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슬고 이곳저곳 구멍 난 세월호를 보니 왠지 모르게 허무해요. 뉴스에서 인양된 선체를 볼 때도 마음이 힘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네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 세월호가 올라왔다.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 씨(41)는 3월 31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목포신항 현장을 설명했다. 침몰했던 배가 육지에 도착한다는 소식에 김성묵 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낮에 일을 일찍 끝내고 차를 몰고 서울에서 목포로 달려갔다. 저녁 7시께 항구에 도착했다. 철조망 사이로 멀리 1,080일 긴 항해를 막 마치고 쓰러져 있는 배를 볼 수 있었다.

3년 전 제주도에 가기 위해 탑승했던 세월호와 다른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요. 3년 동안 정부는 징그럽게 배를 올리지 않았어요. 대통령이 파면돼서야 며칠 만에 끌어올렸죠. 마치 진실을 원하는 가족을 일부러 막으려는 것처럼요." 성묵 씨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초는 그야말로 세월호 정국이었다. 지난해 겨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언론은 국회 방청객에서 오열하는 세월호 가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헌법재판관 8명이 대통령을 파면했을 때도 세월호 가족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결과를 지켜봤다. 이어 세월호가 뭍으로 건져져 올라왔다.

세월호 생존자는 지난 3년을 어떻게 지냈을까.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 주는 김성묵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3년 전 참사 당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이 한동안 그를 괴롭혔다. 지금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매주 광화문을 찾는다.

지난 3월 17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김성묵 씨를 만났다. 그는 참사 당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져
김동수 씨와 학생들 구조

김성묵 씨는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져 있다.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와 함께 아이들을 구조하다가 제일 마지막으로 배를 탈출했다. 김동수 씨와 함께 선상에서 소방 호스로 밑에 있는 아이를 끌어올렸다. 수십 명을 구조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그때를 후회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배 위로 올렸어요. 근데 그 아이가 제게 그러더군요. '아저씨, 아직 안에 애들 있어요.' 순간 속으로 '응?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가 멍했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일단 선실 밖 난간을 통해 중앙홀로 갔어요. 홀이 보이는 난간 문 앞에서 아이들을 봤어요. 구조하려고 했는데, 배가 기울어 경사가 90도 가까이 됐었어요. 탈출하고 나서 해경에게, 안에 아직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너무 후회돼요."

그 뒤 어떻게 배를 탈출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참사 이후, 사고 영상을 보다 자신이 어떻게 배를 나왔는지 알게 됐다. 난간을 붙잡고 혼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한 어선이 그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선원이 던져 준 밧줄을 잡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선에서 내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동거차도였다. 여기저기서 생존자들의 곡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휴대폰으로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자신은 탈출했다고 알렸다. 그는 그때까지 구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다.

동거차도에서 팽목항에 왔을 때는 전쟁터를 보는 것 같았다. 경찰, 구급대원, 간호사들이 항구 주변을 배회했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취재진, 구경 온 시민들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앰뷸런스, 병원 버스 수십 대가 엔진 소리를 내며 항구 입구에 도열해 있었다. 곡소리, 아우성, 고함, 울음, 여러 감정이 뒤섞인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한 구급대원이 "병원에 가실 분"하며 줄을 세우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김성묵 씨는 그 줄에 그를 쫓아갔다. 팽목항을 세 바퀴 정도 돌고 나서야 버스에 도착했다. 줄에 있던 사람은 모두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고, 버스에 탄 사람은 자기 혼자뿐이었다. 버스는 곧장 목포한국병원으로 출발했다. 

"15인승 버스에 내리고 보니 목포한국병원이었어요. 저 같은 일반인 생존자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어요. 생존자 한 사람이 다시 진도로 돌아가자고 해서, 진도실내체육관으로 갔어요.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 왔고, 사람들이 분주해 보였어요. 기자들도 잔뜩 몰려와 있었고요. 분위기가 무거웠어요. 그때 알았죠. 구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나중에 병원으로 돌아가서야 해경이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해 8월 김성묵 씨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민주당 당사 점거 농성에 참가했다. 그는 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참사 잊기 위해 결혼
뉴스 안 보고 연락도 끊고

참사 직후, 김성묵 씨는 고려대학교안산병원에 입원했다. 그 해 11월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다음 달 바로 결혼했다. 참사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다른 일을 다 잊고 현재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으려 했어요." 김성묵 씨는 뉴스도 안 보고 SNS도 다 끊었다. 세월호 가족들과도 잘 연락하지 않고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했다. 담당 의사도 그에게 외부와 멀리하고 생각을 미뤄야, 참사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스스로를 가두려 했어요. 세월호 가족 분들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러웠거든요. 결혼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죄송했어요. 내 자신에게도 살길을 주고 싶었고요.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잠적했죠."

더 이상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됐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날의 기억이 후회와 분노로 그를 괴롭혔다.

"계속 그런 목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을까. 내가 아이들을 더 살릴 수는 없었을까. 그때 이런 방법을 썼다면, 그때 해경에게 강력히 호소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디에 말하지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멀쩡한 척했으니, 결국에는 가족들에게 짜증으로 분출되더라고요."

계기가 필요했다. 김성묵 씨는 지난해 1월 신촌대학교 예술행동학 강좌를 수강했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퍼포먼스 공연도 준비했다. 수강생들과 연습을 하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쏟아 냈다. 강사도 놀라고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당황했다. 김성묵 씨는 그제서야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정이 속에서 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퍼포먼스 공연을 하고 있는 김성묵 씨. 이를 계기로 참사에 대한 괴로움을 밖으로 쏟아 낼 수 있었다. 사진 제공 김성묵

참사 2년 만에 광장 찾다
민주당 당사 점거, 단식 농성
버텨야겠다는 생각 들어

김성묵 씨는 2016년 3월부터 광화문광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참사가 일어나고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가족을 대면하기 어려웠다.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조용히 리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말 촛불 집회에서는 노란 리본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 줬다.

차츰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하고,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9월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국장을 찾아갔으며, 올해 1월 동거차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등 세월호 가족들이 가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따라갔다.

"유가족들과 함께할 때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동안 나는 왜 살아 돌아왔는지 하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여전히 유가족들과 함께하면서 스스로 하는 질문이에요. 처음에는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더라고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광장에서 리본을 나눠 주고 서명을 받을 때, 질문의 답을 조금씩 찾는 느낌이 들었어요. 매주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광장에 나가고 있어요"

한때는 세월호 희생자 뒤를 따라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유가족과 함께하면서 버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신이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이고, 희생자에 대한 부채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김성묵 씨는 매주 광화문에 나가 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알린다. 그것이 살아 돌아온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김성묵 씨는 지난 3년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탄핵과 구속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선체가 무사히 목포신항에 도착한 것도 다행이고요. 정부를 보면 여전히 불안하긴 해요. 가족분들이 선체에 접근하는 것도 차단하고 있고, 미수습자 수습이나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지 걱정이에요. 하루빨리 미수습자들이 가족 곁으로 돌아오고, 선체 조사도 이행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끝까지 가족분들 옆에서 열심히 도울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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