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영동교회 정현구 목사 설교문(본문: 눅 13:1-9)입니다.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서울영동교회 3월 1일 주일예배 설교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재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 전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고, 한국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온 백성들의 눈과 귀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두 주 전만 해도 한국은 비교적 안전지대라고 여겼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서 어느 나라보다 바쁘게 돌아가던 한국이란 엔진이 일시 정지된 느낌입니다.

'나비효과'란 말처럼, 우한에서 생겨난 바이러스 감염이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온 세계의 삶과 활동을 뒤흔드는 강력한 태풍이 되었습니다.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엄청난 힘으로 세계를 뒤흔들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제 왕래가 끊어지고, 모임이 취소되고, 공장이 중단되고, 경제가 정지되면서 사람들이 다 불안과 공포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적 사건이 되어 버린 코로나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일반 역사 속의 사건들을 통해서는 말씀하시는데, 이 사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와 교훈을 주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재난에 대한 해석

우리는 예수님 당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통해서 그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지금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큰 사건이요 뉴스거리였습니다.

하나의 사건은 유대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인들을 죽여, 그 피로 제사를 드린 사건입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반로마 정서가 매우 강했고, 반로마 저항운동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그때마다 로마는 다시는 그런 반로마적 행동을 생각치도 못하게 하려고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반로마 저항 행동을 했던 갈릴리인들이 붙잡혔고, 빌라도는 그들을 무참하게 죽여서 그 피로 로마의 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들의 처형도 뉴스거리이지만 유대인의 피가 이방의 제단에 드려졌다는 것은 매우 큰 뉴스거리였을 겁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은 당연히 로마에 대해 더 증오심을 가졌겠지만, 또 한편 왜 하필 그들은 그 피가 이교도의 제사에 사용되었을까라는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다른 갈릴리 열심당원보다 더 죄가 많은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에게 임한 불행을 그 사람의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육체로 죽은 이들을 그 명예까지 죽임으로 두 번 죽이는 셈이 됩니다. 간혹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두고 그 이유를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을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 두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죽음은 더 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 박으십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화제의 초점을 죽은 자들에게서 산 자들에게로, '그들'이 아닌 '너희'에게로 돌리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죽은 이들의 죽음을 그들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산 자들에 대한 경고로 보신 것입니다.

산 자들을 향한 경고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은 산 자들을 향한 경고라고 하셨다면, 그 경고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이렇습니다. 빌라도에 의해서 죽었던 갈릴리인들은 로마에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서도 산 자들 중에는 이런 무력 저항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믿고 무력 행동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역시 앞서 죽은 자들과 같이 된다는 경고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전하셨지만, 듣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나라가 무력과 투쟁을 통해서만 온다고 그들의 생각만 고집하며 행동한다면, 그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된 백성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몇 명의 갈릴리인들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인데 이것이 실제 AD 70년 유대 전쟁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죽은 자에 대한 심판이 아닌 산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로 보게 하신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 사건

이어 또 하나의 예를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망대 공사 중에 18명이 죽는 사건입니다. 당시로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이 경우도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죽은 것은 그들이 다른 이들보다 죄를 더 지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한 개인의 불행을 보고 그의 죄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방식에 익숙하여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죽은 이들을 또 한번 더 죽이는 것입니다.

망대 사고를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망대가 왜 무너졌습니까? 우연한 사고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그 우연 뒤에 숨겨진 원인이 있습니다. 아마 망대 공사의 공사비를 누군가 빼돌려 부실 공사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래서 사고가 났다면 죽은 이들의 죽음은 결국 누구의 죄일까요? 죽은 이들의 죄입니까, 산 자들의 죄입니까?

그러므로 만약 산 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불의하게 행동한다면, 또 다른 망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사고의 대상자가 바로 살아 있는 너희들이나 너희 자녀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한번 더 그 재난을 산 자들에 대한 경고로 보게 하십니다.

무화과나무 비유

주님은 당시의 두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신 후 이어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무화과를 심었다면 당연히 열매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삼 년이 지나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주인은 땅만 버리는 이런 무화과는 빼내 버리고, 다른 과실수를 심겠다고 합니다. 이때 무화과나무를 돌보던 종이 주인에게 다시 거름을 주고 돌볼 테니 한 해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주로 유대 민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란 포도원에 이스라엘 백성을 두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그들은 착각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들고 있고 열매를 맺고 있지, 이렇게 착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너희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곧 그들은 죄인이고 너희들이 의인이란 뜻이 아니라, 너희를 향한 심판이 유보된 것이고 지금 살아 있는 너희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죽은 이들의 죽음이 살아 있는 너희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임을 알고 회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일에 대한 신앙적 성찰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접합니다. 나와 상관이 없으면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참 안됐다, 나는 괜찮다, 이 정도로만 생각할 뿐, 그 일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말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건들을 성경에 비춰 봄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주시는 메시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으로 성찰하여, 이 사태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생물학적 체르노빌

