식과 문화를 배우는 과정'이에요.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사회정의'를 다루는 것이다"라고 강조해요.

- 특별히 사회정의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기존 교육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하고 싶어 그런가 봐요. 교육을 통제 관점으로 보지 않고 사회참여 관점으로 본다는 거죠. 아이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민주 시민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지에 방점이 있어요. 그래서 회복적 수업과 생활교육은 아이들에게 기회와 권한을 주는 방식이죠.

지금까지의 교육은 그렇지 않았어요. 교사가 모든 걸 다 책임졌죠. 아이들은 어른들 말 잘 듣는 게 미덕이었고요.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교사의 역할과 책임은 아이들 삶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한 발 뒤로 물러나 힘을 빼는 거예요. 이런 점을 명료하게 말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회복적 생활교육이 아니라 그냥 '회복적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려 해요. 꼭 생활지도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수업 영역에도 많이 활용되거든요. 학생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회복적 훈육,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까지 포함하면 회복적 생활교육, 수업과 교육 전반에까지 적용하면 회복적 교육이 되는 거죠. 회복적 생활교육은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 회복적 생활교육이 제 생각보다 교육 영역에 많이 퍼져 있던데요.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가 임용고시생 필독서라고. 수년 사이에 이렇게 빨리 퍼진 이유가 있을까요?

학교에서 위계·권위에 의한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거죠. 아이들을 늘 객체로, 대상으로 보는 교육도 시효가 다 했고요. 기존에는 아이들에게 나다움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나 학부모, 사회와 같은 외부 기대에 맞는 사람이 돼라고 가르쳤어요. 이런 교육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아요. 교사들도 대안이 필요한데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그런 책도 없고. 그래서 2014년에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를 급하게 썼어요.

- 벌써 17쇄던데 인세는 얼마나….

인세는 모두 좋은교사운동으로 들어간답니다. 사실 좋은교사운동이 아니었으면 책을 낼 수도 없었어요. 당시 대표였던 정병오 선생님이 책을 빨리 내야 한다며 저를 4개월 동안 밖에 못 나가게 했어요. 그래서 나온 책이에요, 하하.

- 질문이 죄송합니다.(웃음) 다시 돌아와서. 회복적 생활교육이 널리 알려지는 건 좋은 현상인데, 빨리 퍼져 나가다 보면 방법론적으로만 소비되는 부작용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회복적 생활교육을 테크닉으로만 이해하고 몸은 기존 위계 질서 문화에 그대로 있는 거죠. 교사들이 기존 체제에서 가지고 있던 습관이나 신념을 바꿔야 해요. 이걸 직면하는 데에는 두려움이 따르죠. 현재 학교라는 조직이 회복적 가치를 잘 담아 낼 수 있는 구조·문화도 아니고요. 그래서 도구 뒤에 숨어 있는 의도와 철학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교사들이 먼저 자기 자신을 바라보라고.

그럼에도 장점은 명확하죠. 갈수록 비인간화하는 시대에 관계를 회복하는 교육이니까요. 소수의 권한을 가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집단 지성을 추구한다는 점도 그렇고.

제가 책에 인용한 조안나 메이시 말처럼, 지금은 "낡은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새것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과도기인 것 같아요. 응보적 교육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회복적 교육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죠. 역시 조안나 메이시가 말한 것처럼, 옛것을 떠나보내는 데에는 호스피스의 역할이, 새것을 맞이하는 데에는 산파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낡은 것에 대해 호스피스 역할, 새로운 것에 대해 산파 역할이란 무엇일까? 호스피스 봉사자는 생명이 다한 사람과 함께 애도하는 마음으로 죽음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사 연수를 다니면서 다양한 선생님들의 반응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새로운 시선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를 갖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은 자신의 교직 생활과 생활지도에 대한 비난으로 여기면서 저항하고 분노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중략) 교직에서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신 모든 교사들의 노력과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많은 학생들은 교사들의 이러한 헌신과 사랑으로 많은 성장과 배움을 이루어 왔다. 우리는 자칫 새로운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치 과거의 것이 모두 잘못됐다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함께 손을 잡고 울며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용기를 서로에게 북돋아 주어야 한다. 교사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교육적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성찰과 반성을 함께 끌어안는 자세가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산파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변혁의 시기에 새로운 대안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과 저항에 함께해야 한다. 산모의 고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과 같이,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전환하자." (207~208쪽)

'교사 하다가 망한 썰'
시간 투자 없이 효과 있는 교육 없어
결국 '교사로서의 정체성'이 희망
처음 학생을 때린 날에는 밤에 잠도 못 잤다고 한다. 근데 그것도 그날뿐이었다고…. 뉴스앤조이 구권효
처음 학생을 때린 날에는 밤에 잠도 못 잤다고 한다. 근데 그것도 그날뿐이었다고…. 뉴스앤조이 구권효

- 어쩌다 회복적 생활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교사를 하다가 철저하게 망했어요. 제가 사실 회복적 생활교육을 모를 때도 학급 운영에 대해 강의 다니고 했어요. 스스로 '괜찮은 교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전 방식들이 작동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은 점점 반발하고 저항했어요. 저는 분노했고 학생들과의 관계는 깨져 버렸죠. '나는 훌륭한 교사가 아니었구나', '아이들은 내가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한 대상일 뿐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때는 '교사란 학생들을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이야'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했죠. 게다가 저는 윤리 교사였으니… 공허하더라고요. 솔직히 입시 위주 교육에서 윤리나 도덕은 쉬운 과목이잖아요. 다들 시험 보면 100점 맞는데 삶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 체벌도 처음만 어렵지 금방 익숙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매를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나를 보게 됐죠. '이게 무슨 짓인가', '학교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건가' 고민이 많아졌어요. 몸도 망가져서 결국 2008년 병가 휴직을 하게 됐죠.

