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에큐메니컬 활동가로 현장을 누벼 온 이관택(41)·정유은(34) 목사 부부가 'L국 평화 사역자'로 인생의 새 여정을 시작한다. 사회 선교 운동 단체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고난함께·전남병 사무총장)에서 활동했던 목사 부부는 4월 30일 L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2019년 고난함께 출범 30주년을 맞아 계획한 '평화 사역자 파송' 사업의 첫 주자다.

에큐메니컬 활동가들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도 드문데, 사회주의 국가이자 기독교 인구가 1.5%에 불과한 불교 국가로 떠난다는 사실은 더욱 생소하다. L국 헌법은 "개인은 자유롭게 신앙을 가질 수 있지만, 남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포교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들고 고난받는 이들을 섬기기 위해 떠난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인터뷰는 출국 이틀 전인 4월 28일 서대문 고난함께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에큐메니컬 활동가로 현장을 누비던 정유은·이관택 목사 부부가 '평화 사역'을 떠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에큐메니컬 활동가로 현장을 누비던 정유은·이관택 목사 부부가 '평화 사역'을 떠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시작은 고난함께의 제안이었다. 고난함께는 부부에게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화해·치유·평화를 매개로 한 활동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지방에서 마을 목회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했어도 해외 활동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부부였다. 고민과 기도 끝에 제안을 수락한 부부는 2년간 인도차이나 지역을 답사하고 '평화 사역'에 대해 공부했다. 2020년 봄 출국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아 1년 만인 2021년 4월 30일 출국 길에 오르게 됐다.

이들이 떠나는 L국에는 1960~1970년대 내전 당시 사용된 불발탄 8100만 개가 땅에 묻혀 있다. 이관택 목사는 "불발탄을 UXO(Unexploded ordnance)라고 한다. 이 나라는 1964~1973년 '비밀 전쟁'이라는 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미국이 공산화를 막겠다며 10년간 2억 6000만 개에 이르는 폭탄을 뿌렸다. 전담 정부 기관이 계속 제거하고 있지만, 지금 속도로 하면 모두 제거하는 데 2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 폭탄으로 인한 피해자가 매년 300명에 이르고 누적 피해자는 5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정유은 목사는 "같은 나라 내에서도 정보의 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도처에 불발탄이 널려 있어서 오히려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는데, 같은 국민 중에도 불발탄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언어를 모르는 소수민족은 불발탄 교육을 받지 못해 사고를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현지 답사 중 '탄피'로 만든 숟가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정 목사는 "현지답사를 위해 씨엥쿠앙이라는 지역에 간 적이 있는데, 식당마다 같은 숟가락을 썼다. 처음에는 현지 전통 숟가락인 줄 알았다. 신기해서 식당에 물어보니 불발탄 탄피를 녹여 만든 숟가락이라고 하더라. 현지 사람들은 그걸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역을 준비하던 중 한국에서 대인지뢰 피해자 사역을 하는 목회자로부터 "지뢰 제거는 국제사회가 앞장서서 하지만, 그 마을을 재건하는 인력은 전 세계 어디나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관택·정유은 부부는 폭탄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 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마을을 세워 나가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평화 사역자로 떠나는 부부는 불발탄 탄피를 녹여 숟가락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사역의 방향을 결정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평화 사역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관택
평화 사역자로 떠나는 부부는 불발탄 탄피를 녹여 숟가락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사역의 방향을 결정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평화 사역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이관택

'평화 사역'이란 무엇일까.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두 부부가 가장 많이 고민한 질문이다. 정유은 목사는 "우리는 '평화 사역자'라고 해서 기존에 있던 이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럴 생각도 없고, 기존에 있던 이들도 나름대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본다"며 "우리가 한국에서 사회운동을 한 이유는 이 나라에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그 땅에 필요한 운동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관택 목사는 선교 초기 학교·병원 등을 세우며 사회 선교에 앞장선 기독교대한감리회 아펜젤러·스크랜턴 선교사나 산업화 시절 노동운동을 이끈 조지 오글 목사를 보며 다양한 모델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다만 지식을 전수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대하며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관택 /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우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야 '평화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교리를 전한다'는 선교 대신 '증인'이라는 말을 쓰려고 한다. 그 지역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가 발견하고, 보는 거다. 거기에서도 분명히 아름답고 희망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 일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동행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고압적인 자세로 대한다거나, 그 사람들을 수동적인 상태로 만들고 우리가 뭔가를 심는다는 개념은 지양해야 한다. 시혜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방식은 안 된다.
 

정유은 / 종교는 다르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는 불교 국가이자 사회주의 국가인데, 보통 인식대로라면 불교인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킨다는 식으로 얘기하기 쉬울 것 같다. 그러나 그 시스템과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먼저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을지 생각하며 만남의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했던 예수 운동의 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은 다르지만 활동가로서 하던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는 4월 30일 출발한다. 3월 21일 'L국평화선교회'는 고난함께 평화 사역자로 떠나는 이들의 앞길을 축복했다. 사진 출처 당당뉴스
부부는 4월 30일 출발한다. 3월 21일 'L국평화선교회'는 고난함께 평화 사역자로 떠나는 이들의 앞길을 축복했다. 사진 출처 당당뉴스

부부가 가려는 곳은 L국 남쪽 P 지역이다. 이관택 목사는 "불발탄 피해 지역 마을에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회복하는 프로세스를 맡아 보려 한다"고 말했다. 우선 가장 큰 장벽인 현지 기후와 언어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에서 2년간 현지 언어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들어가면 첫 1년간은 수도 비엔티안에 머물면서 언어와 현지 문화를 익히며 활동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유은 목사는 "사실은 가 봐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생각한 것은 '열심히 기록하자'다. 처음 2년간은 인터뷰든, 영상이든, 그림을 그리거나 르포를 쓰든 기록하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업을 위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 나라를 너무 모르고 있으니 하나하나 발견해 가며 기록하자는 것이다. 그 작업은 이 나라 국들에게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민들을 위해 지역의 아름다움 또는 상처를 상징하는 물건을 모아서, 그들의 터전과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꿈이라고 했다.

이들은 4월 30일 떠난다. L국에서 발견-연결-동행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사역을 펼칠 계획이다. 2030년까지 10년간 3기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불발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싣고, 이들과 함께 아름다움과 희망을 발견·기록하며,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 소외받고 고난받는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지원·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관택·정유은 부부 후원하기: 카카오뱅크 3333-10-4751265(정유은)

기사 수정: 현지에서의 안전한 활동을 위해, 국가명 등 일부 표현을 변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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