앞서 살펴본 본문을 의지해서 볼 때, 이 사태를 먼저 세상을 향한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를 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 경보의 최상위 단계를 발령했습니다. 바이러스가 국가와 대륙을 넘나들며 숙주를 만들고 사망자를 만드는 위기 상황이 되는 팬데믹 상태에 가까이 갔다고 본 것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제작한 '세계 멸망 10대 시나리오'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데, 여기를 보면 1위가 합성 바이러스 출현입니다. 2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공지능, 3위가 핵전쟁, 4위가 지구온난화를 통한 기후 재앙 5위가 인공 블랙홀, 6위가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종 바이러스로서, 이 정도로도 세계적 충격을 준다면, 북한을 비롯한 중국 우한에 바이러스연구소를 통해 연구하고 있는 합성 바이러스가 생물학무기로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실제 1979년 3월 소련의 생화학 무기 공장에서 합성 바이러스인 탄저균이 새어 나가는 사고가 있었고, 순식간에 수백 명이 죽었던 생물학적 체르노빌이라고 부른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인류 멸망 시나리오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의 질서를 계속 무시한다면, 또 핵이나 유전 기술 등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계속 넘는다면, 어떤 더 큰 재난이 올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이런 위험을 알리는 경고로 받아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경고

사실 오늘날의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을 맘대로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그러나 9·11 사태를 생각해 보십시오. 납치된 항공기가 뉴욕의 무역센터를 공격하여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에 사용된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조종사의 목을 겨눈 칼 하나였습니다. 칼 하나가 첨단 기술의 항공기를 움직여 현대 문명의 상징인 건물을 무참하게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때 한 평론가는 그 거대한 기술 문명이 단순한 칼 한 자루에 의해 이토록 무참히 무너진다고 썼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우리 사회가 최첨단 방식으로 위험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해도, 어떤 예기치 못한 사소한 사건 하나로 엄청난 큰 재난이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에서 호모데우스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신의 자리에 등극한 셈인데, 그런 인간이 이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이렇게 불안해하고 세계가 요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코로나 사태를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사태로만 보지 말고, 인간과 문명의 교만에 대해 회개하고,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을 깊이 자각하라는 경고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고를 받고 들어야 이 세상은 더 큰 위험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천지

둘째 우리는 이 사건을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로 봐야 합니다. 각 나라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경로가 다릅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은 신천지란 한 집단을 통해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하필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신천지 집단의 실상이 폭로되고 이만희란 교주의 정체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단은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포교 활동을 해 왔습니다. 교회 안에 은밀히 들어와서 교회 분란을 일으키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교인을 빼 가기도 했고, 또 은밀히 신분을 숨기고 접근하여 포교했고, 또 14만 4000명에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며 불안과 공포의 바이러스를 마음속에 은밀히 심는 공포 마케팅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은밀하게 활동했는데, 그들이 바이러스로 심하게 무너지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신천지가 폭로되고 무너지는 것은 마땅하지만, 신천지가 신천지 교회로 소개되면서 다른 한국교회도 신천지 집단과 유사하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도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

우리는 신천지를 통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무슨 메시지를 주는지를 알고 그것을 들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천지 집단은 개인의 영혼과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사이비 집단이지만, 문제는 신천지에 넘어간 일반 신도들입니다. 그들은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왜 신천지에 빠졌을까요?

사회의 불안, 개인의 상황, 신천지의 속임수 등의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신천지 신도들 중에 다수가 기성 교인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신천지로 넘어갔을까요? 그들의 포교 방식은 기존 교회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기존 교인을 현혹합니다. 특히 한기총을 타락한 기독교의 전형으로 선전하고, 신천지의 신앙적 우위를 주장하면서 포교 활동을 합니다. 또 자기들이야말로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고, 자기들만이 성경의 깊은 진리를 알고 있다며 포교 활동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신천지로 넘어가게 된 일차적 이유는 그들이 아닌 한국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교회가 제대로 성도들을 돌보지 못하고, 교회가 성경을 바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교회가 계속 건강하게 서지 못하고,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신천지는 비록 속임의 방식이지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포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넘어갔는데, 그들이 그렇게 할 동안에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했습니까? 잃어버린 영혼들이 그들에게 넘어갈 때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졌습니까? 우리는 전도에 대한 열정이 너무 약했고, 우리만 믿고 우리만 신앙생활하면 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수많은 영혼이 신천지로 넘어가게 만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천지가 깊이 연관된 이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신천지에 대한 정죄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한국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셋째는 이 사태를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로 들어야 합니다. 지금 온 세계가 바이러스 감염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집 밖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모임들을 취소하고, 항공기도 취소됩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바이러스 확산을 매우 두려워하며 매우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뿐일까?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다른 바이러스