그런 차에 평화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던 중 2011년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를 찾아가게 됐어요. 당시 신앙도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고 공허했는데 그곳에서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KAC에서 지금의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이재영 원장님을 만나 회복적 정의에 대해 알게 됐죠. 이걸 알게 되니까 빨리 교육 영역에 가져가야겠다 싶더라고요. 무턱대고 좋은교사운동에 찾아가서 말했어요. "제가 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이후 몇 년간은 정말 확신을 가지고 달렸던 것 같아요.

- 그렇다고 교직까지 관두시다니….

원래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이미 학교 밖에서 진행해 놓은 운동이 너무 커지기도 했어요. 교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도저히 둘 다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분명 학교 안에서도 역할이 있겠지만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적으로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아 나는 퇴직할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 실제로 대화 모임 등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며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제가 천안지원 민사 조정위원을 하게 된 건 임수희 판사 때문이에요. 그와는 비폭력 대화 훈련 과정에서 만났는데요. 자신에게 들어오는 사건 일부를 회복적 정의 관점으로 풀어 보고자 했던 거죠.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민사소송까지 번진 사건이 있었어요. 참 어려운 사건이었는데 이를 회복적 대화로 풀고자 저를 부른 거예요.

피해자의 어머니와 가해자 부모들이 모여 회복적 서클을 했어요. 5시간 동안 대화한 후 결국 합의에 이르렀어요. 마지막에 그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당신들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고. 대화 모임 초반에만 해도 격하게 나오시던 분이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정말 '천사가 왔다 갔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 사건 판결문은 2018년 12월 30일 <경향신문>에 전문이 실리기도 했다. 임수희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일차적 교육 권한을 가져야 하는 담임교사는 교육에서 배제된 채 사건 조사자의 지위로 전락하거나 단지 학폭위 처분 결과를 따르기만 하는 부수적인 지위에 머물고, 갈등 당사자인 아이들끼리는 막상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고 사과하고 화해하고 어떻게 다시 함께 사이좋게 놀 수 있는지는 전혀 배우지도 못한 채 상처와 자존감이 손상된 채로 각각 따로 방치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나 교장, 교사들이 이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하는 상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현행 학교 폭력 처리 절차가 아닌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할까요."

박숙영 소장은 교사의 역할이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 회복적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이를 학교에 적용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입시 경쟁 구조 속에서 교사들도 학생들도 시간이 없으니 회복적 교육을 배우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 시간이 없어요. 그렇다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교육 방법도 없고요.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시간을 낼 수 있는 학교 구조로 바뀌어야겠죠. 게다가 작년에 제도가 개선되기 전까지는 학교 폭력 사건을 회복적 대화 모임으로 푸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어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회복적 생활교육을 배우고 실천하시는 선생님들은 2011년부터 계속 늘고 있어요.

저도 신기해서 한번은 선생님들한테 물어봤어요. 대체 왜 이걸 하시냐고. 많은 분이 같은 답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교사니까요." 회복적 생활교육을 했을 때 경험하는 교사로서의 보람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유보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미 시효가 끝난 패러다임을 다시 작동시킬 수는 없다는 거죠. 결국 '나는 교사다'라는 정체성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더라고요. 그게 희망이고요. 결국 제도까지 바꿔 냈죠.

- 마지막으로 회복적 교육 운동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교사로서 느낀 점들을 서클로 풀어 보는 시간이 있었어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코로나가 확산할 때 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왜 저렇게 모이고 돌아다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나는 거죠. 사회가 점점 누군가를 혐오하고 극단적으로 편 가르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화해·용서·소통을 이야기하는 회복적 정의는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고 봐요. 교육 영역에서 사회정의를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결국 '말하기-듣기'죠. 있는 그대로 말하고 들어 주는 것. 그런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일. 저는 이 '말하기-듣기'가 엄청난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대화 모임을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안전한 대화의 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대화가 사회 여러 영역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잘못한 행동을 한 학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 그 자신의 내면의 힘에 의해 가능할 뿐이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변화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분노와 폭력의 공간을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판단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판단을 멈춘다는 것은, 상대방의 문제점과 무지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의 행동에 대해 재판관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에 머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학생들과의 긴장과 두려움이 있는 공간을 평화와 은총이 초대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고 있는 일들을 사랑으로 감싸면서 변화의 공간을 만들어 줄 때,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지고 평화와 사랑이 공간에 들어서며 용서와 사과, 화해가 가능해질 것이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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