어쩌면 우리는 더 두려워해야 할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정체도 모른 채 방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빨리 확산되는 바이러스가 있다면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대로 방치하면 관계가 깨어지고 억울한 희생자도 계속 생겨나게 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서 마스크를 사재기해서 폭리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접촉자 행세를 하면서 유급휴가와 생활 지원비를 얻어 내려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이기심의 바이러스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기심의 바이러스가 계속 여러 형태로 변종하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막으려고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요?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감염의 위험에도 정치 집회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막아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대립합니다. 이렇게 주장해야 할 만큼 격해진 마음들, 정권에 대한 불신, 이런 상황을 이용하는 정치인들, 이런 분열의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퍼져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요? 이것이 더 확산되면 어떻게 될까요?

또 신천지에 청년들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왜 청년들이 그런 극단적인 교리에 빠지는 것일까요? 신천지는 14만 4000명이 차면 세상이 말 그대로 신천지가 되고, 자기가 그 속에 들면 자신은 세상을 통치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그 교리에 그렇게 빠지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아마 미래에 대한 불안, 삶에 대한 불안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기저에 작용했을 겁니다. 3포, 5포, n포와 같은 절망과 패배의 바이러스가 이미 청년들 사이에 퍼져 있고, 신천지는 그것을 역이용해서 현실에서 종교로 도피하게 만들고 극단적 교리에 청년들의 생각을 묶어 두고 있습니다. 이런 좌절과 절망의 바이러스가 계속 전파된다면 코로나가 만드는 것 이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바이러스를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만 정말 더 두려워해야 할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기심의 바이러스, 절망과 좌절의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그런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절망과 이기심과 분열과 죄의 바이러스들이 없는지, 내가 그런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전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씀을 통해 살펴야 합니다. 또 그런 죄의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을 알려야 합니다. 그 백신은 진리의 참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는 그 백신으로 회복되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모두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이 코로나 사태를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경고로 듣고, 더욱더 여호와를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3·1절

오늘이 3·1절입니다. 일제의 압박 아래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온 국민이 각 지역 각 영역에서 노력하는 것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빨리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속히 일상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아픈 사람들이 낫고, 치료진들의 수고가 열매를 맺고,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사태가 주는 영적 교훈을 깨닫지도 못한 채, 이 사태를 뜻 없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사건이 주는 어떤 메시지를 듣지도 못하고, 이 사태를 통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어떤 작은 변화도 없이 그냥 이전처럼 되돌아가, 과거를 반복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경고는 더 큰 재난을 막게 해 줍니다. 경고는 그것을 듣는 자를 살게 합니다. 이 사태가 경고라면 우리는 세상에 주는 경고,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 우리를 향한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 경고를 들어야 우리가 삽니다. 그 경고를 들어야 더 큰 어려움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사태가 주는 경고를 잘 들어야 산 자들이 제대로 살게 됩니다.

모쪼록 이번 사태를 통해 주시는 경고를 잘 들어 사회가 방향을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개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할 줄 알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사태가 시대와 교회와 개인을 회개케 함으로 오히려 더 큰 재난을 예방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미래를 위한 좋은 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기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속히 진정시켜 주옵소서. 지금 고통하는 이들, 또 치료를 위해서 애쓰는 이들을 도와주옵소서.

그러나 주님, 이런 사태가 하나의 힘든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런 사태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길 수 있게 하옵소서. 이번 사태를 통해서 신의 위치에 올라 교만해진 인간들이 창조의 정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 삶의 방식을 고치고 돌이키게 하옵소서.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가 그동안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전도의 열정을 상실한 채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 살았음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들을 새롭게 하옵소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우리 안에 이미 확산되고 있는 이기심, 분열과 정죄와 탐욕, 절망과 좌절의 바이러스들을 알게 하옵소서. 복음의 빛 안에서 내 안의 영적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복음의 백신으로 치유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코로나 사태가 한 번의 지나가는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세상과 교회와 우리에게 각성과 돌이킴을 주는 계기가 됨으로 더 큰 사건을 예방하고 산 자들이 올바르게 살 수 있게 만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정현구 /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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